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도 외교관은 2차 세계대전 이래 인류의 가장 큰 성취는 2002년 국제형사재판소를 설립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2차 세계대전 후 인류는 깊이 반성했고 역사상 가장 큰 범죄는 전쟁범죄와 대량학살죄라는 결론을 내렸다. 전쟁은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하고 행복하게 살 권리를 정면으로 짓밟는 나쁜 범죄여서 전쟁을 일으킨 전범은 엄격하게 처벌해 마땅하다. 역사상 외적으로부터 무수히 침공을 받은 우리는 이 같은 국제형사재판소의 설립취지에 적극 공감한다. 지금도 냉엄한 국제정치 현실 속에 중국과 일본의 군사력에 의해 잠재적인 위협을 받고 있어 더욱 그러하다.

국제형사재판소는 2009년과 2010년에 수단 집단학살에 대한 책임을 물어 오마르 알바시르 수단 대통령에 대해 과감하게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회원국은 그를 체포할 책임이 있으므로 알바시르 대통령은 국제형사재판소 회원국 122개국을 방문할 생각을 못하며, 국제형사재판소 구속영장은 시효가 없어 언젠가는 체포돼 재판을 받을 것이다. 윌리암 루토 케냐 현 부통령도 2007년 선거 관련 대량학살 혐의로 재판받고 있고 우루 케냐타 현 대통령도 곧 법정에 선다.

살아있는 권력에 칼을 대는 것은 쉽지 않다. 일부 아프리카 국가들은 왜 아프리카만 단죄하느냐는 볼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량학살 혐의를 받는 피고인 소속 8개국이 모두 아프리카여서 국제형사재판소가 아프리카를 차별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한때 일부 아프리카 회원국들이 국제형사재판소 탈퇴를 고려하며 반발했으나, 탈퇴는 법치주의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고 그 결과 탈퇴국의 신용이 실추되어 경제협력 대상에서 제외되는 등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성적 판단을 하게 되었다.

재판소에 계류 중인 8개 아프리카 국가 중 5개국(우간다, 콩고민주공화국,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말리, 아이보리코스트)은 스스로 자기 나라의 사태를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했고, 회원국이 아닌 수단과 리비아는 유엔안보리의 결의로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됐으며, 오직 케냐만 검사가 직권으로 수사개시를 했으나 사전에 예심부의 허가를 얻었고 당시 케냐 정부와 국제사회의 전폭적 지지에 힘입어 수사에 착수했으므로 국제형사재판소가 아프리카에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음은 명백하다. 부족간의 분쟁이 지속되고 대화에 의한 민주정치가 정착되지 않아 대량학살이 빈발하는 아프리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선 인류의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개소 이래 수많은 도전에 대해 국제형사재판소는 의연하게 대처하고 있고 이 같은 응전의 중심에 송상현 재판소장이 있다. 그는 대륙법 국가 출신이지만 하버드 로스쿨에서 수년 간 강의했고 미국과 영국에서 수학해 영미법을 깊이 이해하고 있어 다양한 배경과 국적의 재판관들을 원만하게 이끌어 왔다. 2003년에 초대 재판관으로 선출돼 2006년에 재선되고 2009년에 소장으로 선임됐으며 2012년에 소장에 연임된 그는 2015년 3월 소장직과 재판관의 임기가 만료된다. 정창호 크메르루주 유엔특별재판소 재판관이 송 소장의 후임으로 2014년 12월 국제형사재판소 재판관에 출마한다고 한다. 그가 당선된다면 모든 국제형사재판소를 통틀어 가장 젊은 재판관이 된다. 꼭 당선돼 우리나라와 국제형사재판소와의 좋은 인연을 이어갔으면 좋겠다. 우리나라는 국제형사재판소의 출범시도 주역으로 적극 기여했다.

국제형사재판소의 앞으로의 숙제는 미국을 가입시키는 것이다. 미국은 전세계에 전투요원을 배치하고 있어 이들이 국제형사재판소의 재판 대상이 될까봐 그동안 가입을 망설여 왔지만 최근 젊은 미국 법조인들을 중심으로 가입하자는 움직임이 있다.

아쉬운 것은 우리나라의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다. 최근 크메르루주 국제전범재판소 출범에 5000만달러가 필요하니 넉넉한 아시아 국가들이 주로 부담하라는 국제사회의 요구가 있었다.

이에 부응해 일본은 4000만달러를 선뜻 내놓은 반면 우리는 국력에 어울리지 않게 아주 적은 금액만을 출연해 부끄러웠다는 외교가의 지적이 있었다.

우리의 눈부신 경제성장을 자랑하지만 말고 과실을 국제사회와 나누는 성숙한 자세가 필요하다. 세계는 한국이 돈만 많다고 존경하지 않으며 국제사회에 봉사하는 태도를 보여야 진정한 국제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다. 전쟁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국제형사재판소의 노력에 한국이 더욱 기여할 것을 기대한다.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