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정부는 2013. 11. 5. 국무회의에서 법무부 ‘위헌정당·단체 관련 대책 TF(팀장 정점식 검사장)’가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심판 청구와 관련하여 검토·보고한 내용을 상정·심의한 뒤, 그 목적과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며 통합진보당에 대하여 정당해산심판(2013헌다1)과 정당활동정지가처분신청(2013헌사907)을 헌법재판소에 청구할 것을 의결했다.

법무부는 해산제소 사유로 ‘통합진보당의 목적이 북한의 인민민주주의, 공산주의 연방제 통일, 자유시장경제 부정, 계급투쟁 등을 추종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며’ 그 ‘활동이 무력폭동, 한미군사협정 폐기, 국가보안법 폐기, 해군기지 건설 반대 등 적(敵)을 이롭게 하여 민주적 기본질서를 침해한다’는 것을 들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헌정 사상 최초로 정당해산심판절차가 현재 진행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청구 접수 후 “헌법과 법률에 따라 엄정하게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2013. 12. 10. 청구인 및 피청구인 측에게 준비명령을 보내는 한편, 오는 24일 오후 2시 소심판정에서 준비절차기일을 진행할 예정으로 있다.

준비명령의 내용은, 주장을 요약하고 쟁점을 정리할 것, 상대방이 제출한 서증에 대한 의견을 제시할 것, 진술 참고인을 추천할 것 등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참고인 추천과 관련해서는 정당해산심판제도(정당해산의 요건, 정당해산결정의 효력 등), 피청구인 강령의 민주적 기본질서 위배 여부와 같은 쟁점에 관한 전문적인 견해를 진술할 참고인을 각 쟁점별로 2~3인씩 추천하라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헌법재판소가 사건의 심리를 위하여 준비절차기일에서 참고인 진술을 행하도록 한 것은 이 사건 정당해산심판절차를 진행함에 있어서 적확한 판단기준을 찾은 뒤, 공정하게 심판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보인다.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 고려된 것으로 생각된다.

첫째는, 심판대상이 된 통합진보당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이다. 통합진보당은 국회 비례대표 의석 54석 중 6석을 가진 원내 3당이다. 제19대 국회의원선거에서 통합진보당이 획득한 비례대표 정당별 득표상황은 통합진보당이 전국적으로 10% 내외의 고른 지지도를 확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서울 10.56%, 부산 8.43%, 대구 7.04%, 인천 9.71%, 광주 18.61%, 대전 9.04%, 울산 16.30%, 세종 5.37%, 경기 11.01%, 강원 6.59%, 충북 7.70%, 충남 6.83%, 전북 14.16%, 전남 14.79%, 경북 6.22%, 경남 10.53%, 제주 12.40% 등이다. 이러한 정당에 대한 해산결정은 그 정당을 지지한 국민의 정치적 의사결정에 대한 불신을 의미하게 되는데, 이러한 점에서 결정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리라.

둘째는, 역사적 관점이다. 정부가 특정 정당에 대한 해산을 시도한 것은 1958년 자유당 시절 공보부가 행정청 직권으로 조봉암 선생이 이끌던 진보당을 강제 해산한 뒤 55년 만에 있는 일이다. 당시에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전개되었던 냉전시대를 역사적 배경으로 하고 있었으나, 오늘날 우리나라는 21세기 성숙된 민주주의의 수립을 확고히 하는 시점에 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민주주의 성립과정에 큰 기여를 한 것으로 국내외적으로 평가되고 있는 헌법재판소로서 정당해산심판의 역사적 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으리라.
헌법재판소 뿐만 아니라, 우리 대한국민은 지금 진행되고 있는 정당해산심판절차에서 역사를 쓰고 있다.

Ⅱ. 평석
1. 민주주의

민주주의는 진리(truth) 위에 서고자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인간이 절대적 진리를 인식할 수 없다는 가치상대주의에 대한 고백에서 시작한다. 민주주의는 비판과 대화와 타협을 통하여 상대적 진리의 발견을 위하여 부단히 노력하는 진행형일 뿐이다. 민주주의에 있어서, 현재의 권력과 권위는 - 비록 그것이 민주절차 그 자체를 통하여 창출된 것이지만 - 끊임없는 비판의 대상이다. 모든 권력과 권위는 스스로 진리라고 자부할 수 없는 것이다. 민주주의적 진리탐구 앞에 겸허해야 할 잠정적인 지위에 불과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민주주의는 권력담당자 내지 권위자가 일정 주기(週期)로 변경될 수 있는 절차를 보장하는 것을 본질로 한다. 피치자, 약자, 소수자로서의 국민들이 현재 권력자의 권력 행사에 대하여 자유롭게 비판하고, 토론하고, 이들이 주장하는 ‘상대적 진리’가 다수의 지지를 얻어 권력 내지 권위를 행사할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장하는 것이 민주주의이다. 현재 권력자들이 주장하는 이념과 가치, 그에 대한 비판자들이 주장하는 이념과 가치 중에서 국민들이 매번 선거를 통하여 선택하는 바에 따라 권력자와 권위자가 변동되는 것이 민주주의이다.

