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사건의 경위
(주)문화방송(MBC)은 2009년 5월경부터 주 2회 총 62회로 ‘선덕여왕’이라는 제목의 드라마를 제작하여 최고 43.6%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등 인기리에 방송된 바 있다. 그런데 2010년 1월경에 선덕여왕을 주인공으로 하는 뮤지컬 대본 ‘무궁화의 여왕’의 저작자인 원고 A가 이 드라마가 자신의 대본을 표절하였다고 주장하면서, MBC와 드라마 작가 B, C를 상대로 하여 저작권침해를 원인으로 하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였다.
이 사건의 쟁점은 첫째로 저작권침해의 문제로서, 드라마 작가인 B와 C가 드라마 대본을 집필하면서 원고 A의 대본에 의거하였는지(주관적 요건의 충족 여부)와 드라마 선덕여왕과 뮤지컬 무궁화의 여왕이 실질적으로 유사한지(객관적 요건의 충족 여부), 둘째로 일반 불법행위의 문제로서 원고 대본의 핵심구성을 허락 없이 무단이용한 것에 대하여 불법행위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여부이다.
1심인 서울남부지방법원은 2012. 2. 2. 선고 2010가합1884 판결에서 저작권침해와 아이디어 무단이용에 관한 책임을 모두 부정하였다. 그러나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 2012나17150(이하 ‘대상판결’이라 줄임)에서는 1심과는 정반대로 저작권침해와 일반 불법행위 책임 모두를 인정하였다. 이하에서는 위 쟁점들 중 주관적 요건(의거성) 부분과 일반 불법행위 부분에 대하여 간단하게 검토해 보기로 한다(대상 고등법원 판결 및 그 원심판결에 관한 상세한 논의는, 정상조, ‘상이한 문예 장르 간의 표절, - 서울남부지법 2010가합1884 판결에 대한 비판적 검토’, Law & Technology, 서울대학교 기술과법센터, 제8권 제4호, 3면; 오승종, ‘극적 저작물(dramatic works)에 있어서의 표절 판단’, 산업재산권, 2013. 4, 제40호, 한국산업재산권법학회, 137면 각 참조)

Ⅱ. 주관적 요건(의거성)과 관련하여
1. 의거성의 판단 기준
저작권침해의 주관적 요건인 의거관계는 피고 저작물이 원고 저작물에 의거하여 작성되었다는 것이 직접 인정되지 않더라도 원고 저작물에 대한 접근가능성과 양 저작물 사이의 유사성 등의 간접사실이 인정되면 추정될 수 있다(대법원 2007. 12. 13. 선고 2005다35707 판결 등). 이러한 간접사실로서는 보통 (1)피고의 원고 저작물에 대한 접근(access) 가능성과 원·피고 양 저작물 사이의 유사성 또는 (2) 양 저작물 사이에 의거하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는 ‘현저한 유사성(striking similarity)’이 존재하는지 여부를 들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접근 가능성이 있었던 정도로는 접근에 대한 ‘상당한 기회’를 가졌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판례의 일반적인 경향이다. 일본과 우리나라 대부분의 학설이나 판례가 미국법의 access라는 용어를 ‘접근’이라는 용어로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지만, 원래 이는 피고가 원고의 저작물에 가까이 접근하였다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실제로 감상할 수 있는 상태에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의미상 ‘approach’에 해당하는 ‘접근’보다는 원래의 의미인 ‘access’에 맞게 ‘접속’이라는 용어가 더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면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상당한 기회’ 또는 ‘상당한 가능성’이란 피고가 원고의 작품을 보거나 복제할 수 있는 합리적인 기회가 있는 경우, 즉 합리적인 가능성이 있는 경우를 의미하므로, 이에 미치지 못하는 미미한 가능성이나 의심만으로는 의거관계가 추정될 수 없다.
우리 대법원은 “피고의 접근가능성의 요건은 피고가 반드시 원고의 저작물에 접해서 현실적으로 읽거나 보거나 들은 경우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피고가 원고의 저작물을 알고 있어서 그에 접근할 수 있는 ‘구체적’인 가능성이 있으면 충족된다”고 판시하여 접근가능성이 인정되기 위해서 반드시 저작물을 현실적으로 감상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구체적’인 가능성이 존재하여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한 바 있다.

