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4일 일본 최고재판소는 2차 대전 종전 후 9번째의 위헌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에 국내외적 관심이 집중된 이유는, 혼외자의 유산상속분을 적출자의 1/2로 정한 민법 규정이 헌법상 평등 위반이라고 다투어진 2건의 재판이 판례 변경을 통해 위헌으로 결론 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기 때문이었다.

현행 일본민법 제900조 제4호는 직계존속 또는 형제자매가 수인 있을 때에는 각자의 상속분은 서로 균등하다고 하면서도, 단서에서 ‘적출이 아닌 자의 상속분은 적출인 자의 상속분의 1/2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메이지 시대부터 이어져 온 이 규정에 대해서 1995년 대법정에서 ‘민법이 법률혼주의를 채용하는 이상은 합리적 근거가 있다’는 이유로 합헌 판단이 내려진 후에도 소법정에서 합헌 판단이 계속되고 있었고, 2011년 오사카 고등재판소는 친자관계에 대한 국민의식의 다양화를 근거로 위헌 판결을 냈고 도쿄와 나고야 고등재판소도 개별 사례에 한해서 동 규정의 적용을 위헌으로 판시한 바 있다(2013년 7월 10일자 마이니치 신문). 일본은 한국과 달리 헌법재판소가 없어서 최고재판소는 물론 지방재판소도 각자 위헌 판결을 내릴 수 있으나, 그 경우 법률 규정 자체를 무효화시킬 수는 없고 당해 사안에서만 적용을 부인하게 된다. 이 점은 최고재판소 위헌 판결이 나온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나, 이 경우는 입법부가 빠른 법 개정의 압력을 받게 된다.

7월 10일자 시사닷컴 보도에 따르면, 이번 사안은 모두 피상속인인 父가 2001년에 사망한 후 와카야마와 도쿄 가정재판소에서 유산분할이 다투어진 2건의 가사심판으로, 와카야마와 도쿄 모두 1, 2심이 동 규정을 합헌이라 보고 이에 따른 분할을 명했기 때문에 혼외자 측이 최고재판소에 특별항고한 사례였다. 7월 11일자 마이니치 신문 오사카 조간은 와카야마 사건의 원고와 피고의 주장을 보도하고 있다. 원고인 혼외자 40대 여성이 기자회견에서 “선택해서 미혼의 부모 사이에 태어난 것은 아니다. 목숨의 무게가 적출자의 반이라는 생각마저 든다”고 말한 것에 대하여, 적출자 측은 “행복한 가정이 깨져 40년간 정신적 고통을 견디며 살아 왔다. 혼외자 측은 생전에 상당한 재산을 양도받았는데 무엇이 불평등한가?”라고 반박했다. 이에 최고재판소가 새로운 헌법판단이나 판례변경이 필요한 경우 여는 대법정에서 이 사안을 판단하게 됨으로써 위헌 판결의 여부는 물론 위헌판단이 과거 사례에 적용될지 여부도 주목 받고 있었다(8월 29일자 요미우리 신문).

드디어 최고재판소는 “부모가 결혼하지 않았다고 하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이유로 子에게 불이익을 미치게 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재판관 14명(민법 관할의 법무성 민사국장 테라다 이쓰로우 재판관은 심리를 회피) 전원 일치의 판단으로 민법에 있어서는 최초의 위헌 판결을 내렸고, 이번의 위헌 판단은 이미 매듭지은 동종의 상속 사안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하는 이례적인 언급도 했다(9월 4일자 시사닷컴). 같은 날 마이니치 신문은 이번 판단의 배경에 혼외자 차별의 해소라는 국제정세, 사실혼이나 미혼모의 증가 등 가족 형태의 다양화, 국민의식의 변화가 있다고 분석하고 있으며, 파기환송된 2 사건은 앞으로 오사카와 도쿄의 고등재판소에서 다시 심리될 예정이다.

다음은 9월 5일자 변호사닷컴에 올라온, 이번 위헌 판결에 대한 일본 변호사들의 트위터 반응. 와타나베 데루히토 변호사는 “드디어 나왔다. 학생 시절 수업에서 했던 것이 결국 현실이 되었다”고 하였고, 같은 뉘앙스로 칸노 토모코 변호사는 “적출자 측의 ‘법률혼 존중’은 조금 시점이 벗어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타니야마 토모미쓰 변호사는 “위헌 판결이 너무 늦었다. 태어난 아이로서는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사정에 의한 차별이었기 때문”이라 했고, 야마구치 타카시 변호사는 “당연한 결론”이라며 지금까지 혼외자 차별을 옹호했던 정치가의 깊은 반성을 촉구한 것에 이어, 타카이 켄 변호사는 “조기에 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관련 사건의 절차 진행이 곤란하다”며 빠른 민법 개정의 필요성을 호소했다.

일본의 존속살해죄 가중처벌 규정에 대한 위헌 판결을 떠올려 볼 때, 일본 재판관들이 ‘출생에 대해서 선택의 여지가 없는데도 차별적 취급을 하는 것은 법 아래의 평등에 반한다’는 원리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번 판결이 나오기까지 20여년 가까이 걸린 것을 보면, 아직도 일본의 법제는 구시대적 규정을 개선함에 있어 속도가 느린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에 반해 초기에 일본법의 영향을 받았던 우리 법제가 헌법재판을 통해 일본보다 더 빨리 시대의 흐름에 맞게 발전하는 점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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