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도 우리 국민을 가장 불안하게 했던 사건 중 하나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수 유출에 따른 수산물 안전 문제였다. 명태, 가리비 등 일본산 수입 수산물에 대한 우려는 국내 수산 먹거리 전반으로 확산되었다.
 
이에 우리 정부는 2013년 9월 6일 일본 후쿠시마 인근 8개현의 모든 수산물의 수입을 금지하고, 8개현 이외 지역의 수산물에 대하여도 미량이라도 방사능 물질이 검출될 경우, 방사능 비오염 증명서를 요구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일본 정부는 우리 정부의 조치는 ‘과학적 근거’가 결여되었다며 반발하였고, 2013년 10월 제네바에서 개최된 ‘WTO 위생검역(SPS) 정례위원회’에서 특정무역 현안으로 문제 제기를 했다.

우리 정부는 일본 측 주장에 대해, 후쿠시마 방사능 물질의 유출과 관련된 과학적 자료와 분석은 여전히 불충분한 상황이며, 방사능이 인체에 미치는 심각한 영향을 고려할 때, 잠정 조치로서 수입제한 조치가 불가피하였음을 WTO 회원국들에게 설명한 바 있다.

1995년 WTO 출범 이후 농수산물 등 먹거리 상품의 교역이 더욱 자유화되면서, 수입산 식품 안전에 대한 전세계적 관심과 우려는 높아져 왔다. 수입국은 더욱 강화된 위생검역 조치로 이러한 우려를 해소하려 하였고, 수출국은 수입국의 강화된 위생검역 조치가 위장된 무역제한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 먹거리 수입국과 수출국은 위생검역 조치의 법적, 과학적 정당성을 두고 다투게 되었으며, 새로운 형태의 통상 분쟁으로 비화되었다.

WTO 출범 이후 위생 검역조치에 대한 제소는 40건에 달하며, 제소국은 미국, EU, 캐나다, 중국, 아르헨티나, 태국 등 식량 수출에 큰 상업적 이해를 가지고 있는 국가라는 점이 이를 시사하고 있다.

사실 WTO 출범 이전에도 1947년 합의된 GATT 협정 제20조에 따라 인간 및 동식물의 건강 보호를 위한 조치는 협정의 예외로 취급되고 있었다.

다만, 이러한 조치가 차별적으로 적용되거나, 위장된 무역제한 조치로는 사용되지 않아야 한다는 일반적 규정만 있었을 뿐이었다. 우루과이 라운드에서는 기존 GATT상의 규율이 불충분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개별 협정으로 ‘SPS 협정(Sanitary and Phytosanitary Measures, 위생 및 식물위생 조치 협정)’을 합의하여, 각국의 위생검역상 조치 권한을 보장함과 동시에 이러한 조치가 우회적 보호주의로 남용되지 않도록 위생검역의 기본 규범을 마련하였다.

SPS 협정의 핵심 원칙으로는 첫째, 각국의 위생검역 조치는 ‘충분한 과학적 원리에 근거해야 한다’는 점이다. ‘과학적 근거’에 대한 입증 책임은 위생검역 조치를 취한 수입국에 있는 바, 수출국이 분쟁 발생시 수입국에 대하여 가장 강력하게 원용하고 있는 조항이다(협정 제2조).

둘째, 수입국의 위생검역 조치가 여타 국제기준과 조화될 것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과학적 정당성’이 있거나, 회원국이 동 협정의 ‘관련 규정에 따라 적절하다고 결정’하는 경우, 국제 기준보다 엄격한 기준의 적용은 가능하다(제3조).

셋째, 위생검역 조치는 명확한 위험평가 기준에 따르고, 무역에 미치는 영향이 최소화되도록 조치의 적정수준을 결정토록 하고 있다.

무엇보다 특기할 점은 ‘충분한 과학적 근거’가 없더라도 수입국이 ‘잠정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수입국의 잠정조치는 ① 과학적 근거가 불충분한 상황에서, ② 이용가능한 정보에 근거하고, ③ 추가정보 수집에 노력하며, ④ 합리적 기간 내에 취한다는 4가지 조건을 붙이고 있다. 일본산 수산물 수입제한 조치와 관련하여, 우리 정부가 반박한 논거도 동 조항에 근거하고 있다(제5조).

SPS 협정에 따른 분쟁은 우선 당사국간 협의로 문제 해결을 시도하게 된다. 협의를 통한 문제 해결이 어려워진다면, 수출국은 WTO 분쟁해결기구에 제소하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SPS 협정과 관련하여, 그간 5차례 피소를 당한 바 있다. 모두 분쟁해결 절차 진행 중에 양자간 합의를 도모하였던 바, 아직 최종 판결까지 이어진 사례는 없지만, 먹거리 수입국으로서 협정 위반 시비와 WTO 제소 위험에는 상시 노출되어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도 우리 정부는 국민의 먹거리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높은 수준의 위생검역 조치를 유지해 나가게 될 것이다. 우리의 위생검역 기준이 세계적 기준으로 인정될 수 있도록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검역 제도의 개선과 유지에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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