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동북아 학술대회 개최…선진화에 기여
2014년 세계대회 유치…통일된 체계 구축 앞장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는 말이 있다. 이는 남들이 가는 길을 가야 안전하고, 혹여 위험요소에 노출됐을 때에는 그 길을 이미 걸어간 이들의 도움을 받아 헤쳐 나갈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요즘 같은 세상에서 만들어진 길, 남들이 가는 길만 따라 간다면 과연 앞으로 나아간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선뜻 답할 수 있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지금껏 세상을 바꾸고 발전시킨 이들은 그야말로 길을 잃고 헤맬지언정 새로운 길을 개척한 선도자들이었다. 우리 법조계에도 매번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하고 개척해 나가며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고 있는 이가 있다.

‘한양대 1호 법조인’으로 잘 알려진 한국민사소송법학회의 손용근 회장(사법연수원 7기)은 세계 민사소송법이 통일된 방향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방향과 세계 민사소송법을 선도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지난 달 그리스 아테네 세계절차법 대회(2013 Annual Conference of IAPL, Athens)와 일본 동경의 한일민소학회 국제학술대회를 다녀온 그를 만나 보았다.

1호 법조인이라는 이름

한양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이자 법무법인(유) 동인 대표 변호사인 한국민사소송법학회 손용근 회장은 ‘한양대 1호 법조인’이다. 손 회장은 집안 형편 때문에 서울대 법대를 포기하고 한양대를 선택했다.

“당시 한양대는 법조인 배출을 위해 우수 인재 유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고, 광주·전남지역 예비고사에서 2등을 한 저의 후원자가 되기를 자처했습니다. 생활 장학금까지 지원하면서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왔고 덕분에 저는 1975년 17회 사법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이로써 한양대는 1959년 정경대학 법률학과가 출범한 이래 16년 만에 첫 법조인을 배출하게 됐다. 이후 손 회장은 한양대의 기대에 부응한다는 자세로 피나는 노력을 해왔다. 대법원재판연구관,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서울지방법원, 서울고등법원부장판사를 거쳐, 법원도서관장, 서울행정법원장, 대구고등법원장, 특허법원장, 사법연수원장을 역임하고, 판사의 길을 접을 때까지 한결같은 마음을 다해왔다. 물론 어려움도 많았다. 이끌어줄 선배 한명 없는 법조계에서 올곧게 판사의 길을 걸어간다는 것이 어디 결코 쉬웠겠는가. 대법관 임명에서 여러 번 후보에만 머무를 수밖에 없었을 때도 굳건한 의지로 버텨냈다.

“아쉬움을 남기며 법복을 벗어야 했던 것에 대해서는 서운한 점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35년간 한양대 출신 법조인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길을 갈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특히 한양대 출신 법조인 1200여명 시대를 맞이한 작금의 현실에서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간 선구자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은 매우 영광스럽습니다.”
뿐만이 아니다. 지난 2011년 법복을 벗은 이후 그가 두 번째 법조인생으로 선택한 법무법인에서도 한양대 동문들의 구심점이 되어 주는 데 소홀함이 없다. 손 회장이 합류한 후 한양대 후배 변호사가 여덟명으로 늘어났다. 물론 실력이 있는 후배들이었기에 동인에 들어온 것이지만 어려울 때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자부심을 느낀다고 전했다. 그는 한양대 석좌교수로서 2011년부터 후학양성과 취업지도에도 성심을 다하고 있다.

민사소송절차가 분쟁 해결의 기준

손 회장이 법무법인 동인의 대표변호사로 합류한 후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 중 하나는 민사부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손 회장이 대표변호사로 들어온 이후 법무법인 동인은 강점을 보이던 형사부문 외에 민사부문이 강화되고 특화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그는 민사소송법학회 회장으로서 국내 민사소송법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한편, 세계 민사소송법을 선도해 나가기 위한 발걸음도 재촉하고 있다. 이는 민사소송법 박사학위자로서, 또한 민사소송법학회 회장으로서 민사소송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화, 시민사회화, 국제화 등의 영향으로 각종 다양한 이해관계의 충돌이 발생함에 따라 더욱 많은 분쟁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분쟁은 법치주의의 틀 안에서 합리적으로 해결돼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민사소송절차, 행정소송절차, 헌법소송절차를 비롯한 민사집행절차, 도산절차, 중재절차 등 적절한 절차적 해결수단이 갖춰져야 합니다.”

