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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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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중원 대표 중편소설> 변호사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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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중원
등록일
2023-09-15 14:53:36
조회수
104
3. 전관예우, 반칙이고 범죄이다
위풍덕 전 판사가 어느 날, 우연히 어느 일간지의 특집 기사 ‘전관예우, 반칙이고 범죄이다.’를 읽게 되었는데 그 신문 기사 내용 중 그가 유심히 살펴본 부분을 요약해서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2019년 4월 24일자 동아일보 사회면 참조)
전관 변호사라고 다 똑같은 대우를 받는 건 아니다. 법원이나 검찰 등에서 공직을 지낼 때 어떤 직급까지 올라갔느냐에 따라 몸값에 차이가 난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들의 수임료는 보통 다른 변호사 수임료의 최대 수십 배에 달한다. 특히 사건 수임 상위 7명은 대부분 현재 대형 로펌에서 최상급 의전을 받고, 연봉을 10억 원 이상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이들은 이른바 제왕적 전관으로 불리며 전관예우 근절에 역행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래서 제왕적 전관들이 대법관 경력으로 수임계와 상고 이유서에 찍는 도장값만 받아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실제 변론에는 별로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변호사 사무실이 많은 서울 서초동 일대에서는 제왕적 전관들의 도장값이 보통 3000만~5000만 원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의 수임료가 비싼 이유는 상고 이유서에 이들의 이름이 들어가면 상고심 결과가 더 좋아질 것이라는 의뢰인의 기대 심리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뢰인들은 특히 상고심 실적이 많은 제왕적 전관들이 현직 대법관들과 가까워서 재판 결과가 좋게 나올 것으로 기대하며 더 많은 수임료를 낸다.
변호사와 로펌은 수임료 등 수입을 국세청에만 신고한다. 국세청은 그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다. 법률시장에서 가장 몸값이 높은 전관 변호사는 60, 70대 대법관이나 검찰총장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전관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에 있는 변호사들이다. 법조계에선 이들이 적어도 월평균 1억 원 이상을 번다고 한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월평균 3억2000만 원을 번 사실이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공개돼 논란이 된 적이 있다. 그 아래에는 법원장이나 고등법원 부장판사, 검사장 출신 변호사들이 있다. 이들의 월수입은 5000만∼1억 원 수준이다.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가 월평균 1억1000만 원을 번 사실이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드러나기도 했다.
지방법원 부장판사와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월평균 3500만 원 내외를 받는다. 40대이거나 50대 초반인 이들은 직접 발로 뛰고 변론에 참여하므로 대형 로펌들이 선호한다. 한 전관 변호사는 “심판을 해본 선수가 당연히 잘 뛸 수 있다. 고급 서비스를 받기 위해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어느 서비스업계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하지만 많은 일반 변호사들은 “실상 능력에 큰 차이가 없는데도 전관이라는 이유만으로 뻥튀기된 수임료나 연봉을 받고 있다”고 지적한다.
현직 대법관은 월 817만2800원을 받는다. 일반 법관은 근무 기간에 따라 월 311만100원 (1호봉)부터 월 816만800원 (17호봉)까지 받는다. 법복을 벗고 변호사 배지를 달면 대법관은 12배, 일반 법관은 10배 이상을 버는 셈이다. 전관 피라미드 맨 아래엔 로스쿨 출신 변호사, 일명 ‘로변’들이 있다.

신문을 꼼꼼히 읽고 나자 그의 머릿속이 복잡해지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두서없이 떠올랐다.
나는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왜 쓸데없이 인생을 허비하고 있는 거지. 빈둥거리며 노는 데도 지쳤지. 여기저기 여행 다니고 맛집에 가서 음식 맛보는 거 그거 한 번은 가능하지만 두 번 할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나는 법원을 떠난 후 방종한 생활을 한 것도 아니고 무슨 비밀스러운 삶을 살았던 것도 아니다. 보통 사람처럼 아주 평범하게 살았다. 내가 무엇을 원했던가? 바라는 게 거의 없었지 않은가. 흔히들 분수에 맞게 살라고 하지 않았던가. 분수라는 게 사람마다 다르긴 하지만 나는 분수에 맞게 살았다. 떠나는 뒷모습이 그 사람의 품격을 결정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던가. 죽으면 다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가.
그러면 판사 시절에는 무엇을 원했던가. 부나 권력이 아니었다. 판사가 부를 얻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고 사법 권력은 판사에게 어쩔 수 없이 따라오는 것에 불과했다. 솔직히 말한다면 내가 그 시절 간절히 목마르게 원했던 것은 사람들의 존경이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무의미한 것이었다. 누가 자신의 이해타산을 떠나서 일개 판사에게 순수하게 진심으로 존경을 표한단 말인가.
