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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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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중원 대표 단편선> 귀향 歸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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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중원 변호사
등록일
2018-11-30 15:45:43
조회수
547
귀향 歸鄕


사하라여! 위대한 사막이여!
그대는 어리석은 인간들에게
자신의 비밀을 말해주지 않으리.



모로코의 붉은 도시 마라케시에서 밀입국한 옆집 여자, 나디아 엘 만수라 (Naadia El Mannsula)는 해가 질 무렵이면 집을 나섰다.
그녀는 일찍부터 체류허가증을 소지하고 있었고, 구항구의 벨주 부두 쪽 오페라 극장 부근에 있는 고급 술집에서 일했다. 그 도시는 아프리카에서 온 젊은 여자들에게는 매우 위험한 곳이었지만, 아름답고 자유분방한 그녀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도시를 헤집고 다녔다. 사막의 모진 햇빛과 사나운 바람에 단련된 불의 꽃 부겐빌레아를 닮아서일까. 그러나 그녀가 단지 쾌활하다는 이유만으로 경박한 여자라고 지레 짐작할 것은 아니다.
그녀는 큰 키에 피부는 초콜릿 색깔이었지만 매끄러웠고, 가슴은 남자처럼 납작하였다. 검은 머리카락은 윤이 나서 번지르르 빛났고, 완벽한 모양의 큰 눈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미소를 지으면서 담배를 입술 사이에 지그시 물고 연기를 멋있게 내뱉을 줄 알았다. 때때로 담배 연기로 동그라미를 그려 허공으로 날려 보냈다.
그녀는 혀를 능수능란하게 굴려서 프랑스어를 정확하게 발음하였다. 그녀의 프랑스어에는 베르베르어 악센트가 전혀 섞여 있지 않았다.
모세하난 이브라함은 밀입국해서 천신만고 끝에 마르세유에 도착했다. 그날, 알제에서 출발한 화물선이 부두에 도착한 날 저녁에 이브라함은 선원인 것처럼 위장하고 여러 명의 선원들 틈에 끼어 겨우 상륙할 수 있었다. 그리고 구항구의 벨주 부두 근처에서 그들과 헤어졌다.
마르세유 도착하고 나서 초기 시절에는 그녀와 떠돌이 개들이 그의 유일한 친구였다.
불법이민 초기 불면증으로 잠을 이룰 수 없을 때면 만수라는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나지막하게 노래를 불러주었다. 언젠가 그가 살기 싫어서 자신의 손목을 살균한 면도칼로 깊게 그었을 때 그를 구원해 준 것도 만수라였다. 그 상처 자국은 지금도 선명히 남아있다.
초기 이민자 생활에서 그나마 가족처럼 돌봐주었던 만수라가 없었다면 그의 프랑스 생활은 더욱 비참하였을 것이다. 그 당시 세월이 상당히 흘러 지나가도 여전히 심각한 트라우마 때문에 밤이면 계속 나쁜 꿈을 꾸고 있었다. 그는 한동안 알코올 중독과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 때문에 고통을 받았고, 사막에서 일어났던 그 일련의 충격적 사건들이 준 깊은 내상은 어느새 그의 남성 기능마저 일시 마비시켜 버렸다.
처음에는, 마르세유에 막 도착했을 때, 이브라함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노트르담 드 라 가르드 성당이 서 있는 외곽 산기슭 너머에서 주로 프랑스의 옛 식민지였던 알제리, 튀니지, 모로코 등 북서 아프리카의 마그립 지역에서 밀입국한 흑인과 아랍인들, 동유럽에서 흘러들어온 집시들이 집단 거주하는 텐트촌에서 살았다. 그곳 텐트촌 뒤편 화장실로 쓰는 구덩이 주변에는 더러운 휴지조각이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그곳에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서 항상 어두컴컴하였고, 늦가을부터 어두워지면 추위를 피하려고 헌 종이와 자잘한 나뭇가지 등 이것저것 모아 모닥불을 지폈다.
밤이 오면, 술에 취한 부랑배들이 멀리서 아득히 들려오는 자동차의 경적 소리를, 어두운 숲속에서 나뭇잎들이 살랑거리는 소리를, 일찍 잠이 든 새들의 가느다란 숨소리를 또는 이들 소리의 화음을 자장가처럼 들으면서 종이 박스를 침대 삼아 그 위에서 잠을 잤다. 그들은 꿈속에서 고향을 찾아갔을 것이다.
이브라함이 말했다.
“치안은 엉망이었어. 그곳에서는 자신을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서 작은 칼 정도는 지니고 다녀야 했지. 거지, 부랑자, 집시, 알코올 중독자, 동성애자 (그들은 ‘계집은 좋지 않아, 사내놈이 내 취향에 맞아!’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녔다), 성도착증 환자, 절도범, 그리고 에스데에프SDF들, 노숙자들 말이야, 늘 싸구려 술에 절어 있었고, 걸핏하면 서로 시비를 걸어 눈두덩이 시퍼렇게 멍들도록 치고받거나, 칼부림을 하면서 싸웠지.
