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클루니가 각본을 쓰고 감독겸 주연배우로 참여한 영화 ‘모뉴먼츠맨’(The Monuments Man)이 2월초 미국에서 개봉됐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2차 세계대전 말 나치 점령 하의 유럽에서 역사유적 등이 전쟁 와중에 파괴되는 것을 방지하고 나치로부터 약탈당한 미술품 등을 되찾아오기 위해 창설된 예술품 전담부대인 모뉴먼츠맨의 활약상을 다루었다.

▲ 모뉴먼츠 맨
모뉴먼츠맨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국 내 특수부대인 ‘건축물, 순수미술 및 아카이브 프로그램(The Monuments, Fine Arts, and Archives program, MFAA)’의 약칭이다. 모뉴먼츠맨은 미술사학자, 큐레이터, 고고학자들로 구성되었는데, 조지 클루니가 맡은 역할의 실존모델도 하버드대학 미술관의 연구자였던 조지 스타우트였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는 조직적으로 점령지역의 예술품들을 약탈하였고 약탈품을 비밀저장소에 모아 숨겨놓았다. 나치는 점령지의 미술관, 박물관이나 대학도서관 등지에서 문화재나 미술품들을 강탈하기도 했지만, 퇴폐미술(degenerate art)이라는 낙인을 찍어 유태인 개인 소장 미술품도 수없이 강탈하였다. 모뉴먼츠맨은 독일에서만 1500개의 비밀저장고를 찾아냈고, 오스트리아 및 이탈리아의 소금광산이나 고성에서 수많은 약탈품을 회수하였는데, 오스트리아 알타우제 소금광산에서 찾아낸 귀중한 미술품만도 6500점이 넘었다.

미술전문가들로 구성된 모뉴먼츠맨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귀중한 미술품과 문화재가 전쟁의 참화로부터 또는 나치의 강탈로부터 온전히 보존되었지만 모든 약탈품을 회수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수십 년이 흐른 뒤 숨어있던 강탈품들이 조금씩 드러나기도 한다.

2011년 봄 독일 세관 당국이 코르넬리우스 구르리트라는 80살 노인의 미심쩍은 탈세행적을 계기로 그의 뮌헨 아파트를 수색하는 과정에서 1500여점의 미술품을 발견하게 되었다. 코르넬리우스는 2차대전 중 미술품 딜러였던 아버지 힐데브란트 구르리트로부터 위 그림들을 물려받아 한두 점씩 그림을 팔아온 것이 드러났는데, 발견된 미술품 중 상당수는 나치가 2차 세계대전 중 유태인들로부터 약탈한 것으로 추정되는 그림을 포함하고 있다. 피카소, 마티스, 샤갈 작품 등 유명작가의 그림들이 포함되어 있어 그 추정 가액만해도 10억유로에 이른다. 위 그림들이 제 주인을 찾아갈 수 있을지 자못 그 귀추가 주목된다.

나치로부터 약탈당한 유태인들의 미술품들은 수십 년이 흐른 뒤 간혹 뉴욕이나 런던의 경매장에 나오고, 피해자의 유족이 반환 소송을 제기한다. 주로 소멸시효 문제, 반환의 준거법 문제 등으로 인하여 그 반환이 쉽지만은 않다. 2006년 마리아 알트만이라는 캘리포니아 거주 할머니가 국제소송과 중재를 통하여 극적으로 오스트리아로부터 반환 받은 구스타브 클림트의 그림이 대표적인 반환성공사례이다(Republic of Austria v. Altmann).

▲ 구스타프 클림트, 아델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
클림트의 모델인 아델 블로흐 바우어는 부유한 유태인 오스트리아 기업가이자 미술애호가였던 페르디난트 블로흐 바우어의 아내였다.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합방하고 오스트리아 내 유태인들의 재산을 강탈하는 상황이 되자 페르디난트도 자신의 설탕공장뿐만 아니라 소장하던 클림트의 그림들을 모두 빼앗겼다. 도망치듯 오스트리아를 떠나야 했다.

알트만 케이스에서 문제된 클림트 작품은 아델 초상화 2점과 풍경화 3점이었는데, 나치정권 몰락 후 오스트리아 국립미술관에 수십 년 동안 전시되고 있었다. 페르디난트의 상속인인 조카 마리아 알트만도 나치 치하에서 탈출하여 미국에 정착하여 살다가 1990년대말 오스트리아 미술관에 전시된 클림트 그림들이 삼촌에 의해 기증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후 오스트리아 정부에 반환요구를 했으나 거절당하자 오스트리아 법원에 소송을 낸다. 그러나 클림트의 그림 시가가 워낙 높아 소송 인지대를 부담할 수 없게 되자 우여곡절 끝에 미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다. 외국주권면제이론 적용여부 등과 관련하여 치열한 법리공방 끝에 승소판결을 얻는다. 이어서 오스트리아에서 중재절차를 거쳐 최종적으로 클림트 그림 5점을 모두 되찾아 온다.

마리아 알트만은 곧바로 그림을 경매에 넘겼는데 1907년작 아델 초상은 자그마치 1억3500만달러에 팔렸다. 현재 뉴욕시 노이에 갤러리에 전시되어 있다. 마리아 알트만 할머니가 오스트리아 정부를 상대로 한 10년 가까운 끈질긴 투쟁 끝에 얻은 해피엔딩이었다. 그러나 광적인 히틀러 정권에 의해 약탈당한 수많은 유태인들의 비극 중 극히 예외적인 케이스일 뿐이었다. 나치가 약탈한 예술품 중 수백만점은 아직도 그 족적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고, 코르넬리우스 사건은 그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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