하지만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이 세상은 조금 과장하면 정글에 비유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적자생존의 사회에서 자신과 가족을 스스로 지켜야 하니까. 조금도 과장없이 생각한다면 물질적 풍요야말로 굴절 없이 인간의 품격을 지키면서 살아갈 수 있는 아름다운 삶의 필수적 요소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반평생 살았던 고향은 어디인가. 법조계 아닌가. 그래 그리로 돌아가야 하는 거야. 그럴만한 사정도 생겼지. 장남 녀석은 지금 온통 머릿속이 복잡한 채 고통을 겪고 있지 않은가. 벌써 나이가 40이 다 됐는데 그 좋은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것 아닌가. 그 녀석 말은 그랬다. 자신의 미래가 너무나 뻔하다는 것이다. 지금 부장인데 아주 잘 해야 상무로 올라갈 것이고 그다음은 예측이 도저히 불가능하니 언젠가는 회사에 사표를 내고 뭔가 자기 사업을 하겠다고 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아무리 조그마한 사업을 시작한다고 해도 필요한 자금을 스스로 마련할 수 있을런지 궁금한 일이었다.

그는 대학과 연수원 동기이고 판사생활을 함께 시작해서 비교적 친했던 홍상수 변호사와 만나 상의하기로 했다. 그들은 모처럼 거의 거의 이 년 만에 교대역 사거리 뒷골목에 있는 한적한 커피숍에서 만났던 것이다.
홍 변호사가 말했다.
“법원 떠난 후로는 이 근처는 얼씬도 안 했을 거 아냐? 영원히 떠나기로 했으니까…….”
위풍덕이 말했다.
“그래도 집이 서초동에 있으니까 법원 건물을 바라보긴 했다네. 그럴 때마다 법원에서 쌓은 세월의 무게를 절감할 수밖에 없었지.
내가 거기서 법원장을 했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더라고. 법원은 나를 잊어버렸고 그리워하지도 않는다네. 나 없이도 여전히 그럭저럭 잘 돌아갔어. 그러니까 서글프더라고…….”
“그래…… 아무도 기억하지 않지. 대체품이 넘쳐나니까. 그리고 세월은 어쩔 수가…… 모두가 변하는 거야.”
“별수 없지 않은가. 결국 변호사 개업을 해야만 될 것 같다. 지금 한 달 가까이 자기 자신과 싸우면서 엄청난 갈등을 겪고 있으니까 혼란스럽다네. 나라는 인간에 대해서 스스로 의심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맹자는 양혜왕 편에서 무항산이면 무항심이라고 했거든.”
“그럴 줄 알았다. 나는 네가 얼마나 견디나 지켜보기로 했었지. 의지가 말할 수 없이 강해서 감정과 이성을 엄격하게 분리하는 사람이니까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이군.
오해하지는 말게. 비난하는 게 아닐세…… 안타까웠거든.
그런 건 갈등이라고 할 수도 없어. 당연한 일을 가지고…… 신경과민일 뿐이야. 자네의 탁월한 능력을 썩히는 것은 아까운 일이야.
더 늦기 전에 결단을 내린 것은 잘한 일이지.
지금 빠르다고 할 수도 없지만 늦지도 않았어. 은퇴하고 나서 잠깐은 쉴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안된다고 보네.
100세 시대에 남은 인생을 어떻게 허비하고 살 수 있단 말인가.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하던 눈곱 티끌만큼도 신경 쓸 거 없네.”
“그렇게 말해주니까 정말 고맙네. 내가 자넬 만나기까지 며칠 동안 밤잠을 못 자고 고민을 했다는거 아닌가.
그게 말일세…… 그동안 시간이 없어서 못 읽었던 많은 책들을 눈이 짓무르도록 밤새 읽고,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또는 음악회에 가고, 골목길을 어슬렁거리며 산책을 하고, 자주 술을 마시지만 한계가 있었지.
여행 다니고 맛집을 순례하고 해도 딱 한 번뿐이었어.
매일 출근하고 퇴근하는 직업이란 게 얼마나 소중한지 알겠더라고. 처음에는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해방감을 느꼈지만 나중에는 처치 곤란할 정도로 시간이 남아도니까 점점 초조해지는 거야.”
“그렇지. 이제야 제대로 깨달았군. 내가 법원을 그만두고 나니까 아무 데도 소속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그렇게도 허전하더라고.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그럴수록 마땅한 직업이 필요하지.
이렇게 저렇게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는 일만 하다가 결국 죽을 수는 없는 거라네. 무슨 일이든 일을 해야만 하지. 취미만 가지고는 살 수 없는 거라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법률을 다루는 것밖에 더 있겠는가.
지금 생각하면 그게 천생연분이라는 생각이 들지.”
“그렇지…… 내가 너를 잘 알지. 취미랄 것도 없는 사람이지 않은가. 유유자적하면서 삶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아니란 말이지.