아침에 일어나면 멀쩡한 사람이 칼에 찔려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기도 하였으니까. 그렇지만, 어디 호소할 데가 없었지. 모두 불법체류자였으니까, 법적으로는 없는 존재인 거지. 잡히면 즉시 외국인 집단수용소로 끌려가서 추방됐어.
나 역시 마찬가지 신세였지. 끊임없이 불안감에 시달려야 했지. 어느 날 갑자기 억센 손아귀가 내 멱살을 틀어쥐고, “여긴 사막이 아니야, 네가 있을 곳이 아니란 말이야. 네가 도망쳐왔던 곳으로 돌아가. 어서 빨리 가란 말이야.”라고 으르렁거리지 않을까 두려워했던 거지……. 몇 년째 가뭄이 계속되었어. 모든 게 죽어갔지. 족장은 알라신의 구원이 있을 거라고 기다리라고 했어. 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고. 신이 우리를 버리기로 작정한 거였으니까. 어디에서도 날 기다리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런데 그곳에는 지독한 가난과 배고픔, 가혹한 노동과 두려움, 편견과 무지, 편협함과 배타성 등 나쁜 것만 존재하는 곳이야……. 거의 매일 경찰의 단속을 피하기 위하여 나무가 짙게 우거진 숲속 뒤편 이곳저곳으로 자주 자리를 옮겨야 했어……. 참으로 고달픈 생활이었지. 엿 같은 세월이었어……. 내가 말이야…… 밀입국자나 이주 노동자, 알코올 중독자들이 주로 투숙하는 여관, 이프 섬 선착장 뒤쪽 구석진 골목에 숨어있는 싸구려 여관에서 청소부로 자리를 잡으면서부터, 그나마 사정이 풀리기 시작한 거야.
거기에도 끼리끼리 어울리는 파벌이…… 코모로파, 모로코파, 튀니지파, 알제리파 등등이 있었는데, 그때 알제리파의 선배가 그 자리를 내게 물려준 거야……. 우린, 아주 싸고 맛있는 양고기 요리와 값싼 알제리 포도주를 살 수 있는 알제리 식당에서 가끔 어울렸어.
난 체류허가증이나 노동허가증이 없었기 때문에…… 정상 임금의 반밖에 받지 못하였지만 그걸 따질 필요는 없었지. 그때부터 무허가 판자촌에서 살 수 있게 되었거든……. 그래도…… 추방의 공포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지만 말이야.”
그 판잣집은 홈이 패인 함석이나 나무판자를 벽으로 하고, 천장에는 양철이나 방수용 타르 종이를 돌로 고정시킨 것이었다.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양철 지붕은 요란스럽게 소리쳤고, 판잣집은 곧 무너질 것처럼 심하게 동요하였다. 비가 올 때면 거센 빗줄기가 양철 지붕을 두들겨 패면서 집안에서는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였고, 그럴 때면 집으로 가는 완만하게 경사진 진흙탕 길에는 빗물이 넘쳐 질척거렸다. 그래도 판잣집의 그 한 뼘만큼 비좁은 방 한 칸이 그의 안식처였다. 밤이면 전깃불이 들어와 방을 환하게 밝혀 주었다.

그런데 만수라와 이브라함이 연인 사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해 여름은 짧았다. 9월 중순경인데도 벌써 날씨가 서늘했다. 초가을의 느긋한 주말 오후였다. 햇볕이 따사롭다. 오페라 극장 뒤쪽 노천카페에서 칠흑처럼 검고 진하고 쓰디쓴 에스프레소 커피를 마실 때, 만수라는 그를 외면한 채로 건물에 가려 보이지도 않는 바다 쪽을 무연히 바라보면서 우물쭈물 이야기하였다.
“알고 있을 거야. 난 양성애자야. 남자도 좋고 여자도 좋은 거지. 그렇게 타고 났으니까 난들 어쩔 수가 없는 거야. 너를 처음 만났을 때는 너에게 홀딱 빠졌었지. 너무 순수했고 사막 냄새가 풀풀 났으니까. 어쨌거나 갈수록 개성이 뚜렷해지고 있어. 개성만큼은…….
지금은 프랑스인 여자 친구가 있어. 지금은 난 여자만을 사귀지. 남자들한테는 결코 끌리지 않거든. 그런데 말이야, 그 여자도 곧 바뀔 거야. 나는 여자를 만날 때면 항상 새로운 사람과 있어야만 행복을 느끼지. 난…… 더 좋은 파트너가 나타나면 언제든지 바꿔버리지.”
