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우리나라에 가정법원이 설립된 지 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1963년 10월 1일 서울가정법원이 서울 서대문구 서소문동 57번지에 문을 연 이래 가정법원은 가사사건과 소년보호사건을 다루는 전문법원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해 오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50년 전에 독립청사를 가진 가정법원이 설립된 것은 세계 사법부 역사에 비추어 보아도 매우 선진적인 것이고, 지금 돌이켜 보아도 놀랍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정법원이 최초로 설립된 데에는 여성단체 등 시민사회의 기여가 컸습니다. 1962년 8월 5일 전국 여성단체가 연합하여 국가재건최고회의 등의 관계 기관에 가정법원의 설치를 건의하였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가정문제의 해결은 만인공개리에 법규정에 의한 판결보다는 인간의 도의와 인정, 경험에 호소하면서 특히 교육학자, 심리학자, 사회학자 및 의학자들의 관여 하에 비공개방법에 의한 조정 화해로써 적합한 처리를 할 수 있는 가사재판제도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봅니다. 이 제도는 많은 나라에서 실시되고 있는바 특히 우리나라 실정 하에서는 경제능력 없는 당사자가 최소한도의 비용으로 단시일 내에 그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는 방법이므로 더욱 긴급을 요하는 제도라고 인정되어 그 설치를 강력히 주장하는 바입니다.”

이러한 건의에 따라 국가재건최고회의는 1963년 3월 4일 가정법원 설치를 위한 법안기초위원회를 만들었고, 법원조직법 등 관련 법률이 개정됨에 따라 같은 해 8월 6일 대법원에 가정법원설치준비위원회가 구성되었으며, 두달 가량의 준비작업을 거쳐 10월 1일에 서울가정법원이 개원하였습니다. 당시 서울가정법원장은 공석이었고, 권순영 수석부장판사가 서울가정법원장 권한대행으로 있다가, 1963년 11월 13일 기세훈 초대 서울가정법원장이 부임하였습니다. 개원식은 1963년 10월 10일에 열렸는데, 조야의 법조계 인사가 참석하여 서울가정법원의 개원을 축하하였음은 물론 많은 시민들이 운집하여 가정법원에 대한 높은 관심과 기대를 보여 주었습니다. 이날 찍힌 사진에는 한복 차림의 남성과 포대기에 아이를 업은 엄마가 가정법원 개원식을 구경하는 모습, 흰 저고리에 검정 치마 차림의 법원 직원이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 등이 보여 당시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서울가정법원의 개원 당시 가사재판에 관하여 적용되던 법은 ‘가사심판법’으로서, 가정법원은 가사사건에 대하여 조정 및 ‘심판’을 하고, 가정법원에서 가사사건을 처리하는 법관은 ‘심판관’이라고 불렸습니다. 또한 위 법은 조사관 제도를 두어 가정법원 조사관 제도의 본격적인 시작을 열었습니다. 서울가정법원 개원 당시 조사관으로 6명이 부임하였고 같은 해 12월 11일에는 심리학·교육학 등 인간관계 제(諸)학문의 전공자 두 명을 조사관으로 채용하였습니다. 이는 가정법원이 법률의 적용에 따른 일도양단의 판단을 내리는 재판기능만을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각종 지식과 사회적 자원을 결집하여 가사분쟁의 적정한 해결을 도모하고 원조가 필요한 당사자를 위한 후견·복지기능도 담당하여야 한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과학과 문화가 최고도로 발달하여 가정의 복잡한 심리적 정신적인 갈등에서 오는 불화는 단순한 법조문에만 의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사회가 변천하고 사상의 가치관이 시시각각으로 진보하는 근대 사회에 있어서 종래 법원의 제도로서는 합리적인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가정법원이 탄생된 것이며 가정의 분쟁사건은 사회정의와 형평원칙의 이념을 구현하기 위하여 법관과 정신의학자, 심리학자, 교육학자, 그리고 사회사업가 등 법학 이외의 여러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가사문제해결을 위하여 비공개로 조정 심판하여 주는 동시에 과거의 권위적인 구태를 일소하고 약자나 빈한자나 만민이 평등하게 이용할 수 있는 민주적이고도 봉사적인 국민의 법원이 되겠다.”(1963년 10월 10일 서울가정법원 개원식에서, 권순영 서울가정법원 수석부장판사의 식사 중)

※ 인용문을 비롯한 이 글의 주요한 내용은 서울가정법원이 2013년 출판한 ‘가정법원 50년사 : 50th Anniversary 1963~ 2013’을 참조하였습니다. 필자도 집필진 및 편집위원으로 위 책의 출판에 참여하였습니다.

가정법원 창립 50주년을 맞아 이선미 판사가 ‘가정법원의 발자취’를 4회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니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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