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연재소설

제목

<유중원 대표 단편소설> 우리들의 시간 (수정)

닉네임
유중원
등록일
2023-10-28 12:02:26
조회수
51
우리들의 시간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그해 가을, 어느 카페
그해 가을이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9월에 접어들면서 쾌청한 날씨가 계속되었다. 천고마비의 계절. 야외 스포츠를 하기에는 일 년 중 가장 좋은 날씨였다.
밤이 깊어가고 있다. 거리에는 자동차의 왕래마저 뜸해졌다. 일원동 삼성의료원 건너편 뒷골목 카페에는 손님이 거의 없다. 우리 일행만 구석진 자리에 남아있다. 그들 일행과 우리 일행 말이다. 모두 일곱 명이었다. 우리들은 청바지 차림에 야구 모자 같은 걸 쓰고 있었다. 여자 종업원은 연신 하품을 하며 우리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기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약간 긴장하고 있었다.
전직 펀드매니저 (우리는 오랫동안 그의 이름을 몰랐다)는 한껏 거들먹거리며 그러나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우리만 남고 다른 손님들이 다 빠져나가기를 한참이나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대부님은 국제 축구계의 거물 중에서 거물이지. 피파 FIFA 회장 블라터도 그 양반 앞에서는 쩔쩔맨다고 하니까.
알겠지,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말이야, 세계적인 베팅 회사인 유럽의 레드브록스나 윌리엄휠과도 연결되어 있는 거야. 다시 말하면, 우리 뒤에는 그 양반이 있다는 거지.
그러니까 우릴 동네 조무래기들이나 하는 도박 브로커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거야.
스포츠 베팅은 하나의 문화인 거야. 오락 문화. 그건 합법적이건 불법적이건 마찬가지인 거지. 오늘날 축구가 전 세계적으로 발전한 것은 베팅 때문이거든. 그래서 베팅은 스포츠의 일부분인 거지.
그것도 아주 중요한 일부분이지. 그건 자신이 응원하는 팀과 선수에게 보내는 애정의 표현이고, 스포츠 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거야.
스포츠토토가 주는 체육진흥기금이 얼마인데. 정보의 바다라고 하는 인터넷을 보라고. 그날 경기에 관한 온갖 정보들이 수많은 웹사이트, 카페 또는 블로그에 올라오는 거야.
이왕 말이 나왔으니까, 너희들도 자주 베팅을 할 거야. 선수들에게는 금지되어 있는데도 말이야. 그런데 베팅회사의 배당률을 믿어서는 안 된다는 거지. 그건 순전히 미끼인 거야. 배터들이 베팅에 실패하면 그만큼 베팅회사의 이익인 거지. 그게 바로 배당률의 함정이라는 거야.
그건 그렇고…… 본론을 말해야겠지.
대부님은 신처럼 모든 걸 내려다보고 있는 거야. 그러면서 밑에 있는 모든 인간들을 조종하고 있지. 그러니 속일 수도 없고 속여서도 안 되는 거지. 대부님은 지독히도 잔인해, 잔인하다고.
배신자는 몸뚱이도, 뼈까지도 깡그리 태워서 흰 가루로 만들어 바다에 버리지. 하얀 이빨만 남는 거야.
그러나 계산 하나만은 정확하지. 그건 내가 보증할 수 있어. 먹튀는 안 한다는 말이야. 알겠지, 알겠어.
그러면 말이야 축구에 관한 이야기는 전문가인 김대성이 지금부터 이야기해봐. 너희들도 알고 있을 거 아닌가. 얼마 전까지 광주에서 뛰었으니까. 골은 넣을 줄 몰라도 공간을 찾아 감각적으로 패스해 주는 어시스트는 잘했어.
축구는 갈등과 충돌의 게임이거든. 상대 공격수를 기죽이기 위해서 저돌적으로 덤벼드는 거친 플레이로 유명했어.
축구 명문고와 명문대를 나오고 국가대표도 됐으니까.
그래서 내가 눈여겨본 거야.
김 코치는 말이야…… 풀백이든 센터백이든 수비형 미드필더이건 수비 포지션에서는 다 뛰었어. 그렇게 해서 프로 생활을 광주에서 시작해서 광주에서 끝냈다는 거지. 자기가 뭐 프랜차이즈 스타도 아니면서 말이야. 그렇지 않나?
너희들에게 알려줄 게 있는데 김 코치는 곧 어느 프로팀의 수비 전담 코치로 가게 되어있지.
그런데 말이야…… 안정수하고는 구면일 테지, 그렇고말고. 서로 얼굴을 붉히고 잡아먹을 것처럼 으르렁거렸으니까. 안 그런가?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 그러나 이제부터는 그따위 감정은 풀어버리라고. 동업자 아닌가.”
김대성은 몇 년 만에 부쩍 늙어버렸다. 머리는 벌써 반쯤 벗겨지고 얼굴은 잔주름이 자글자글하였다. 현역에서 은퇴한 후 지금 그의 삶이 그만큼 고달픈 것일까?
김대성은 입안이 바싹 마른 사람처럼 말했다.
“너희들 나를 잘 알고 있겠지. 축구계에서 나를 모르면 그건 북에서 내려온 간첩일 거야.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자고…….
서울과 광주는 원래부터 게임이 안 돼. 통산 전적이 서울이 9승 2무인 거지. 광주는 이상하게도 서울만 만나면 주눅이 드는 거야.
서울은 광주만 만나면 매우 공격적이 되고 광주는 수비만 해서 공을 가지고 있는 시간이 적을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힘쓸 틈도 없이 맥없이 당하는 거지. 공 점유율을 보니까 평균적으로 65대 35야. 그러니 게임이 안 풀리는 거지.
다시 말하면 광주가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어. 피해의식에 찌들고…… 패배주의에 길들여졌단 말이야. 징크스야 징크스…… 그것도 무서운……. 그래서는 싸우기도 전에 힘이 빠져버리는 거야.
나도 그랬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더라고.
오죽했으면 운동장에 내린 악귀를 쫓는다고 한밤에 소금을 뿌리기까지 했을까. 그게 감독에게도 선수들에게도 엄청난 심리적 영향을 끼치는 거야. 감독은 서울만 생각하면 자다가도 숨이 막혀 벌떡 일어나겠지. 지독한 악몽을 꾸거나.
하지만 축구에서는 감독이 할 수 있는 작전이 별 게 아니야. 유일한 방법은 선수를 교체하는 건데 그것도 단 세 번만 할 수 있단 말이지. 야구와는 다른 거야. 야구에서는 감독이 쓸 수 있는 작전이 너무 많아. 그리고 선수도 무한정 교체할 수 있고.
배터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할 거야. ‘한 번도 못 이겼는데 이번에도 지겠지. 뻔한 거야, 뻔하다고.’ 그래서 전부 서울에 걸게 되는 거야. 틀림없어. 틀림없다니까.
우리는 그런 안이한 심리상태를 역으로 이용하는 거라고.
그렇지만 서울에도 약점은 있어. 방심할 거야, 방심할 거라고. 광주쯤이야, 광주는 우리의 밥이야.
그러니 동기 부여가 될 리가 없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보조 공격수인 노련한 김주성이 햄스트링 부상으로 3주간 결장하니깐 이번에는 출전하지 못하게 되지. 대체 선수로 나올 어린 박종윤은 별로이니까. 걔는 아직 풋내기란 말이야.
너희 감독은 원톱을 쓰겠지. 안정수가 혼자서 최전방 공격수로 나설 수밖에 없어. 너는 공격적이고 해결사이니까.
내가 한 수 가르쳐 주겠는데…… 광주 골키퍼는 자주 골 문을 비우고 골라인 밖으로 뛰쳐나온단 말이야. 그래서 그때를 이용해서 로빙 슛을 날리면 안 되는 거지.
지금 우리는 골을 넣으면 안 된다니까.”
그때 그는 안정수의 햇볕에 그을린 갈색 얼굴을 쳐다보고 위아래로 훑어 내렸다. 안정수는 그의 눈을 피해서 대리석 바닥만 내려다보았다.
김대성이 계속해서 말했다.
“너희들도 모르는 극비 정보를 우리는 알고있어. 이건 아주 특급 정보야. 어느 수비수가 이번 게임에 뛸 수 없다는 거지…… 걔가 감독한테 찍힌 거야.