그는 그때 어떤 말로도 대꾸하지 않았다. 저 멀리 끝없이 펼쳐진 바다는 지금쯤은 잔잔하리라.
그녀는 얼마 후 새 연인을 따라 암스테르담으로 떠났다. 새 연인, 마리아 루이자는 지독한 변태성욕자였던 부유한 전 남편과 이혼하면서 상당한 목돈을 위자료로 받았다. 그녀는 그 돈으로 그 도시 외곽에 있는 하이네켄 체험전시관 부근에서 운하를 오고 가는 유람선의 손님을 상대로 감자튀김과 청어 요리를 하이네켄 맥주 또는 포도주와 곁들이는 식사를 제공하는 작은 식당을 운영할 예정이었다. 그녀는 원래 마르세유에서 카페를 경영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마리아는 이혼한 후에도 그 지긋지긋한 전 남편과는 무조건 멀리 떨어져 살고 싶어 했다. 그녀는 단지 남편의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몸서리를 쳤다. 그 이름은 그녀에게 고통이나 모욕감보다 더 참담한 수치심을 느끼게 하였다. 그녀는 끊임없이 뇌까렸다. “이 도시를 하루빨리 도망쳐야 돼. 그 자식과 관련된 기억을, 그래 모든 것을 깡그리 지워버려야 하니까.”
만수라는 이번만큼은 상당한 기간 떨어지지 않고 살기로 결심하였다. 바르셀로나 출신의 양성애자인 그녀는 통통한 편이었고, 남자처럼 강인한 인상을 풍겼지만 마음씨가 착하였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애인이 되어주는 대신 그 식당을 공동으로 운영할 뿐만 아니라 그 수입의 반을 주겠다고 약속하였기 때문이다.
만수라가 연인과 함께 소매치기, 집시나 흑인 거지들이 득실거리는 생 샤를 역에서 테제베 기차를 타고 떠나던 날, 이브라함은 애인이었고, 목숨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었고, 누나 같고, 어머니 같았던 그녀와 헤어지는 것이 너무 슬펐고, 자신도 그 멋진 기차를 타고 북쪽 나라로 함께 떠나고 싶은 갈망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만수라가 그를 위로하였다.
“넌 영리하고 착한 사람이야. 난 절대로 널 잊을 수 없겠지. 하지만 얼마간 돈을 모으면 곧 사막으로 돌아가야 할 거야. 넌 사막을 떠나서는 살 수가 없는 사람이지. 사막에서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이거든……. 사막 사람들은 사막에서 살아야 하고, 사막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하지. 우리의 영혼은 오직 사막에서만 평온하게 머물 수 있는 거야. 콘크리트 상자에서는 그 영혼은 말라 죽게 되지.
너는 나의 이중적인 태도가 못마땅할 거야. 그러나 돈을 마련해야 하니까. 식당을 공동 경영하니까 아주 좋은 기회가 생긴거야. 나도 돈이 모아지면 사막으로 돌아갈거거든.”
그녀는 메디나 (구도시)의 미로 같은 좁은 골목길로, 사람들이 사는 그 정겨운 골목으로 돌아가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영혼의 울림인 것처럼 둥둥둥둥둥 울리는 북소리가 잦아들 듯 또는 빠르고 급하게 퍼지는, 환청처럼 아련하면서도 저릿하게 밀려와 육체 속으로 스멀스멀 스며들어 모세혈관을 타고 흐르면서 심장박동을 팽팽하게 당기는 저 북소리가 울려 퍼지는 제마 엘프나 광장으로.
1897년 2월, ‘사막의 술탄’이라고 불리던 성도 스마라의 족장인 마 엘 아이닌이 모로코를 점령한 프랑스 침입자들을 몰아내기 위해 사막의 전사들을 이끌고 행진했던 제마 엘프나 광장으로.
그러나 제마 엘프나에는 해가 뉘엿뉘엿 진 후 밤에 가야만 한다. 밤의 광장이니까.
