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이란 게 있는지 없는지를 놓고 철학자와 신학자들은 골머리를 앓는다. 시인 장정일은 ‘임레 케르테스’의 소설 ‘운명’을 평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썼다. “인간은 아무런 목적 없이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이며, 때문에 그에게 주어진 것은 무한한 자유다. 거기에 어디 운명 따위가 개입하랴?”
운명은 모든 이에게 개별적이며 고유하다. 운명에 관한 일반론은 그러므로 오류다. 문제는 운명을 말할 때의 상황에 대한 인식과 응전 방식일 것이다.
라울은 조심성 있고 믿음이 깊었다. 그러나 그에겐 아무리 해도 따라가지 못할 동급생이 있었다. 이름을 사울이라고 하던 이 인물은 ‘라울의 위에서 빛나는 운명의 별’이었다. 히브리적 풀이로, 신이 사랑하는 자는 사울이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른 후, 사울이 예수의 박해에 나섰다는 말을 들은 라울은, 예수의 고발에 동참하자는 대제사장의 요구를 거부하면서 이번엔 그를 따라잡을 것 같은 예감에 싸인다. 하지만 운명은 역시 매몰찼다. 사울은 다메섹으로 가다가 말에서 떨어졌고, 무슨 비늘인지가 눈에 씌었다가 사흘만에 떨어졌다고 했다. 이름을 바울로 바꾼 그는 라울을 찾아와 예수를 믿으라 권하고는 떠난다. 또 한 발 늦었구나, 한탄하던 라울은 다메섹에 가서 비참한 죽음을 맞았다. 후일 그의 죽음을 전해들은 바울이 차갑게 말한다. “옹기가 옹기쟁이더러 나는 왜 이렇게 못나게 빚었으냐고 불평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최인훈의 소설 ‘라울전’의 줄거리다.

운명은 불인(不仁)한 것이다. 그래도 받아들이면 안심입명을 얻고 받아들이지 못하면 팔열지옥에 든다. 운명을 극복한다는 말은 가상하지만 지혜롭지는 않다. 니체는 운명애를 말하면서, 인간 존재가 위대해지기 위한 공식은 필연을 견디는 것이라고 했다.
운명애란 무엇일까. 예를 들어, 전쟁을 만나면 전장에 가서 죽는 것 아니겠는가. 임진년 사월 부산포에 이른 왜군의 병선은 칠백 여척이었고 당장 상륙한 왜군은 일만팔천 명이 넘었다. 동래부사 송상현은 살려고 하지 않았다. 군민을 모아 힘써 싸우고 때가 되자 관복으로 갈아입고 북향사배 후 왜군의 칼에 죽는다.
운명은 품위와 위엄을 갖추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같은 날 경상좌병사 이각은 도망쳤다. 그는 죽어야 할 운명과 맞섰다. 살아서 후일을 도모해야 한다며 그가 자신에게 늘어놓은 변설은 그럴 듯했을 게다. 하지만 운명을 받아들이지 않은 대가로, 이각은 동래성 싸움을 그린 ‘동래부순절도’(보물 392호)의 한 귀퉁이에서 등을 보이며 도망치는 모습으로 남았다.

채근담은 전집 225장, 후집 134장으로 되어 있다. 후집의 마지막 장은 이렇다. “불교에서 말하는 수연(隨緣)과 우리 유교에서 말하는 소위(素位)의 네 글자는 곧 바다를 건너는 부낭이다. 대개 세상을 건너는 길이란 아득히 멀기에 오로지 한 생각 완전함을 구한다면 만 갈래 마음의 실마리가 어지러이 일어날 뿐이다.” 참 그렇다. “그러므로 처지에 따라 마음을 편히 먹으면 만족하지 못할 일이 없으리라.” 좀 모호하기는 하나 이 글귀의 대강의 뜻은, 그냥 자기가 놓인 처지에 따라 살라는 것이다. 불가의 인연법은 받아들여도 되고 아니더라도 할 수 없으니, 그것은 신앙의 문제다.

현실에서의 삶의 도리를 논하는 유학에서는,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하는가 싶어 분해 하거나 억울해 할 것이 없다는 것쯤 된다. 채근담이 원용한 ‘소위’의 출처라는 중용 14장은 이렇게 말한다. “군자는 처지에 따라 행할 뿐이요 그 처지 밖에서 뭔가를 바라지 않는다(君子素其位而行 不願乎其外). 오랑캐 땅에 있으면 오랑캐 땅에서 할 일을 하고 환난에 처하면 환난에서 할 일을 다하라.” 이것이 글 읽은 이의 운명을 보는 자세이리라.

윌리엄 어네스트 헨리는 그의 절창 “인빅터스”에서 이렇게 읊는다. “천국의 문이 아무리 좁아도/ 저승의 명부가 형벌로 가득 차 있다 해도/ 나는 내 운명의 주인이며/ 내 영혼의 선장이노라.”
장애를 가졌다던 그의 이 말, 가슴 떨리지 않는가. 하지만 혹시라도 운명과 싸우겠다는 뜻으로 자기를 정의했다면 그의 말은 따르기 어렵다. 운명에 맞서 싸워, 당신은 진다. 늘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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