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간 몸담았던 법정을 떠나 ICTY라는 운명 만났듯 또 다른 운명을 향해 쉬지 않고 달려나갈 것입니다”

권오곤 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ICTY) 재판관은 법조계에서도 비범한 인물로 손꼽힌다.
서울대 수석 졸업, 사법시험 수석, 연수원을 수석 졸업한 이후 1979년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로 임관한 이래 초고속으로 고등법원 부장판사직을 맡으며, 그야말로 법조계에서도 1%에 속하는 인물로 평가 받아 왔다. 그런 그가 2001년 갑자기 우리나라 법관으로서는 처음으로 유엔 총회에서의 선거를 통해 ICTY 재판관으로 진출하겠다며 법복을 벗었다.
법조계에서는 센세이션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당시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국제재판의 새로운 역사를 써 나간다는 사명감과 국내 법조인들에게 새로운 길을 인도해 줄 수 있다는 자부심으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겠다고 결심했고, 이를 실행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국제무대에서는 세계 평화와 정의를 구현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됐고, 이는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이는데도 일조했다.
이에 대한변협은 26일 열린 ‘제22회 법의 지배를 위한 변호사대회’에서 권오곤 ICTY 재판관을 ‘제44회 한국법률문화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훌륭한 선배와 동료들이 많은데 제가 큰 상을 받게 돼 외람됩니다. 하지만 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 재판관으로서 잘하라는 격려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지금 맡고 있는 재판을 잘 마무리 해 국익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한국법률문화상을 수상한 권오곤 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ICTY) 재판관은 큰 상을 받아 기쁨과 동시에 어깨도 무겁긴 하지만 재판관으로서의 업무를 더욱 충실히 수행하라는 격려의 뜻으로 받아들이겠다며 소감을 밝혔다.

권 재판관은 1979년 법조계에 발을 들여 놓은 이래 보장돼 있던 탄탄대로의 삶을 버리고 2001년 큰 결심을 하게 된다. 대한민국 법관으로는 처음으로 국제재판관으로 진출하기로 한 것이다. 이를 두고 주변에서는 걱정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권 재판관은 운명처럼 자신의 길을 선택하게 됐다.

“판사 시절 청와대 파견근무를 하고 있는데 한 외교관이 세계의 판사, 즉 유엔국제사법재판소(ICJ)의 판사가 돼 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국내 법관으로서의 삶만 생각해 오던 제게는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ICTY에서 재판관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게 됐고 마음이 움직이게 된 것입니다.”

물론 권 재판관도 처음에는 걱정이 많았다. 부모님을 한국에 남겨 놓고, 아내와 자녀 3명을 데리고 ICTY가 있는 네델란드 헤이그로 출발하기까지 어찌 고민이 없었겠는가. 하지만 한국을 대표한다는 자부심과 설렘으로 네델란드행을 택하게 됐다는 권 재판관은 그 당시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확신했다. 

“영미법체계와 대륙법체계를 절충해가며 가장 적합한 형사사법제도를 선택하고 새로운 선례를 만들어 나가는 일이 무척 재미있습니다. 아울러 양 체계를 통해 배우는 것도 많고 한국제도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도 보람됩니다.”

특히 세계 역사상 국가수반에 대한 첫 국제 형사재판이었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사건의 재판에 참여했을 때에는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고 권 재판관은 회상했다. 단지 사건을 더 일찍 마무리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이 남는다는 권 재판관은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사건을 교훈삼아 현재 재판장을 맡고 있는 라도반 카라지치 전 보스니아 내 세르비아 공화국 대통령에 대한 사건을 잘 마무리 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국제 전범에 대한 재판은 고위직을 다루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국내 재판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사건이 방대하고 증인도 많습니다. 또한 전쟁사건이다 보니 잔혹한 사건들을 많이 접하게 됩니다. 이에 끝없고 지루한 싸움 같아 보여 힘들고 지칠 때도 있지만 매일 새로운 경험을 쌓고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갈 수 있다는 매력 때문에 하루 하루가 즐겁습니다.”