놀 줄 아는 사람이 노는 거야. 일이 가장 좋으니까 일에 푹 빠져 있었던 거야.”
“그래서 말이야…… 변호사를 개업해야겠는데 좀 지도 편달을 해주게나. 변호사를 개업한 지 벌써 십 년이 훨씬 넘었지 않은가.”
“그렇지 그렇다네. 모든 법조인은 종국에는 변호사가 되는 거지. 우리 모두는 여기로 돌아오지. 세월이 참 빠르지, 벌써…….
세월을 누가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요즘 변호사가 예전만은 못하다는 걸 알아야 해. 나는 좋은 시절에 할 만큼 했으니까 지금은 반쯤 은퇴해도 상관없다네. 이 세계도 세월이 흘렀으니까 좀 팍팍해졌지. 빈익빈 부익부야.
대형 로펌은 그럭저럭 굴러가고 개인 사무실은 말도 못 하게 어렵지. 대형 로펌에서 저인망식으로 사건을 싹 쓸어가고 있으니……”
“나는 좋은 로펌에서 오라고 하면 당장 달려가고 싶네만.”
“그런데 말이야. 로펌으로 가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네. 거기도 역시 조직체야. 조직에 들어가면 조직의 논리가 지배하지 않는가.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조직에 얽매일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그런데 고위 법관 출신이니…… 원래 실력 있는 법조인으로 소문이 나 있으니 조금도 걱정할 건 없다고 보지.
전관예우는 지금도 영향력이 막강하거든. 그 뿌리 깊은 악습이 어디 가겠나. 조금도 두려워하지 말고 개업하게.”
그가 조금 긴장해서 물었다. “그렇단 말인가? 구체적으로 좀 자세히 이야기해 줄 수 있겠는가.”
그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이건 한가한 석가의 설법이 아니야. 우리는 절대로 해탈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한다네. 그야말로 코앞에 펼쳐진 엄연한 현실이라고.
이왕이면 교대역 근처에다가 사무실을 얻게. 여기가 핵심 상권이야. 개인 사무실이라면 여기 이상은 없지.
우선 민사 사무장하고 형사 사무장을 잘 구하고 법원에 출입할 똑똑한 남자 직원 하나하고 사무실에서 자네 비서 노릇 겸 이러저러한 잡일을 할 여자 직원 한두 명을 두면 될 거야.
그러고 나서 사무실이 번성하면 혼자서 하기에는 버거울 테니 젊은 변호사를 데리고 있게.”
“젊은 변호사를 쉽게 구할 수가 있을까?”
“염려하지 말게. 대책 없이 로스쿨인가 뭔가를 도입해서 실업자만 양산한 꼴이라네. 공급과 수요가 일치하지 않는 거야.
걔들 똑똑하지만 갈 곳이 없으니 솔직히 말해서 얼마든지 구할 수가 있고말고. 그러면 세금을 줄일 수도 있다네.
무엇보다도 실제 쓰는 일은 걔한테 맡기고 자네는 이렇게 저렇게 지시만 하면 될 거야. 우리 나이에 소장이건 준비서면이건 직접 쓰는 건 피곤한 일이니까 정말 귀찮지.
그러니까 먼저 사무장을 구하고 나머지 일은 그 사람한테 맡기면 되는 거야. 사무장이라면 내가 마땅한 사람을 추천해줄 수도 있지.”
“정말 고맙네. 이제야 마음이 놓이는군.”
“명심하게 일단 개업을 하면 뭐니 뭐니 해도 돈이야. 눈 질끈 감고 돈을 벌게. 그러려면 그 알량한 체면이니 자존심 같은 거 쓸데없으니까 헌신짝처럼 내다 버리는 거지. 내던져 버려야 한단 말이지.
그러고 나서 돈을 쓰면서 풍족하게 사는 거야. 그런 게 아름다운 인생이지 않겠나. 이 말을 안 할 수는 없지…… 내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너무 놀라지는 말게. 오해하지도 말고. 현실이 그러니까 그대로 받아들이게.”
“나는 솔직한 말을 듣고 싶네. 누가 그런 말을 해줄 수 있을 것인가. 내가 원래 현실에 매우 둔감한 숙맥이었지 않나?”
“무슨 말이냐 하면 사실 사무장이란 게 바로 브로커야.
걔들 없으면 개인 사무실은 돌아갈 수 없지. 이제는 필요악이 돼버렸어. 걔들이 변호사를 선전하면서 사건을 물고 와야만 하지.
그런데 걔들도 전관을 선호한다네. 그럴 거 아닌가. 그래야만 자신들도 당사자들에게 권위가 서니까. 뭐…… 우리 영감님은…… 법원 고위직 출신이어서 전관예우를 받는다고 열심히 떠들고 다니는 거야. 그러면 30프로를 떼주는 게 거의 공식이지. 그렇지 않으면 바로 떠나버리거든.”
