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일장춘몽(一場春夢)이라는 말도 있지만, 최근 나는 실제로 일장하몽(한바탕의 여름 꿈)을 꾼 일이 있다.

휴가철이 다가오는 칠월의 마지막 금요일 사무실에 일찍 출근했다. 그 전날 대학동기 동창 G변호사의 소개와 간곡한 부탁으로 아침 10시에서 10시 30분 사이에 ○사장을 만나 상담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약속시간에 정확하게 ○사장은 당사자인 그의 아들(차남)까지 데리고 사무실에 나타났다. 나는 G변호사의 특별한 부탁에 따라 정중하게 그리고 반갑게 그들을 맞이하였다. ○사장은 체구가 장대하고 당당한 모습이고, 그 아들은 약간 호리호리하여 체격이 아버지를 닮지는 않았다.

어떻든 그 차남 부부의 혼인생활에 대한 이야기, 주로 차남의 처(○사장의 며느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 처에게 아이가 임신이 안 되어 인공수정으로 간신히 아이를 얻었다. 돈에 대한 집착이 너무 강하다. 시아버지가 응급실에 입원하신 적이 있는데 남편이 문안전화를 드리라고 해도 처는 “네가 알아서 처리해! 왜 내가 꼭 해야 돼?”라고 대꾸, 남편이 처가의 처제나 동서 등에게 선물이라도 주면 “왜, 네가 맘대로 주느냐? 나에게 주어 내가 전해 주어야지…” 등등의 이야기를 들었다.

만일 이혼하면 그 차남은 오피스텔을 하나 얻어서 아이 데리고 혼자 조용히 살아야지 하고 맘먹고 있었단다.
그런데 “만일 이혼하면 대개 어린 아이는 생모가 키우라고 결정하는 일이 많다”고 말해주자, 그 차남은 흥분하여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사장도 약간은 흥분한 상태에서 인공수정으로 태어난 아이를 살리려고, 그 형님 등 온 가족의 모든 힘을 동원하였단다. 그리고 이 사건을 맡아서 처리하여 달라고 말한다.
 
이제 사건의 착수금 이야기를 꺼낼 순서다. 나는 이 문제를 사무장에게 맡기려다가 직접 “우리 사무실은 꽤 비싼 사무실입니다”라고 하면서 어느 정도 예고를 한 다음 기본이 00만원인데…그 다음 말(친구의 부탁도 있고 하니 이를 감액하여…)을 하려고 하였는데, 별로 개의치 않고 “그렇게 하지요”하고 시원하게 대답한다.

사무장에게 좀 더 자세한 구비서류가 무엇인지 물어보라고 하면서 그들을 사무장실로 보냈다. 그 ○사장은 아들에게 “너 송금할 돈 있니? 모자라면 내가 보낼게”라고 말하면서 우리사무실의 계좌 번호를 묻고 자기의 명함을 사무장에게도 건네주었다고 한다.

나는 정말 오래간만에 큰 사건을 맡게 되었다. 나는 A지원의 가사사건 재판이 오후에 있어서 ○사장 일행을 남겨두고 조금 일찍 사무실을 떠났다. 우리 사무실에서 A지원까지 50분이 걸린다고 한다. A지원을 처음으로 찾아가는 길이지만, 발걸음은 매우 가벼웠다. ○○역에 내려서 물어물어, 칠월의 따가운 햇볕 속에서 땀을 흘리면서 법원을 찾아갔다. 시원하고 깨끗한 밝은 법정에서 여자 판사님이 재판을 진행하고 있었다. 나는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인지 기분이 좋아서인지, 상대방(피고)이 주장하는 채무액수도 나의 당사자(원고)에게 물어서 가급적 인정한다고 재판장에게 이야기하고 쉽게 재판을 끝냈다.

나는 오전의 그 사건 수임으로 인하여 기분이 내내 상승무드였다. 나의 지식과 능력을 남들이 인정하여 주는 것 같으니, 맘속으로 뿌듯한 자부심이 넘치고 있다. ‘변호사업무도 이 맛에 하는 거야’라고 혼자 중얼거리면서. 오후에 사무실에 돌아오니, 사무장이 G변호사 사무실에서 전화가 왔었고 전화하여 달라는 보고를 한다.

나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 G변호사는 “그 ○사장이 전화로 박 변호사, 너무 친절하게 상담하여 주어서 고맙대. 이혼사유는 대강 성격차이, 이유 없는 부부관계거부로 정리를 한 것 같고…. 그런데 말이야. 그 아들이 당신 사무실에서 울었다며? 그래서 ○사장도 이거 돈 들여서 잘하는 일인지 잘못하는 일인지 아직 분간이 서지 않는다는군! 좀 더 생각해 보고, 정말 소송을 할 때는 당신 사무실에 맡기겠다고 하네.”

나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래 알았어” 라고 밖에.

사무장에게 “그 사건 이제 물 건너갔어.” 하고 이야기하였더니, 사무장은 “저는 정말 꿈을 꾸는 것 같습니다. 그 ○사장이란 분의 말과 행동, 태도로 보아서는 금방 송금할 것 같더니”하고 아쉬워한다.

어차피 인생이란 꿈이다. 단지 변화가 조금 느린 꿈이지. 그래서 사람들은 너무 갑작스런 변화가 닥쳐왔을 때, ‘이게 꿈이야? 생시야? 나는 내 얼굴을 꼬집어보았어’ 라는 말들을 하나 보다.

오늘은 아침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6시간 동안 나는 정말 한여름 밤의 꿈같은 달콤한 꿈을 꾸고 있었던 셈이다. 그래도 그 시간만은 즐거웠다. 꿈일망정 그러한 꿈이 없다면 인생이란 얼마나 허무하겠는가?

 그리고 ‘작은 것을 얻든, 큰 것을 얻든 그 기쁨은 동일하게 하시고,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분간하게 하시고, 물러날 때는 미련 없이 그 자리를 속히 물러나게 하소서’하던 이해인 수녀의 시구(詩句)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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