손 회장의 말에 따르면 이러한 해결수단 중 가장 원칙적이고 다른 모든 절차의 기준이 되는 것이 바로 ‘민사소송절차’라고 한다. 따라서 민사소송절차를 어떻게 구성하고 실천하느냐의 문제는 민사분쟁의 해결이라는 차원을 넘어 전 사회적 분쟁 해결의 기본적인 틀 설치와 구체적 시행의 관점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연구활동 강화와 학술교류에 ‘중점’

손 회장은 민사소송법학계 연구성과의 집적과 심화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특히 매년 4회 이상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매년 2권의 학회지를 발간하고 있다.
또한 일본 민사소송법학회 및 중국 민사소송법학회와 정기적으로 학술대회를 개최하는 등 국제적인 학술교류에도 주력하고 있다. 작년에 한·중국제학술대회를 중국에서 열었고, 올해에는 한·일국제 학술대회를 일본에서 열었다.

지난 9월 27일부터 29일까지 일본 동경대 혼고 캠퍼스에서 열린 ‘제7회 한일 민사소송법국제학술대회’에는 한국민사소송법학회 소속 회원 30여명이 참석했다.

“일본에서 열리는 한·일민소국제학술대회에 이렇게 많은 회원이 참석한 적은 처음입니다. 그만큼 민사소송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해외에서 우리의 역량이 표출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항소심 및 상고심의 바람직한 모습’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우리나라와 일본의 항소심 및 상고심 제도와 관련된 현황과 문제점을 논의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고심했습니다.”

그가 한·중·일 국제학술 대회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이들 3국의 활발한 교류와 학술대회 등을 통해 동북아 3국에 선도적인 민사분쟁 해결 체계를 구축하는 것은 세계 민사소송을 선도해 나가는 초석이 된다는 확신 때문이다. 이는 우리 민사소송법에 대한 자부심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유럽의 민사소송법이 선진화돼 있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막상 내면을 들여다보면 우리나라의 절차법이야 말로 보편적인 면에 기초하여 모범적으로 선진화되어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운영되고 있는 헌법재판절차는 세계적인 주목거리입니다. 우리의 절차법을 세계적으로 홍보하고 이해시킨다면 세계민사소송법을 선도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세계 민사소송 전문가 한자리에

손 회장은 우리나라의 민사소송법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오는 2014년 10월 1일부터 4일까지 서울에는 열리는 세계절차법대회를 민사소송법 선도의 밑거름으로 삼는다는 계획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민사소송절차가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따라 모든 사회적 분쟁 해결의 틀이 달라지기 때문에 민사소송법에 대한 경향을 파악하고 통일된 민사분쟁 해결 체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세계절차법대회입니다.”

그 대회는 ‘헌법과 소송절차’라는 대주제 아래 ‘헌법의 이론적 배경, 헌법의 원칙 및 민사 소송’ ‘헌법, 사법부와 대중의 권력 구조’ ‘사법권에의 효과적인 접근’ ‘헌법, 기본권과 법의 집행’ 등의 주제가 다뤄질 예정이다.

세계절차법대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웹페이지 개설, 공동위원 선정 등 준비 작업을 수행해 나가고 있다. 최근에는 영문 팜플렛을 제작해 아테네에서 열린 제15회 세계절차법대회에서 세계 각국의 학자들에게 배포하기도 했다.

제16회 세계민사절차법대회는 손 회장의 임기가 끝난 후에 열리기는 하지만 그는 아쉬움 보다는 기꺼운 마음으로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비록 임기 중에 치러지는 행사는 아니지만 책임을 가지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1950년에 처음 개최된 이래 일본에 이어 아시아에서는 두번째로 열리는 세계대회를 직접 준비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쁩니다. 차기 회장단이 성공적으로 행사를 개최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서포터가 될 예정입니다.”

손 회장은 내년 서울에서 열리는 2014 대회가 결국 우리 민사소송법은 물론 세계 민사소송법이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학계는 물론 실무계에서도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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