“여러가지로 고맙군. 자네 말을 명심하겠네. 그런데…… 내가 변호사 개업을 하는 문제에 몰두하다 보니까 자네 안부에 대해서 묻지도 못했군. 미안하네.”
“나야 뭐 그렇고 그렇지…… 새삼스럽게.”
“갑자기 상처한지가 5년이나 지났으니…… 지금쯤 정신적 고통은 많이 완화되었을 거 아닌가?”
“그렇다네. 세월이 약이더라고. 모든 게 희미해져 버렸지. 인생이란 게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그뿐이더라고.”
“암이란 게 참으로 알 수 없는 거야?”
“그렇긴 하지. 그렇게 건강했었는데…….”
“재혼이랄까…… 아니면 사귀는 여자가 있어야 할 거 아닌가?
자식들은 다 결혼해서 출가했으니까.”
“재혼을 생각해본 건 사실이야…… 이것저것 따져보니 그게 보통 일이 아니더군. 자식들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였어.
아주 곤란한 일이야. 그래서 포기했었지.
그렇다고 여자가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야. 여자란 도망가면 쫓아오는 법이라네. 그렇다고 깊이는 안 사귀지. 나중에 귀찮아지는 건 싫으니까…….”
“네 수법을 잘 알고 있지. 언제나 여자 쪽에서 먼저 자기를 버리도록 일을 꾸미는 거야. 그러면 자기가 여자를 버렸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겠지.”
“숙맥인 줄만 알았더니…….”
홍 변호사는 잠시 뜸을 들이고 나서 불편하게 숨죽이듯 작게 웃었다. 그는 다시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그는 개업 광고도 개업식도 하지 않고 조용히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자 입소문을 타면서 사건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실력 있는 변호사라는 입소문과 전관예우와 유능한 사무장의 활약까지 겹쳐서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몰려들었다.
처음에는 너무 신기해서 어리둥절했다. 그렇지만 곧 익숙해지고 돈이 정신없이 많이 들어오자 안도할 수 있었다. 당초 개업할 때는 과연 고객이 있을지 그래서 사무실을 유지할 수나 있을런지 잠을 못 자고 걱정을 했던 것이다.
그는 정신적으로 안정감과 평온을 되찾았고 그의 얼굴에는 겉으로 보이지 않는 은근한 미소가 넘쳐흘렀다. 그리고 마침내 전관예우의 실상을 체감하였다.
고객들은 말했다. “변호사님께서는 얼마 전까지 법원에 계셨으니…… 법원에서 고위 법관까지 지냈으니 믿을 수 있는 분은 변호사님밖에 없습니다. 상대방은 유명한 로펌을 선임한다고 합니다. 꼭 좀 승소해주십시오. 저는 너무 억울하지요.”
그러면 승소하고 싶은 의욕이 넘쳐나면서 투지에 불탔다. 그는 변호사 개업을 하자 일 중독에 걸린 사람 특유의 밤늦게까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되살아났다. 일이 계속 몰려드니까 심장이 유쾌하게 고동치기 시작했다.
그는 이제 오로지 승소하기 위해서 사건에 집착했다. 상대방의 허점을 절대 놓치지 않았다. 당사자를 불러서 이것저것 오랫동안 대화를 했다. 서류에서 사소해 보이는 부분까지 끝까지 파고들면서 검토했다. 그런 부분에서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승소율은 탁월했다. 그게 소문나면서 사건이 몰린 것이다. 업무가 과중했기 때문에 두 명의 로스쿨 출신 변호사를 고용했다. 하지만 그들은 너무 미덥지 못해서 옛날 배석들을 연상시켰고 미심쩍었다. 그래서 일일이 법적 논점을 지적해서 주지시키고 작은 사건의 경우에만 법정에 출석시켰다. 그리고 법률 문서는 자신이 밤늦게까지 남아 직접 썼다. 그럴 때는 기분 좋은 피로감이 온몸을 감쌌다.
그 무렵 홍 변호사가 했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 그는 그의 말들을 무슨 계명처럼 마음속에 새기고 있었다.
“사건을 맡으면서 이것저것 따지지 말게. 특히 승소할 수 있는지 여부는 따지지 말란 말이야. 판사하고 변호사는 그 직업적 성격에 있어서 엄청난 차이가 있지. 신이 아닌 인간이 어떻게 그걸 함부로 알 수 있겠나. 소송을 진행하다 보면 전혀 뜻밖의 사실이 밝혀지기도 하지. 그러니까 섣불리 승소니 패소니 판단하지 말고 무조건 맡으란 말이야.
그리고 돈을 남들이 받는 만큼 제대로 받으라고. 당사자 입장을 고려해서 적게 받는다고 좋은 게 아니라는 거지. 그래봤자 당사자는 고마운 줄도 모른다니까.