작은 침팬지는 밤의 열기 속에서 주인의 신호에 따라 민첩하게 공중제비를 돌고, 이가 빠져버린 늙은 독사는 피리소리에 맞춰 머리를 흔들며 묘기를 부리고, 붉은색 옷에 무슨 쇠붙이를 주렁주렁 매단 물장수 게랍, 길가의 이발사, 끊임없이 허공에 나팔을 불어대는 곡예사, 붉은색 푸른색 원색 옷을 입은 무용수들, 자신의 운명은 모르면서 남의 운명은 잘도 알아맞히는 점쟁이, 주술사, 돌팔이 치과의사, 시커멓게 탄 뱀과 원숭이 등을 파는 음식점, 온갖 종류의 향신료가 가득한 가게, 썩어가는 생선들을 늘어놓은 가판점들, 마리화나 아니면 하시시를 공공연히 파는 뚜쟁이들을, 입안에 군침이 돌게 하는 온갖 먹거리가 유혹하는 야시장을, 그리고 어깨를 은근슬쩍 부딪쳐오는 그 수많은 소매치기들을, 그녀가 어찌 한시라도 잊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이 험난한 세상에 행운이 있어야 할 거야. 너를 위해 매일 밤마다 알라신께 기도해줄게. 사막에서 행복하게 아주 오래 살 수 있도록 말이지. 그리고…… 나를 기다려줘. 난, 반드시 돌아갈 거야. 도시는 삶이 너무 복잡해. 그리고 여긴 너무 추워서 많은 옷을 껴입고 살아야 하는 것도 불편한 일이야. 옷을 훌훌 벗고 아주 단순하게 살고 싶은 거지. 사막이 내가 돌아왔다고 성대한 축제를 열어줄 리는 없지만……. 난 사막에서 이브라함과 함께 하는 게 꿈이거든.”
그는 목이 메어서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말을 그대로 믿을 수는 없었다. 그녀를 쉽사리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때, 짧은 순간 그의 온몸에서 참을 수 없는 경련이 일어났다.
그녀는 기차에 오르기 직전 상당한 금액의 돈을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리고 창밖으로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그때 기차는 미끄러지기 시작하였다. 북쪽으로 가는 테제베 기차는 부드럽게 플랫폼을 미끄러져 나갔다. 그는 기차가 출발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만수라가 여전히 창가에 보였다. 그녀가 계속 손을 흔들었다. 그 창문이 지나갔고, 나머지 창문도 모두 지나갔다. 기차는 멀어져갔고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때 반대편 선로에는 다른 기차가 미끄러지듯 서서히 도착하고 있었다.
3번 플랫폼은 거의 텅 비어 있었다. 기차가 2시 정각에 출발한 후에도 그는 오랫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초겨울이어서 비는 멎었지만 여전히 축축하고 추운 날씨였다. 얼마 전에 삐었던 오른쪽 발목이 몹시 욱신거리기 시작하면서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였고, 누나였고, 사랑하는 연인이었고, 마지막 희망이었던 그녀가 황량한 도시의 한 구석에 그를 남겨두고 떠나는 것을 미동도 하지 않고 묵묵히 지켜보았다.

하딤 마흐메드는 사하라 남쪽 사헬지대에서 자랐다. 그러나 한때는 비옥한 사바나였던 곳은 몇 년째 가뭄이 들자 이제 사막으로 변모하였다. 잡목마저 누렇게 시든 채 바람에 바스라졌다.
그곳 투아레그족은 더 이상 유목민이 될 수 없었다. 어디에서도 물과 목초지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너무 건조한 기후 때문에 오직 땅콩을 재배하여 온 가족이 그 수입으로 겨우 입에 풀칠할 수 있었다. 유목민의 전통적인 삶의 방식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몇 년 동안 심한 가뭄이 계속되면서 그나마 수확이 급감하자 그의 가족들은 먹고살기 위해 가장 가까운 도시인 통북투로 이동하였다. 그들은 해골처럼 삐쩍 마른 채로 궁색한 천막과 판잣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통북투의 빈민촌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영양실조와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콜레라와 결핵, 말라리아, 기생충 감염, 에이즈 등이 기승을 부렸다.
사막의 태양은 먹을거리 또는 일자리를 찾아 길거리를 헤매는 부족의 머리 위로 무자비한 햇살을 인정사정없이 쏟아부었다. 그 도시 역시 사막의 모래바람을 피할 수는 없었다. 모래 먼지로 뒤덮인 길거리에는 금방이라도 허물어져 버릴 것처럼 보이는 진흙 벽돌로 지은 낡은 집들이 띄엄띄엄 서 있었다. 도시의 주변을 흘렀던 나이저 강의 지류는 완전히 메말라서 모래에 묻힌 채 강의 흔적만 남았다.
사하라는 냉정하고 잔인하였다.
그에게는 부모님 이외에 5명의 형제와 4명의 여자 형제가 더 있었다. 그는 젊은 시절 혈기가 넘쳐흘렀지만 통북투에서는 어떠한 기회도 붙잡을 수 없었다. 그곳의 삶은 항상 불안정했고 위태위태하였다. 그는 가족들을 남겨두고 천신만고 끝에 홀로 프랑스로 온 것이다. 그는 프랑스에서 열심히 일해 모은 돈 대부분을 통북투의 가족에게 정기적으로 송금했다. 그 돈이 가족의 생명줄이었다.
