경기북부 지자체와 연계해 원외재판부 설치에 박차가할 것
회칙 개정해 8대 회장부터는 다른 지방회와 회장 임기 같아져
전문직 무너지면 안 돼, 전문가가 인정받고 열심인 사회돼야

얼마전 제5대 이재준 경기북부지방변호사회 회장을 인터뷰했는데 다시 제6대 회장을 인터뷰할 일이 생겼다. 지난 1월 27일, 경기북부회 정기총회에서 안수화 변호사(사시 31회)가 신임회장으로 선출되었기 때문이다. 13개 지방변호사회 회장선거는 내년 즉, 2015년에 실시된다. 유일하게 경기북부회만 올해 선거를 치렀다.

2004년 2월 종전 서울지방법원 의정부지원이 의정부지방법원으로 승격되면서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경기북부지방변호사회(당시 의정부지방변호사회)가 분리돼 나왔기 때문이다. 그해에 경기북부회가 창립됐으니 14개 지방변호사회 중에서 가장 늦게 창립된 지방변호사회가 되는 것이다. 지난 이재준 회장 인터뷰는 서울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했었는데 이번 안 회장 인터뷰는 의정부지방법원 앞에 위치한 경기북부회 회관에서 이루어졌다. 인터뷰 하는 날인 2월 28일 수원고등법원과 수원가정법원의 설치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그래서 그 이야기로 인터뷰를 시작하였다.


경기중앙은 고등법원의 설치를 숙원사업으로, 경기북부는 서울고등법원 원외재판부 설치를 주된 공약으로 하고 있는데 오늘 수원고등법원 설치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소감을 말해 달라.


우선 수원고등법원이 설치된 것을 축하한다. 이제 지방변호사회 차원에서 고등재판부가 없는 곳은 세곳이다. 인천, 의정부, 울산. 경기북부에 살고있는 많은 국민이 서초동에 위치한 서울고등법원까지 가서 재판을 받는 것은 너무 불편하다. 그래서 이번 총회에서 내가 선출되면서 총회결의로 원외재판부 설치운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하기로 했다. 추진운동을 회장의 공약사업으로만 내거는 것이 아니라 회내에 추진조직을 갖추기로 한 것이다. 그런 차에 경기고등법원설치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것은 우리들에게도 몹시 고무적인 일이다. 추진운동에 탄력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 경기북부회 회원 뿐만 아니라 경기북부지역 지방자치단체장들과 연계해 강력한 운동을 추진할 생각이다.

이재준 전 회장과 인터뷰에서 가능하면 다른 13개 지방변호사회와 회장임기를 맞출 방법을 강구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다시 안 회장이 선출되었다. 대책이 마련되었는가?

이번 총회에서 제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내가 6대 회장인데 임기대로 2년을 하고, 7대 회장은 임기를 1년으로 조정했다. 그러면 그 다음부터는 회장의 임기가 다른 지방회장들과 일치하게 된다.

경기북부회의 변호사공제제도에 대한 자부심이 높다. 설명 좀 해달라.

간혹 다른 지방변호사회에서 배우러 온다. 10년 전 서울에서 분리될 때 115명의 변호사가 5억5000만원을 받아 나왔는데 지금 회원이 265명이고, 정기예금에 비치된 공제회비가 약 21억원이다. 변호사회 차원에서 비용을 아껴 돈이 남으면 총회 결의로 그 돈을 공제회로 적립을 한다. 지난 집행부에서도 적지않은 비용을 줄여서 적립결의를 했다. 공제금으로 적립되면 전체회원이 이익을 보기 때문이다. 25년이 되면 은퇴와 관계없이 공제금을 받게 되고, 다시 새롭게 적립이 시작되는데 그때 약 3000만원 정도를 받을 수 있다. 다른 변호사회에서는 회에서 콘도나 골프장 회원권을 사기도 하고, 회관건물신축자금을 마련하기도 하는데 우리는 공감대가 그런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고 가능하면 공제기금을 늘이자는 것이다. 물론 회원중에는 회관건축을 찬성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지금 우리의 정책을 찬성한다.