판사 시절의 고리타분한 관념은 완전히 버리게. 판사의 입장과 변호사의 입장은 현저히 다르지.
내가 부장판사를 그만두고 개업하고 나니까 그걸 피부로 느끼게 되더라고. 그때 나도 법원을 떠나는 걸 무척 고민을 했었지. 그때는 정년퇴직하는 법관이 드문 일이었어. 정년까지 가는 거 그거 쉬운 일이 아니거든. 대개 조바심을 내고 중간에 그만두고 개업을 하지 않은가. 애들 키우고 아파트 늘리려면 많은 돈이 필요하니까.
검찰이건 법원이건 부장이 퇴임의 기준이 되는 거지.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판사는 변호사가 제출한 것을 비교해가면서 판단만 잘 하면 되지만 변호사는 스스로 사실과 진실을 찾아내 법률이론을 적용해서 제출해야 되거든.
그리고 당사자들한테는 가타부타 미리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네. 요즈음 일부 클라이언트는 이것저것 따지며 말할 수 없이 까다롭게 굴거든. 그래서 무조건 ‘그저 열심히 하겠습니다’ 라고 말하면 되는 거야. 이게 변호사업계의 규칙이야.”
그는 삼년째가 되자 시쳇말로 돈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그가 번 돈은 전부 아내의 통장으로 들어갔고 그가 누린 사치라고는 평소에 그렇게 가지고 싶어 했던 몽블랑 만년필 한 세트를 산 것이다. 몽블랑은 펜에 영혼을 담았다. 진귀한 예술 작품과 같으며 사용자의 취향과 개성을 보여준다.
몽블랑 아틀리에 디자이너와 숙련된 장인들은 대담한 창의성과 뛰어난 기술을 발휘해 독창적인 제품을 선보인다. 그리고 날렵한 고급 시계를 샀다. 몽블랑 타임워커 컬렉션 중 하나인 ‘랠리 타이머 카운터’이다. 디자인부터 기능까지 모터 레이싱 세계에 뿌리를 두고 탄생한 시계다. 디자인 측면으로는 모터 스포츠를 연상시키는 디테일들을 사용했고, 기능적으로는 읽기 편하게 디자인한 크로노그래프를 담아 쉽게 시간을 측정할 수 있도록 했다.


4. 달에 홀린 피에로 Pierrot Lunaire
그는 지난 20년 동안 살았던 서초동의 35평 아파트가 너무나 좁고 답답하였다. 우선 아내가 심하게 졸라댔다. 이제 그만 이사갑시다. 돈도 많이 있는데 언제까지 이런 좁고 낡은 아파트에 살아야 되나요. 걔들이 자기 애들 데리고 놀러 오지 않겠어요. 아파트가 너무 비좁으니까 편히 쉴 수가 없는 거에요. 이제는 정말 지겨워요. 남들 보라구요…… 얼마나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는지 아세요?
당신은 정원이 있고 진돗개를 키울 수 있는 단독주택이 평생 소원이었잖아요. 그래야만 당신이 그렇게 좋아하는 음악을 마음껏 들을 수 있어요. 아파트에서는 층간소음 때문에 윗집, 아랫집 눈치 보여서 제대로 볼륨을 맞춰서 들을 수도 없어요. 그리고 저 많은 책들은 어쩌구요. 아마 조만간 아파트가 무너져 내릴 거에요. 무려 4,000권이 된다구요. 이 모두를 해결하려면 단독주택으로 이사가는 수밖에 없어요. 아파트는 안된다구요.
그래서 오랫동안 꿈꿔왔던 넓은 단독주택을 사서 평창동 언덕배기로 이사했다.
그 집은 주택가 너머로 북한산 산자락이 손에 잡힐 듯이 내다보였다. 대지가 무려 180평이나 되었다. 완전히 리모델링을 하고 정원도 새로 단장하였다. 넓은 정원에는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꽃과 정원수를 가꾸고 담장에는 넝쿨 장미가 어우러져 5월이면 화려한 붉은 장미꽃이 만발하였다. 정원 여기저기에는 역신이나 잡귀를 막고 복을 가져다주는 벅수, 돌솟대, 동자석, 금강역사상 등이 서 있다. 돌이란 꾸밈이 없고, 사심이 없으며, 솔직하고 뽐내지 않아서 좋다. 진도에 직접 주문해서 데리고 온 암놈 진돗개 두 마리가 정원을 발발거리며 돌아다녔다.
연한 주황색 벽돌집의 창문은 크고 고풍스러웠다. 검은빛이 도는 짙은 청색의 강철로 테두리를 둘렀기 때문에 독창적으로 보였다.
