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마당에 책가방이 널부러졌다. 화가 나신 아버지는 안방으로 들어가시고 나는 그저 고개를 숙인 채 난감했다. 뭔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이 정말 잘못인지는 확신이 없었다. 지금 생각하니 정말 아버지는 아득하셨으리라. 책 대신 조각칼과 끌을 넣어가지고 다니는 아들이 얼마나 못미더우셨을까. 당신의 꿈과 희망이 무너지는 듯했을 테니…. 조각가가 되고 싶었던 소년은 법대에 진학해 변호사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국회운영위원회 및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는 국회의원이 되었다. 도대체 무슨 끈이 조각가의 꿈과 변호사, 국회의원을 엮어준 것일까?
부리부리한 눈매에 건장한 체격이다 보니 감성과는 먼 사람으로 치부되기 일쑤다. 게다가 나는 법조인으로서, 그리고 정부 정책을 질타하고 주요 현안에 대해 여당과 마찰을 풀어나가는 국회의원으로서 이성적이어야만 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감성적인 사람으로서 나는 약간 억울하다. 인간만사에는 감성이 필수인 법. 즉흥적인 감정과 감상이 아니라 변치 않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밑바탕이 되는 감성이 없다면 인간지사를 해결해 나가기 힘들다는 것을 그간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의 감성은 약간 투박하게 표현되는 편이다 보니 변호사로 활동할 때 열혈변호사로 소문이 나기도 했다. 변호사로서 가장 큰 보람을 느꼈던 전주 금암2파출소 경찰관 피살 사건을 맡았을 때의 일이다. 경찰은 절도혐의로 구속된 20대 청년 3명을 경찰관 살해 용의자로 지목했다. 음식물을 훔쳐 먹다 잡혔지만 사실상 살인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었다. 명백한 별건구속이었다. 위법한 일이었다. 사건을 맡고 피의자를 접견해 보니 피의자는 조금만 다그치면 묻는 사람의 질문의도에 맞게 순순히 대답하는 사람이었다. 이렇듯 피의자의 자백도 신빙성이 전혀 없었다.
게다가 탈취당한 총기, 살해 시 사용한 칼, 피 뭍은 옷 등 결정적 증거는 하나도 없고 오히려 반대 정황만이 수없이 많은 사건이었다. 연일 신문지상을 장식하며 많은 공방이 오갔지만 핵심은 절도로 구속한 것에 대해 살인죄로 기소할 수 있느냐는 점, 피고인들이 살인사건의 수사에 있어서 상당한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결국 피고인들은 절도죄에 대한 재판만 받고 집행유예를 받아 모두 석방되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가혹수사의 정황이 인정된다고 결정했고, 수사관계자 9명은 도리어 검찰 수사를 받게 되었다. 공권력으로부터 인권을 지켜낸, 변호사로서의 본분에 충실했던 뿌듯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법조인들의 숙명적인 화두, 정의란 무엇인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대변하는 것, 그것이 변호사의 정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정의감을 가진 변호사로 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자부한다.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고엽제 환자 유족에 대한 교육과 취업지원 등을 환자의 사망시기에 따라 다르게 규정한 조항에 대해 결정을 이끌어 냈고 2011년 헌법재판소 모범국선대리인 표창을 받게 되었다. 상을 받는다는 것은 나이가 들었어도 여전히 쑥스럽기도, 자랑스럽기도 한 경험이었다. 돈이 없어 변호인 선임을 하기 어려운 이들, 그들이 헌법이 정한 취지에 비추어 소외되는 사람이 없도록 했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꼈다. 함께 수상한 세분의 변호사와 헤어지며 오른팔을 들고 파이팅하며 서로를 격려했다. 마음이 뜨거웠다.
이와 같은 굵직한 사건들 외에도 지역에 기반을 둔 법조인이기 때문에 접하게 되는 안타까운 사연은 한둘이 아니었다.
그리고 사연이 다가 아니었다. 고령화로 인한 농촌의 동력 감소, 농산촌의 귀농과 교육문제, 농산물 유통의 문제 등 농촌 사회의 구조적, 정책적 문제가 안타까운 사연의 본질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고향을 지키는 어르신들을 위해 국가와 사회가 효도해야 하고, 젊은이들이 자식의 교육걱정 없이 땀흘린 만큼의 대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며, 농사가 도박이 아닌 생업이 되게 해 줄 유통구조의 혁신 등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일을 나의 열정과 뚝심으로 조금씩 해나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오만함이 아니라 어려운 길을 같이 헤쳐 온 이들의 지지 덕분에 갖게 된 자신감이었다.
되돌아보니 나의 감성은 조각가의 꿈으로, 변호사로서 약자와 인권을 보호하는 정의감으로, 국회의원으로서 국가의 발전과 국민생활의 안정을 추구하는 사명감으로 나를 이끌어 온 원동력이었다.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