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이 변호사이다 보니, 소장을 작성할 때 금전지급 청구의 경우 당연히 숫자를 쓰게 되고, 지연이자의 기산점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굳이 금전 지급청구가 아닌 부동산 인도청구의 경우에도 별지에서 부동산을 특정하다보면, 지번이나 면적을 쓰게 쓸 수밖에 없고 부득이 하게 숫자를 쓰게 되고, 가사사건의 경우에도 최소한 날짜를 될 수 밖에 없어 숫자를 일상에서 달고 사는 것 같다.

필자가 기억하기로 중학교 1~2학년 시기에 국어교과서에 생텍쥐베리의 어린왕자라는 소설이 실려있었는데,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라는 문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당시 필자가 어린왕자라는 소설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정확하게 전달받았는지는 확언할 수 없으나, 당시 중학생(청소년)이었던 본인은 특히 아이가 어른에게 ‘정원이 넓고 지붕이 빨간색인 멋진 집을 보았어요’라고 이야기하면 어른들은 잘 이해를 못하고, 그 집이 어떤 집인지 상상하지 못한다. 그러나 ‘10억 정도 나가는 집을 보았어요’라고 이야기하면 어른은 ‘참 좋은 집을 보았구나!’라고 언급한 대목이 있었다(정확한 소설의 내용을 인용한 것은 아님을 밝힙니다).

위 구절을 읽으면서 필자는 ‘어른이 되면 돈을 벌어야 하고, 경제관념이 생기고, 대인관계 역시 이해관계에 따라 형성되게 되어 일상 생활이 숫자(돈) 위주로 진행되어 가는구나’라고 단순히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내가 나중에 어른이 되더라도 ‘어린 왕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순순한 동심을 간직하면서 살아가야겠다’라고 결심했던 기억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진정한 의미에서 위 결심을 필자는 현재 실천하지 못하고 있으나, 최근 필자의 딸을 보면서 어린 아이들은 정말 순수하다라고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즉 재판업무를 마치고 퇴근한 후 집에서 늦은 저녁을 먹고, 5살인 큰 딸에게 ‘오늘 뭐 했니?’라고 물으니, 큰 딸은 ‘오늘 유치원에서 선생님과 함께 그림을 그리고, 친구들과 재밌게 놀았다’라고 하면서 하루에 있었던 일을 조잘조잘되면서 한참동안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아직 아기에 가까운 어린이여서 그런지 많은 문장을 말했는데 숫자가 전혀 없었다. 아직 아라비아 숫자에 대한 명확한 개념이 없어서인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분명 나의 일상이나 내가 대화하는 경우와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필자가 아동기와 청소년기에 빨리 어른이 되어 돈을 벌어 내가 사고 싶은 것을 다 사야지라고 갈망한 어른이 되었지만, 순순한 동심을 간직한 나의 꿈이었던 진정한 어른은 되지 못한 것 같다.

그렇지만 세 살, 다섯 살된 두 딸과 놀고 이야기하노라면 없어졌던 동심이 다시 생기는 것 같아 한편으로 뿌듯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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