우리가 캐낸 가장 확실한 정보이지. 수비는 조직력인데 공격수가 빠지는 것보다 수비수가 빠지면 전력 누수가 훨씬 심각하지. 물론 서울은 강팀이니까 선수층이 두텁긴 하지만.
우리는 시합이 시작되기 전날에 상대방의 선발 명단 알아맞히기 게임을 하지. 해봤을 거 아냐? 선수들의 명단을 대충 알게 되면 작전의 윤곽이 드러나는 거라고.
광주 감독은 사투리를 많이 쓰고 락커 룸에서 무척이나 쓸데없는 말도 많이 하지만 전술에 대해서는 핵심이 없어. 그래서 선수들이 헷갈리는 거야. 혼자서 씨부렁거리니까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가 안 되는 거지.
이건 확실하지. 너에게 전담 마크를 줄 거야. 그 양반 수비에서 지역 방어를 쓰면서도 너에겐 맨투맨을 하는 거지.
그 늙은 수비수가 스피드가 떨어지니까 노련하고 교묘하게 반칙을 잘하는 거 알고 있겠지. 걔는 나보다는 한술 더 뜨지.
축구 선수가 아니라 격투기 선수라 할 수 있어. 내년쯤이면 은퇴한다고 하던데…… 그러니까 퇴장 당할 걸 각오하고 거칠게 구는 거지. 다시 말하면 곧 운동장을 떠나는데 이판사판인 거지.
네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무자비한 태클로 네놈의 발목을 부러뜨려서 선수 생명을 끝장낼 수 있다고. 그러니 얌전히 시키는 대로 하란 말이야.
90분 내내 공격수가 슈팅을 안 할 수는 없을 거니까 슈팅은 마음대로 하라고. 다만 유효 슈팅을 할 때는 골키퍼의 가슴에 안기게 하란 말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지. 그리고 절대 발리킥이나 오버헤드킥은 하면 안 되지. 그땐 공이 제멋대로 가니깐 너도 통제할 수 없게 되는 거야.
그리고 말이야…… 이번 시합에서는 가급적 헤딩도 하지 마라. 너는 본래 몸싸움을 싫어하지 않는가. 그 덩치 큰 수비수가 네가 헤딩하려고 점프하면 밀쳐서 깔아뭉갤 거니까.”
펀드매니저가 말했다.
“다시 말하면…… 너희는 이기는 경기를 해서는 안 된다는 거지. 알겠지? 알겠어? 이게 핵심이야. 축구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심판이 휘슬을 분 시작 직후와 종료 직전이야.
시작 직후에는 어리버리하다가 집중력을 잃고 종료 직전에는 정신이 해이해져서 집중력을 잃는다고. 그러니까 이 시합에서도 시작 직후와 종료 직전에 신경을 쓰라고. 잘못하면 전체적으로 꼬일 수 있으니까.
이 경기는 그 결과가 뻔하다고 보니까 텔레비전 생중계도 없어. 그러니까 안심하라고. 무슨 짓을 해도 슬로우 비디오로 나오지 않을 거니까. 그들은 경기장에 입장할 때부터 패배의 그림자가 얼굴에 얼씬거리지. 한결같이 얼어붙어 있는 거야.
그 감독은 너무 무식해. 축구는 머리로 하는데 감독으로서 경기를 읽는 눈이 없어. 기술과 체력, 전술 다 필요 없다는 거지. 무조건 선수들의 멘탈만 강조한다고. 그래도 지금까지 버틴 거지.
감독 목숨 파리 목숨인데…… 구단 쪽에 든든한 게 있거나…… 기자들과 사이가 좋았거나…… 그렇지, 뭐니뭐니해도 인생에서 행운보다 더 좋은 건 없는 거지.”
김대성이 말했다.
“그 감독님 그래 봬도 의리 하나는 끝내주죠. 자기 선수들을 보호해요. 절대 선수 개인 탓을 안 하지요. 패배의 책임을 감독이나 팀 전체에 돌리는 거예요.
그런데 구단이 문제라구요. 돈이 없으니까 좋은 선수를 데려올 수 없잖아요. 공격 자원이 너무나 빈약하니까 수비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어요.”
펀드매니저가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러나 불은 붙이지 않는다.
그가 말했다.
“그래도…… 친정 팀이라고…… 변명은……
수비 쪽과 골키퍼에게는 이미 손을 써놨지. 그걸 너흰 모른 척하고 있으라고. 알겠지. 오른쪽 풀백은 미끄러져 넘어지는 척하면서 결정적인 순간에 광주 공격수를 놓치게 될 거고, 골키퍼는 본능적으로 몸을 뒤틀면서 반대쪽으로 다이빙할 거야.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수비수가 고의적으로 심한 백태클을 해서 자신은 퇴장당하고 페널티킥을 허용하도록 각본이 짜여있지.
다시 말하면…… 광주가 언제든지 한 골이나 두 골은 빼낼 수가 있다는 거야. 그 이상은 불가능하겠지만. 혹시 모르지, 기적이 일어난다면…… 공은 둥그니까 세 골 네 골도 가능하겠지.
그리고 말이지, 주심의 경우에는 도대체 신경 쓸 게 없어. 주심이란 게 원래 그라운드의 독재자이지만. 모든 사람들의 증오심을 불러일으키는 지독한 냉혈한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번에는 물렁물렁할 거라고. 그 주심 게으르고 느려 터져서 슬슬 걸어 다니니까 뭘 볼 수 없다고……”
김대성이 말했다.
“문제는 말이야, 공격 쪽이라고. 오늘은 공격 쪽만…… 알겠지? 이게 핵심이야. 네가 골을 넣으면 작업은 헝클어지지. 공격형 미드필더들도 그렇고 말이야.
아주 요령껏 자연스럽게 플레이를 하는 게 중요하지. 어쨌거나 지나치게 소극적 플레이를 해서는 안 되는 거야. 감독이나 코칭스태프들이 눈치채지 않게 말이야.”
재무팀장이 말했다.
“베팅 조건은 첫째는 2:0, 둘째는 1:0, 그러니까 한 골 또는 두 골 차 이상으로 지라는 거지. 두 골 차면 특별 보너스를 주겠어.
광주는 이런 상황에서는 언제든지 한 골이건 두 골이건 골을 넣을 수가 있으니까. 그런데 너희가 반격을 해서 골을 넣지 않은 게 중요해. 이게 핵심이야.
우선 선수금조로 각자 1,000만원을 주겠어. 게임이 예정대로 끝나면 바로 5,000만원을 주지. 그러나 실패하면 선수금을 따블로 돌려줘야 하는 거야. 이번에 성공하면 다음 게임에는 조건이 달리 적용되겠지.”
그는 안정수를 따로 멀리 떨어진 자리로 데려가서 말했다.
“네가 이 작업의 핵심이니까…… 다시 말하면 네가 골을 넣으면 안 되니깐 특별히 선수금을 더 많이 주고 싶군. 선수금으로 3,000만원, 끝나면 7,000만원을 줄 수 있어. 총 1억 원이라고.
늙으신 할머니가 중풍으로 고생하고 계신데…… 그 정도면 충분한 치료비가 될 거라고.”
안정수가 말했다.
“우린 선수금 같은 거 필요 없어요. 따블은 말도 안 돼요. 막상 시합에 들어가면 그게 마음대로 되냐고요. 저는 제가 본능적으로 할 수 있는 걸 다 할 겁니다. 끝나고 보자고요.”

그 경기는 2012년 10월 13일 18:00 상암월드컵 경기장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예상을 뒤엎고 서울이 광주한테 3:2로 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혹시 잘 짜여진 각본대로?
예상대로 경기장 관중석은 텅 빈 채로 썰렁했다. 술렁이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승패가 당연한 시시한 경기라고 생각해서인지 클럽 유니폼을 입은 열혈 서포터들만 나왔다. 하지만 응원가를 부르거나 함성을 지르고 박수를 치려는 사람은 없었다.
비둘기들만 날아다녔다.