그 당시 둘은 구항구의 이프 섬 선착장에서 처음 만나는 그 순간부터 서로에게서 강렬한 고향의 냄새, 사막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사막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은 어느 곳에 살든지 사막에 대한 강한 애착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투아레그족의 심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둘 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투아레그 말을 실컷 재잘거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들은 더 큰 목소리로 빠르게 투아레그 말을 지껄이며 웃고 떠들었다.
그 무렵에 이브라함은 팔뚝에다 문신을 새겼다. 단골로 다니던 그 술집에서 만난 건장한 체격의 선원들 가슴이나 팔뚝에 새겨진 신기한 문신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때 하딤은 말렸다. “그 사람들이 갖고 있는 바늘이 너무 더러워서, 나쁜 병을 옮길 수도 있어. 녹슨 바늘로 찌르면 피부가 금방 곪아 터질지도 몰라. 게다가 돈을 터무니없이 많이 달라고 할 거야. 문신은 선원들이나 하는 짓이지. 그러니까 다른 이유이기는 하지만 유대인들이 율법으로 문신을 금지하고 있는 거야. 다시 생각해보렴.”
“난, 중요한 것들을 가슴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지만…… 팔뚝이나 아니면 가슴팍에 새기고 싶은 거야. 결코 잊어서는 안 되니까.”
“그게 무언데?”
“음…… 투아레그와 마르세유. 나는 누가 뭐래도 투아레그야. 어찌 부정할 수 있겠어. 마르세유는 인종의 용광로야. 위대한 마르세유는 지중해와 함께 언제나 영원한 도시로 기억될 거야.
그리고…… 이브라함과 만수라이지. 만수라는 내 인생의 전부이거든.”
“넌, 만수라가 돌아올 수 있다고 믿는 거야.”
“난 기다려야 해. 유일한 꿈이니까.”
돌팔이 문신 시술자의 검은 잉크를 적신 바늘 끝이 촘촘하게 그의 피부를 인정사정없이 찌르기 시작했고 피가 흐른다. 그는 견디기 힘든 통증을 느꼈다. 동시에 가벼운 흥분을 느꼈다. 몇 시간 뒤 팔뚝에 고딕체의 글씨가 나타났다. 오른팔 팔뚝에는 Marseille, Tuareg가 왼팔 팔뚝에는 N. Mannsula, M. Ibraham. 그 글씨들은 그의 심장에 새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가 사막으로 돌아가더라도 마르세유를 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어찌 잊을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만수라를 기다릴 것이다. 끝없이 기다릴 것이다.

* * *

사막 여행가인 건축가 김규현과 가이드 겸 고물 자동차의 운전사였던 이브라함은 당초 알제리의 사막 도시 타만라세트를 기점으로 동쪽으로 출발하여 아하가르 산맥의 남쪽을 우회해서 타실리 나제르까지 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사하라 사막을 횡단하던 중 사막의 남쪽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고물 자동차가 고장나서 모래 언덕 사이에서 오랫동안 갇혀 있었던 것이다.
자동차 바퀴는 수시로 무른 모래 속에 깊숙이 파묻혀버려 이를 빼내는데 한 시간이건 두 시간이건 시간을 소모케 하였다. 모래의 입자가 밀가루처럼 지나치게 부드러워서 파내면 그럴수록 바퀴가 점점 깊이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덜 연소된 디젤 기름 냄새가 코를 찔렀다. 게다가 자동차의 타이어에도 문제가 발생하였다. 고물 타이어가 사막의 열기를 견뎌내지 못하고 팽창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함께 타이어나 휠을 교체하거나 타이어에 바람을 새로 넣는 작업을 몇 번이나 반복하였다.
얼굴과 온몸에 땀이 비 오듯 흘러 내렸고, 가는 모래가 땀과 뒤범벅이 되어 여기저기 긁어낼 수 있을 만큼 두텁게 들러붙었다. 눈언저리와 코, 입 속까지 모래 덩어리가 서걱거린다. 모래는 사막의 열기에 달궈져서 살갗을 태울 것처럼 뜨거웠다. 살갗이 몹시 따갑고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꾹꾹 쑤시기까지 한다. 눈이 따끔거린다.
그들은 지칠 대로 지쳐버렸다.
사하라의 유목민인 투아레그족 운전사는 운전은 능숙하였지만, 그곳 지리에 그렇게 익숙하진 않았다. 더욱이 사막의 지리에 대한 유목민 특유의 본능적 감각도 없었고, 황량한 사막에서 방향을 예리하게 감지하는 숙련된 능력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그는 모래의 색깔과 성질, 그 맛으로. 또한 바람과 별자리로 사막의 길과 방향을 능숙하게 알아내는 방법을 모르고 있었다.
