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원 150여명인데 관내 로스쿨 한해 졸업생 100명, 그래도 잘 될 것 낙관
중소기업고문 변호사제 실질화 고민…7년째 판소리 배우는 예향 변호사회장

“강원회 회장 한명 빼고 13개 지방회 회장이 참석해 계룡산 등반까지 했습니다. 서로 참 잘 맞아요. 성공적인 사업, 회원들의 호응이 컸던 사업 기획을 공유하기도 하고 문제점에 대한 생각도 듣고 수시로 대화하다 보니 보고 대화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김 영 전북지방변호사회 회장(사시 30회)을 만난 것은 전국지방변호사회장 협의회 모임이 있은지 이틀이 지난 초여름 날이었다. 제47대 대한변협 협회장이 첫 전국 직선으로 선출되고 지방회 회원들이 이제야 변협을 자기조직이라 느끼기 시작하자 회장들부터 달라졌다. 기존에 변협 협회장으로부터 현안을 듣고 동의를 구하는 협의체를 거부하고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회장협의회를 만들었다. 네이버 ‘밴드’어플리케이션으로 회장들이 수시로 의논하고 대화한다.

무슨 사업을 해야 회원들에게 이익인지, 반응이 좋았는지, 고생한 것에 비해 소득은 없었는지 대화하고 실행한다.

“첫 모임은 대구에서 가지면서 대구근대역사 골목투어를 했잖아요. 이번엔 계룡산을 등반하며 공식 회의석상보다 많은 얘기를 나눴어요. 우리 회는 규모가 뒤에서 세는 게 빠를 만큼 작잖아요. 그래서 뭘 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아요. 지방회 회장님들이 지방회 회무 뿐 아니라 변협 회무에도 관심이 많고 열정적이에요. 전북회에서 할 사업 아이디어도 많이 얻었습니다. 중소기업 법률지원 사업을 하려고 해요. 도내 건설업협회와의 매칭시스템으로 지역에도 도움이 되고 청년변호사 자문 일자리도 만들려고요.”

전북지방변호사회는 전주지방법원이 개원하던 1976년 3층짜리 건물을 모 은행과 함께 법원별관 건물을 기부채납하고 공실을 사용해왔다. 변호사회 사무실로 사용해왔는데 이제 2018년에 법원이 신도시로 이전함에 따라 회관 마련이 주요현안으로 떠올랐다. 분명히 기부채납으로 지은 건물이건만 법원 공무원 노조가 변호사공실 사용에 비판적인 점도 신경쓰인다. 아직 시간이 좀 남았지만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회관마련을 위해 방법을 고심 중이다. 지방회 회장들과 인터뷰를 하다보면 자체회관을 가진 회와 그렇지 않은 회는 사업구상이나 실현에 큰 차이가 난다. 선배들이 후배들을 위해 짊어졌어야 하는 짐을 어떻게 했느냐의 차이가 나중에는 회복할 수 없이 크게 벌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달까.

“전북지방변호사회가 요사이 가장 열심히 주장하는 것은 항소법원 설치입니다. 현재 전주지법과 광주고법 전주부가 있는데 단독사건은 2심을 지법 항소부가 하는 게 문제입니다. 같은 법원에서 방만 바꿔 재판하는 것에 국민의 불만이 큽니다. 고등법원이라는 명칭은 일제시대 잔재입니다. 1심, 2심을 철저히 분리해주고 대응법원을 만들어 충실하게 판단해주어야 합니다.”

지방회에서 하나의 사법개혁 주제를 정해 지속적으로 캠페인을 벌이고 알려나가는 힘든 작업을 열심히 해나가고 있다.

전북지방변호사회 관할 구역 내인 전북대 로스쿨에 80명, 원광대 로스쿨에 40명이 매년 입학한다. 전북회의 총회원 수는 153명(8월 현재). 3분의 2 이상의 인원수이면 지역에서 소화하기는 버거운 수이다. 로스쿨졸업생 실무연수를 소화할 법무법인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 그러나 김 회장은 굉장히 긍정적이었다.

