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가정법원, 개원 50주년 맞아…후견·복지 전문 법원으로 ‘우뚝’
미성년자녀 양육 안내·화해권고제 시행…가정 안정·소년 교정 도모

 

오랜 세월 아버지로부터 모진 학대를 받아 분노와 원망으로 가득 찬 한 자녀가 어느 날 가정법원에 찾아와 아버지와의 관계를 끊고 싶다며 성본변경허가 심판청구서를 접수했다.
성과 본은 자녀의 복리를 위해 필요한 때 변경될 수 있다. 하지만 성과 본을 변경한다고 하여 아버지와의 관계가 끊어지는 것은 아니고, 형제자매들이 성과 본이 다르다는 이유로 겪게 될 편견이나 오해가 큰 경우 등에는 허용되지 않을 수 있다.
위와 같은 사유로 성과 본을 변경할 수 없다 하여 심판청구를 바로 기각해 버린다면, 당사자는 이를 수긍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일이다.
이처럼 가사사건은 민·형사 사건과는 조금 다른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가정법원은 당사자 간의 분쟁해결이라는 사법기능에 더해 가족구성원의 고통을 최소화하면서 새로운 가족관계가 형성되고 안정화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 소위 말하는 후견·복지기능까지 담당할 것을 요구받는다.
이를 위해 서울가정법원은 지난 50년간 꾸준히 변화해 왔고, 그 결과 사법기능은 물론, 후견·복지기능을 갖춘 전문법원으로 거듭나고 있다.
본지에서는 내달 1일 개원 50주년을 맞는 서울가정법원 노정희 수석부장판사를 만나 지난 반세기 동안 서울가정법원이 걸어온 발자취와 앞으로 나아갈 미래상에 대해 들어봤다.
 



“민사나 형사재판이 상대적으로 일회적인 갈등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절차라면 가사재판은 수개월 내지는 수십 년간 지속돼 온 갈등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절차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가사재판에 있어 갈등은 당사자를 넘어 자녀를 포함한 가족구성원 전체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다시 말해 가사재판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자녀를 포함한 가족구성원 전체의 인생을 뒤바꿔 놓을 수도 있기 때문에 사건의 이면까지 들여다보면서 신중하게 진행돼야 합니다.”


노 판사는 처음 만난 자리에서 가정법원의 특수성부터 설명했다. 더불어 서울가정법원은 지난 50년간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해 왔다고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서울가정법원의 역사는 전국여성단체들의 활발한 주장에 힘입어 1963년 10월 1일 가사·소년 전문법원으로 개원하면서 시작되었고, 이후 발전을 거듭해 왔다.
특히 1990년대에 들어 사회 상황에 발맞춰 법과 제도가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가정법원도 사법적 기능의 측면에서 전문법원으로서 역할을 공고히 하게 됐다.
200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가정법원의 후견·복지 기능이 재조명되면서 가정법원의 존재의의가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2011년과 2012년에는 가정법원이 전국적으로 설치되기에 이르렀다.
서울가정법원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다양한 제도를 꾸준히 연구·개발해 시행하고 있다고 노 판사는 전했다.

“2009년부터 재판상 이혼 당사자 중 면접교섭이 잘 이뤄지지 않는 비양육부모와 자녀가 함께하는 캠프를 실시하고 있으며, 원하는 경우 당사자와 그 미성년자녀가 장기적으로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협의이혼이든 재판상 이혼이든 미성년 자녀가 있는 경우에는 자녀양육안내도 받도록 하고 있습니다.”

노 판사는 위에서 언급한 성본변경허가 청구 사건의 경우에도 당사자에게 가사조사관의 조사와 상담을 받도록 했다고 한다.
비송사건, 특히 항고심인 경우 가사조사와 상담을 명하는 경우가 많지 않지만 위 사건의 경우 당사자에게 격앙된 감정을 다스리고 자신과 상황을 객관적으로 돌아볼 기회를 줌으로써 앞으로의 건강한 삶을 계획할 수 있도록 해줄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가정법원은 가사재판 외에 소년보호재판도 담당하고 있다. 소년보호재판은 보호소년들을 비난하고 처벌하기에 앞서 소년의 환경을 변화시키고 소년의 성품과 행동을 바르게 하기 위해 보호처분을 하는 재판이다.
소년보호재판과 관련해서도 가정법원은 국선보조인단을 구성해 운영하고, 화해권고제도도 시행하고 있다. 위탁보호위원제도를 통해 보호자가 없는 소년들의 보호에 도움을 받기도 한다.
그밖에 국민참여재판의 취지에 공감하고 청소년들의 사법의식 고취를 위해 청소년참여법정도 운영하고 있다.
가정법원 소년부 판사들은 보호처분결정 이후에도 보호소년들이 감호위탁돼 있는 시설을 수시로 방문해 소년들을 만난다.
이를 통해 보호소년들이 제대로 생활을 하고 있는지, 보호처분결정이 잘 집행되고 있는지 살피고 있다.
노 판사는 가사재판에서 가족구성원, 특히 그동안 관심 밖에 있던 미성년 자녀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이 새로운 가족관계에 무사히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은 소년범죄를 줄이는데도 큰 효과가 있다고 확신했다.

“지난 3년간의 서울가정법원 소년보호사건 접수현황을 살펴보면 2010년 9204건, 2011년 9234건, 2012년 1만 26건으로, 사건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년보호재판을 진행하다 보면 상당수의 보호소년이 조손가정, 한부모가정에 속해 있거나 소년소녀 가장입니다. 가정법원의 후견·복지 기능이 활성화되면 소년범죄예방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한편 서울가정법원은 학교폭력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지난 8월 말부터 9월 초에 걸쳐 서울 시내 중·고등학교에 가정법원의 판사들이 직접 나가서 학생들이 진행하는 모의 청소년 참여법정을 참관한 후 강평을 하는 행사를 개최했다.
이와 함께 정기적으로 학교장 연수, 학부모 초청 강연을 개최하고 학교폭력문제에 대한 대처방안을 함께 논의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다.
그 밖에도 법원견학프로그램을 운영해 학생, 교사, 가정폭력상담원 등에게 법원을 방문, 가정법원을 체험하고 판사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러한 노력은 궁극적으로 국민과 소통하고 이를 통해 신뢰를 쌓기 위한 것이다.
노 판사는 가정법원이 아무리 좋은 제도를 도입하고, 다양한 활동을 시행하고 있다 할지라도 국민들이 이를 필요로 하지 않고 알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며 국민과의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가정법원의 후견·복지적 기능 역시 법원과 법원 외 자원, 지역사회와의 유기적 연계를 전제로 할 때만 제대로 수행될 수 있다.

“서울가정법원은 업무와 관련해 시민사회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변호사들도 국선보조인, 청소년참여법정 진행인, 화해권고위원, 가사조정위원으로 활동하시면서 가정법원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성년후견제도와 관련해 전문가 성년후견인 후보 중에도 변호사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노 판사는 앞으로도 대한변협과 소속 변호사들이 가정법원에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가져달라고 당부하면서 인터뷰를 끝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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