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서울고등법원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등 청구소송 파기 환송심에서 피해자 4명에게 각 1억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했고, 부산고등법원도 미쓰비시중공업이 피해자 5명의 유족에게 각 8천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했다.


이는 작년 5월 대법원이 식민 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로 인한 개인의 손해배상청구권이 한일청구권 협정에 포함됐다고 보기 어렵고, 소멸시효 항변 또한 신의칙에 반한다는 등의 이유로 이들의 손해배상책임 등을 인정하는 취지로 사건을 파기 환송한데 따른 것이다.


대한변협은 지난 10여년 간 일제피해자특위 등을 구성해 피해자들에게 법리적·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기에 이번 판결을 적극 환영하고, 이를 계기로 관련 일본 기업들이 재상고를 포기함과 동시에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길 촉구한 바 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우리 법원의 배상 판결을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고, 신일철주금은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에 불복해 재상고장을 접수했다. 미쓰비시중공업도 재상고를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 정부의 반발과 일제 전범 기업의 재상고를 보면서 우리는 유감을 넘어 커다란 실망감을 금할 수 없다.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 취지에 따른 하급심판결에 대하여 재상고를 한다는 것은 사실상 배상을 거부하면서 시간을 끌어보자는 꼼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독일의 경우 2000년 7월 ‘기억, 책임 및 미래 재단’ 설립을 위한 법률을 제정하고, 정부와 기업이 약 8조원을 모아 재단을 설립하는 등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치 정권에 의한 강제노동 피해자에게 책임을 지고 있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피해자들은 14년에 걸친 소송 도중 모두 사망했다. 그렇기에 관련 기업들은 생존 피해자들이 살아 있는 동안 이들에게 정의를 돌려주고,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사죄를 해야 한다. 그것이 한국과 진정한 화해를 하는 길이다.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