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연 이화여대 로스쿨 교수
김정연 이화여대 로스쿨 교수

I. 서문

2023년에도 이론적으로나 실무적으로나 주목할만한 회사법 분야의 판결들이 여러 건 선고되었다. 특히 회사법 학자들은 그간 금과옥조처럼 여겨지던 주주평등의 원칙을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 일련의 판결들에 특히 관심을 가졌다. 주주평등의 원칙은 이를 성문법으로 인정하는 독일이나 일본과 달리 판례 법리를 통하여 발전되어 왔는데, 판례는 이를 강행법규로서 보아 주주평등의 원칙을 위반하는 계약 내용은 무효로 취급하였고, 실무에서는 판례의 경직적 태도에 대한 비판을 꾸준히 제기하였다. 2023년 7월 주주평등의 원칙 관련 모두 네 건의 관련 판결들이 선고되었는데, 실무상으로도 벤처기업 등에서 널리 활용되는 특정 주주와 회사간 계약의 유효성에 관련된 중요한 기준을 제시했다는 평가가 있다.

II. 주요 판결 해설

1. 주주평등의 원칙에 관련된 판결들

가. 대법원 2023. 7. 13. 선고

2021다293213 판결 (틸론 사건)

(1) 사실관계

원고는 피고회사(주식회사 틸론)의 상환전환우선주식을 인수하여 5.27% 지분을 보유한 주주이다. 원고는 주식을 인수하면서, (i) 주요경영사항 발생시 피고회사가 원고에게 사전통지하고 동의를 받고, (ii) 피고회사의 약정위반시 인수 주식의 조기상환청구 및 손해배상이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의 계약(이하 ‘이 사건 계약’)을 피고회사와 체결하였다. 피고회사는 이후 두 차례의 유상증자를 하였는데 원고에게 통지하거나 동의를 받지 않았다. 원고는 피고회사 및 그 대주주 겸 대표이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였다.

(2) 판시사항

원심(서울고등법원 2021. 10. 28. 선고 2020나2049059 판결)은 이 사건 계약은 주주평등의 원칙에 위반하여 무효인 것이라고 하면서, 피고회사의 통지의무 위반이 경미한 내용에 불과하다고 보아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대법원은 이 사건 계약은 주주간 차별 취급을 정당화할만한 특수한 사정이 인정되기 때문에 무효라고 볼 수 없다고 하면서 원심을 파기하였다. 이 사건 계약상 주주간 차별 취급을 정당화하는 사정으로는, △ 이 사건 계약 체결은 주주 전체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하고, △ 상법상 소수주주권 제도에 비추어 원고에게 지배주주나 경영진의 감시권한을 부여한다고 해서 다른 주주에게 실질적 손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고, △ 손실보전 약정과 달리 감시권한의 부여는 다른 주주에게 불이익을 발생시키지 않으며, △ 어차피 이사회 결의사항인 신주발행 관련 사전동의권은 주총 결의와 무관하여 다른 주주의 의결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점 등이 거론되었다.

나. 대법원 2023. 7. 13. 선고

2023다210670 판결 (우레아텍 사건)

(1) 사실관계

원고 기술보증기금은 피고회사의 상환전환우선주를 인수하여 약 5%의 지분을 보유한 지주이다. 원고는 위 주식을 인수하면서 (i) 피고회사의 회생절차 개시신청시 원고의 사전동의를 받고, (ii) 피고회사의 약정위반시 원고는 최고 후 2주일 내에 시정조치가 없으면 투자계약을 해지할 권리가 있고, (iii) 피고회사는 위 기간내 소명 및 시정을 못하면 손해배상 책임을 진다는 내용의 계약을 피고회사와 체결하였다(이하 ‘이 사건 계약’). 피고회사는 원고의 동의 없이 회생절차 개시신청을 하였고, 이후에도 피고회사의 소명 및 시정조치는 없었다. 원고는 피고회사를 상대로 이 사건 약정에 따른 회생채권의 존재를 주장하였다.

