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상 금지 시한 직전까지 여·야 등 막론하고 개최

책 한권에 수천만원 받고 '징역'... 축의금처럼 할당하기도

"후원계좌로 연결 안 돼 '깜깜이'... 음성적 돈거래로 전락"

"정치 선진화 위해 '신고의무설정' 등 통해 양성화 해야"

"순기능 있어… 투명한 정치자금 문화 위해선 규제필요"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한달 넘게 이어진 출마 후보자들의 출판기념회 '러시'가 일단락됐다. 공직선거법상 출마자는 출판기념회는 선거일 90일 이내로는 개최할 수 없으므로 11일부터는 공식적인 출판기념회가 금지된다(제103조 5항).   

전·현직 의원들과 원외·재야 인사, 정치 신인 등이 너나 할 것 없이 출판기념회를 쏟아낸 가운데, 이같은 행사가 정치인의 '세 과시용' 내지 '정치자금 편법수혈 창구'로 변질된지 오래여서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선거 앞두고 무더기 출판기념회... 책 이야기는 없고 "정치 발언만" 

10일 △조명희 국민의힘 의원(비례대표) △서병수 국민의힘 의원(부산 부산진갑) △김정권 전 국민의힘 의원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서울 마포구갑) △최근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조응천 의원(현 무소속) △전북 부안 출신으로 17∼19대 3선 의원을 지낸 김춘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신임 사장이, 앞서 7일에는 △심상정 정의당 의원(경기 고양시갑)이 각각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제3지대 신당인 '한국의희망'을 창당한 양향자 대표 △국민의힘 소속으로 서울 출마 가능성이 거론되는 이영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세종 출마 예정인 이기순 전 여성가족부 차관 등은 9일, △부산 수영 출마를 선언한 장예찬 전 국민의힘 청년최고위원 △경기 양평·여주에 도전하는 이태규 국민의힘 의원(비례대표) △경북 영주·영양·봉화·울진에 출마하는 임종득 전 국가안보실 2차장 △부산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는 이언주 전 국민의힘 의원 등은 8일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이 밖에 △이종걸 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 △김우영 강원도당위원장 △양문석 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인 곽상언 변호사 △박정현 최고위원 등은 6~9일 각각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출마 가능성이 거론되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전국을 순회하며 '북콘서트'를 진행했다.

출판기념회는 정치 신인과 출마 예상 후보자의 생각을 유권자들이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이러한 순기능과 더불어 '정치자금 편법 수혈처'로 악용될 우려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국회 관계자는 "출판기념회가 인맥 쌓기, 세 과시용, 선거자금 마련 목적으로 전락했다"며 "최근 다녀온 출판기념회는 후보자를 지지하는 유명 정치인이 나와 축사만 1시간 반가량 했는데 책에 대한 얘기는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정치권 출판기념회는 본연의 목적을 잃은지 오래인데, 그 중 일부는 마치 결혼식 축의금처럼 5만 원 10만 원, 많게는 몇 백만 원을 주고 책을 산다"고 지적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정치권 출판기념회는 출마자들이 지역 유권자와 지인들에게 본인을 알리는 계기, 출마에 필요한 초기 비용 조달, 이 두 가지 목적을 갖고 연다"며 "(후자는) 일반적 출판기념회라면 책 구매 금액에 맞는 책 수량을 주고, 영수증도 떼 줘야 하는데 정치권 출판기념회는 돈 봉투를 받고 책은 보통은 한 두권 가져 가고 영수증 처리를 안 하거나 하더라도 본인이 원하는 만큼 끊어준다"고 비판했다.

이어 "실제 팔린 책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이 모이게 되는데, 사실상 법정 후원금으로는 안 잡히는 '깜깜이 돈'"이라며 "공식적인 후원 계좌로 거래되는 것이 아닌 음성적인 금전 거래가 이뤄지는 것으로 선거에 활용되는 자금이기 때문에 공직선거법을 통해 명확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출판기념회 규제 법안 수 년째 '제자리'… "신고의무 등 도입해야"

선거를 앞두고 열리는 정치인의 출판기념회를 폐지하거나 강력하게 규제해야 한다는 지적은 이전부터 꾸준히 제기돼왔다.

2014년 8월 신학용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 측으로부터 출판기념회 축하금 명목으로 수천만 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구체적인 논의가 시작됐다.

당시 신 의원은 "공식 출판기념회를 통해 받은 수익금으로 법적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지만 검찰은 신 의원이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 시절 관련 법안 2건을 대표발의했다며 뇌물 성격이 짙다고 판단했다. 결국 신 의원은 법정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처럼 출판기념회가 '뇌물 통로'라는 비판에 직면하자 19대 국회에서 새누리당 의원 153명이 출판기념회를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냈지만 끝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2022년 11월에는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검찰의 자택 압수수색 과정에서 나온 3억여 원의 현금 다발에 대해 "2020년 출판기념회에서 모은 후원금"이라 해명하며 다시 논란이 불거졌다. 하지만 아직까지 국회에서는 이렇다 할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출판기념회 관련 법 개정 발의는 2018년 8월이 마지막이다. 하지만 소관 상임위인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기됐다. 21대 국회에서는 아예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국회 보좌관 출신 최원혁(변호사시험 9회)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는 "현행 출판 기념회에 대해서는 공직선거법(제103조 제5항)상 시기적 제한 외에는 내역 공개, 신고 의무 등 별다른 제한이 없다"며 "출판기념회의 고액 후원과 정치인의 업무 사이에 대가성이 있다면 뇌물죄 등이 적용될 가능성이 있지만 별도로 그 대가성을 입증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처벌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홍보 등 현실적인 부분에서 출판기념회의 필요성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모금 한도가 없고, 내역 공개와 신고 의무가 없기 때문에 불법 정치 자금화 우려가 있다"며 "출판기념회의 선기능은 유지하되, △횟수 제한 △모금 액수 상한 △신고 의무 설정 등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회 보좌관 출신 이아영(변시 1회) 법무법인 강남 변호사는 "정치자금법상 정치자금의 수입과 지출에 관해 회계 보고 의무가 있지만, 출판기념회에서 받은 금품 등은 정치자금에 해당되지 않고 별도의 회계보고 의무가 부여되지 않아 그 수입과 지출 내역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출판기념회의 수익금은 사실상 후원금의 성격을 지니는데도 정치자금법의 적용을 받지 않아 편법·불법적 정치자금 모금과 로비의 장으로 활용된다는 지적이 오랫동안 이어졌는데도 사실상 개선된 게 없다"며 "출판기념회는 정치 신인 등이 얼굴을 알리는 기회,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고 영역을 확대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있지만, 투명한 정치자금 문화를 형성하기 위해 적절한 규제가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오인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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