사막의 유목민들은 낮에는 태양의 기울기와 바람의 방향, 대대로 전수된 사막에 대한 옛 지식에 의존하여, 밤이 되면 별자리와 바람에 의지하여 사막의 길을 직관에 의하여 분별할 줄 알았다. 그들은 오로지 태양과 별의 움직임, 바람의 방향, 자칼이나 줄무늬하이에나가 지나간 발자국, 널려있는 낙타 뼈와 해골의 망령들에게 길을 묻는다. 그것들은 죽을 때의 모습 그대로 모래 위에 하얀 뼈로 누워있었다.
이브라함이 타만라세트에서 출발할 당시 장담했던 것과는 달리 길을 정확히 모른다는 사실이 차츰 분명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는 2년 전에서야 10년 넘게 살았던 마르세유에서 고향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가 사막으로 막 귀환하였을 당시, 고향 마을과는 오랫동안 전통적인 교역방식대로 직접 물물거래를 하였던 타만라세트 수끄 (시장)의 투아레그족 노인이, 그가 마을을 떠나온 이후 불과 2년여 만에 일어났던 그 비극적 종말에 대하여 자세하게 전해 주었다.
“그때 비는 끝내 내리지 않았어. 우물은 완전히 말라버렸고……. 사람들은 너무 굶주리고 지친 나머지 한 발짝 움직일 힘도 없었는데 설상가상으로 무서운 모래 폭풍이 회오리를 일으키며 계곡을 휩쓸었지. 그때의 바람은 평생 보기 드문 무서운 거였어. 그 바람은 모든 걸 날려버리고 덮어 버렸지. 그러고 나서 사라졌어. 그건 천재지변 같은 거였어. 그게 바로 심술궂은 신의 장난인 거지. 워낙 고립된 마을이어서 타만라세트에서 그 비극적 사건을 알게 된 건 상당히 오랜 시일이 지나서였지.”
그러므로 이브라함이 알고 있는 사막에 대한 짧은 지식이라곤, 태양이 동쪽에서 떠서 하루 종일 하늘 높이 떠 있다가 어느 순간 서쪽으로 진다는 것, 그리고 밤이 되면 금방 지상으로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수많은 아름다운 별들로 가득 찬 광활한 우주에서는, 태양은 어둠 속에서 몹시 더듬거리는 하찮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사실은, 밤이 되면 호시탐탐 태양을 집어삼킬 기회만 엿보고 있는 괴상한 뱀 아포피스로부터 태양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하여 아주 꼭꼭 숨어버린 것이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다. 불같은 햇볕이 인정사정없이 내리꽂는다. 그들은 막막한 심정으로 구조를 기다리면서 그 무서운 태양을 피해, 모래더미에 반쯤 묻혀있는 트럭 아래 그늘로 숨어들었다. 그 아래 야트막한 구덩이를 파고 누워, 식수가 바닥나기를 하릴없이 지켜보는 동안 속절없이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지금 너무 쇠약해져서 자기 손도 들어 올리기가 힘들다. 그들은 현기증을 느꼈다. 누웠다가 일어서려고 시도할 때마다 피가 머리로 갑자기 몰리는 것 같았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끈적끈적하고 쓰디쓴 침이 입안에 모여서 어떻게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참기 어렵다. 가끔 의식도 꺼졌다 켜졌다 깜빡거렸다. 결국 절망감 때문에 미쳐버릴지도 모르겠다. 죽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그들은 여행하는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으므로 서로를 충분히 이해하기 시작하였고, 그들 사이에 어떤 강력한 자기장 같은 것이 형성되면서 정신적인 상처를 서로 어루만질 수 있었다. 그러나 가혹한 현실은 처절할 정도로 절망적이었다. 이제는 우울한 비관적 분위기가 짓누르고 있었으므로 그들 간에는 도통 말이 없었다. 대화는 완전히 끊어지고 헤아릴 수 없는 깊은 침묵 속으로 빠져든 것이다.
그러다가, 결국 길을 잃고 막다른 골목에 이르게 되었다. 그들은 한 가닥 희망도 없이 사막의 모래 언덕에 갇혀서 고립된 채로 옴짝달싹 못 하게 된 것이다. 이제 구조될 가망이 전혀 없다는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야 했다.
고통도 사라졌다. 어둡고 흐린 막연한 욕망, 광적인 이상한 감정, 어떤 신성한 존재, 죽음의 공포, 잃어버린 추억도 사라졌다. 모든 것이 아득히 멀어 보였다.

기약 없이 다시 하루가 흘러 지나가자 이제 살아날 가망은 전혀 없어 보였다. 이브라함이 두 눈을 감고 꼼짝없이 드러누워 있다. 그가 마지막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입술도 입도 허옇게 말라가는 그의 입에서 나직이 신음 소리가 새어 나온다. 목에서 갑자기 가르랑거리는 소리가 나면서 고통스럽게 숨을 내뱉는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연신 입속에서 무어라고 웅얼거렸다.
