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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단상]판사의 직업병?
윤종수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  |  iwillbe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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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0호] 승인 2013.11.11  11:4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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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드라마에서 본 장면이다. 이사를 한 여자가 남자친구에게 묻는다. “문을 닫으면 페인트 냄새가 너무 나서 머리가 아프고 문을 열면 매연 때문에 기침이 나는데 문을 여는 게 좋겠어, 닫는 게 좋겠어?” 정답은? 문을 여는 것? 닫는 것? 아니다. 남자친구가 말해야 할 올바른 정답은 “너 몸 괜찮니?”다.

드라마에서 남자들은 문을 닫는 게 좋다느니, 여는 게 좋다느니 열심히 답을 하다 여자들한테 핀잔만 듣는다. 여자는 어느 게 맞는지 답을 묻고 있는 게 아닌데. 한심한 남자들 같으니. 하지만 나 역시 열심히 정답을 고르고 있었다. 문을 여는 게 좋을지, 닫는 게 좋을지.

딸이 초등학생이던 시절 나와 이야기를 나누다 툭 던진 말이 있다. “아빠는 맨날 판사처럼 말해”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항상 뭔가 결론을 내리려 한다는 것이다. 뭐라고 말만 하면 어느 게 잘못이라느니 누가 틀렸다느니 하면서 정리를 한다는 것이다. 전혀 의식 못했는데 가만히 생각하니 부정하기 어려웠다. 답을 듣고 싶어 말한 게 아닌데 자꾸 답이라고 하면서 결론을 내리려 하니 딸이 얼마나 답답했겠는가. 답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그 후로는 조심하려고 꽤 애를 썼지만 그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 여전히 따지고 결론을 내리려 한다.

생각 없는 남자이자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법률가는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는 측면에서는 최악의 조합인 것 같
다. 상대방의 마음을 얻는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어야 한다고 한다. 특히 상대방이 어려움을 겪고 있거나 위로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는 더 그렇다. 냉철한 판단으로 객관적인 정답을 주려고 애쓰는 것은 어떤 경우에는 도움이 되기는커녕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다.

법정에서 사람들은 하소연을 한다. 특히 대리인 없이 소송을 하는 당사자들은 앞뒤 없이 자신이 얼마나 억울한지,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었는지만 계속 강조한다. 대부분 조리 없게 이야기를 하니 논리적이지 않고 감정적인 호소만 하니 재판에도 별로 도움이 안된다. 판사는 억울함만 호소해서는 안 되고 법적으로 주장을 잘 정리하고 유리한 증거를 최대한 많이 제출하는 게 필요하다고 차분한 목소리로 가르쳐 준다.

물론 재판을 원활하게 진행해야 하는 이유도 있지만 무조건 그들의 말을 막으려는 건 아니다. 진심으로 그들이 걱정되기 때문이다. 억울함을 하소연하고 목소리를 높인다고 해서 판사가 알아서 억울함을 풀어주는 게 아니라는 걸 그들은 잘 모른다. 저러다 제대로 변론도 하지 못하고 재판이 끝나버린다면 불이익은 고스란히 그들에게 돌아가니 안타까운 상황이다.

결국 그들의 말을 자르고 재판이라는 건 그런 게 아니라며, 지금 이러는 건 별로 도움이 안 된다고 설명을 해준다. 그러나 돌아오는 반응은 종종 부정적이다. 많은 사건을 진행하여야 함에도 애써 시간을 내서 설명을 해줬건만 그들의 얼굴엔 불만과 섭섭함이 섞여 있다.

드라마의 그 장면을 보면서 법정이 떠올랐다. 혹시 법정에서 그들이 듣기를 원했던 건 자신들이 제대로 하고 있는지, 법적으로 이길 수 있는지가 아니라 ‘너 얼마나 힘드니’라는 말이 아니었을까. 억울함(주관적인 억울함일 수도 있지만)을 해결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의지할 수 있다고 기대한 법률가들에게 우선적으로 원했던 것은 창문을 닫아야 하는지, 열어야 하는지에 대한 결정이 아니라 공감과 걱정이었을지 모른다. 그런 그들에게 절차가 어떻고 변론과 입증을 잘해야 한다는 정답을 외치던 판사는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한심한 남자이거나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법률가일 뿐이었을 것이다.

어머니께서 전화를 하셨다. 골치 아픈 게 있다며 법률상담을 하신다.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싶어 찬찬히 듣는다, 나이 드신 분이 법률문제를 설명하는 게 어디 쉬우랴. 알아듣기 힘든 설명을 잘 새겨듣고 말씀을 드린다. “에구, 머리가 아프시겠어요. 힘드시죠? 이런 나쁜 사람들 같으니. 아무튼 자세히 따져봐야 하겠지만 일단 너무 신경 쓰지 마시고 좀 쉬세요.“ 아들의 세심한 마음이 듬뿍 담긴 조언을 한참 들은 어머니가 말씀하신다.
“에이, 답이 뭐냐니까 딴소리는. 답이나 말해봐.”
아, 또 틀렸다. 법률가로서 살아가는 거, 쉽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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