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관예우논란 말레이시아도 마찬가지

연방대법원 방문이 가장 기억에 남게 된 또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연방대법원장 접견 대기실에서 읽던 신문(The Sun Daily 2013년 7월 1일자) 1면에서 ‘STAY OUT(법정 밖에 있으시오!)’라는 헤드라인의 ‘말레이시아판 전관예우 근절방안’에 관한 기사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요지는 “퇴임한 법관이 로펌의 고문으로 활동할 수는 있지만, 사건의 변론을 위하여 법정에 출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고, 말레이시아 변협은 이러한 불문율적 관행을 윤리규정으로 명문화할 것을 요청한다는 것이었다.
전관예우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말레이시아 변협은 퇴임한 법관이 법정에 나가는 것을 부적절한 변론행위(improper practice)라고 규정하면서 이럴 경우 퇴임 법관이 사건에서 유리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후배인 법관과 상대방 변호사까지 당황스럽게 할 수 있기 때문에 금지되어야 한다고 했다.
덧붙여 말레이시아 헌법과 인권 센터의 코디네이터도 퇴임법관의 법정 출석을 금지시키되, 허용하더라도 퇴임 후 5년 내지 10년의 법정출입금지기간(cooling-off period)을 두어야 한다는 대안까지 제시하였다. 기사에서 말레이시아 변협 크리스토퍼 렁 회장이 “영국에서는 법관 출신 변호사가 퇴임 후 법정에 출석하는 것이 엄격히 금지된다”는 말을 한 것을 보면, 전관예우와 그 금지규정은 글로벌한 현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했다.

양국 청년 변호사의 현재와 미래를 위한 첫 걸음을 떼다

공식일정 마지막 날인 7월 5일 오후, 변협 대표단은 말레이시아 변협에서 ‘청년 변호사의 현재와 미래’라는 주제를 가지고 조인트 포럼을 열었다.
앳된 얼굴의 쿠알라룸푸르 청년변호사회 빈스 총 변호사가 사회를 하고, 대한변협을 대표해서 대변인인 내가 로스쿨 제도 도입으로 인한 청년 법조인의 급증 추세와 그에 따른 청년 변호사의 어려움 및 변협과 젊은 변호사들의 극복 노력 등에 관하여 발표했고, 말레이시아 변협을 대표해서 대변인인 케네스 림 변호사가 말레이시아 변호사 사회에서의 청년변호사에 대한 부정적 인식 및 이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 등에 관한 프리젠테이션을 했다.
발표가 끝난 후 질의응답 시간에 양국 변호사들의 다양하고 기탄없는 질문과 답변이 있었고, 이를 통해서 두 나라의 법조계가 처한 현실을 상세히 이해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국제행사에 공식적인 프리젠테이션을 하게 된 점에서 영광이었고, 페이스북을 통해 연락을 주고 받던 데릭 변호사를 직접 만날 수 있었던 것도 크나큰 즐거움이 었다.
그 자리에서 양국 변협 대표인 위철환 협회장과 렁 회장은 이번 방문행사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대한변협-말레이시아 변협 MOU를 갱신하고, 양국 변협이 법률 문화 교류, 법률 정보 교환, 상호 방문, 행사 공동 주최 등에 관한 협력을 증진시키기로 합의했다. 나아가 구체적 실행 방안으로 두 협회는 2014년부터 양국의 청년 변호사 교환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실시하기로 하면서 이를 추진하기 위한 실무 담당자를 지정하는 등 구체적인 실행 계획까지 논의하였다. 이번 방문 행사기간 중 가장 큰 성과 중의 하나로 평가된다.

“한국은 위대한 나라입니다”

3박4일 일정 중 쿠알라룸푸르 중재센터(KLRCA)를 방문한 것도 크게 인상적이 었다. 아시아태평양지역 중재단체 회장이자 KLRCA의 디렉터인 다뚝 라주 교수는 한국에서 학생을 가르친 경력이 있을 정도로 지한파 법조인이었다.
그는 변협임원단에게 “대한민국은 위대한 나라이다”라는 말을 하면서, 자신이 한국에서 경험한 한 가지 일화를 이야기 했다. 한국에서 교수로 있을 때, 길을 가던 택시 운전자가 갑자기 차를 멈추더니 공공 화장실에 들어가더란 것이다. 근처에 경찰도 없던 상황에서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택시기사가 주차한 차량에 돌아왔는데, 그동안 택시에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고 했다. 그게 대한민국이 위대한 이유라고 했다. 라주 교수는 한국의 법치주의와 한국인의 정직성, 그러니까 한국의 소프트 파워에 대하여 이야기 한 것이었다.
20~30년 전, 유럽이나 일본을 다녀온 분들이 여행 중 지갑을 분실했는데, 몇 시간이 지나서 현장에 가 보았더니 물건이 그대로 있었다면서 “역시 선진국은 다르더라”는 칭찬을 하던 기억이 퍼뜩 떠올랐다. 적어도 동남아시아인들의 뇌리에 한국의 존재가 삼성이나 현대차와 같은 하드웨어 강국을 넘어 한류나 한국인의 품성과 같은 문화 선진국이라는 감각이 심어져 있다는 사실에 가슴 뿌듯함을 느꼈다. 그것이 이번 교류회에서 내가 찾은 진정한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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