“처음 적응이 힘든 거지 잘 해나갈 겁니다. 어떤 단체든 구성원이 늘어나면 성장, 발전했다 자부하는데 구성원 수가 늘어나는 것은 환영할 일 아닌가요? 우리도 분명 발전하고 있는 겁니다. 정해진 파이를 나눠먹다 보면 어느새 파이가 커져있을 겁니다. 변협 회원도 1만4000명으로 급속도로 늘어났지만 발상을 전환하면 기회일 수 있습니다. 사법시험 하에선 변호사의 진출 영역이 좁았고 일의 범위도 제한돼 있었습니다. 먹고 살만한 데 누가 스스로 그 틀을 깨겠습니까? 국제무대에도 그래서 늦게 진출한 거죠. 신선한 생각을 하고 도전하는 새로운 세대들이 정착하는 2~3년 후면 상황이 달라질 겁니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김 회장은 1996년 ‘법률회사’가 생소하던 호남에서 법률회사를 차렸다. 그의 법무법인의 특징은 완전 월급제. 기여도를 따지지 않고 능력에 따라 벌고 소득은 공평하게 나누는 방식을 택했다. 그야말로 회사인 셈인데 옳은지 그른지는 모르겠다고. 그의 백제종합법률사무소는 조선족 변호사를 고용해 대중국 법률서비스를 시작하는 등 호남권 수임권수 최상위를 점할 만큼 성공을 거두고 있다. 김 회장은 전라고, 전북대를 나온 전주 토박이. 그가 전주를 떠난 것은 사법시험 보러갈 때와 연수원 기간 정도이다. 창문도 없는 신림동 고시원에 2차 시험 석달 전부터 묵었다가 기관지천식에 걸려 고생했다. 한 달 전에 올라갔더니 합격했다. 어지간히 서울이 싫었겠다.

“저는 전주에 특화된 변호사인 셈이죠. 서울에선 살 수 없고 전주에서만 성공할 수 있는. 요사이 사업한다 하시는 분들은 평균 세명 이상의 변호사를 알아요. 그렇다면 누구에게 맡길까요? 가족이나 마찬가지인 사람에게 믿고 맡기게 되죠. 지역에 뿌리박고 일구어나가는 것이 성공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록들과 책으로 둘러싸인 김 회장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한 액자가 눈에 띄였다.

“어두움 속에서 더듬더듬 / 손이 손을 잡는다 / 잡히는 손이 잡는 손을 믿는다 / 잡는 손이 잡히는 손을 믿는다 / 두 손바닥은 따뜻하다 / 인정이 오가며 / 마음이 마음을 믿는다”

문익환의 ‘손바닥 믿음’이라는 시다. 이를 적어 보내준 곳을 보니 전북여성단체연합이다. 전북여성단체연합 후원을 20년간 해왔다고. 유일한 남성이사로 변호사가 도울 수 있는 일을 꾸준히 해왔다. ‘6·15 실천 운동본부’도 참여하고 ‘전북독립영화협회’ 감사를 맡는 등 사회단체 일도 열심히 해오고 있다. 인디음악은 나름대로 시장층도 형성하고 발산할 데가 많은데 독립영화는 너무 어렵고 힘든 여건에서 고군분투하는 청년들이 안타까워 돕고 있다고 했다. 사회단체 일을 많이 돕고 있다고 하자 지역사회에 오래 살다보면 당연히 하게 되는 것이라고.

김 회장의 특기는 판소리. 7년째 1주일에 한 번씩 배우러 다니고 있다. 예향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전주는 판소리, 장고, 대금 등 예술을 접할 기회가 많다. 1달에 2만원이면 최고의 선생님들에게 배울 수 있다고.
“국악카페에 가서 한번씩 부르기도 해요. 소리는 한번 하고 나면 그간의 스트레스가 확 풀리고 개운하죠. 잘하든 못하든 푼수가 돼서 내려놓아야 합니다. 지난번 전국지방변호사회장 협의회 때는 제가 체해서 못 불렀는데 다음번엔 꼭 부를 겁니다.”

그의 판소리, 꼭 한번 들어보고 싶다.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