전반전이 시작되자마자, 그러니까 겨우 5분쯤 지나서 광주의 오른쪽 풀백이 가로챈 볼을 드리블해서 중앙선을 넘어서면서 그 순간 서울 쪽 아크 서클로 뛰어들어 공간을 만든 공격수에게 볼이 연결되었고 그때 공격수는 골키퍼가 왼쪽으로 몸이 쏠리는 것을 놓치지 않고 오른쪽 골문 구석으로 밀어 넣은 것이다. 골키퍼는 데굴데굴 굴러가는 공을 멍하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때 벤치 앞쪽에 앉아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나는 포지션이 (골을 잘 넣지 못하는) 공격형 미드필더였고 후반전 중간쯤 이후에 교체 선수로 투입될 예정이었다. 감독님으로부터 그렇게 귀띔을 받은 것이다.
전반전이 1:0으로 끝나고, 하프 타임 때 우리 감독은 라커룸에서 늘 하던 버릇대로 손톱을 잘근잘근 물어뜯으며 선수들을 심하게 다그쳤다. 그러나 감독은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있었다. 광주는 언제나 밥이었으니까 그렇게까지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미리 맞춤형 수비 연습을 소홀히 했던 것이다. 더욱이 수비수들에게 상대 공격수에게 틈을 주지 말고 바짝 붙으라는 지시를 까먹기까지 하였다.
“왜 그 모양이야, 모두들 발이 땅바닥에 얼어붙어 있어. 경기를 구경만 하고 있다고. 열심히 뛰란 말이야.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란 말이야. 그래서 리듬을 타라고. 축구는 리듬이야, 리듬.
빨리 동점을 만들라고. 첫 골이 들어가면 게임은 우리 쪽으로 넘어온단 말이야. 전방과 중앙에서 압박을 하라고. 그러면 상대방은 플레이를 할 수 있는 공간을 갖지 못해. 후반전은 우리 페이스대로 몰고가는 거지.
후반전 전반에 저것들이 약간 방심하고 있을 때 원톱에게 바늘구멍이라도 뚫리면 종패스로 무조건 찔러주라고. 그러니까 멀리 똥볼을 차면 안 된단 말이야. 횡패스는 중간에 잘리면 공을 빼앗기게 되니까 가급적 삼가하라고. 그래서는 상대의 허를 찌를 수가 없는 거지. 한 박자 빠른 패스가 필요해.
원톱은 이쪽저쪽으로 살살 움직이며 공간을 확보해, 공간을. 어깨 싸움에서 밀리지 말라고. 박스 근처에서만 어슬렁거리라고. 공을 받아서 드리블을 하면 안 돼. 원터치를 해서 무조건 슈팅이야. 약한 고리를 노리란 말이야. 수비에 가담하려고 내려올 필요가 없다니까. 수비는 전혀 신경 쓰지 말라고. 광주 수비수를 등에 지고 터닝슛을 날려, 번개처럼 날리라고. 골키퍼를 인정사정없이 죽여 버리라고. 알겠지! 알겠어!! 알겠어!!!”
안정수는 공간을 찾아서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그는 거의 본능적으로 공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가 어느 순간 상대편 골문을 등지고 있었다. 공이 머리 위로 날아왔고 그는 가볍게 점프해서 가슴으로 공을 트래핑한 후 공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 강슛을 날리려고 몸을 돌리는 순간 상대 수비수가 발로 공 대신 그의 가슴을 스쳤고 그는 몇 바퀴는 나뒹굴었다. 여지없이 페널티킥이 주어졌다.
페널티킥은 골키퍼나 공을 차는 쪽이나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게 중요하다. 골키퍼는 키커의 미세한 동작을 보고 방향을 예상한다. 반대로 키커는 골키퍼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한다. 골키퍼가 움직이려는 반대 방향으로 차야 하니까.
그는 하얀색 원으로 되어 있는 페널티킥 지점에 공을 놓고 몇 발자국을 물러섰다. 일부 열성적인 관중들이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섰다. 주심은 땀을 뻘뻘 흘리며 호루라기를 입에 물고 있다. 그와 골키퍼는 잠시 동안 단둘이서 서로를 응시했다. 골키퍼가 그의 눈길을 피했다. 그는 이를 꽉 악문 채로 눈을 질끈 감았다가 크게 떴다. 그리고 다시 공을 쳐다보며 간절하게 주문을 외웠다.
‘제발 좀, 들어가다오, 들어가라고.’
그는 그때 중학교 시절 봄에 열리는 전국 중등부 축구선수권대회 결승전 순간을 퍼뜩 떠올렸다. 후반전 막판이었고 그가 페널티 골을 넣으면 그대로 게임은 끝나는 찰나였다. 그가 힐끗 벤치 쪽을 바라보았다. 모두들 우승이라도 한 것처럼 박수를 치며 환호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찬 공은 하늘 높이 날아가 사라져버렸다.
그래서 페널티킥에 대해서는 그때부터 트라우마가 있었고 페널티킥을 찰 때마다 내심 불안했다.
골키퍼는 슈팅이 되는 순간 거의 무의식적으로 키커가 공을 찰 방향이라고 지레짐작한 왼쪽으로 몸을 날렸지만 그는 침착하게 인사이드 킥으로 오른쪽 모서리로 찔러 넣었다.
이제 스코어는 1:1이 되었다. 당연히 서울 쪽에서 사기가 올라 계속 밀어붙여야 한다. 그의 몸놀림이 더욱 가벼워지며 최전방에서 상대 수비수들을 따돌리며 빈 공간을 만들고 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후반전 후반이 되자 핵심 수비수인 김주봉이 갑작스럽게 허벅지 근육 통증으로 교체되어 후보 선수인 김정욱이 들어왔고, 그때부터 갑자기 우왕좌왕하면서 견고한 수비진의 밸런스가 무너지고 밀리기 시작했다.
우리 선수들의 몸짓과 표정을 살폈다. 우리들은 단순해서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감추지 못하고 얼굴에 그대로 드러내서 언제나 표정이 풍부하다. 모두들 당혹스러워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때는 땀이 비오듯 온몸을 적신다. 너무 긴장해서 미끄러지고 다리가 휘감기면서 헛발질까지 했다.
더욱 수비라인이 삐걱거리면서 연거푸 2골을 먹게 되었다. 불과 몇 분 간격이었다.
감독님은 라인을 따라 왔다 갔다 하면서 계속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두 손을 모아 선수들을 향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얼굴이 흙빛이었다. 그들이 감독의 말을 듣기나 했는지 또는 그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지 알 수 없었다. 그들은 허둥대고 있었으니까.
나는 그게 그 펀드매니저가 수비수 쪽에 손을 썼다는 작업의 결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제야 감독은 몸이 무거운 늙은 박종수를 젊은 선수인 유지성으로 교체했다. 그리고 다이아몬드형 미드필드로 전환했다. 유지성이 들어오자마자 구석구석을 열심히 뛰어다니면서 수비는 점차 안정되었다. 그들은 패배에 대한 공포감 때문에 새삼 번쩍 정신을 차렸다. 어떻게 광주에게, 한 번도 진 적이 없었는데.
본부석 맞은편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아줌마 부대들의 함성이 들려왔다. 상대 패스를 끊으라는 의미로 ‘끊어! 끊어! 끊어!’라고 외치거나 크로스를 올리라는 의미로 ‘올려! 올려! 올려!’라고 외쳤다. 그 중에는 우리 선수들의 어머니들이 끼어 있었다.
우리 선수들은 점점 빨라지고 전진했다. 그들은 땀을 뻘뻘 흘렸고 목구멍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안정수는 상대방 선수들과는 한 발짝 거리를 유지하고 계속 경계의 눈길을 던졌다.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위치를 조정한다. 상대 수비수를 따돌리기 위해서 타깃형 스트라이커에서 섀도 스트라이커로 역할을 바꾼 것처럼 보인다.
그가 오프사이드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빈 공간으로 전진했을 때 깊은 스루 패스가 들어왔다. 그는 상대 수비수들과 부딪치고 엉키면서 공을 차지했고 이리저리 공을 굴리면서 방향을 바꾸었고 결국 골키퍼가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각도로 공을 날려 보냈다. 공은 빙글빙글 돌면서 날아가 마치 마른 낙엽이 바람에 떨어지듯이 방향을 바꾸어 골문 오른쪽으로 들어갔다. 뒤늦게 골키퍼가 몸을 날렸지만 공을 잡을 수 없었다.