(2) 판시사항

원심(부산고등법원 2023. 1. 12. 선고 2022나52536 판결)은 이 사건 약정이 채무자회생법 제146조, 제217조 및 상법 제345조(배당가능이익 없는 상환주식 상환), 그리고 주주평등의 원칙에 위반하여 무효라는 피고의 주장을 받아들여 원고 청구를 기각하였다.

대법원은 이 사건 계약에서 원고의 사전동의권 인정한 것이나 피고회사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것 모두 주주평등의 원칙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보아 원심을 파기하였다. 대법원은 이 사건 계약이 일부 주주에게 우월한 권리를 부여한 것은 맞지만, 그것이 주주와 회사 전체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에 차등적 취급을 정당화 할 수 있는 사정이 인정되고 따라서 이를 주주평등의 원칙을 위반하여 무효인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사건 계약상 주주간 차별취급을 정당화하는 사정은, 위 ‘틸론 사건’과 유사하게, △ 원고가 상법상 각종 소수주주권이 인정되는 비율인 3%를 초과하는 지분을 보유한 점, △ 원고가 납입한 주식인수 대금이 피고 회사의 유동성 확보에 기여한 점, △ 어차피 이사회 결의사항인 회생절차 개시 신청 관련 사전 동의권은 주총 결의와 무관하여 다른 주주의 의결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점, △ 회생절차 개시신청 관련 2주간 소명 및 시정조치 등 내용은 신중한 경영판단을 통해 회사의 이익을 증진시킬 수 있는 점, △ 약정위반 시 자동적 금전반환이 아니므로 투하자본 회수 절대적 보장이 아닌 점 등이 거론되었다.

계약에 주주간 차별하는 내용 포함… 손해배상청구소송 제기
대법원, ‘주주평등의 원칙’ 등에 따른 계약 유무효 판단 내놔

다. 대법원 2023. 7. 13. 선고

2022다224986 판결 (비욘드아이 사건)

(1) 사실관계

원고들은 소외 주식회사 비욘드아이(이하 ‘소외 회사’)의 상환전환우선주에 투자한 주주들인데, 주식인수시 소외 B 회사 및 그 대주주겸 대표이사인 피고와 (i) 주식인수인의 서면동의 없이 회생절차 개시신청 또는 회생절차를 개시하면 안되고, (ii) 그러한 경우 소외 회사와 피고가 연대하여 주식인수인에게 위약벌로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하였다(이하 ‘이 사건 계약’). 이후 다른 주주의 신청에 의하여 소외 회사의 회생절차가 개시되었고, 원고들은 이 사건 계약에 따른 위약벌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

(2) 판시사항

원심(서울고등법원 2022. 2. 17. 선고 2021나2027391 판결)은 이 사건 계약에서 소외 회사 관련된 내용이 주주평등의 원칙을 위반하여 무효로 보고, 부종성의 원칙에 따라 이를 연대보증한 피고도 채무가 없다고 판단하였다.

대법원은 이 사건 계약에서, (i) 원고와 소외 회사에 관련된 내용은 주주평등의 원칙을 위반하여 무효로 보면서도, (ii) 원고와 피고 간에 체결한 합의의 내용은 소외 B 회사의 채무를 ‘보증’하는 성격이 아니고, 피고가 원고에 대하여 동일한 내용의 연대채무를 부담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이유로 원심을 파기하였다.

대법원은 원고와 소외 회사에 관련된 내용은 회사의 귀책사유와 무관하게 “단지 경영성과가 부진하여 다른 신청권자의 신청에 의해 회생절차가 개시된 경우에도 회사에 소정의 의무가 발생한다는 점에서” 회사가 원고들에게 투하자본 회수를 절대적으로 보장하고, 따라서 주주평등의 원칙을 위반하였다고 판단하였다. 방론으로는 이 사건 계약 내용은 배당 가능 이익이 없는 경우에도 회사 재산으로 출자를 환급해 주는 것으로서 “설령 피고 회사의 다른 주주 전원이 그 차등적 취급에 동의하였다고 하더라도” 주주평등의 원칙에 위반하기 때문에 무효라는 법리도 제시된 바 있다.