2. 대상판결의 판단
대상판결은 객관적 요건인 실질적 유사성 판단을 위한 자료에는 저작권의 보호대상이 아닌 ‘아이디어’나 ‘주제’가 포함될 수 없으나, 주관적 요건인 의거관계를 인정하는 데 필요한 유사성 판단을 위한 자료에는 ‘아이디어’나 ‘주제’가 포함될 수 있다고 판시하고 있다. 이는 국내외 학설과 판례의 주된 흐름과 궤를 같이 하는 것으로서 법리적으로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대상판결은, 이 사건 대본과 드라마는 모두 역사적 사실로부터 유추하기 매우 어려운 원고의 독창적인 창작의 산물이라 할 수 있는 역사적 오류를 포함할 뿐만 아니라, 주제, 인물의 성격과 역할, 인물 사이의 관계, 줄거리, 구성 등에서 유사성이 인정되는바, 이러한 유사성은 우연의 일치나 공통의 소재만으로는 설명되기 어렵고 오직 이 사건 드라마가 이 사건 대본에 의거한 것에 의해서만 설명될 수 있을 정도의 유사성이라고 판시하고 있다. 이에 비추어 보면 대상판결은 위에서 든 (1)과 (2)의 간접사실 중 두 번째, ‘현저한 유사성’이 존재함을 근거로 하여 주관적 요건인 의거성을 추정한 것으로 보인다.
의거관계를 추정케 하는 ‘현저한 유사성’은 양 저작물의 플롯, 테마, 대화, 분위기, 세팅, 줄거리와 구성, 사건의 전개, 인물의 성격과 역할, 인물 사이의 관계 등의 다소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부분에서 찾아지기보다는,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대화나 장면묘사 등에 있어서 나타나는 특수한 부분, 전형적으로는 ‘공통의 오류’나 ‘공통의 미적 오류’ 등에서 찾아지는 것이 보통이다. 왜냐하면 극적 저작물의 추상적인 요소들, 예를 들어 주제, 인물의 성격과 역할, 인물 사이의 관계, 줄거리, 구성 등은 일반적인 성격이 강한 까닭에, 이러한 것들에 있어서의 유사성이 있다고 하여 그 유사성이 우연의 일치나 공통의 소재 등으로는 설명될 수 없고, 오직 피고의 저작물이 원고의 저작물에 의거한 것에 의해서만 설명될 수 있을 정도의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관하여 대상판결과 원심이 각각 다른 판단을 하고 있다. 기존의 사례에서 현저한 유사성을 인정하거나 부정한 판례들에 비추어 볼 때 대상판결이 적시하고 있는 요소들과 관련하여 원고 대본과 피고 드라마 사이에 ‘오직’ 후자가 전자에 의거한 것에 의해서만 설명될 수 있을 정도의 유사성이 존재하는지는 여부에 관한 관점이 달랐기 때문으로 보인다.
기존의 판례를 보면, ‘야망의 도시’라는 제목의 원고 시나리오와 ‘유산’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된 피고의 텔레비전 드라마 사이의 저작권 침해 여부가 문제로 된 사건(서울고등법원 1995. 6. 22. 선고 94나8954 판결)에서 법원은, “두 저작물 사이에는 사건의 기본 골격, 주제, 시대배경 및 주무대 등에 있어서 동일 또는 유사한 면이 있고, 두 저작물 모두에 다소 극의 전개와 어울리지 않거나 우리의 현실과 맞지 아니한 점이 없지 아니하나…”라고 언급하고 있는데, 이러한 판시는 원고와 피고 두 저작물 사이에 공통으로 존재하는 ‘미적 오류’에 대하여 착안하고 있는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이 판결은 이러한 미적 오류는 두 작가가 겪은 우리나라의 시대상황과 두 저작물의 시대배경의 동일성, 극적동기 구성의 일치, 한국적 기업풍토의 도식적 면면의 공통성, 추리기법 동원의 동일성, 젊은이들의 비슷한 언어행동과 세계관 등 동일 내지 유사한 작의로서 구상 전개되어진 두 저작물간의 공통점 등이 중첩되어 짐으로써 빚어진 우연의 일치로 볼 여지가 있다고 하여 저작권침해를 부정하고 있다.

Ⅲ. 일반 불법행위의 성립 여부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저작물성이 없거나 저작권침해의 요건을 갖추지 못하여 저작권법에 의한 보호가 주어지지 못하는 경우에 민법 제750조의 일반 불법행위 법리를 적용하여 손해배상을 인정하는 한편, 더 나아가서는 금지청구까지를 인정하는 판결이 종종 나타나고 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07. 6. 21. 선고 2007가합16095 판결; 서울중앙지방법원 2008. 11. 14. 선고 2007가단70153 판결). 저작권법상으로 보호요건을 갖추지 못하여 위법성이 인정되지 않는 행위에 대하여 민법상의 불법행위를 인정하는 것은 일반 국민의 법에 대한 신뢰를 해칠 수 있으므로 법리적인 측면만 아니라, 법적 예측가능성 및 법적 안정성 등 법정책적인 면까지를 신중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개별 지적재산법에서 보호하지 않는 정보는 이른바 ‘공유의 영역(public domain)’에 있는 것으로서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는 근본 원칙에 대한 신뢰를 해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되지 않는 정보나 아이디어, 표현 등은 설사 그것이 재산적 가치를 갖는다고 하더라도 자유로운 모방과 이용이 가능하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따라서 그러한 모방이나 이용행위에 대하여 일반 민법에 따른 불법행위를 인정하는 것은, 그 모방 또는 이용행위가 공정한 거래질서 및 자유로운 경쟁질서에 비추어 정당화 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 한정되어야 할 것이다. 이때 그 ‘특별한 사정’이 무엇인가에 관하여서는, 그 정보의 이용행위를 민법상의 불법행위 법리에 의하여 보호해 주지 않으면 그 정보 작성자에게 인센티브의 부족이 발생하는 명백한 경우에 한정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 지금까지 나타난 학설상의 대체적인 견해이다(박성호, ‘지적재산법의 비침해행위와 일반불법행위’, 정보법학, 제15권 제1호(2011), 203면). 
 
Ⅳ. 맺으며
저작재산권 침해의 주관적 요건인 의거성은 직접증거보다는 주로 사건 전후의 정황 등 간접사실에 의한 추정의 방식으로 입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재판부가 가지고 있는 경험칙이나 주관적 판단 등에 의하여 결론이 좌우될 여지가 많은 부분이다. 이 사건에서도 원심과 대상판결은 같은 요소에 대하여 거의 동일한 사실관계를 인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반된 결론에 이르고 있다. 최종심인 대법원에서의 판단이 주목되는 부분이다.
또한 지적재산권침해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에 일반 불법행위로서의 성립을 인정하는 것은 가급적 제한된 경우, 예를 들어 창작자에게 돌아가야 할 인센티브에 간과할 수 없는 악영향이 초래될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한하여야 한다는 것이 대체적인 견해인데, 이에 관하여 대법원에서 어떠한 결론을 내릴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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