이제 스코어는 펠레 스코어라고 하는 3:2가 되었다.
안정수는 계속 중얼거렸다. 침착해라, 침착. 아직 괜찮으니까. 시간은 충분하다니까. 흥분할 것은 없어. 공이 발에 걸리면 가차 없이 갈기는 거야. 갈기는 거라고.
그는 상상했다. 모든 눈이 나를 향하고 있다. 창의적인 플레이를 해야 한다. 준비하라. 공이 날아오면 정확하게 반응한다. 나는 빠르게 공을 치고 달리며 수비수를 제치고 이제 골키퍼와 일대일로 맞서 그의 손이 도저히 미칠 수 없는 모서리로 침착하게 공을 굴린다. 그러나 아슬아슬하게 골대 밖으로 굴러가버린다. 골키퍼가 안도의 한숨을 쉰다. 그 순간 골로 착각한 관중들의 우레와 같은 함성이 아쉬운 탄식으로 변했다. 그는 온몸에서 힘이 빠졌고 상의 유니폼으로 흘러내리는 땀을 닦았다.
그 이후로는 좀처럼 단독 찬스는 찾아오지 않았다.
인저리 타임에서 1분을 남기고 코너킥 찬스가 왔다. 전담 키커가 공을 골키퍼의 손에 닿을 수 없게 높이 길게 찼고 키가 큰 윙백이 상대방 수비수의 방해를 뚫고 높이 떠올라 발밑에 떨구어지자 그는 이를 꽉 문 채 상대편을 여유 있게 제치면서 힘차게 갈겼다. 그는 골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면 해트트릭이 되는 것이다. 아주 오랜만에…… 얼마나 기다리던 순간이었는가.
그런데 공은 굉음을 내며 골대를 맞추고 튀어 올라 아웃이 되어버렸다. 오, 이런! 이런! 그러고 나서 그 시합은 끝났다.
주심이 길게 경기 종료의 휘슬을 불었던 것이다.
광주는 운 좋게 승리가 확정되었으나 여전히 어리둥절해서 모처럼의 승리를 만끽하지 못했다. 너무 놀라운 사건이 일어나서 다들 눈에 초점이 없고 멍한 기분이다. 그들은 원을 그리며 얼싸안고 하이파이브를 했지만 어정쩡하게 흩어진 채로 경기장을 빠져 나갔다.
조명탑의 불이 하나둘씩 꺼지면서 어두운 운동장에는 쓸쓸한 적막감이 감돌았다.

안정수는 어렸을 적에 부모가 이혼하면서 아버지는 동남아 어느 나라로 잠적했고 어머니는 재혼했기 때문에 외할머니 손에 자랐다. 그래서인지 자기 자신이 무력함을 느끼거나 자존심이 상할 때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간헐적 폭발성 장애 또는 분노조절 장애’ 증후군이 있었다.
골은 축구의 절정이다. 하얀색 둥근 대포알이 그물망을 흔들어 놓을 때마다 터져 나오는 요란한 감격과 흥분은 광기마저 느끼게 한다. 그는 누구보다도 골에 대한 집념이 강했다. 골을 넣으면 혈중 엔도르핀이 마구 치솟았다. 시합에서 골을 넣은 날은 너무 기뻤지만 넣지 못하면 미칠 것 같았고, 왈칵 눈물을 쏟았다. 이 축구 광신자는 골을 넣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을 마치고 그때 학교를 중퇴하고 서울 시티즌에 테스트를 거쳐 유소년 선수로 입단했다. 아주 일찍부터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고 모든 시간을 오로지 축구에 바친 사람만이 일류 프로선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2군에서부터 체력을 단련하고 착실하게 기본기를 다졌다. 그리고 축구선수로서 운동감각을 길러야 했다. 하지만 오랜 반복 연습과 지루한 훈련을 견뎌내야만 몸속 온갖 신경과 감각이 조정되면서 집중력과 운동감각이 향상되는 것이다. 안정수는 그때 벌써 높이 점프할 수 있도록 수없이 점프 연습을 했고 중력이 허용하는 것보다 한두 발짝 공중에 더 떠 있도록 이미지 트레이닝을 반복했다.
그때만 해도 대한민국에서는 축구를 하는데도 학교 졸업장이 중요했다. 운동선수들에게도 능력보다는 학력과 출신 학교를 먼저 따졌던 것이다. 그때만 해도 그런 시절이어서 축구 선수는 출신 학교의 선후배 사이에 인맥이 형성되어야만 출세할 수 있었으니까 동북고나 경신고, 한양공고 등을 졸업하고 고대, 연대, 경희대, 한양대를 거쳐야 청소년 국가대표, 성인 국가대표로 발탁되고, 일류 프로팀으로 진출하는 출셋길이 열렸다.
하지만 어차피 진짜 축구를 하려면 최종 목표는 프로팀에 입단하는 것이고, 그 후 국가대표 선수가 되어 태극마크를 달고 나서 이름이 널리 알려지면 유럽의 빅 리그로 진출하는 것이다. 기회는 항상 있는 것이 아니고 기회가 있을 때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는 벌써 기특하게도 게임을 결정하는 건 정신과 육체 둘 다인 것을 깨닫고 있었다. 축구는 정신과 육체를 포함한 모든 것의 총합이었다. 그가 탁월한 공격수가 되기 위해서는 수비수들이 거칠게 잡아채도 넘어지지 않는 보디 밸런스를 유지하고, 완벽한 볼 컨트롤, 빠른 스피드와 환상적인 드리블, 골 에리어에서 놀라운 집중력과 정확한 슈팅 능력이 필요했다. 그는 최고가 되려는 진정한 욕망이 있었다. 그러나 유럽에서 뛰려면 육체를 먼저 단련해야 했다. 그쪽은 스피드가 엄청나고 너무 거칠고 불필요한 파울이 많으니까 이를 이겨내려면 체력이 우선이었다. 그는 절대 체력 훈련과 연습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축구는 머리로 하는 스포츠임을 깨닫고 있었다. 위대한 선수의 머릿속엔 운동장에서 뛰는 선수들을 연결해서 삼각형이건 사각형이건 기하학적 도형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코흘리개, 그 어린 나이에 어쩌면 그렇게 어른스럽게 생각할 수 있었는지. 그는 축구를 생사가 걸린 문제가 아니라 그 이상이라고 생각했다. 축구는 감각적이어서 본능적 경기이지만 푸른 잔디밭에서 공을 다루는 예술이었고 그의 인생은 축구공 없이는 승리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스타가 되고 싶었고 절대로 조연이 될 수는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것은 일생일대의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프로 팀만큼 좋은 시설을 갖추고 좋은 선수들이 모여 있는 곳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는 성실하고 부지런했다. 그래서 계속적으로 일취월장 성장했다. 다만 여드름투성이 얼굴에 키는 180센티미터까지 계속 자랐지만 어쩐 일인지 지속적인 근육운동에도 불구하고 체중만은 적정한 수준까지 불어나지 않았다.
그는 책상머리에 ‘슈팅과 헤딩은 마드리드의 호날두처럼, 드리블과 패스는 바르샤의 메시처럼, 프리 킥을 포함해서 모든 킥은 베컴처럼, 그리고 슛은 내가 한다.’라고 써 붙여 놓았다. 그리고 벽에는 대한민국 빛나는 골잡이들의 계보인 최정민 (작고), 이회택, 차범근, 최순호, (선수 시절 별명이 ‘황새’인) 황선홍의 브로마이드 사진을 나란히 붙여 놓았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그는 최전방 공격수만을 좋아했고 그래서 수비수인 홍명보는 빠져있다.)
그는 경기하는 방법과 골 넣는 방법을 깨닫기 시작했다. 양발을 잘 쓸 뿐만 아니라 몸 어느 곳을 써서라도 득점할 수 있었다. 거기다 골 넣는 자리를 찾아가는 기술도 익혔다. 수비수를 순간적으로 따돌리면서 공이 닿는 위치를 선점하는 것이다.
그는 페널티박스에서 몸놀림이 빨랐고 머리, 눈, 어깨, 발 등 온몸이 공을 향했다. 언제나 공이 골대로 빨려 들어가는 그 순간을 미리 예감하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골밖에 없었다. 축구는 골이다. 골은 경기의 판세를 좌우한다. 그는 무자비하게 골을 집어넣으며 벌써부터 암살자의 면모를 보이고 있었다. 상대팀은 그를 두려워하였다.