“나는 내가 여기에 누워있는게, 현실인지 초현실인지 도대체 믿을 수가 없다. 나는 지금 연속적으로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 누워있다. 기억은 헝클어져 엉망이 되었지만 악몽 끝에 겨우 눈을 뜨고 깨어난다.
알라신이여! 마호메트와 열두 아내들이여!
나를 지켜보시고 내 죄를 용서하십시오. 제가 아버지를 버렸지요. 고향을 몰래 떠날 수밖에 없었어요. 아버지! 저 하늘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내 사랑은 지금도 부풀어 올라오고 있다오. 만수라여! 그대를 향한 내 욕망은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타오르며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다오. 우리가 마르세유의 그 작은 방에서 관능으로 타오른 그 순간 우리는 프랑스어를 쓰지 않았지요. 우리 사이에서는 프랑스 사람들이 쓰는 순수한 언어가 아니라 아랍 방언이 마구 뒤섞인 프랑스어를 썼지 않았습니까. 격렬한 성욕이 우리를 뒤흔드는 그 절정의 순간에는 우리는 무의식중에 아랍 방언을 썼단 말입니다. 당신은 모로코 방언을 나는 알제리 방언이거나 투아레그어를 말입니다. 우리는 서로 처음에는 상대방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지요. 그래도 그 달콤한 순간에는 상관없는 일이었습니다.
달콤한 말! 아랍어의 미묘한 뉘앙스란!
당신에 대한 향수를 잊을 수가 없지요. 야릇하면서도 상긋한 당신의 제비꽃 향기가 나를 감싸고 있었으니.
나는 지금 마르세유의 추억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있다. 구항구 이프 섬 선착장에서 노트르담 드 라 가르드 성당이 있는 아르스날 지구로 이어지는 골목의 진귀한 풍경들이 눈에 아른거린다. 그 뒷골목에는 밀입국한 실업자들, 건달들, 거리의 여자들, 동성애자들, 부두 노동자, 집시, 유대인, 마약 중독자, 알코올 중독자들이 대낮부터 어슬렁거린다. 나는 그들이 그립다.
그 시절 나는 돈이 없으니까 마약과 알코올에 중독이 안 될 만큼은 빠져 지냈다.
나를 부추겨서 사막으로 돌아가라고 했던 사람은 바로 그녀였다. 그녀는 자신도 곧 돌아올 거라고 다짐했었다.
귀향하고 싶은 강렬한 욕망.
고향의 냄새가, 사막의 장엄한 풍광이, 아버지의 체취가 그리웠다.
나는 한동안 고향에, 사막에 돌아왔다는 생각 때문에 한껏 들떠 있었지 않은가. 사막의 모래폭풍도 그런 내 감각을 무력하게 만들 수는 없었으니까.”
김규현은 부드러운 모래 위에 누워있는 이브라함의 그 소박하고 단순한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브라함은 해체되어 사막과 완벽하게 합일되어 있었다. 그때, 사막의 지니가 부드러우면서도 찰거머리 같은 손길로, 운명의 손길로 이브라함을, 그의 얼굴과 온몸을 부드럽게 쓰다듬는 느낌이 들었다.
몇 시간 후 이브라함이 죽었다.
그는 사막의 침묵처럼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가 며칠 전 의식이 또렷하였을 때 했던 말이 생각났다.
“참, 아름다운 여행이었어. 우리, 서로에게 빚진 것은 없는 것으로 하지. 남쪽 길로 직진하자고 먼저 우긴 것은 당신이고, 그 길에서 길을 잃고 헤맨 것은 나니까……. 우리들의 이야기는 사하라의 남쪽이 아닌 다른 곳에서는 이해될 수 없는 거지.”
김규현은 이브라함에게 마지막으로 무언가 말을 해주어야 한다고 느꼈다. 그러나 도대체 입술조차 움직일 힘이 없었다.
이브라함이 죽은 지 몇 시간이 지나자 굳어진 손은 차가웠고, 그의 얼굴은 핏기가 가시면서 눈처럼 희어졌다. 너무나 순수한 백색이었다. 그러나 그 얼굴은 한없이 평온했다. 그리고 무언가를 말하는, 표현하는 얼굴이었다. 그 얼굴에는 풍부한 의미와 함께 침묵이 담겨 있다. 작별의 인사. 체념 또는 단념.
그때 이브라함의 영혼이 그 육신을 떠나 허공을 맴돌다 곧 먼 길을 떠나려고 출발하였다. 그는 마침내 환상에서 깨어났고, 모든 두려움이, 희망과 절망 같은 것도 멀리 사라졌다. 그 영혼은 달콤한 무감각 상태에서 하늘로 날아갔다. 그는 공 空 이 되고, 무 無 가 되었다.

