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나라 일본에서는 1945년 패전 이후 발생한 베이비붐 시기에 태어난 이들을 ‘단카이 세대(團塊世代)’라 부른다. 그리고 흔히 들어보았을 ‘버블세대’는 1985년 이후의 경제적 호황기인 버블 경제기에 성인이 된 세대로, 이들은 경제적 혜택 속에 소비의 맛을 알고, 문화적으로는 만화, 애니메이션, 록음악으로 대표되는 서브컬처의 영향을 많이 받은 세대다.

일본은 1970년대 후반에 되어서야 비로소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던 금욕주의를 뿌리치고, 소비문화와 이 서브컬처가 결합하면서 1980년대에 들어 풍요로운 소비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학생운동이 쇠퇴기에 접어든 시점에 성인이 된 이 세대는 대체로 정치적 무관심과 세상에 대한 냉소적인 태도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대학을 다니던 1980년대의 한국은 군사정권의 지배하에 학생운동이 극에 달했던 시기였다. ‘학생운동’을 시대를 가르는 기준으로 계산해 보면, 한국과 일본은 약 20년 정도의 시간차가 난다. 얼마 전, 필자는 나와 같은 시기에 일본에서 대학을 다녔던 이를 만나 그 시대의 단면을 볼 기회를 가졌다.

3박 4일간의 빡빡한 일정으로 잠시 일본에 방문을 했다. 목요일 늦은 밤 하네다 공항에 도착해 인접한 메구로역 근처에 숙소를 잡은 뒤, 일행과 나는 역 주변 거리를 둘러보았다. 오랜만의 방문이었지만 일본은 친숙한 모습이었다. 언뜻 보면 거리와 행인의 모습은 한국 도시와 별반 다르지 않은 듯 했다.

다음 날에는 아침 일찍 숙소를 떠나 고급 명품샵과 개성 있는 건축물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는 오모테산도 거리에 들렀고, 오후에는 회의를 위해 신주꾸로 이동했다. 나와 비슷한 연배의 일본인 사장이 우리를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회의를 마친 뒤 반주를 곁들인 저녁식사는 예정보다 많이 길어졌고, 식사 후 선약이 있다던 사장은 뜻밖의 제안을 건넸다. 지금 롯폰기에 있는 클럽에서 파티가 있는데 함께 가지 않겠냐는 거다. 사장과 비슷한 시기에 대학시절을 보낸 사람들이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만든 일명 4050 파티라 부르는 모임이었다.

파티를 위해 빌려놓은 커다란 클럽에 도착했을 때 그들이 대학생이었던 시절 유행했을 법한 오래된 팝송이 계속 흘러 나왔고, 모두들 익숙한 듯 시끄러운 디스코 음악에 맞춰 똑같은 춤동작으로 군무를 추고 있었다. 그리고 한 라디오 음악방송 아나운서라는 사장의 지인도 우리와 자리를 함께했다. 일본이 경제적인 풍요로움을 누렸다던 1980년대에 대학시절을 보낸 버블세대의 파티. 모임이 생긴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들은 그곳에서 그 시절 추억과 분위기를 곱씹으며 그들만의 문화를 재생산해내고 있었다. 파티가 끝날 무렵의 빈자리는 다시 젊은 세대로 메꿔졌다.

파티에서 빠져나온 우리는 그 아나운서의 안내로 근처의 작은 술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시끌벅적했던 클럽에서의 분위기와는 반대로 홀에는 손님이 한두명씩 모여 앉아 조용히 술을 마시고 있었다. 블라인드가 반쯤 쳐진 테이블에는 3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있었고, 나와 일행들은 그 옆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아나운서는 맡겨놨던 술과 안주를 주문했고,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즐겁게 나누었다. 한류, 욘사마, 싸이 ….

그런데 갑자기 옆 테이블에 있던 젊은이들이 가라오케 기계를 틀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조용했던 술집에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의아하게도 술집에 있던 그 누구도 그들의 노래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한국에서는 흔히 접할 수 없는 생소한 분위기였다. 일본인 사장의 제의로 우리도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일행 중 한명이 ‘강남스타일’을 열창했다. 그런데 옆 테이블에서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블라인드가 조금씩 올라가더니 그 테이블에 있던 젊은이들이 단체로 말춤을 추면서 나오는 게 아닌가! 그들과 우리는 술자리를 함께 했고, 광고기획사에 다닌다던 그들은 먼저 가게에서 나온 우리를 문 밖까지 배웅해주었다.

그때의 일본여행을 통해 나는 짧지만 많은 것을 경험했다. 롯폰기의 클럽에서는 ‘버블세대’가 대학시절 추던 디스코춤을 단체로 추는 군무를 보았고, 번화한 동경의 뒷골목에서는 강남스타일을 따라 부르며 말춤을 추는 ‘주니어 단카이 세대’를 만났다. 다시 들어온 숙소에서는 TV에서 방영되는 ‘신사의 품격’을 보았다. 이 와중에 어디에선가는 신종 우파 단체가 “조선인을 죽여라” 외치며 태극기를 찢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양한 상황과 모습, 세대와 문화가 공존하는 일본. 비슷한 듯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는 한국. 짧지만 긴 여행을 다녀왔다.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