그는 자면서도 축구공을 안고 잤다. 공은 친구였다. 이제 공은 여자가 되었다. 그녀에게 열광했고, 헌신했고, 복종했다. 그는 그녀를 끊임없이 추구하면서 줄기차게 꽁무니를 쫓아 따라 다녔다. 그녀가 숨고 도망가도 그녀를 찾아서 달리고 깡충깡충 뛰어올랐다.
그에게 있어서 축구는 본능이고 무의식의 세계였다. 나는 축구를 한다. 고로 존재한다. 그는 그라운드에서 언제나 눈에 쌍심지를 켰다. 공을 찾아서.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이제나저제나 기다리고 있던 데뷔전을 잊을 수가 없다. 감독님이 전날 선발 출전한다고 통보했다. 그는 그때 얼마나 기쁜지 천국의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았다. 감독님이 말했다. “90분 동안 안 뺄 테니까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단 기회는 항상 있는 게 아니란 걸 알아야 한다.” 그 감독은 아무리 좋은 선수라도 정작 시합에 나가면 몇 번을 실수할 수 있는데 10분쯤 넣었다 뺐다 하면 선수로 대성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그는 그 첫 경기를 정확하게 기억한다. 어찌 잊어버릴 수 있겠는가. 그만큼 가장 긴장되고 흥분되는 경기였다. (하지만 그 첫 경기에서 인상적인 플레이를 했기 때문에 감독의 눈에 들어서 그 어린 나이에 곧바로 주전 선수가 되었다.) 수십 번 넘게 경기에 출전하고 나서야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서 경기 자체를 어느 정도 즐길 수 있었지만 말이다.

2009년 여름이었던가? 김대성은 그 시합 며칠 전부터 안정수에 대해 연구했다. 감독님으로부터 그를 전담 마크하라는 엄중한 지시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몸놀림이 빨랐고 오른쪽, 왼쪽 양발 모두를 자유자재로 사용했다. 그는 세 개의 다리를 가지고 있었으니 아주 큰 키는 아니지만 문전에서 빈틈을 헤집고 헤딩슛도 할 줄 알았다. 그는 어쨌거나 혼신의 힘을 다해서 밀착 마크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감독이 말했다.
“그놈은 아직 얼굴에 솜털이 무성한 어린 놈인데…… 볼을 제대로 다를 줄 안다고. 네가 맨투맨으로 마크하라고. 절대 놓치지 말라고. 네가 잘하는 게 있잖아. 심판이 안 보는 데서 적당히 잡아당기고 걷어차라고……”
원톱은 그날 나이키의 마지스타를 신고 나왔다. 그 축구화는 발목에서 발 밑바닥까지 감싸는 디자인으로 발을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었다. 문전에서 정교한 볼 컨트롤이 필요한 선수에게 적합했다. 김대성은 그 녹색 바탕에 나이키 로고가 선명한 축구화를 바라보는 순간 공포감이 밀려오면서 벌써 주눅이 드는 기분이었다.
그는 반칙의 예술가였다. 공격수에게 다가가 옆구리를 한 번 찌르거나 배를 주먹으로 치는 것은 물론이고 태클은 공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발목이나 정강이를 걷어차는 게 목표였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거친 반칙은 축구의 필수 요소처럼 여겨졌다. 축구가 갖고있는 남성적 면이어서 특히 열혈 팬들은 이를 높이 평가하기까지 했다.
‘저 자식을 어떻게 막는담?
아예 퇴장을 각오하고 태클을 걸어 발목을 분질러 버릴까…….’
서울팀 감독은 원래 공격수를 2~3명을 기용하는 전통적 포메이션인 4-3-3 형태를 선호했다. 그래야만 투톱 또는 쓰리톱의 경우 공격수가 많기에 그만큼 다양한 공격전술을 사용해서 화끈한 골 퍼레이드를 펼칠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약점은 있다. 4-4-2 포메이션과 비교하자면 미드필더의 역할이 축소되면서 수비가 엷어지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광주의 날카로운 역습에 대비해서 미드필드를 강화할 것이고 안정수의 공격능력이 워낙 탁월하기 때문에 4-2-3-1 포메이션을 쓰고 당연히 그가 원톱으로 섰다.
그날 광주는 미드필드에서 강한 압박을 받았기 때문에 패스 미스가 빈발했다. 팀이 전체적으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볼 점유율 역시 훨씬 떨어졌다. 서울은 수시로 최전방에 있는 원톱에게 찬스를 연결하고 있었다. 김대성은 그때마다 중압감과 압박감을 느꼈다. 그가 밀착 수비를 하면서 심판 모르게 안정수의 유니폼을 잡고 늘어지고 팔꿈치로 가슴팍을 가격하고 침을 뱉고 “씨발 새끼”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나 어린 안정수의 얼굴에서 알 수 없는 빈정거림과 적대감을 느꼈을 뿐이다. 그는 김대성을 철저히 무시하고 농락하고 짓밟았다. 그는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었다.
그가 공을 잡는 순간 무자비하게 백태클을 하였다. 안정수가 고통스럽게 발목을 감싼 채 뒹굴었고 그 순간 페널티킥이 선언됐다. 안정수는 곧바로 가볍게 털고 일어났다.
안정수가 페널티슛 지점에 둥근 공을 내려놓았을 때 경기장 전체에 숨 막힐 듯한 긴장감이 흘렀다. 그는 결정적인 짧은 순간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골키퍼가 왼쪽으로 몸을 날릴 것인가, 아니면 오른쪽으로?”
안정수가 예리하게 왼쪽 골문 모서리로 차 넣었다. 그러나 골키퍼는 반대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는 목에 걸고 있던 작은 십자가에 입맞춤을 했고, 무어라고 중얼거렸다. 언제부터인가 예수쟁이이니까, 틀림없이 “주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저 악마에게 드디어 복수를 한 것입니다! 악마여! 회개하라! 그렇지 않으면 지옥이 가까웠느니라!”라고 말했겠지.
그는 그때서야 하프타임 때 감독님이 “야, 김대성, 약간 조심하라고. 골 에어리어에서 페널티가 나면 큰일이야. 걔가 벌써부터 헐리우드 액션을 알아가지고…… 파울을 얻어내려고 넘어질 거라고.”라고 말했던 게 퍼뜩 떠올랐다. 이미 늦었지만 말이다.
그때 생각했다. 새까만 후배 녀석에게…… 고아 출신이나 다름없는 놈에게…… 겨우 중학교 중퇴한 놈에게 철저히 당했지, 그놈은 날 무시했지. 나는 축구 명문고와 명문대를 나왔고 국가대표까지 했는데 말이지.
저놈은 아무것도 아닌 게 지금 너무 잘나가고 있는 거야.
국가대표는 따놓은 당상이고, 그런 후에는 순서대로 거액의 계약금을 받고 유럽의 빅 리그로 진출하겠지. 명예와 부를 한 손에 거머쥐는 거지.
그 꼴을 어떻게 봐? 그걸 내가 막아야만 하는 거야. 저놈을 반드시 파멸시켜야만 하지. 다음 시합에서는 무릎이건 발목이건 분질러서 영원히 축구를 못하게 할 거야. 그래도 안 되면 다른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파멸시켜버리는 거지.
그는 그때 감당하기 힘든 굴욕과 함께 시기심과 질투심을 느꼈다. 그리고 복수의 칼날을 벼리고 있었다.

개포동 가건물
그 시합이 끝나고 며칠이 지나고 나서 우리는 자주 가는 당구장에서 만났다. 김태현이 이정훈에게 말했다.
“형, 잘하면 돈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어차피 서울이 진 거니까, 그들이 말한 조건 일부는 충족시킨 거지. 그러니깐……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부는 받아야 하는 거지.
내가 대성 형한테 전화를 했더니 ‘너네 한 것 맞냐.’하면서 큰소리로 화를 내긴 했지만……. 형 이야기가 나는 잘 모르겠고 빠질 테니 너희들이 펀드매니저를 직접 만나보라고 했어.”
이정훈이 말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돈이나 받아야지. 그래…… 그렇지. 그때 작업에 동의했던 다른 선수들에게도 이야길 해봐야겠어.
