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WTO(세계무역기구)에서는 지금 필리핀의 쌀 관세화 추가유예 협상이 주요 이슈중 하나다. 1995년 WTO 출범당시 모든 농산물의 관세화(개방)를 원칙으로 하였으나, 우리나라와 필리핀은 10년간, 일본은 6년간 쌀의 관세화를 1차 유예한 바 있다.
이후 일본은 WTO 농업협정에 따라 국내외 쌀의 가격차 등을 고려하여 계산한 관세로 1998년에 쌀 시장을 개방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필리핀은 2004년에 농업협정 부속서 5의 8항에 의거, 의무수입물량 증량 등 대가를 제공하고 쌀 관세화를 2차 유예한 바 있다. 필리핀은 2005년부터 7년간 2차 유예를 함에 따라, 2012년 6월 30일 관세화 유예기간이 종료되었으며, 우리나라는 10년간 2차 유예를 하여 2014년말까지 1년 정도 남아있다.

필리핀은 지난 2011년말부터 농업협정 부속서 5의 8항을 근거로 3차 유예를 추진하였으나, 협상참여국들이 동 근거에 의한 유예는 한번만 사용할 수 있으며, 2005년 2차 유예시 사용했으므로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다고 반대하였다. 이에 따라, 필리핀은 2012년 3월 ‘WTO 설립에 관한 마라케쉬 협정’ 9조 3항에 의거, 2017년까지 5년간 관세화를 추가 유예하기 위해 WTO 상품무역이사회에 의무 면제(waiver)를 신청하였다.

그러나 동 의무면제 협상은 WTO의 어느 회원국이라도 반대하면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너무나 어려운 협상이다. 필리핀은 2012년 3월 이후 진행된 협상과정에서 협상참여국들의 쌀 및 쌀 이외 많은 요구에 시달려왔다.
필리핀은 지난 10월 18일 개최된 상품무역이사회를 앞두고 미국, 호주, 중국 등 협상참여국들과 집중 협상을 통해 쌀 관련 부담에 대해서는 잠정 합의를 도출하였으나, 쌀 이외 요구에 대해 합의점을 찾지 못함에 따라 타결에 실패했다.

필리핀은 지난 10월 2012년부터 2017년까지 5년간 관세화를 추가 유예하는 대가로 ①쌀 의무수입량(MMA) 2.3배 증량(35만톤→80.5만톤) ② 관세율 인하(40→35%) 등을 제시하였으며, 협상참여국들도 어느 정도 동의하였다. 그러나 필리핀은 협상참여국들의 쌀 이외 품목 관세인하 요구 등에 대해 합의점을 찾지 못하였다.
특히, 필리핀은 2012년 6월 30일 2차 관세화 유예기간 종료로 WTO 협정위반 상태에 있으며, 어느 회원국이라도 분쟁 등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상황에 처해 필리핀의 부담은 더욱 커져가고 있다.

필리핀이 추진하고 있는 이러한 쌀 관세화 3차 유예 협상은 2014년말로 관세화 유예가 종료되는 우리나라에게도 중요한 시사점을 주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5년 1월 1일부터 관세화 하거나, 필리핀처럼 의무 면제 협상을 통해 일시적으로 관세화를 추가 유예할 수 있다. 그러나 필리핀의 의무면제 협상에서 보듯이 WTO의 모든 회원국을 상대해야 하며, 상당한 대가 지불이 불가피하다.
그러면 왜 필리핀은 이러한 부담을 무릅쓰고 관세화를 추가로 유예하고자 하는가? 필리핀은 관세화 추가 유예의 대가로 의무 수입물량을 현재의 35만톤에서 약 80만톤 수준으로 확대하더라도, 필리핀의 연간 수입물량(100~200만톤) 범위 내에 있어서 국내 생산과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는 점과 정치적 필요성도 고려되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필리핀과 달리 의무수입량(2014년말 기준 약 41만톤) 외에는 수입을 하지 않고 있으므로, 의무수입을 2배 이상으로 확대할 경우 국내 쌀 생산과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 현재 우리나라의 연간 쌀 생산량은 약 400만톤 수준이며, 의무수입물량은 쌀을 관세화 하더라도, 계속 수입해야 한다. 또한 우리나라가 필리핀처럼 일시적 의무면제를 추진한다면, 우리나라의 경제력 규모 등을 고려할 때 필리핀보다 더 많은 요구를 제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 우리도 쌀 관세화 유예기간 종료를 1년여 남겨두고 있다. 우리 국가 식량안보의 기본인 쌀의 안정적 생산기반 확보라는 기본가치 하에, 농업인, 소비자,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합리적인 결정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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