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우잠을 자더라도 고래 꿈을 꾸어라.
꿈은 꿈을 꾸는 자의 것이다.
꿈이 없는 삶은 날개가 부러져
땅바닥에 앉아 굶어 죽어가는 새와 같다.

-정호승의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 마디’ 중


요즘 TV를 틀면 수 많은 전문가들, 변호사들, 의사들이 나와서 토크쇼에서 나름 자기자랑 방송을 많이 한다. 나 또한 그 무리 중에 한명이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언제까지 갈까?
이런 현상은 그리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방송은 패션이고 트렌드이기 때문에 변한다. 그래서 말하고 싶은 것은 너무 방송에 예속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방송을 활용해야지 방송에 끌려다녀서는 안 된다.
한동안 방송에 푹 빠져 심리학자라고 떠들며 다녔지만, 그것은 산송장과 다름없는 삶이었다. 한동안 내 삶에 어떤 꿈도 암시도 없이 죽은 새로 살아온 것이다.

그렇게 살던 어느 날 갑자기 출판사로부터 내용증명서를 받고나서야 정신이 바짝 들었다. 수년 전에 출판 계약을 하고서 원고를 완성하지 못하자 출판사로부터 계약금 반환 청구 내용증명서가 날아온 것이다.
지금은 출판계가 전반적으로 불황이지만, 몇 년 전만 해도 그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다. 그당시 심리학 관련 책을 열심히 펴내던 나에게 한 출판사에서 선인세로 계약금을 주고 출판 계약을 맺었는데 5년 동안 원고를 완성하지 못했으니 계약금을 반환하라는 내용이었다.

내용증명을 받고서야 내 삶이 일엽편주처럼 정처 없이 떠돌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내 삶은 어디로 가고 있는 거야?”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건 뭐야?”
그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고, 머리끝이 쭈뼛 서는 것을 느꼈다.
뚜렷한 삶의 목표를 세워놓지도 않은 채 날개가 부러진 새처럼 땅바닥에 앉아 굶어 죽어가는 새와 같은 신세였던 것이다.
대학원생 때부터 일찍이 대학과 기업체에서 강의를 하고, TV와 라디오 방송을 하고, 십여편의 책을 내면서 나는 잠시 죽은 새가 되었던 것이다.
강의 의뢰는 쏟아지고, KBS의 ‘TV 생활법정’의 변호인이나 ‘황금알’ ‘아궁이’ ‘명랑해결단’ ‘맛있는 수다’ 등등. 한때 예능 토크쇼와 토론 프로의 패널로 정신없이 오락가락하고, 십여편의 책을 쓰면서 자신이 높이 나는 새가 되어 버린 듯한 착각에 빠져버렸던 것이다.
어쩌면 그렇게 바쁘게 살다보니 에너지가 소진되어 버린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집중력도 떨어지고, 한 줄의 글도 쓰지 못한 채 3~4년의 시간을 보내고 대한변협신문에 기고를 시작하면서 다시금 나를 돌아본다.
하늘 높이 날고 있는 새는 자신이 모든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는 줄 착각한다. 그러나 그런 세간의 사랑과 관심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자신을 죽이고 말았다.

후쿠오가 신이치는 ‘생물과 무생물 사이’에서 ‘죽은 새 증후군’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무엇을 어떻게 하면 일이 더 잘 진행되는지를 알기 때문에 어디에 주력하면 되는지, 어떻게 우선순위를 매기면 되는지 눈에 보인다. 그러면서 점점 더 능률적으로 일할 수 있게 된다. 무슨 일을 하든 실수 없이 해낼 수 있다. 여기까지는 좋다.

그렇지만 가장 노련해진 부분은, 내가 얼마나 일을 정력적으로 해내고 있는지를 세상에 알리는 기술이다. 일은 원숙기를 맞이한다. 모두가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새는 참으로 우아하게 날개를 펴고 창공을 날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그때 새는 이미 죽은 것이다. 이제 그의 정열은 모두 다 타버리고 남아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요즘 평소 존경하고, 결혼식 주례까지 서주신 이시형 박사님과 함께 여의도 메타포럼을 준비하고 있다. 이 포럼을 통해 경쟁적인 삶에서, 승리하고자 하는 삶에서, 소유하려는 삶으로부터 초경쟁적인 삶으로, 배려하는 삶으로, 존재의 삶을 살고자 한다.

내려 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고은 시인의 ‘그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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