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울역노숙자 법률상담소 소장, 서울맹학교 고문변호사, 한국자원봉사포럼 감사, 한국자원봉사협의회 소속 나눔과 봉사활동까지 많은 직함을 가지고 있다. 이런 나에게 진정한 봉사와 나눔의 실천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든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다.

3월 16일 서울역노숙자 법률상담소 소장으로 한 달에 한 번씩 방문하는 서울역 꽃동네에서 여느 때와 다름없이 2시간 정도 노숙자들에게 회생, 상속, 형사 등 다양한 법률상담을 하고 있을 때였다. 상담이 마무리 될 즈음 정신지체 장애를 앓고 있는 48살의 딸과 73살의 노모가 국적문제로 상담을 요청해 왔다.

딸을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하여 정부지원을 받고 싶은데 국적이 중국으로 되어 있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였다. 부모가 6·25사변에 중국으로 건너가 딸을 낳아 딸이 중국 국적을 취득하였고 10여년 전에 가족들이 한국으로 입국하여 생활하다가 2년 전 부친이 사망하면서 정부지원금이 줄어들고 딸의 정신질환 약을 구입하는데 비용부담이 커서 노모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리 저리 알아보고 다녔다는 딱한 사정이었다.

현재 노모가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원을 받고 있고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있으므로 특별귀화든 간이귀화든 뭐든 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했고 모친이 대한민국의 국민이고 영주비자가 있으니 불법체류도 아니므로 특별귀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나름 명쾌한 답을 드렸다. 하지만 나이가 많은 노모와 정신지체 장애의 딸에게 그 명쾌한 답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내가 아는 지식은 ‘특별귀화요건에 해당하니 신청하면 해 줄 것이다’에 불과했고 그 외에 신청절차와 관련된 내용은 전혀 나의 영역이 아니었다.

당시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이왕 도와주기로 한 것이니 조금만 도와주면 간단히 처리 될 것이라는 생각에 도와주겠다고 약속하였고 주소와 연락처를 받고 출입국관리사무소에 같이 갈 날짜를 정해서 연락주기로 하였다. 약속한 날짜인 3월 21일 오전에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급하게 재판을 마치고 모녀가 살고 있는 개봉2동의 주민센터 앞에서 만나 택시로 출입국관리사무소로 향하였다.

다행히 점심시간 전에 도착하여 급하게 번호표를 뽑고 30분 이상을 기다려 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 칼 같이 점심시간을 지키려는 직원의 눈치를 보면서 얻은 것은 특별귀화 신청자가 많아서 지금 신청해도 2년은 기다려야 한다는 말과 내가 직접 신청서를 쓴다고 해도 구비하기 힘든 15가지 제출서류 목록과 별지 제2호서식, 제8호서식이 다였다.

특별귀화 서류 및 편철 순서 목록에 많은 서류들이 있었지만 그 중 제일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단연 중국외교부의 인증을 받은 친족관계공증서와 중국 거민신분증이었다. 문제는 거민신분증이 없어 발급을 받아야 하는데 딸의 경우 흑룡강성이 관할이라 이곳은 본인이 직접 방문을 해야지만 가능하고 대리인이 대신 발급하여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분들이 중국을 직접 가신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어차피 딸이 기초생활수급자가 된다 하더라도 지금 받고 있는 45만원 가량의 수급에서 25만원 정도가 더 늘어날 것이므로 조금만 더 기부 등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될 것이고 의료보험이야 외국인도 될 것이기 때문에 주민센터에 가서 담당자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의료보험공단에 연락해 의료보험이 가능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의료보험공단부터 전화를 넣었다. 여권과 외국인 등록증 등이 있으면 당연히 의료보험가입이 가능하다고 답해주었다. 하지만 거주한 기간인 10년치 보험료를 납입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건 의료급여수급자로서의 혜택이 아니라 나와 같은 일반인들을 위한 의료보험 수준의 혜택에 그치는 것이었다.

점심도 못 먹고 개봉2동 주민센터에 도착하여 담당자와 주민생활지원팀장을 만날 수 있었다. 이분들은 모녀에 대하여 잘 알고 계셨고 주민센터에서도 이러한 사례가 처음이라 자신들도 어떻게 도움을 줄 방법이 없어 고민을 많이 하고 있었다고 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수혜 대상은 대한민국 국민에 한정된다는 담당자의 말에 대하여 그러면 내가 속해 있는 봉사단체를 통하여 이분들에게 생활비를 지원해드리면 되지 않겠느냐고 제안을 하였지만 현재 모친이 나이가 많으시고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데 딸은 정신장애가 있어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고 주민센터에서는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이 되어야지만 의료급여부터 시작하여 여러 가지 지원을 해 줄 수 있고 이것은 단순히 생활비의 문제는 아니라고 하였다.

결국 한국국적을 취득하여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중국에 직접 가서 서류구비해서 특별귀화 신청하고 또 2년을 기다려야 한다. 귀화허가가 날 지도 확실치 못하다. 쪽방촌 도배와 장판을 하는 것이 차라리 쉽지 한 명을 법률문제로 돕는 것이 이리도 힘든 일일 줄이야. 하지만 나는 나의 직함들이 부끄럽지 않았으면 한다. 도와주겠다는 약속도 꼭 지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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