“주주와 회사 전체이익에 부합하고 필요하면 차등취급 허용”

주주 전원 동의했더라도 ‘주주평등의 원칙’ 위반시 계약무효

 

라. 2023. 7. 27. 선고

2022다290778 판결 (엔씨바이오텍 사건)

(1) 사실관계

원고들은 피고회사(주식회사 엔씨바이오텍)의 종류주식을 인수하면서, 피고회사 및 그 주주 겸 임직원인 피고 X, 피고 Y와 투자계약을 체결하였다(이하 ‘이 사건 계약’). 이 사건 계약에 따르면, (i) 피고회사는 정해진 기간까지 생산제품을 질병관리본부 및 조달 등록을 각각 완료하여야 하며, (ii) 기간 내 등록 불가시 이 사건 계약을 무효로 하고, 피고 회사 및 피고 X, 피고 Y의 책임으로 투자금 전액을 원고에게 반환하고, (iii) 피고회사 및 피고 X의 의무사항 위반시 위약벌로 투자원금의 1.5배를 청구할 수 있다. 이 사건 계약에서 정한 기간 내 등록을 완료하지 못했고, 원고들은 이 사건 계약에 따른 투자금 반환 청구소송을 제기하면서 예비적으로는 등록실패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위약금 지급 청구를 하였다.

(2) 판시사항

대법원은 이 사건 계약을 주주평등의 원칙 위반으로 무효라고 본 원심을 인용하였다. 원심(수원고등법원 2022. 10. 21. 선고 2022다11483 판결)은 설령 이 사건 계약에 대한 주주 전원의 동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투하자본의 회수를 전적으로 보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회사의 자본적 기초를 위태롭게 하여 회사와 주주의 이익을 해한다고 판단하였고, 대법원은 이를 그대로 인정한 것이다.

마. 평석

위 네 건의 판결들을 통해서 기억할 만한 쟁점들을 추리면 다음과 같다.

첫째, 특정 주주를 차별 취급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회사와 주주 간의 계약을 “주주평등의 위반이므로 무조건 무효다”라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재무 상태가 좋지 않은 회사에 자금을 유치해야 하는 경우나 트랙 레코드가 없는 벤처기업에서 투자를 유치하는 경우 등 신규 출자자에게 안전장치를 보장해 주는 내용의 계약을 모두 무효로 하는 것은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이미 학계에서는 주주평등의 원칙을 경직적으로 적용하는 판례의 태도를 비판하는 견해가 상당한 지지를 얻고 있었다. 최근까지도 대법원은 회사가 임원 1인 추천권을 보유하던 주주 겸 채권자에 대해 동 추천권을 포기하는 대가로 월 일정금을 지급하는 내용의 계약을 두고 ‘회사의 대출금 채무 변제 후’에는 주주평등 원칙을 위반한 것으로서 무효라고 판단한 바 있다(대법원 2018. 9. 13. 선고 2018다9920, 9937 판결). 이와 비교할 때 ‘차별취급을 정당화 할 수 있는 사정’이 있다면 주주평등의 원칙 예외가 인정될 수 있다는 2023년 대법원 판결례들은 실무정합적이고 유연한 태도로의 전환을 선언한 것으로 읽을 수 있다.

둘째, 차별취급을 정당화 할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회사와 주주 전체에 이익이 되는지, 다른 주주들에게 직접적인 손해를 끼치지 않는지, 다른 주주들의 의결권을 침해하는 것은 아닌지 등을 고려해야 한다. 틸론 사건, 우레아텍 사건등에서 차등적 취급을 허용할 수 있는지 여부는 그 밖에도 “회사의 상장 여부, 사업목적, 지배구조, 사업현황, 재무상태 등 제반 사정을 고려하여 일부 주주에게 우월적 권리나 이익을 부여하여 주주를 차등 취급하는 것이 주주와 회사 전체의 이익에 부합하는지를 따져서 정의와 형평의 관념에 비추어 신중하게 판단하여야 한다”고 설시하였다.