지하가 55평, 일 층이 55평, 이 층이 35평이었다. 집안의 가구는 이태리에서 직접 수입한 것이었다. 지하에는 그의 서재 겸 음악 감상실을 꾸몄다. 그래서 지하에는 3,000여 장에 달하는 LP판과 4,000여 권의 책이 책장에 가지런히 꽂혀있다. 그리고 옛날 아파트에 있던 너무 낡아빠진 진공관 앰프를 자디스 (Jadis Orchestra SE)로 바꿨고, 스피커는 영국제 탄노이 Westminster Royal GR로 교체하였다. 그 넓은 방에는 그가 판사 초임 시절 찍은 법복을 입고 안경을 벗은 사진이 검은 테 액자에 담겨 걸려있었다.
일 층은 넓은 거실과 현대식 부엌, 안방 등이 있는데 아내의 영역이었고 이 층에는 그의 침실 두 개와 한쪽 벽에 펠릭스 발로통의 그림 ‘흰 여자와 검은 여자’의 복제화가 걸려있는 홈 바 겸 휴게실이 있었다.
홈 바에는 오리 머리 모양으로 디자인한 아스프리의 병따개, 홈 바에 필수적인 와인 오프너, 화려한 별 모양 커팅이 돋보이는 크리스털 셰이커, 스테인리스 스틸과 황동의 조화가 멋스러운 쟁반, 블로잉 기법으로 제작한 톰 딕슨의 디켄더, 바닥에서 림으로 이어진 완만한 곡선과 앙증맞은 손잡이가 매력적인 아이스 버킷, 은제 주전자, 컵 받침대, 술이 반쯤 든 또는 아직 병마개를 따지 않은 여러 종류의 술병들, 모든 종류의 글라스들, 동양식 술잔들, 진즉 시들어버린 꽃이 들어있는 꽃병, 아프리카 대륙의 작은 조각상, 짙은 초콜릿색을 띠는 목재와 황토색 가죽 시트가 조화를 이룬 암체어 등 소품이 가득했다. 그는 주로 셰이커에 내용물을 넣고 강하게 섞어 만드는 셰이킹 칵테일을 즐겼다.

그는 그 무렵 자신이 얼마나 운이 좋은지 곱씹어 봤다.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나인스 게이트’는 유서 깊은 레스토랑이다. 현존하는 국내 최고 양식당이다. 1924년 문 연 팜코트 시절까지 합쳐 올해로 아흔세 살 된 레스토랑이다. 에그 베네딕트, 시저 샐러드, 타르타르 스테이크, 프라임립 등 수많은 서양 요리를 국내 처음 소개하고, 달팽이요리를 유행시키며 정, 재계와 문화계 인사들에게 사랑받아왔다. 팜코트는 1970년 나인스 게이트로 다시 태어났다. 그는 이곳을 단골 식당으로 하여 자주 드나들게 되었다. 몇몇 친구들을 이곳으로 불러 함께 식사를 하고 술을 마셨다.
그는 그 무렵 고급 와인과 양주를 주로 마셨다.
화이트 와인의 대표적인 품종인 소비뇽 블랑은 특유의 톡 쏘는 맛을 지녔다. 싱그러운 느낌과 풀 향기가 강하다. 상큼한 느낌과 맛 때문에 주로 봄과 여름에 잘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는다. 밸런스가 좋고 복합적인 시트러스 향과 민트의 짜릿한 향이 느껴지기 때문에 봄의 와인이라고 평가했다. 오이스터 베이를 비롯해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의 품질은 지금은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다. 색깔과 투명도를 살피고, 잔에 코를 넣어 향을 맡고, 잔을 흔들어준다. 산소가 들어가야 맛과 향이 배가된다. 와인을 입안에 머금고 당도와 산도 그리고 질감을 음미하며 삼킬 때 목구멍과 식도에 전달되는 뒷맛을 가늠해 보면 뒤로 갈수록 진하고 강하고 깊어졌다.
그는 샴페인과 어울리는 요리로 양고기 구이와 함께 살짝 익힌 붉은 고추를 좋아한다. 입안의 매운맛은 술맛을 잠식하게 되는데 고추에 열을 가하면 매운맛이 줄어들면서 부드러워지기 때문이다.
피노 누아 (Pinot Noir)는 몬터레이에서 생산된 카멜로드 몬터레이 피노 누아가 유명하다. 피노는 껍질이 얇아서 습도와 열에 아주 민감하다. 이곳 피노가 유명한 것은 태평양에서 부는 밤바람이 포도알을 식혀주기 때문이다. 포도 수확은 9~11월에 하는데 열매는 작지만 밀도가 높아 단단하고 묵직하다.