그런데 수비 쪽은 절대 아니었어. 내가 은근슬쩍 눈치를 살피면서 물어봤는데…… 아니더라고. 펄쩍 뛰는 거야. 그러면서 무척 화를 내더라고. 그 매니저가…… 사기 친 거야.”
김태현이 말했다.
“내가 이미 대성 형한테 협박성 문자 메시지를 보냈거든. 사촌 형이 부산에서 유명한 칠성파 조폭이라고 했지. 그 형이 알게 되면 서울에 올라와서 가만 안 둘 거라고 했거든.
그랬더니 펀드매니저를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한 거야. 그치한테도 형 이야기를 꺼내는 거지 뭐. 사실 그 형은 가짜지만…….”
어느새 가을이 다 지나가고 있었다. 가을은 어차피 여름이 타고 남은 것이다.
우리들은 검은색 SUV를 타고 낡은 5층 아파트 단지를 지나서 개포동 변두리에 있는 텅 빈 가건물로 들어갔다.
건물 뒤쪽은 소나무와 밤나무 숲이 우거진 얕은 산과 붙어있다. 옛날에는 자동차 정비소였던 건물이었다. 천장에는 온통 거미줄이 쳐져있다. 시멘트 벽은 칠이 벗겨지고 습기와 곰팡이 냄새가 났다. 지독히 퀴퀴한 냄새. 바닥에는 버려진 엔진오일 자국과 쓰레기가 산더미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한쪽 구석에는 바람 빠진 축구공이 반쯤 눌린 채로 놓여있다.
깍두기 머리에 검은 정장을 한 건장한 건달 두 명이 그를 호위하고 있다. 건달 하나는 계속 일제 접이식 칼집에서 예리한 칼날을 접었다 폈다를 반복하고 있다.
펀드매니저가 우리를 아주 노골적으로 훑어본다. 자기는 모든 걸 빤히 다 알고 있다는 듯한 거만한 눈빛이었다. 나는 그의 일그러진 얼굴을 쳐다보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그의 눈 밑에 번져있는 다크서클을 힐끗 훔쳐보았다.
펀드매니저가 말했다.
“너희들이 일을 그르쳤지. 알겠지? 그게 핵심이었는데 말이야. 완벽한 기회였는데 말이야…… 3:1이었을 때…… 그런데 다 망쳐버렸지. 죽일 놈들 같으니라고. 손해가 얼마가 난 줄 알아, 너희 놈들 때문에…… 이런 뻔뻔한 것들이.”
이정훈이 말했다.
“그래도 말입니다. 우리 팀이 졌지 않습니까. 모두의 예상을 깨는 커다란 이변이 일어난 것이지요. 조간신문 스포츠면마다 그게 톱기사 아니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펀드매니저가 잔뜩 화가 나서 말했다.
“너희가 날 핫바지로 알고 있구먼. 축구에는 도대체 아무것도 모르는……. 그놈을 믿는 게 아니었어.
우리들의 계약조건을 완전히 무시했지. 물불 안 가리고 날뛰더구먼. 해트트릭을 할 뻔했으니까. 그리고 왜 김주봉이 쥐가 났겠어. 개념 없이 천방지축 너무 뛴 거야. 교체될 때까지 벌써 10킬로미터를 넘게 뛰었더라고. 그러니 쥐가 안 나겠어.
너흰 각본대로 따르지 않고 정상적으로 뛰었단 말이지.
서울이 그날 진 것은 그렇게 된 거지. 공은 둥글고 둥글지. 그게 축구야. 강팀이 항상 이길 수는 없는 거지.
축구가 왜 재미있겠어. 누가 이길지 모르는 경기이기 때문인 거지. 작은 물고기가 큰 물고기를 삼켜버릴 수 있다는 거지. 그러니까 아무리 강팀과 약팀의 경기라도 강팀에게 단지 승리의 확률이 높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거야.
그래서 스포츠 베팅에서는 축구가 최고인 거야. 바로 그거야, 이번 시합은 바로 그거란 말이다. 그러니까 너희는 한 게 아무것도 없어. 마지막 슛이 골대를 맞췄지. 그건 골이나 다름없는 거야. 우연 중의 우연이고 그 결과는 하늘에 계신 신만이 알고 있는 거지.”
김태현이 말했다.
“매니저님…… 어쨌거나…… 다시 말씀드리면…… 죄송합니다만…… 광주가 이겼지 않습니까. 그래서 조금이라도 배려해주셔야죠.”
매니저가 말했다.
“그러니까 말이야…… 배당금은 없어. 무슨 염치로…… 너희가 염치가 있는 놈들이야! 내가 너희 놈들이 다시는 축구를 못하게 발목이건 무릎이건 분질러 놓을 수도 있지만 이번만은 처음이니까 봐주는 거야.”
김태현이 다시 말했다.
“저희도 가만 있지 않겠습니다. 부산으로…… 연락하겠습니다.”
“웃기고 자빠졌네. 부산 촌놈 조무래기들이…… 뭘 어쩐다고.
자…… 이럴게 아니라…… 내가 새로 좋은 조건을 제시하겠어. 그럼 됐지. 다음 경기를 한 번 제대로 해주면 이번보다는 배로 올려주겠어. 그리고 이번 일을 완전히 용서해주는 거지. 알겠지? 알겠어? 이게 핵심이라구.”
건달들이 계속 번뜩이는 예리한 칼을 손에 들고서 눈알을 부라리며 째려보았다.
“밤길 조심해! 조심하라고!! 쥐도 새도 모르게. 푹, 쑤셔버릴 거야. 그렇지. 지금 거시기를 잘라버릴까.”
나는 그 공포 분위기에서 너무 놀란 나머지 등줄기에서 땀이 흘러내렸고 바지에 오줌까지 지렸다.
이정훈이 겨우 말했다.
“우리들이 결정하기에는…… 형들과 다시 상의할게요.”

서울남부지검 507호 검사실
담당 검사는 우리들의 시합 전후 통화 내역, 금융계좌 추적, 스포츠토토나 사설 토토를 한 사실, 프로토 승부식 발매내역에 의한 베팅분석, 전국적으로 판매점별 복권발매 및 적중현황 분석표, 네이버 스포츠 뉴스의 경기기록표에 의한 팀별 기록 및 득점상황표, 한국프로축구연맹의 K리그 경기별 분석기록지 등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우리들을 차례대로 소환해서 조사하였다.
그 검사는 처음에는 약간 미심쩍은 눈길을 보냈다. 아니면 눈살을 찌푸렸던가? 그러나 곧 깔보는 듯한 거만한 눈길로 아래 위를 쭉 훑어본다. 나는 불안하고 위축되어 몸이 얼어붙는 듯했다. 그리고 계속 으름장을 놓았다.
“전부 불어, 하나도 빠짐없이. 너희들이 빠져나갈 구멍은 없어. 만약 허튼소릴 하면 너희 가족들의 금융거래 내역과 탈세까지 깡그리 조사해서 패가망신시킬 테니 알아서들 하라구.
너흰 벌써 구속감이야.
너흰 이미 알고 있을 거야. 선수들은 국민체육진흥법에 의해 스포츠토토가 금지되어 있는데도 너희들은 그걸 했거든. 그것만 해도 징역감인데 사설 토토까지 했거든.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에 들어가면 말이야, 참여자도 운영자와 똑같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게 되어있지.”
우리는 일체의 진술을 하지 아니하거나 개개의 질문에 대하여 진술을 아니할 수 있다. 진술을 하지 아니하더라도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진술을 거부할 권리를 포기하고 행한 진술은 법정에서 유죄의 증거로 사용될 수 있다. 우리가 신문을 받을 때에는 변호인을 참여하게 하는 등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다.라고 했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 있었겠는가.
검사는 처음에는 신중한 자세로 점잖게 질문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곧 개버릇 남 못 준다고 빈정거리는 미소를 지으며 신랄하게 또는 신경질적으로 계속 고함을 꽥 질렀다. 금방이라도 쥐어박을 기세였다. 검사는 끊임없이 협박을 하였다.
“검사한테 미운 털이 박혀서는 좋을 게 하나도 없다고. 모두 빠짐없이 불란 말이야. 너희 놈들은 모두 구속시킬 수 있어. 구속한다고. 그건 내가 결정하는 거야. 알고 있어, 알고 있냐고.”