[참고사항]
비트 세대에 속하는 동성애자 소설가 윌리암 S. 버로스 (그래서 그는 런던 시절 남성 동성애자의 집합소로 유명해서 남성 매춘부들이 자주 나타났던 리젠트 팰리스 호텔 입구를 어슬렁거렸다) 는 텍스트를 잘라내서 분해한 뒤 재배치해서 새로운 텍스트를 만들어내는 문학 기법인 cut-up technique를 개발했다. 그가 최초였는지는 알 수 없다.
내가 이 기법에 대한 짧은 소개글을 읽은 것은 불과 얼마 전이고 또한 이 기법으로 쓰여진 소설을 아직은 본 적이 없다.
나는 장편소설 ‘사하라’에서 이 소설의 주인공들인 이브라함과 만수라의 사랑과 귀향에 필요한 부분을 발췌해서 잘라내고 재배치하여 새로운 소설을 만들어냈다. 이 기법을 흉내낸 것이 아니다. 다만 ‘사하라’가 품고 있는 수많은 주제 가운데서 묻혀버리기 쉬운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와 사막에 대한 향수와 귀향 문제를 클로즈업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수년 전부터 내 장편소설들을 의식적으로 분해해서 잘라낸 다음 중 · 단편 소설로 재구성하는 작업을 일관되게 진행하고 있다. 장편에서는 스토리의 전개와 지면 관계상 빠질 수밖에 없는 부분을 분리해서 디테일을 추가하여 관련 주제를 선명히 부각시킬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연히 분절돼서 튀어나온 파편들을 주워 모아 맞춰보는 식이 아닌 것이다.
한 편의 소설이 발표되고 출판까지 됐다고 하여 작품이 이미 완성되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문학은 항상 열려있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완성은 불가능하다. 작가가 살아있건 사후이건 간에 독자들은 끊임없이 작품을 해체하여 독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며 재조립할 수 있다. 이것이 내가 이해하고 있는 ‘저자의 죽음’ 이론과 독자의 텍스트 참여와 독자에 의한 텍스트 의미 생산이라는 독자 수용 이론 (Reader response theory) 이라고 할 수 있다.
입센의 ‘인형의 집’에서 노라는 문을 열고 집을 떠난 후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는 19세기 북유럽의 사회상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우선 두 가지 길을 생각할 수 있다. 엄혹한 세상을 이겨내지 못하고 한없이 추락했거나 아니면 바로 돌아와서 남편 앞에서 무릎을 꿇었을 것이다.
나는 김승옥 작가의 옛날 단편소설의 주인공들의 그 후가 너무 궁금해서 ‘무진기행, 그 후’를 썼다.
나는 내 소설의 작중 인물들을 하나의 인격체로서 누구든지 정중히 대했으므로 언제나 내 마음속에 엄연히 살아있다. 소설 속 스토리 이후인 그들의 그 후가 말할 수 없이 궁금해서 심지어 ‘인물들의 에필로그’를 썼다.
하지만 소설 속 인물들이 그때 다른 선택을 하였다면 운명이 어떻게 엇갈리고 따라서 이야기가 어떻게 변주되면서 결론이 달라졌을지 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결론을 해피 엔딩이나 새드 엔딩으로 바꾸는 것 말이다.
더욱이 지금은 컴퓨터와 문서작업의 발달로 이를 아주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다. 쪼개고, 잘라내고, 이리저리 옮겨서 이어붙이고, 추가하고, 그래서 스토리를 원하는대로 개조하고 주제를 변주하는 것이다.
(지금은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이다. 시청자들이 원하는 대로 스토리 전개와 결말을 바꿀 수 있는 interactive movie가 나왔으니, 넷플릭스는 최근 새 장편 TV영화 ‘Black Mirror; Banders natch’를 공개했는데 시청자들이 이 영화를 시청하면서 중간중간에 스토리를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영화의 주인공이 스토리 전개 중에 나온 제안을 수락하는지, 거절하느냐에 따라 다음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이 영화는 시청자의 선택에 따라 5가지 다른 결말을 도출할 수 있다. 심지어 영화의 배경음악인 original sound track도 시청자의 선택에 따라 바꿀 수 있다.)
그런데 독자가 아무리 잘라내서 재조립하는 경우에도 그걸 공개적으로 발표하려면 어느 정도 경계선에서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인지는 의문이다. 등장인물의 이름을 바꾸고 뼈대만 남길 것인지, 주제를 비트는 정도에서 디테일만 바꿀 것인지, 그럴 경우 모방의 한계는 어디까지이고, 오마주 또는 패러디의 한계는 있다고 해야 할 것인가? 공동저자라고 해야 할 것인가? 표절의 의혹은 어떻게 할 것인가? 많은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작성일:2018-11-30 15:45:43 14.32.96.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