포도는 지하 10m 아래까지 뿌리를 뻗어 수분과 영양분을 먹고 자란다. 그만큼 토질이 중요하다. 서늘한 기후대를 좋아하는 피노 누아는 섬세하고 예민해 재배가 어려운 품종이다. 놀랍고도 복잡한 풍미를 낸다. 뒷맛은 깔끔하다. 피노는 드라이하고 부드러운 질감에 꽃향이 난다.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위스키 중 가장 높은 피트 수치를 자랑하는 알코올 농도가 64%에 육박하는 ‘옥토모어 6.3 아일라 발리’. ‘발렌타인 파이니스트’는 200ml의 작은 용량이라 부담 없이 휴대할 수 있다. 그래서 캠핑이나 피크닉 등 야외 활동을 하며 마시기에 적합하다. 스코틀랜드 아일레이 섬의 보리만을 사용해 증류한 ‘브룩라디 스코티시 발리’는 프리미엄 아메리칸 오크통에서 숙성해 더욱 풍부한 오크 향을 느낄 수 있다. ‘왕을 위한 위스키’라 불릴 정도로 위스키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는 퍼지 초콜릿과 오렌지 맛이 어우러진 ‘더 글렌리벳 18년’. 조니워커 라인업 중 가장 스모키한 맛을 자랑하는 ‘조니워커 더블블랙’. 그것은 커다란 얼음을 넣고 온더록스로 마실 때 최고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영국 왕의 왕관에 장식하는 루비, 에메랄드, 사파이어 3가지 색의 보틀로 출시되는 ‘로얄 살루트 21년’.
그는 고급시계를 사들였다.
피아제 (Piaget) 알티 플라노. 그의 아내를 위해서는 여성 시계의 상징적 모델인 예거 르쿨트르 (Jaeger-Lecoultre). 바쉐론 콘스탄틴 (Vacheron Constantin). 오데마 피게 (Audemars Piguet). 로저드뷔 (Roger Dubuis).
자동차는 낡은 구식 소나타를 버리고 최신형 외제차를 새로 구입했다. 패밀리 SUV의 대표 주자인 레인지로버 올 뉴 디스커버리. 그것은 빼어난 주행 능력, 극대화된 실용성, 더욱 세련된 내, 외관 디자인 등 갖가지 매력을 덧댄 5세대 모델이다. 그리고 BMW, New M760Li x Drive는 V형 12기통 엔진을 장착한 최상위 모델로 7시리즈의 40년 역사상 가장 강력한 성능을 갖췄다. 안락한 승차감뿐 아니라 드라이브의 즐거움도 놓치지 않는다. 6.6리터 V12엔진을 장착해 최고 출력 609마력, 최대 토크 81.6kg.m의 힘을 발휘한다.
그는 매일 아침마다 고급 향수들을 사용했다.
신선한 유자와 차조기잎으로 시작하는 싱그러운 향기가 은방울꽃과 우드 향을 만나 고급스러운 잔향을 남기는, 발렌시아가의 파리 레디션 메르 오 드 퍼퓸. 라임과 쿨 민트, 블랙 커런트가 청량함을 선사하고, 미모사 블로섬이 풍성한 부드러움을 안겨주며, 머스크가 휴식을 상상하게 하면서 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가 선사하는 평온함을 향기로 느껴볼 수 있는, 메종 프란시스 커정의 아쿠아 셀레스티아. 한낮의 태양과 시원한 바닷바람이 맞닿은 향기를 만들고자 부드러운 샌들우드와 상쾌한 재스민 노트를 섞어놓은, 캘빈 클라인의 이터너티 썸머 포 맨.
그의 아내는 제일 먼저 핸드백부터 챙겼다. GG 마몽 핸드백 라인은 고전적인 느낌을 물씬 자아내는 골드 브라스 소재 GG 잠금장치 장식과 브랜드 고유의 셰브론 가죽 패턴, 하트 모양 퀄팅(솜을 넣고 박음질해서 무늬와 입체감을 두드러지게 하는 기법)이 특징이다. 우아하면서도 여성미가 넘치는 이 백은 탈착 가능한 브라스 체인 숄더 스트랩과 블루, 레드, 화이트 스트라이프 숄더 스트랩이 함께 제공되어 다양한 스타일로 연출한다. 또한 가방 사이즈가 넉넉해서 내부 수납공간이 여유로워서 실용성이 높다. 그리고 까르띠에의 희소성 높은 프레셔스 스톤과 다양한 빛깔의 파인 스톤을 조합한 독창적인 하이 주얼리 컬렉션을 수집했다.

그는 여름과 겨울 휴가철이면 주로 일본으로 여행을 갔다.
좋은 사케의 조건은 세 가지이다. 좋은 쌀과 미네랄이 적은 연수, 솜씨 좋은 양조장인이다. 사케는 찐쌀에 물을 넣고 누룩과 효모를 첨가해 당화와 발효 두 과정을 동시에 진행시켜 얻는다. 그런 뒤 고운 천에 담아 짜내는데 요즘은 압착기를 사용한다. 하지만 옛날엔 커다란 나무통에 쌓은 뒤 무거운 돌로 눌러 짜냈다. 개항장 고베의 나다 지역에는 ‘고고’라고 불리는 다섯 마을이 10킬로미터가량 늘어서 있는데 유명 양조장의 집합소이다.