신임회장으로 중점 사업이 무엇인가?
우리회 뿐만 아니라 모든 변호사회의 최대 고민이 회원들의 회무 참여가 낮다는 점일 것이다. 누군 그러더라. 변호사회는 회원들의 무관심으로 먹고산다고. 경기북부는 회원수가 아직까지는 200여명 정도라서 수가 더 많은 다른 곳보다는 잘 모인다고 하지만 우리 역시 그렇다. 그래서 내가 2년 동안 제일 하고 싶은 사업은 눈에 보이는 사업이 아닌 회원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내 중점사업은 도이불언 하자성혜(桃李不言 下自成蹊)이다. 내가 어느날 식당에 가서 발견하고 채택한 것이다(웃음). ‘복숭화, 배꽃은 말이 없이 피어있어도 그 향기와 아름다움에 취해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니 그 밑에 자연히 소롯길이 생긴다’는 뜻으로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말이다. 그런 변호사회를 만들고 싶다. 지금까지는 집행부에서 많이 아꼈는데 이제는 좀 여유가 생겼으니 돈 좀 쓰려고 한다(웃음). 모임을 좀 활성화하겠다는 말이다. 전회원이 내년쯤 제주도로 여행을 가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다.

고려대 법대를 졸업하고 한화 에너지 원유기획과장으로 근무하다가 갑자기 사직하고 사법시험 준비해 변호사가 되었다. 지금 장로이고, 집사 때는 ‘신앙이 좋으면 공부도 잘 한다’는 책도 썼다. 지금은 몽골 울란바토르 대학교 운영이사장이다. 이게 다 뭔가?

내가 77학번이다. 유신말기에 대학을 다녔다. 집안도 어려워 주말에는 과외로 돈을 벌어 학교를 다녔다. 먹고 사는 것이 힘들어 데모도, 고시공부도 생각할 틈이 없었다. 군대 마치고 조기취직이 내 목표였다. 그래서 군에 있을 때 면접을 봐 한화에 들어갔다. 한화에서 최연소 과장이 되었다.

그때부터 고민이 되었다.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나. 그래서 그만두고 3년계획으로 고시공부를 시작했는데 운좋게 계획보다 빨리 바로 시험에 합격했다. 내가 예상한 문제 중에 21개를 적중시켰다. 고시과외를 했더라면 족집게 강사가 되었을 것이다. 그 적중률로 31회 사법시험에서 12등으로 붙었다(웃음).

책은 20년 전에 쓴 것이다. 집사 때다. 친한 목사님들이 너무 애들이 공부에만 열중한다고 신앙에 관심을 가지라는 강연을 해달라 부탁받아 시작한 것이 전국 교회에서 초청하는 유명강사가 되었다. 가르치는 것에 달란트(재주)가 있는 것 같다. 그 참에 쓴 책이 그것이다.

울란바토르 대학은 내가 재단이사장이 아니라 운영이사장이다. 재단이사장은 이름을 밝힐 수 없지만 정말 훌륭한 분이다. 12년 동안 100억 이상을 투자하여 몽골에서 외국인이 세운 사립대학으로 그 나라의 10대 대학 중에 하나가 된 것이다. 몽골의 대학이 100개가 넘는데 말이다. 10대 대학중에 사립이 2개이다. 그중에 하나가 우리대학이다. 1995년경 한국인 윤순재 목사님이 몽골 문교부 인가를 받아 한국어과 40명, 경영학과 40명, 영문과 40명 인가를 받아 시작한 대학이 지금 재학생 3500명의 최고의 대학이 된 것이다. 나는 운영이사장의 소임을 맡고 있고, 그 일로 자주 몽골에 간다. 물론 나를 포함한 이사들 모두 봉사로, 자비로 하는 활동이다. 그렇지만 가장 보람있고, 행복한 일 중 하나이다.

2005년 대한변협신문에 칼럼을 연재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전문직이 무너져 가고 있다. 아니 이미 무너졌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전문직은 무너져서는 안 된다. 전문직이 무너지면 나라의 기틀도 무너진다. 동료 변호사님들의 분발과 번영을 기대해 본다” 그로부터 거의 10년이 흘렀다. 당신이 회장이 됐다. 지금의 생각이 궁금하다.

전문가가 인정받고, 열심인 사회가 선진국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변호사 수가 너무 많다. 과연 변호사가 전문가인가 의심이 들 정도이다. 아는 검사장과 대화하면서, 사법연수원에 가서 보니 연수생 중에 100명 이상이 법률가로서 기본이 안 되었다는 인상을 받았단다. 변호사가 더 이상 전문가로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걱정이다. 그 당시 내 칼럼 내용을 공보이사가 다시 들려주니, 오히려 지금의 실태를 반영하는 말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말을 잘 못한다고 하면서 쏟아내는 말들이 다 명언이다. 마지막으로 술한잔 못하는 것으로 아는데 취미가 뭐냐고 물었더니, 여행이다. 특히 유럽여행을 좋아한단다. 스위스에는 10번 이상 갔다. 유럽을 관광이 아닌 여행으로 가고싶은 사람은 안수화 회장님에게 연락하면 정말로 많은 정보를 줄 것이다. 같이 여행가고 싶은 회장님이다.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