늦겨울의 막바지 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우리는 몇 차례씩 불려 다녔고 그때마다 심한 질책의 말을 들었고 조금이라도 사실 관계가 엇갈리면 검사는 계속 윽박지르거나 손에 쥐고 있던 볼펜으로 뺨을 쿡쿡 찔렀고, 계속 대질신문을 하게 했다.
(우리는 대질신문을 할 때마다 불편했다. 그때는 서로 불안한 시선으로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았다. 어쩌다 시선이 마주쳤지만 곧바로 외면했다. 우리들의 시선은 그 어느 곳에도 완전히 가닿지 못했다. 하지만 억지 미소를 지을 수는 없었다. 우리는 현기증을 느꼈고 어쩐지 씁쓸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감독과 선수들, 심판, 프런트 사람들도 불려 나와서 조사를 받았다. 우리 모두는 검사가 시키는 대로 피의자 신문조서에 지문을 찍었고 영상녹화에 동의를 해서 그 조사 과정을 녹음, 녹화하게 되었다.
우리들이 기소된 후 변호사를 통해서 피의자신문조서, 진술조서, 녹화 CD 사본 전부를 볼 수 있었고, 나는 이를 통해서 내가 모르고 있던 사건 전모를 낱낱이 알게 되었다.

김태현은 포지션이 수비형 미드필더였으나 팀에서 2진급 선수로 출전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는 경기 때마다 벤치에 앉아서 그라운드에서 열심히 뛰어다니는 선수들을 바라보며 그때마다 우울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는 프로축구 신인 드래프트 때도 선순위로 지명되었는데 몇 년이 지난 지금은 별 볼 일 없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만 해도 후보 선수였던 것들이 지금은 팀의 주전으로 뛰고 자신은 어느새 후보 선수로 밀려나 벤치 신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는 그라운드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뛰고 싶었다. 그리고 팀으로부터 축구 선수로서 능력과 충성심을 인정받고 싶었다. 그렇게 간절하게 소망했다.
그는 불빛이 꺼지고 함성이 사라진 텅 빈 스타디움의 그 쓸쓸한 공허함을 알고 있다.
그는 선수들에게는 금지되어 있는 스포츠토토마저 시시해지자 베팅 규모가 훨씬 크고 다양한 경우 수로 따지는 사설 토토에 빠지게 되었고 그 당시 사채가 1억 원을 넘어서면서 악독 사채업자로부터 몹시 시달리고 있었다.
그는 그즈음 간헐적으로 두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정훈은 몇 달 전 오른쪽 새끼발가락 피부에 생긴 염증이 더욱 심해져서 결국 수술을 받았다. 새끼발가락에서 고름을 빼낸 후에는 매일 수십알씩 진통 소염제 계열 약을 삼키면서 발에 붕대를 감은 채 목발을 짚고 다녔다. 지금은 붕대를 풀고 재활치료를 받고 있었으니 몇 달째 연습도 못하고 시합에 나갈 수도 없었다. 그는 청소년 대표를 거친 뛰어난 공격수로 국가대표 선수로 발탁될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나 그 무렵 그는 난생 처음 겪는 부상의 시련 때문에 몹시 의기소침해 있었다.
그는 그 시합에 나갈 수는 없었지만 김태현과 함께 선수 교섭에 나선 것이다. 특히 원톱으로 나서게 될 안정수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드시 끌어들이라는 특명을 김대성으로부터 받았다. 그들은 그 대가로 시합에 출전하지 않아도 출전 선수들과 똑같은 조건으로 배당을 받기로 한 것이다.
김태현은 이정훈과 몹시 친했다 (어떤 계기로 친해졌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김태현의 고교, 대학 선배인 김대성이 먼저 김태현에게 접근했고 김태현은 그와 친한 이정훈과 상의했으며, 오지랖이 넓은 이정훈이 그 솔깃한 제안을 개별적으로 몇몇 선수들에게 은밀하게 전달한 것이다.

박종윤은 나이는 어리지만 (벌써 23살이었으니까 어리다고만 할 수 없었지만) 언제나 기회주의자였다. 그는 처음에는 “형들이 하면 저도 같이 하겠습니다.” 라고 하였다. 그러자 이정훈이 말했다. “하게 되면 구체적으로 네가 할 일을 말해 줄 테니. 당분간 입조심해라. 무슨 말인지, 알겠지.” 그 후 박종윤은 자기는 빠지겠다고 말했다. 그 대신 사설 토토에 걸겠다고 하였다. 우리는 그걸 그가 전력 질주하지 않고 슬슬 뛰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실제 그날 시합에서 어슬렁거리면서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는데 자신한테 도대체 패스가 오지 않아 열심히 뛸 수 없었다고 진술했다.

김주봉은 이정훈이 처음 조심스럽게 승부조작 제의를 하였을 때 가볍게 씩 웃었다. 드디어 우리에게도 올 것이 왔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팀 분위기가 좋지 않다. 지금은 안 된다.”라고 단호히 말했다.

나는 그 제의를 받았을 때 매우 혼란스러웠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승부조작이 나에게도 제의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 시합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로 선발이건 교체선수이건 출전할 예정이었다. 나는 평소 스포츠는 승패를 떠나서 페어플레이 정신이 우선이고, 개인의 이익을 위해 승부조작 등 부정한 거래를 해서는 안 된다고 철썩같이 믿고있었다.
그러나 그 제의가 들어오자 다소 흥분했고 구미가 당긴 것도 사실이다. 사실 우리에게는 금지된 장난이라고 할 수 있는 매치게임, 스페셜 플러스 게임, 경기의 승무패의 조합을 하여 거는 프로토에 자주 베팅을 하고, 그것도 시시하면 베팅 한도가 큰 사설 스포츠토토까지 하였다.
그건 연습과 경기 외에는 오락이 거의 없는 우리에게 유일한 유흥거리였고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우리는 승부 예측에는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스포츠 도박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직접 그 경기에 참여해서 운명을 결정해버린다면 이 얼마나 통쾌한 일이 될 것인가. 하지만 나는 몹시 갈등을 느꼈다. 그랬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고 계속 애매한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피의자신문조서에 의하면 성명은 이순고, 나이는 24세, 직업은 프로축구 선수인) 나는 조사를 받으면서 검사에게 그 모든 시시콜콜한 일들까지 다 이야기해서 나를 억누르고 있던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싶었다.
나는 초조했고 겨울 셔츠 아래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나는 말들이 마구 튀어나올 때마다 해방감을 맛보았다.
“마산이 고향입니다. 아버지는 58세이고 지금 마산에서 개인택시를 하고 있습니다. 누나는 27세이고 전문대를 졸업하고 창원 공단에서 경리로 일하며 아직 미혼입니다. 저는 정당이나 사회단체에 가입한 사실이 없습니다. 종교는 없습니다. (그런 시시한 것들을 왜 시시콜콜 물어보는 걸까? 무슨 상관이 있다고……)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시작했어요. 공부를 싫어했거든요. 고등학교 때 패싸움에 말려들어 폭력전과가 한 번 있을 뿐입니다.
여자 친구와는 얼마 전에 헤어졌고 지금은 제 곁에 아무도 없습니다. 외롭습니다, 외로워요. (그 말을 하는 순간 그녀의 크고 빛나는 눈이 떠올랐다.)
2007년 캐나다에서 열린 청소년 월드컵의 50명 예비명단에 들어갔지만 막상 확정된 23명의 최종 명단에는 제 이름이 없었지요.
현재 팀에서 그때 그때 팀 사정에 따라 공격형 또는 수비형 미드필더이지요. 가끔 선발 또는 교체선수로 뛰고 있습니다. 아직 확실하게 자리를 잡지 못했거든요. 그 자리에는 아직 늙은 선배가 버티고 있습니다.
저는 장래가 매우 촉망되거나 아니거나, 그렇지요…… 뭐.
제가 직접 참여할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제외되었다면 크게 소외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들의 속닥임에서 따돌림 받는 것은 싫었거든요. 그랬으니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죄의식도 없었습니다. 시합에서 지고 이기는 일은 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습니다.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으니까요. 구미가 당긴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무서웠습니다, 무서웠다고요.
