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은 친구들과 함께 커오면서, 나이에 따라 대략 다음과 같은 화제를 주로 이야기했던 것 같다. 즉, 10대에는 대학과 성적(成績) 이야기, 20대에는 여자 친구와 취직 이야기, 30대에는 결혼생활과 직장(월급) 이야기, 40대에 들어서는 아이들 교육 이야기와 재(財)테크 이야기.
‘도전과 응전의 역사’는 인생에서도 마찬가지인가? 누구는 삶은 고해(苦海)라고 하고, 누구는 ‘인생은 아름답다’고도 한다. 인생에 관하여 각각의 시각에서 정리한 문장들은 모두 다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있고, 편면적이지만 인생의 진실을 엿보게 한다. 앞서 10년 단위로 화제가 되었던 화두들을 거시하였던바, 이 화두들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살면서 필수적으로 고민하여 스스로 해답을 내어야 하는 과제임이 틀림없다.
2010년 초에 이사를 하면서 짐을 정리하다가 결혼사진의 처리를 두고 집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새로 이사한 아파트에는 사진과 액자를 걸어 둘 후보지가 두세군데 있었다. 그 중 메인이 되는 곳은 단연 거실 TV 위 넓은 자리였고, 안방 화장대 옆 자리와 거실의 복도가 주요한 자리로 압축되었다. 당시는 결혼을 하고 8년쯤 지난 때였고, 딸과 아들이 순차 태어나 식구가 두 명 늘어나서 가족사진이 새로이 촬영된 바 있었다. 그러므로, 집사람과 나의 결혼사진은 거의 아무런 저항도 없이 가장 요충지를 가족사진에게 양보하여야 했다.
그러자 결혼사진이 문제로 대두되었다. 이사하기 전에는 집안의 한가운데에 매일 걸려 있었던 사진 아닌가? 하지만 매일 걸려 있는 결혼사진에 주인은 큰 신경을 안 썼다. 그리고 막상 이사를 한 후에 다시 자리를 잡아 걸어 놓으려니 다소 민망한 마음이 들었다. 세월이 흘러 더 이상 신혼이 아니게 된 것이다. 주인이 그간 결혼사진을 걸어놓고 신경을 쓰지 않았고 사실상 방치해 왔다고 해도, 아예 안 걸어 두겠다고 결정하는 것은 아무래도 좀 허전하다. 만일 결혼사진이 벽에 게시되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퇴장하게 된다면 그길로 결혼사진은 다시는 햇빛을 보지 못하는 처지로 전락하게 되는 것 아닌가?
집사람과 나는 1997년 11월쯤에 만났다. 당시 집사람은 약대를 졸업하고 모 제약회사에 근무하고 있었고, 나는 1998년 봄에 실시될 1차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고시생이었다. 나는 시험이 몇 개월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간 크게도 소개팅 자리에 나섰고, 그날 이후 사귀는 사이로 발전하게 되었다. 1998년 1차 시험을 합격하고 그 기쁨을 함께 나누었고, 1999년 2차 시험을 낙방하면서 내 개인적으로는 어느 정도 풍파를 겪기도 했다. 2차 시험에 낙방한 후 군대에 입대를 하려고 마음을 먹었더니, 지금의 장인께서 우리 두 사람이 사귀는 것을 극구 반대하기도 했었다(당시에는 좀 섭섭했지만 지금은 이해한다. 큰딸이 장래가 불투명한 사람에게 시집가는 것은 나라도 말릴 일이다). 한편, 내가 2000년에 고시에 합격해서 업그레이드(up-grade)되자 반대로 우리집에서 두 사람이 만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주변에서 ‘열쇠 3개’니 하는 말들이 나온 모양이다.
집사람은 신림동 고시학원의 학원비를 자기 카드로 긁어주기도 했을 만큼 내가 고시에 합격할 것을 굳게 믿어주었다. 당시 집사람은 나와 사귀는 대신에 ‘사회에서 자리 잡은’ 사람과 만나서 편하게 살 수도 있었을 것이나, 그러지 않았다. 이게 인연이긴 했나보다. 해서, 연수원 시절에 나에게는 집사람과의 결혼 문제가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때 함께 했던 동료들은 모두 다 기억하고 있으리라. 뾰족한 이유가 없는 집안의 반대 아닌 반대는 수많은 번민과 불면의 밤을 보내게 했다. 그러므로 이 모든 과정을 거친 후 영광스럽게 얻게 된 결혼사진은 쉽게 창고로 퇴장할 수 없는 진귀한 보물이었다.
하지만, 가족사진에게 결혼사진은 메인의 자리를 내어주어야만 했다. 그 이유는 바로 다름 아닌 세월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뀌는 것은 부득이한 일이다. 부모님의 집 메인 자리에는 손자들의 사진이 게시되어 있다. 결혼식 사진은 그 자리를 가족사진에게 양보하고, 가족사진은 자녀의 결혼식 사진에게 그 자리를 이양하고, 자녀의 결혼식 사진은 손자들의 사진으로 대체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자. 그러면 제목에 대한 답을 내어보자. 결혼사진은 ‘이제는 떼어 내도 되겠다고 마음을 먹게 될 때’ 떼어 내도 된다는 설(주관설), ‘객관적으로 떼어내도 되는 시기가 도래했을 때’ 떼도 된다는 설(객관설), ‘어느 정도 세월이 흐름을 전제로, 부부가 떼어도 된다고 합의한 경우’ 떼면 된다(절충설)는 각 학설이 있을 수 있겠다. 본인은 절충설을 취해 결혼식 사진을 서브 메인(sub-main)의 자리인 안방 화장대 옆에 게시하기로 결정했다.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