자신의 경험을 국내 법조인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는 권 재판관은 이러한 이유로 국내 판사의 ICTY 펠로우 근무, 연구관 및 인턴 채용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법조계도 국제화·선진화 요구에서 배제될 수 없는 분야입니다. 최근 들어 유학을 가는 법조인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학문적인 배움도 중요하지만 재판업무를 직접보고 체험할 수 있는 ICTY의 펠로우 근무나 인턴을 통해 경험을 쌓을 수 있다면 실제 업무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에 권 재판관은 2008년 ICTY 부소장으로 재임한 이래 4년간 국내 연구관 및 인턴 채용에 각별히 신경 썼다고. 아울러 권 재판관의 노력으로 올해까지 6명의 판사가 펠로우로 근무했다고 한다. 권 재판관은 법조인들의 국제교류야 말로 서로에게 윈-윈이 될 수 있는 것이라며 국내 법조인들이 해외 진출에 적극 나서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ICTY 입장에서는 국내 인턴이나 펠로우들이 와서 일손을 거들어 주니 업무 효율성에 도움이 되고 인턴이나 펠로우 입장에서는 경험을 쌓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인 셈입니다. 또한 다양한 경험을 쌓은 국내 법조인들은 해외 시장 개방 혹은 진출시에도 유리할 것입니다.”

물론 해외 진출을 꿈꾼다고 아무나 국제재판소에서 근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에 권 재판관은 국제재판소에서 근무하고자 하는 법조인들을 위해 몇 가지 팁을 말해 주기도 했다.

“해외 시장 진출을 위해서는 어학이 기본이긴 하지만 자신의 의사 표현을 할 수 있을 정도면 됩니다. 단 영어인터뷰 요령에 대해서는 숙지해야 할 것입니다. 오히려 영어보다 중요한 것이 전문분야에 대한 관심과 전문분야와 관련된 스펙 쌓기입니다.”

특히 권 재판관은 막연한 두려움을 없애고 몸으로 부딪히며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국내 법조인의 해외 진출을 독려했다.
하지만 정작 지난 12년간 ICTY에서 새로운 역사를 써가고 있는 권 재판관도 ICTY를 떠날 날이 머지 않았다. ICTY는 지금까지 진행 중인 3건의 1심 재판과 7월 1일 이전에 접수된 항고심까지 마무리 하면 해산된다. 이후 사건에 대해서는 전범재판소 잔여업무처리기구인 MICT에서 맡게 된다.
권 재판관도 오는 2015년, 늦어도 2016년에는 이곳을 떠나게 된다. 이에 권 재판관은 또 다른 꿈을 이룰 준비를 하고 있다.

“현재 몇 가지 계획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2015년 임기가 만료되는 국제형사재판소(ICC) 송상현 소장의 뒤를 이어보라는 주변의 제안도 받은 바 있고, 대학에서 그동안의 경험을 학생들에게 전수하는 것도 뜻깊을 거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권 재판관의 말에 따르면 ICTY의 현 소장은 83세이고, 1년전까지만 해도 권 재판관이 ICTY의 최연소 판사였을 정도로 ICTY의 평균연령은 높은 편이라고 한다. 이는 법조계야 말로 경험이 중요한 분야로 연륜은 무시할 수 없는 강점이기 때문이다.

이에 권 재판관은 지금까지의 경험을 살려 자신만의 또 다른 역사를 써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또 다른 역사의 첫 발걸음은 책 집필이 될 것이라며 차근히 준비해 나갈 뜻을 밝혔다.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국내외 재판관으로 법정에 서왔습니다.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책을 써볼까 합니다. 물론 법정 이야기는 다룰 수 없겠지만 경험담이나 전문서적을 집필하면서 인생을 돌이켜 보는 한편, 앞으로의 삶을 구상해 보는 것도 좋을 듯 싶습니다.”

남들은 퇴직을 하고 편안한 삶을 찾아갈 나이라지만 지금이야 말로 자신의 경험이 빛을 발할 수 있는 때라며 쉬지 않고 노력해 나가겠다는 권 재판관의 앞날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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