후반전 10분을 남기고 교체선수로 들어갔지만 공 한 번 제대로 차보지 못했습니다. 막상 경기장에 들어가자 승부조작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교체해서 들어갈 때 감독님의 지시 사항만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무조건 패스해라! 공을 잡으면 질질 끌면 안된다. 시간이 없다! 전진 패스를 하라고, 전진…….’
그날따라 몸이 말할 수 없이 무거웠습니다. 공이 저를 피해 다녔거든요. 저는 본능적으로 공을 쫓아갔습니다. 그래도 딱 한 번 찬스가 왔을 때 안정수가 문전으로 쇄도하는 것을 보고 5미터 쯤 앞쪽으로 길게 패스해서 어시스트를 했습니다. 나중에 감독님이 칭찬을 했었습니다. 패스가 좋았다고.
그러나 돈 한 푼 만져보지 못했고요. 펀드매니저 만날 때 따라간 것뿐이에요. 저는 그때 말 한마디 한 적 없었어요. 괜히 바지에 오줌만 저렸지요. 그저 그랬지요. 사실입니다, 사실이라고요. 믿어주세요. 저는 축구밖에 모릅니다.
명문 사립대를 졸업했지만 맨날 축구만 했으니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독서에 취미가 있어서 만화책을 가끔 읽어보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구요.
어떤 처벌도 달게 받겠습니다. 그러나 축구만은 계속하게 해주세요. 저에게는 축구가 생명이고 인생의 전부입니다.
검사님…… 검사님……. 용서해주십시오, 용서를……. 제가 잘못 했어요, 무조건 잘못……. 선처를 해주십시오, 선처를…….”
나는 조사가 끝났을 때 갑자기 목이 메었다. 아주 잠깐 동안이었지만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나는 일어서면서 나도 모르게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웅얼거렸다.
검사가 짧게 말했다.
“재판 잘 받으라고.”

김대성은 축구 명문고인 ○○공고를 졸업했고 청소년 대표에 선발된 적이 있으며 역시 축구 명문대인 ○○대 체육학과를 졸업했고 잠깐 국가대표 선수로 선발되긴 했지만 벤치 멤버에 불과해서 한 번도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그가 원했던 상무팀에는 그 당시 자리가 없었기 때문에 경찰청 축구단에서 군복무를 마쳤고 광주에서만 프로 선수 생활을 10년 넘게 하였다. 그는 양발을 능숙하게 사용하고 공중볼 능력도 좋은 정통 수비수였다. 그의 폭넓은 수비 능력과 거칠고 끈질긴 대인 방어능력은 한때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그가 아직 전성기 시절에는 코너킥과 프리킥을 대부분 전담했다.
그러나 30대 초반이 되어 고질적인 허리 부상에 시달리고 체력이 점점 쇠퇴하면서 교체 선수로 밀려났다.
그는 공격을 뒷받침하기 위해 위로 올라갔다가 볼을 빼앗기는 상황에서 수비에 가담하려고 제시간에 되돌아오는 것이 너무 버거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 무렵 그는 근육량을 늘리고 상대방 공격수를 겁주기 위해서는 콧수염이 무성해야 한다고 하면서 공공연히 금지 약물인 스테로이드 계열의 메틸테스토스테론을 복용했다. 그러나 콧수염이 무성하게 자라지도 않았고 상대 공격수를 잘 막아내지도 못했다. 이미 체력적으로 한물간 선수를 그 약물인들 구해낼 수 없었다.
그 무렵 구단 프런트에서 전화가 왔다.
“대성아, 다른 팀을 알아보는 게……. 윗선에서 방출하기로 결정했으니까. 감독이 어쩔 수 없이 사인을 했다고……”
그가 팀을 떠나고 나자 락커의 분위기가 몰라보게 편안하게 바뀌면서 선수들 사이에서 안도감이 돌았다. 그가 고참이고 거칠었기 때문에 순진한 어린 선수들을 꼼짝 못하게 휘어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 그를 원해서 연락을 해오는 구단은 없었으니 몇 년간은 무직 생활을 했다.
그는 그 무렵 마누라와는 합의 이혼하였고. 2명의 자식들에게 월 200만 원의 양육수당을 지급해야 했다. 그랬으니 돈이 몹시 쪼들렸다. 계속적으로 고리의 사채를 얻어 사설 토토에 베팅을 하였으나 예상과는 달리 그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그때, 아는 선배의 주선으로 그는 프로 3부 리그 격인 내셔널리그 소속 어느 팀의 수비 전담 코치로 내정되어 있었으나, 그 당시 프로 선수들 (야구나 축구, 농구와 배구 등을 포함해서)을 상대로 불법적인 스포츠 도박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은근히 협박해서 돈을 뜯어내려고 시도했다는 혐의를 이미 받고 있었다.
축구의 경우 공격수가 교묘한 동작으로 일부러 골을 못 넣을 수는 있으나 계획대로 골을 넣기는 어렵다. 수비수는 상대편 공격수를 슬쩍 놓아줄 여지는 있고 골키퍼는 거의 반사적으로 골을 쳐내기 때문에 일부러 져주기가 쉽지 않다. 더욱이 골키퍼가 어설프게 실점하면 감독이나 코치가 의심을 하여 즉시 교체되며 다음 경기부터는 제외될 공산이 크다. 그러면 골키퍼의 생명은 끝장난다.
야구는 역시 투수 놀음이다. 그러니 투수가 유혹의 대상이 된다. 투수는 마음먹기에 따라 스트라이크와 볼의 조작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농구는 선수들의 패스, 슛, 반칙이 모두 활용될 수 있기 때문에 가장 유혹이 많다. 자유투 실패는 아주 손쉬운 방법이다. 배구의 경우 수비와 공격에서 언제든지 교묘하게 실수를 가장할 수 있다. 스카이 서브를 시도하는 척하면서 볼을 아웃시키거나 네트에다 처박을 수도 있다.
그는 같은 처지에 있는, 지금은 은퇴한 프로배구 선수 출신인 유○○, 프로농구 선수 출신인 박○○와 짜고 냄새가 나는 선수들을 상대로 무작정 전화와 문자 메시지로 협박을 하였다는 것이다.
“과거뿐만 아니라 최근까지 불법적으로 스포츠 도박을 한 사실을 알고 있다. 무조건 2,000만원을 송금해라. 그렇지 않으면 전부 폭로하겠다. 그러면 너의 선수 생명은 끝장나는 거다.” 또는 “나는 승부조작해서 몇 년을 꼬박 살고 나왔다. 감방에서 살았다는 말이다. 너도 들어가야지. 나만 들어간 건 억울하지 않느냐. 그렇지 않나? 내가 다 알고 있는데 말이야.”
그러나 모두 물의만 일으킨 채 미수로 끝났다는 것이다.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그들을 협박 혐의로 조사 중에 있었다.
김대성은 검찰에서 진술했다.
“저의 경우 정말 참작할만한 동기가 있었습니다. 검사님 그걸 알아주십시오. 김태현은 형편이 너무 어려웠습니다. 얼마 전에 그와 밥을 먹다가 알게 되었지요.
그때 태현이가 울먹이면서 털어놓았습니다. 그러면서 형이 좀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암 수술비와 약값이 없어서 몹시 힘들어했고, 사채업자로부터는 심한 협박을 받아서 살고 있던 집의 보증금 5,000만원까지 넘겨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선배의 입장에서 그를 돕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김대성과 김태현의 대질신문에서 진실이 드러났다.
김태현이 울먹이면서 진술한 것이다.
“제가 사채업자로부터 협박을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대성 형을 만났을 때 그걸 내색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갑상선 암으로 수술한 것도 사실이나 수술비나 약값은 보험금으로 충당했기 때문에 형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형은 ‘승부조작을 통한 사설 토토를 해서 나는 돈을 많이 벌었다. 너도 그걸 하면 돈을 벌 수 있다. 네 월급이 몇 푼 되느냐…….
출전수당과 승리수당이 나오지만 후보 선수인 너에게는 어림도 없는 일이지.’라고 말했기 때문에 제가 그 유혹에 어쩔 수 없이 빨려 들어간 것입니다.
이 사건 조사가 시
작성일:2023-10-28 12:02:26 175.209.21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