나다는 겟케이칸이란 술로 대표되는 교토의 후시마와 쌍벽을 이루는 간사이 사케의 명소이다. 나다의 양조용 물 미야미즈는 후시미의 물과 다르다. 미네랄이 많이 함유된 경수다. 그래서 술맛이 강하다. 그걸 나다는 극복했다. 쌀의 발아는 가볍게 하고 알코올 발효 역시 짧고 격렬하게 유도해 드라이하면서 거칠고 강하며 단단한 남성다운 맛을 찾아냈다.
겨울 홋카이도를 찾는 진짜 이유는 온천과 숙박이 결합된 전통 여관 ‘료칸’에서 푹 쉬다 오기 위해서다. 유황 온천이 유명한 노보리베쓰에는 대형 료칸 호텔이 즐비하다.
그는 태평양이 끝없이 펼쳐진 해안가 절벽 위 료칸 리조트에 여장을 풀었다. 일본인 특유의 극진한 친절과 함께 다과와 말차를 대접받는다. 노천탕에서 태평양과 마주 보며 목욕했다. 뜨거운 온천수에 몸을 담그면 마음까지 훈훈해진다. 차가운 바닷바람이 얼굴을 스칠 때마다 아늑함에 나른해진다. 온천욕을 끝내면 일본 전통 코스 요리인 ‘가이세키’를 맛볼 시간이다. 광어, 대구, 연어, 방어 등 각종 생선 요리부터 소고기와 계란을 이용한 샤부샤부, 갓 도정한 흰쌀밥 등이 차례로 상에 올랐다. 파도 소리를 들으며 히노키탕의 편백나무 향을 음미하면서 온천에 몸을 담근 후 맛보는 홋카이도의 산해진미라고 할 수 있다.

위풍덕 변호사는 순풍에 돛단 듯이 가정이건 사무실 운영이건 간에 아무런 부족함이 없었으니 그의 인생은 아름답고 풍요로웠다. 더욱이 그는 겉으로 보면 매우 건강하고 더 이상 부족한 게 없었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인간. 그래서 모든 환상이 충족된 낙원이었을까? 하지만 보통 사람의 입장에서 모든 조건을 살펴보았을 때 그 당시 그는 무척 행복해야 했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정체를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그가 성취한 물질적 성공이나 일상적 행복이 순전히 잠정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허탈감 때문인지, 인생은 결국 일장춘몽이라는 오래전부터 품어온 생각 때문인지, 점점 늙어가는 나이 탓인지도 모르겠지만 뭔가 공허했고, 불안했고 강박 관념에 시달렸다.
공자님은 노년에는 물욕을 경계해야만 한다고 했는데, 인생은 왕복 차표를 발행하지 않고 한 번 떠나면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없는데, 내가 그렇게 경계했던 세속에 깊이 물들면서 참으로 교활한 인간으로 변해가고 있지 않은가, 내 인생은 점점 추락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괴로워했다.
겨울의 하루는 매우 짧아서 벌써 어둠이 내렸다. 밤이 깊어지자 북한산 산자락의 정경은 어둠에 묻혀서 아련하다. 그는 생각에 잠겨 짙은 어둠이 쏟아져 내리는 창밖을 줄곧 응시했다.
두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이 좀처럼 멎지를 않는다.
그 무렵에는 심각한 불면증을 겪고 있었다. 그의 마음을 치유해주는, 13이라는 숫자는 매우 불길하다는 미신을 철저히 믿고 있어서 12음 음악을 창안했던 아르놀트 쇤베르크의 무조 (無調)시절 후기 음악을 듣는 것만이 삶의 유일한 낙이었다. ‘달에 홀린 피에로 Pierrot Lunaire’를 들으면 옛날 순천지원에서 근무할 당시 가깝게 알고 지내던 자유로운 정신을 지닌 현대 여성이었던 그녀의 안부가 불현듯 궁금해진다.
동천 하구 갈대밭에 하염없이 앉아서 그녀가 손을 쓰다듬거나 그가 머리카락을 쓰다듬은 기억은 언제나 도저히 잊을 수가 없다. 그는 그때 젊은 날의 청춘이었고 도저히 물리칠 수 없는 강렬한 본능적 욕망을 가지고 있던 시절이었다.
그는 만취하도록 그 독한 옥토모어 술을 스트레이트로 몇 잔이나 연거푸 입안에 재빨리 털어 넣었고 그대로 바닥에 널브러져 잠이 들었지만 가수면 상태에서 온갖 뒤숭숭한 꿈을 꾸었다.
작성일:2023-09-15 14:53:36 175.209.21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