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간 상부상조로 실무적 지식 나눠…지역사회 위해 봉사활동도 활성화
제주 4·3사건 희생자 무료변론…특별법 제정, 대통령 사과 등 이끌어 내

▲ 제주지방변호사회 회장 문성윤 변호사
맑은 공기와 향그러운 바람, 제주는 일에 지친 몸과 마음을 기대고 싶은 이상향이다. 머리아픈 송사마저도 이곳에는 바람처럼 술술 풀리지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잠시 들 즈음, 문성윤 제주지방변호사회 회장(53·연수원 16기)과의 대화는 이곳 역시 묵직하고 치열한 삶과 역사의 현장임을 깨닫게 해 주었다.
 
문 회장은 지난 1월 제주지방변호사회 회장으로 재선되었다. 두 번째 임기를 맞으면서 제일 역점을 둔 것은 회원들 간의 소통이었다. 현재 제주지방변호사회에 등록된 회원 수는 모두 42명. 어찌보면 굳이 친목도모를 하지 않더라도 저절로 친밀해질 만한 규모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소통의 필요성이 더 크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작은 커뮤니티일수록 오해와 반목이 쌓이면 서로 마주치는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 아닐까. 

“재판에서는 각자 의뢰인의 이익을 위해 치열하게 다투지만 법정 밖에서는 한솥밥을 먹고 산다는 점에서 서로 이해하고 친하게 지내면서 소통을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회장에 취임한 후 우리 회에서는 변호사들 간의 소통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제주지방변호사회 회지를 창간하여 변호사들의 활동상황과 정보를 공유하며 이해의 폭을 넓히고 있고, 매년 일본 오이타현 변호사 협회와 정기적인 교류를 위해 일본을 오가면서 회원들끼리 유대의 폭을 넓히고 있습니다.”

‘회지’라고 하면 거창하게 들리지만 사실은 회원의 근황을 담은 소박한 소식지이다. 그마저도 근황을 나누는 데에는 많은 도움이 된다.

사건을 다루는 데 있어 실무적 지식이 많이 필요하지만 지리적 여건상 따로 육지에 나가 연수에 참여하기는 힘들다. 문 회장은 이를 회원간 상부상조로 해결한다. 변호사회 자체적으로 민사나 형사, 상사 등 분야 중에 특별히 실무상 문제가 되거나 상세한 검토가 필요한 부분은 제주회 소속 회원들에게 그 연구를 맡겨 연 2회 세미나를 하면서 발표와 토론을 하기도 한다. 일에서 도움도 받고 친목도 도모할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다.

아울러 지역사회에 대한 배려도 소홀히 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그동안 소홀했던 봉사활동도 활성화하여 시각장애인, 보육원 등을 방문해 다양한 봉사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회에서는 지속적으로 지역사회에 대한 봉사활동을 위해 힘쓸 예정입니다.”

변호사 수의 증가는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아니 다른 지역보다 더 무겁게 다가오는 제주의 고민거리다. 사실 회원수가 42명이된 것도, 최근 2~3년 사이에 열 명 가량 늘어난 결과다. 게다가 앞으로 예상되는 회원수 증가는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르다.

“제주에도 제주대 로스쿨이 있습니다. 로스쿨 한 해 정원이 40명입니다. 물론 다른 지역 출신 재학생들도 많지만, 숫자만으로 본다면 한 해에 지역 전체회원 수에 맞먹는 변호사들이 배출되는 셈이지요. 과연 회원 변호사님들이 적정한 사건 수임을 유지할 수 있는지가 현안일 수밖에 없습니다.”

제주가 국제자유도시로 개발된다 하더라도  늘어난 변호사들이 모두 일거릴 맡을 만큼 법률적 분쟁이 증가할 전망은 현재로서는 거의 없는 상태다. 문 회장은 “고문변호사 영역을 늘리는 등의 방안으로 자구책을 찾고 있다”고 했다.