실무상으로는 회사와 주주간 투자 계약서 작성 시 대법원이 설시한 기준에 비추어 차별 취급을 정당화 할 수 있는 근거가 잘 반영되도록 할 필요가 있겠다.

셋째, 주주평등의 원칙의 유연한 적용을 선언하더라도, 특정 주주에게 투자금 환급을 보장하는 약정은 여전히 무효이다.

틸론 사건이나 우레아텍 사건에서는 추가 유상증자시 사전 동의, 회생절차 개시신청시 사전동의를 요구하는 등 이사회의 경영판단 사항에 관한 일종의 감시권한을 부여한 것이 투자계약 내용의 핵심이 되고, 그 계약상 의무 위반 여부에 따라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지가 각 사건의 주요쟁점이었다.

반면, 비욘드아이 사건이나 엔씨바이오텍 사건은 피투자회사가 투자계약상 의무를 위반하면, 그것이 회생절차 개시에 관한 것이건, 제품의 등록절차에 관한 것이건 주주들에게 출자금을 바로 환급해주도록 하는 것이 투자계약 내용의 핵심이 되었다는 차이가 있다. 물론 틸론 사건 등에서도 손해배상을 통해서 투자금 반환이 이루어지지만, 회생절차 개시와 같은 객관적 사실 그 자체로 인한 자동환급이 아니라 회사의 계약 위반에 관한 추가적인 판단을 한 번 더 거쳐야 된다는 차이가 있다. 대법원은 위 각 판결들에서 경영상의 사안에 관한 감시권한 부여는 소수주주권 차원에서도 인정될 수 있는 것으로서 주주평등의 원칙에 위반되지 않지만, 회사의 의무 위반시 출자금을 바로 반환해 준다면 주주평등의 원칙에 위반하여 무효인 약정이라고 명확하게 구별을 지었다.

주주평등의 원칙에 관한 2023년 선고 대법원 판결들은 일단 그 예외를 인정할 근거 및 조건을 최초로 제시하였다는 점에서는 매우 고무적인 법리를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다만, 투하자금 회수 보장 약정은 주주평등의 원칙 위반, 곧 무효라는 법리와 관련해서는, (i) 회사 및 전체 주주에게 이익되는 경영진 및 대주주 감시 권한을 부여하고, 회사의 약정상 의무 위반시 손해배상책임을 부여하는 식의 ‘유효한’ 특정주주 우대 계약으로 ‘포장’하는 경우 구별이 어렵다는 문제제기나, (ii) 굳이 주주평등의 원칙 위반 여부를 따질 것이 아니라 채권자 보호를 위한 자본충실의 원칙 문제로 취급해야 하지 않는가라는 문제제기가 있다.

또 비욘드아이 사건의 방론에서처럼 모든 주주가 동의한 경우까지도 주주평등의 원칙 위반으로 출자금 반환을 무효로 만들어야 한다는 데 대해서도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지점들이 있다.

마지막으로, 본 평석에서는 주주와 회사간 차별취급 약정의 유·무효 여부 판단 기준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비욘드아이 사건 등을 보면 회사와 공동피고로 된 대주주 겸 경영진의 책임 소재에 대해서는 회사-주주 법률관계에 관한 주주평등의 원칙과는 별개로 취급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도 덧붙여 언급하고자 한다.

특정주주 차별하는 계약, 무조건 무효로 판단해선 안 돼…

다른 주주 의결권 침해 등 차별취급 정당화 할 사정 판단을

 

특정주주에 투자금 환급보장하면 무효, 추가판단 필수적…

차별취급 약정 무효여도 경영진 책임 소재는 별개로 다뤄야

/김정연 이화여대 로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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