2. 방어적 민주주의
이에 대하여 정당해산제도의 논거가 되는 ‘방어적 민주주의’는 국민의 선택과 판단을 기다리지 아니하고, 현재의 권력자가 그에 대한 비판자들의 정치적 참여를 일방적으로 금지하는 것을 허용하는 제도이다. 민주주의를 위한다는 이름 아래, 민주주의의 본질인 국민의 의사결정절차를 기다리지 아니한 채, 정부의 제소와 헌법재판소의 결정만으로 일정한 정당을 민주절차에서 배제시켜 버리는 결정을 행하는 반(反)민주주의적 제도이다. 정당해산제도는 일정한 정당에 대한 정치적 판단을 ‘국민적 의사결정절차에 맡겨둘 수 없다’는 것을 결정하는 제도로서, 민주절차에 대한 불신을 바탕으로 하는 ‘필요악으로서의 예외적인 제도’이다.

3. 정당해산제도
우리 헌법은 정당해산제도의 이러한 반(反)민주적 성질을 잘 알고 있다. 우리 헌법은 헌법 제8조 제4항에서 ‘정당해산심판제도’가 현재 권력자의 횡포수단으로 전락되지 않도록 방지하기 위하여 그 제도를 특별히 명문화하고 있다.

정당해산제도를 헌법적으로 명문화하고 있는 의미는 분명하다. 가능한 한, 정당해산심판권을 행사하지 말라는 것이다. 심판대상이 된 피청구인 정당의 활동을 정상적인 민주절차에 그대로 놓아둘 경우, 국민이 올바른 판단이나 선택을 행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을 때에 비로소 행해질 수 있는 최종적인 구제수단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일정한 정당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된다’는 의미는, 국민이 정상적인 민주절차를 통해서 그 정당을 정치적으로 심판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한다. 헌법재판소로서는 그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에 대하여 국민들이 주권자적 판단능력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을 때에 비로소 ‘국민을 대신하여’ 정당해산결정을 선고하게 되는 것이다.

4. 법률유보와 헌법유보
정당의 본질은 결사이다. 헌법 제8조에 의하여 특별한 보호를 받는 결사이다. 이러한 점에서 정당은 일반결사와 구별되는 특별한 결사이다.

일반결사의 설립 및 활동의 자유는 헌법 제37조 제2항에 의한 법률유보를 통하여 헌법적으로 보장받고 있다. 일반결사의 자유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제한받을 수 있을 뿐이다. 이때 ‘질서유지’에 있어서의 질서 개념에는 ‘민주적 기본질서’가 포함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정당의 설립과 활동의 자유는 헌법 제8조에 의한 헌법유보를 통하여 헌법적으로 특별히 보장받고 있다. 이 개별적 헌법유보는 헌법 제37조 제2항에 의한 법률유보에 의한 방법만으로는 정당을 충분히 보장할 수 없다는 이론에 기초하고 있다. 헌법 제8조에서 규정하는 ‘민주적 기본질서’ 개념은 헌법 제37조 제2항에서 규정하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공공복리’의 ‘민주적 기본질서’와의 관계에서 특별법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다. 정당해산심판에 있어서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여부’는 아주 엄격하게 해석될 수밖에 없다.

민주적 질서의 ‘본질적 부분’을 훼손하는 경우에 한정되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 헌법 제8조는 ‘자유’민주적 질서나 ‘사회국가적’ 민주질서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민주적’ 질서라고 표현하고 있고,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기본’ 질서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고 본다.

결국 헌법 제8조 제4항에서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는 것은 정당의 목적과 활동이 국민적 민주절차에 의하여 통제될 수 없을 정도로 국민주권을 훼손하는 수준에 다다른 경우, 국가의 권력 행사를 폭력지배, 자의적 지배에 이르게 하는 경우를 의미하게 된다. 국민의 의사결정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정권을 획득하려는 경우이거나, 정권유지를 위하여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근본적으로 말살하려는 것이어야 한다.

5. 북한문제와 민주주의
북한문제, 통일문제도 민주절차의 대상이다. 주권자 국민은 북한문제에 대한 국가적 의사결정과정에서도 주권자적 주체성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우리 국민은 북한정권의 본질은 물론, 특정 정당이 북한정권에 복속되어 있는지 여부에 대하여도 지속적으로 판단해 오고 있다. 우리 국민은 연평도포격사건, 최근 발생한 북한의 장성택 사건 등을 통해서, 그리고 다음과 같이 쓰인 북한 헌법 서문(우리나라 헌법의 ‘전문’)을 보면서 북한에 대하여 자신들의 주권자적 판단을 지속하고 있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사상과 령도를 구현한 주체의 사회주의조국이다. … 김일성동지께서는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을 창시하시고 그 기치밑에 항일혁명투쟁을 조직령도하시여 영광스러운 혁명전통을 마련하시고 …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민족의 태양이시며 … 김일성동지는 세계정치의 원로로서 자주의 새시대를 개척하시고 … 김일성동지는 사상리론과 령도예술의 천재이시고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시였으며 위대한 혁명가, 정치가이시고 위대한 인간이시였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주체적인 국가건설사상과 국가건설업적을 법화한 김일성헌법이다.”

북한문제에 대한 국민적 판단은 매번 선거에서 주된 쟁점이 되어왔고, 국민은 그러한 판단을 기초로 선거에서 의사결정을 하고 있다. 북한문제에 대하여도 우리 국민이 행하고 있는 주권자적 판단은 당연히 존중되어야 한다.

6. 결론
21세기 민주주의를 가꿔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이번 정당해산심판절차는 우리들과 우리들 자손들에게 적지 않는 방향설정을 제시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헌법재판소가 민주질서의 중심에 서있는 국민에게 신뢰받는 결정을 행할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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