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6장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었는데 그가 주인의 재산을 허비한다는 말이 들려, 주인이 그를 파면하기로 했다. 이때 청지기는 속으로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꼬,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라며 고민을 했다. 결국 청지기는 주인에게 빚진 자들의 장부를 고치고 빚을 깎아 주기 시작했다. 기름 백말 빚진 사람은 50말로 깎아 주고, 밀 100석 빚진 사람은 80석으로 고쳐주는 식으로 선심을 베풀기 시작했다. 남의 것으로 인심이나 쓰자, 그러면 내가 쫓겨난 후에 설마 나를 못 본 척 하겠는가? 이 청지기는 자신이 쫓겨난 후에 자기를 받아 줄 곳을 마련하기 위해 주인의 돈을 모두 축냈던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게도 주인은 그와 같이 불의를 저지른 청지기를 불러 지혜롭다고 칭찬해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일화에 대한 교훈은 ‘돈을 가지고 친구를 사귀면(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하면) 천국 갈 것이다’라는 말이라고 한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선심성 사업의 남발로 무책임하게 사업을 추진하여 재정 자립도에 엄청난 구멍이 생긴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실제 16개 시·도 전부가 총 1조원 이상 빚을 지고 있고, 전국 244개 광역·기초 지방자치단체의 직접 부채와 산하 공기업 부채, 민자 사업 부담 등을 합친 총부채는 126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의 청지기인 지자체 장들이 남의 돈으로 인심 쓰고는 나 몰라라 하는 셈이다. 마치 주인으로부터 파면 통고를 받은 청지기와 같이 퇴임 후 더 높은 권력을 쫓아갈 요량으로, 혹은 당장 눈앞에 있는 사람들의 비위를 맞춰주기 위해서 이런 선심성 행정을 하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그와 같이 불의한 청지기를 주인이 칭찬해주었다고 하고, 불의한 재물을 다 소비하여서라도 다른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하면 천국에 간다고 하지만, 과연 선심성 공약으로 피멍이 든 지자체 주민들, 아니 대한민국 국민도 그러한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해주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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