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0일 인도네시아는 호주의 담배포장규제에 대해 WTO 분쟁을 제기하였다. 작년 3월 우크라이나를 필두로 하여 온두라스, 도미니카 공화국, 쿠바 등 4개국이 이미 호주의 담배포장규제에 대해 WTO 분쟁을 제기했으니, 인도네시아가 5번째다. 이들 5개국이 제기한 분쟁 가운데, 우크라이나가 제기한 분쟁은 작년 9월에, 온두라스가 제기한 분쟁은 지난 9월 25일 패널이 설치되어 본격적인 WTO 분쟁절차에 진입한 상태다.

우리 언론에도 수차례 보도된 바와 같이, 호주의 담배포장규제는 담배제조사로 하여금 담배를 꾸밈없이 단순하게 포장하도록 강제하는 한편, 경고문구와 함께 극단적으로 혐오스러운 사진(흡연으로 초래 가능한 질환에 걸린 신체 일부 등)을 담배포장 겉면에 상당한 면적을 할애하여 표시하도록 하고 있다. ‘2011년 담배단순포장법(Tobacco Plain Packaging Act 2011)’에 근거한 호주의 이 규제는 담배포장의 종류별로 경고문구와 사진이 차지해야 하는 최소면적, 포장의 색깔(진갈색), 부착상표의 위치, 크기, 글꼴 등을 상세히 규정하고 있다. 호주 정부는 이 규제가 궁극적으로 일반 대중의 흡연율을 낮추기 위해 도입되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담배포장규제가 WTO 협정에 위배된다면 어떤 규정에 위배될까? 제소국들은 대체로 ‘무역에 대한 기술장벽(TBT)에 관한 협정’ 제2.2조와 ‘무역 관련 지식재산권(TRIPS)에 관한 협정’ 제20조에 위배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TBT협정 제2.2조는 기술규제가 “정당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이상으로 무역제한적이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호주 정부가 표방하고 있는 ‘일반대중의 건강증진’이 TBT 협정상의 정당한 목적이라는 점은 제소국들도 부정하지 않으나, 호주의 담배포장규제는 TBT 협정이 허용하는 필요 이상의 과도한 규제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TBT협정은 특정한 기술규제가 필요 이상으로 무역제한적인지 여부를 판단하는데 “이용가능한 과학기술적 정보”를 고려할 것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본격적인 분쟁단계에 접어들면 과연 호주의 담배포장규제가 흡연율 감소에 기여하는지 여부가 다투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아울러, 제소국들이 ‘동일한 목적 달성에 기여하면서도 덜 무역제한적인 조치’를 제시할 수 있는지 여부도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TRIPS협정 제20조는 “상표권의 사용이 그 식별력을 저해하는 방법으로 부당하게 방해되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소국들은 호주의 담배포장규제가 담배포장에 상표가 부착될 수 있는 위치, 크기, 글꼴 등을 제한하고 있어 상표권의 사용을 과도하게 제한하여, 이 조항에 위배된다고 주장한다. TRIPS협정 제8조가 공중보건을 증진시키기 위한 회원국의 권리를 인정하고 있으나, 이 조항은 ‘TRIPS협정에 일치하는 범위 내에서’라는 단서가 있어 호주의 규제를 정당화할 수 있는지 여부가 명확하지 않다.

담배규제와 관련된 WTO 분쟁사례는 호주의 담배포장규제 분쟁 이전에도 있었다. 2003년 온두라스가 도미니카공화국의 담배수입제한조치를 대상으로 제기한 분쟁, 2008년 필리핀이 태국의 수입담배 세제를 대상으로 제기한 분쟁, 2010년 인도네시아가 미국의 클로브담배 판매금지조치를 대상으로 제기한 분쟁 등이 그 예다. 이들 분쟁은 모두 국내산 담배에 비해 동종 수입 담배를 차별하는 조치를 대상으로 제기된 것이었고, 최종 판정도 피소국의 조치가 내국민대우(GATT 제3.4조 또는 TBT협정 제2.1조)에 위배된다는 내용이었다. 호주의 담배포장규제는 수입담배뿐 아니라 국내산 담배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므로, 내국민대우 위반을 주장하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종전의 담배규제 분쟁들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호주의 담배포장규제 WTO 분쟁에는 우리나라를 비롯, 미국, EU, 중국, 일본, 인도, 브라질, 캐나다, 뉴질랜드 등 제3자로 참여하는 국가만 약 30개에 달한다. 이는 최근 WTO 분쟁 가운데 제3자로 참여하는 국가의 수가 가장 많은 것으로, 국민건강 증진을 위한 국내 정책과 국제통상규범 간의 조화방안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여준다. 우리나라도 분쟁이 진행되면서 우리의 입장을 표명할 기회가 올 것이다. 이 분쟁을 우리나라 수출효자산업 중 하나인 담배산업의 관점에서 접근할지, 아니면 보건정책의 자율성 확보라는 관점에서 접근할지에 대해 국내적으로 활발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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