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침해소송은 어려운 소송 유형 중 하나이다. 경제적 이해관계가 커 다툼이 길고 치열한 경우가 많은데다 판결에 만족하는 당사자도 적다. 특허권자는 배상금액이 적다는 불만을 갖고, 침해자는 손해금액 산정 근거가 불분명하다는 동상이몽에 항소심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간혹 특허침해소송 무용론이 나오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손해배상소송에서 손해금액을 특정하기는 쉽지 않다. 이는 특허침해소송도 마찬가지다. 특허법 제128조는 ‘침해자 이익액(동법 제4항)’ 또는 ‘합리적인 통상실시료 상당액(동법 제5항)’을 손해금액으로 추정하는 특칙을 두고 있으나, 이 역시 일반 민사소송 못지않게 증명이 어려워 특허권자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최근 개정된 특허법 제132조는 민사소송법상 문서제출명령보다 완화된 ‘자료제출명령’ 제도를 두고 있지만 증명책임 전환 효과는 여전히 제한적이다.

그래서 결국 특허법은 변론 전체의 취지 등에 따라 손해금액을 산정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동법 제128조 제7항), 이를 이용하는 것이 현재 재판 실무의 주류이다.

그러나 법관의 자유재량을 폭넓게 허용하는 ‘재량산정 방식’은 객관적 기술 가치에 대한 심리미진으로 이어져, 판결이유에 승복하기 어렵다거나 오히려 특허침해를 조장할 수 있다는 문제를 피하기 어렵다.

이를 극복하려면 ‘합리적인 손해금액 산정기준’에 관한 대법원 2006. 4. 27. 선고 2003다15006 판결에 주목하여야 한다.

그 요지는 ‘객관적·합리적인 손해금액을 결정함에 있어 ①특허발명의 객관적인 기술적 가치 ②특허발명에 대한 제3자와의 실시계약 ③침해자와의 과거 실시계약 여부 ④당해 기술분야의 유사 특허발명이 얻을 실시료 ⑤특허발명의 잔여 보호기간 ⑥특허권자의 특허발명 이용형태 ⑦유사 대체기술의 존부 ⑧침해자가 특허침해로 얻은 이익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판례의 특징이자 장점은 ②항과 같이 특허권자가 제3자와 실시계약을 맺고 실시료를 받은 경우 “그 계약 내용을 침해자에게도 유추적용하는 것이 현저하게 불합리하다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실시계약에서 정한 실시료를 참작하여 손해금액을 산정하여야 하며, 그 유추적용이 현저하게 불합리하다는 사정의 증명책임은 이를 주장하는 자에게 있다”라고 판시하여 증명책임 전환을 선언한 데 있다.

선고된 지 10년이 넘었음에도 재판 실무에서는 아직 이 판례의 활용을 주저하는 듯하다. 그러나 만약 일선 법원에서 이를 적극 채택한다면, 손해금액 산정요소에 관한 심리가 깊이 있게 진행되고 당사자 간의 자율적 협상을 유도할 수 있어 분쟁해결에 긍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게다가 실시료가 높은 ‘강한 특허’를 가진 특허권자는 더욱 우대 받을 수 있는 사회적 풍토가 조성될 것이다. 특허침해소송에서 합리적인 손해금액 산정 기준이 더욱 구체화되어 특허판결의 신뢰도가 향상 되기를 바란다.

 

 

/정진섭 지적재산권법 전문변호사(서울회·법률사무소 솔)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