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기 이후 일제강점기와 해방, 그리고 6·25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차례로 겪으면서 한국에는 다양한 주거 양식이 등장했다. 그러나 197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 도심에서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던 주거의 양식중의 하나가 바로 한옥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급격히 늘어난 주택수요에 대한 해결책으로 등장한 도시한옥이 주거의 대량생산과 공급에 결정적 역할을 했지만, 목재가격 상승과 수공예적 생산방식으로 인한 고비용 문제로 점차 지어지지 않게 되었다.

필자 역시 어린 시절, 1950~ 60년대 지어진 이런 도시한옥에서 살았다. 보통 한옥이 그런 것처럼 마당과 연결된 부엌은 신발을 벗지 않고 드나들 수 있었는데, 우리 집 부엌에 난 뒷문을 열면 처마와 처마 사이 좁은 공간의 계단을 지나 뒷집 부엌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나에게는 뒷집 부엌과 마당, 마당 건너편에 있는 문간방을 차례로 지나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또 다른 동선이 있었다. 그 대문 밖의 윗동네 길을 가로질러 가면 가파른 계단 옆 길모퉁이에 오래된 나무 전봇대 하나가 있었다. 이 공간은 동네아이들의 좋은 놀이터였다. 날이 저무는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놀다보면 저녁 먹어라 외치는 뒷집 아주머니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우리 집 부엌에 계신 어머니의 부름이 뒷집 아주머니를 통해 그 집 대문 밖으로 전달되곤 했다.

초겨울이면 시골에서 올라온 배추를 마당 한가득 쌓아두고 옆집과 함께 김장을 했다. 우리 집으로 가는 막다른 골목 끝에 옆집 대문이 있었다. 활짝 열린 옆집과 우리 집 대문을 넘어 다니며 두 집 마당을 오고 갔던 기억이 난다. 그 막다른 골목은 길이라기보다 두 집이 공유하는 또 다른 마당 같은 공간이었다.

근처에 있던 집들은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집 사이사이를 이어주는 또 다른 공간이 어린 나에게 깊은 인상과 추억을 심어주었다. 얼핏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그곳에는 사람들이 사는 방식만큼이나 다양한 주택이 모여 동네를 이루고 있었다. 얼마 전 그 동네를 다시 찾았을 때, 옛 기억 속에 남아있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세월을 견딘 몇 안 되는 한옥 중 한 채가 힘없이 헐리고 있었다.

1980년대 건축계의 큰 화두는 ‘전통’이었다. ‘한국의 근대건축’에 대한 열망과 함께 ‘전통’의 문제는 건축계가 짚고 넘어서야 할 큰 산이었다. 1980년대 초까지는 직설적인 전통적 어휘들을 형태적으로 인용하는 방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국적불명의 조형어휘가 무분별하게 적용되고 있는 시기였다.
필자가 대학원에 다니고 있던 시절인 1987년 공간사에서 주최한 학생공모전에 참가한 적이 있다. ‘한국성을 조명한 우리 주거의 현대적 원형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화두로, 학생들에게 한국성이 담긴 현대주택에 대한 아이디어 제시를 요구했다. 당시만 해도 필자가 살았던 도시한옥은 한옥으로 인식되지 않았고, 관련된 연구도 초보적인 단계에 있었다. 나는 고건축 답사를 통해 접한 공간적 경험과 몸으로 기억하고 있던 도시한옥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작품으로 제출했고,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공모전을 계기로 정립한 전통에 대한 생각은 현재까지 본인의 작업에 중요한 바탕이 되어오고 있다.

최근 필자가 설계한 주택 ‘지노하우스(사진)’가 다수의 건축상을 수상하면서 ‘모던 한옥’이라는 제목을 달고 뉴스에 소개된 적이 있다. 그리고 방송이 나간 이후로 종종 한옥을 설계해달라는 의뢰가 들어왔다. 하지만 필자가 하는 작업은 목구조로 된 과거의 구법과 형태로 짓는 한옥을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한옥의 공간개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일이다. 삶의 흔적이 기록된 기존 한옥은 보존할 가치가 있지만,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과거의 것을 과거의 생산방식으로 새로 만들어내는 것에는 동의하기 힘들다. 2000년 이후 돌아온 한옥붐과 함께 신한옥, 모던한옥 등 다양한 이름의 한옥이 다시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그 결과물들이 단순히 전통의 외피는 아닐까? 기와지붕을 얹은 담장이 전통에 대한 최선의 표현은 아닐진대 말이다. 지금이 바로 한국적인 공간과 현대의 생활방식, 그리고 전통에 대한 개념을 다시 한번 진지하게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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