문 회장은 대학과 사법연수원 시절을 제외한 시간을 제주에서 보낸 토박이다. 그는 군법무관을 마친 후 바로 고향에서 개업을 했다.

“당시 기억으로는 10여명 정도의 변호사님들이 계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원로 변호사님들이 많이 계셔서 국선 사건의 상당 부분을 혼자 맡아야 했고 그러는 바람에 초창기에는 제 시간에 퇴근을 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바쁜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다. 그는 1990년 단독으로 사무실을 개업한 이래 현재까지 혼자 개인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아무래도 혼자 사무실을 운영하다 보니 개인적인 시간이나 여유를 갖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가족들한테도 미안하고….” 그렇게 변호사사무실을 개업한지 20년이 넘었고 그동안 제주지방변호사회 총무이사와 부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회무를 익히다 보니 자연스럽게 변호사회 회장직까지 맡게 되었다고 한다. 제주에서도 그렇게 바쁜데, 서울서 열리는 이런저런 변호사 모임에는 도저히 참석할 여유가 없지 않을까. 그는 오히려 ‘육지변호사들 모임에는 빠짐없이 참여한다’고 한다. 지역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만큼 회장인 자신이라도 바깥 정보를 접해 나누려는 생각에서다.

문 회장은 그렇게 숨가쁜 일정 중에서도 10년 넘게 제주 4·3사건 희생자들의 무료변론을 해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일 많은 개인변호사로서 ‘돈 안되고 부담스러운’ 역사적 사건을 천착하기는 아무리 제주출신이라도 쉽지 않은 일이다. 시작은 이른바 제민일보 사건이었다. 제민일보 고문을 맡으면서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자가 ‘4·3 계엄령은 불법이다’라는 기사를 보도한 제민일보를 상대로 3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재판의 피고 대리인을 맡게 됐다.

“4·3사건 당시 양민들의 학살 여부와 법률적으로 계엄령이 불법이었는지의 여부가 가장 중요한 쟁점이었는데, 당시 계엄령에 관해 우리나라에는 근거 법령이 없어 일본의 계엄령을 원용해서 쓰는 상황이었다는 점에서 절차적인 요건을 갖추지 못하였다고 볼 수 있었습니다.”

1심에서 제민일보 측이 승소하였으며 결국 대법원 판결까지 확정되었다. 그는 이를 계기로 4·3 사건에 관하여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되었고 현재도 유족회의 사건을 맡아 진행 중에 있다. 여기까지가 그의 말이다. 그 사건의 역사적 의미와 파장은 후에 자료검색으로 알게 되었다. 그 재판을 통하여 4·3사건이 본격적으로 공론화되었고, 나아가 4·3특별법 제정과 진상보고서 발간, 대통령 사과로까지 이어졌다. 4·3의 역사적 재평가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절대 자신의 공을 내세우지 않는다.

그는 “제주 출신으로서 제주의 아픔을 위해 일한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끼며, 앞으로도 4·3 사건과 관련하여 법률적인 문제가 생긴다면 적극적으로 도와드릴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담백하게 소회를 피력할 뿐이다. 현재도 그는 재판때마다 사비를 털어 자료조사를 하고, 잠을 설치며 선고 결과를 기다린다. 자기 삶을 가치있게 만드는 특별한 힘, 그에게는 4·3이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신념이 주는 기운을 받은 이들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에너지를 준다. 스스로의 나태한 삶을 돌아보게도 한다.
 
그는 틈이 나면 제주의 올레길을 걷는다. 유일한 취미생활이라고 한다. 사단법인 ‘제주올레’ 출범 당시 이사를 맡기도 했다. 올레길을 추천해 달라는 말에 한경면에서 출발하는 14-1코스를 꼽는다. “곶자왈과 녹차밭, 오름 등 다양한 제주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길입니다. 올레길을 걷게 되면 정말로 제주의 진면목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제주에 오시게 되면 꼭 올레길을 걸어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