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철이 다 지나가는데 뜸금없이 여름휴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최장기간의 장마가 끝나고 늦더위가 이제 본격적으로 기승을 부릴 것 같아서이기도 하지만, 편집인이 항상 신문이야기, 협회이야기만 할 것이 아니라 ‘잘 노는 이야기’를 하더라도 이 더운 날에는 충분히 용서될 것 같아서 한번 시도해 본다.
나는 유럽 그중에서도 영국에서 2년을 살았다. 따라서 보통사람보다는 유럽을 많이 돌아다녔다. 그렇지만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는 가보지 못했다. 그곳은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이 된 도시이고, 모차르트가 살아 숨쉬는 곳이다. 그 당시 그곳에 가보지 못하고 귀국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런데 작년부터 나는 단돈 5만원에 잘츠부르크를 매번 너무나 행복하게 즐기고 있다. 그것을 우리 협회의 회원과 우리 신문의 독자와 나누고 싶어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내가 부러워하는 사람이 한명 있다. 정신과 의사 박종호 선생이다. 사실 정신과 의사라기 보다는 오페라 전문가, 클래식 음반 판매점 풍월당의 대표로 더 유명한 분이다. 이분의 글을 읽다보니, 자신은 갑작스럽게 유럽의 오페라를 보고 싶으면 마치 신들린 사람처럼 모든 일정을 접고 비행기를 예약해서 오페라 공연이 펼쳐지는 브레겐츠, 베로나, 밀라노로 날아간다는 것이다.
참내…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생각하면서 처음에는 뻥이겠지 하다가 나중에 실제 그렇게 사는 것을 보고 정말로 부러웠다. 한편에서는 이런 시기심으로 위안을 하였다. ‘저렇게 방랑벽이 있으니 평범하게는 못살꺼야! 저런 남자랑 어떤 여자가 잘 살 수 있겠어.’ 이렇듯 남자들에게는 아이같은 구석이 있다. 나도 그랬다.
그런데 요즘 나는 마누라에게 욕먹을 필요가 없이 박종호 선생과 똑같은 호사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자! 이제 뜸들이지 말고 해답을 공개하자. 매년 7월 말부터 8월중순까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그곳에서 개최된다. 그리고 이것은 메가박스 영화관을 통하여 우리나라 극장에서 일종에 생중계된다. 올해 예를 들자. 나는 지난 8월 3일 토요일 저녁 6시부터 5시간 동안 코엑스 메가박스에 가서 바그너의 ‘뉘른베르크의 명가수’라는 오페라 공연을 봤다. 잘츠부르크 사람들과 시차정도의 시간차만 두고 말이다. 솔직히 이것을 본 것은 실수다. 바그너 오페라가 어렵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5시간이나 할 줄 몰랐다. 5시간을 극장에 앉아있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그 다음날인 4일에는 조금 쉬운 베르디의 마지막 희극오페라 ‘팔스타프’를 이번에는 고속버스터미널 센트럴시티 메가박스에서 봤다. 역시 나는 아직 베르디 수준이었다. 훨씬 편하고 좋았다.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다. 축구경기가 생중계 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이제 놀랍지 않은 일이 되었지만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한국에 생중계되고,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에서 공연되는 오페라가 메가박스를 통하여 한달에 한번 정도 똑같이 영화처럼 상영되어 우리가 본토느낌 그대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쇳덩이보다 더 무거운 비행기가 하늘 위로 떠오를 때 느끼는 경외감과 비슷한 기적을 나는 체험한다. 그것도 일반 영화값 1만원보다는 3배 정도 비싸지만 생각하면 단돈 3만원 정도에 관람할 수 있다는 것이 말이다. 팝콘을 사먹고, 주차료를 계산해도 두당 5만원이면 충분하다. 영화값이랑 비교하면 이것도 부담이지만 박종호 선생처럼 직접 가서 보려면 왕복 비행기값, 비싼 공연관람료, 숙박비, 식비, 기타 등등을 생각하면 내 생각에는 두당 500만원은 있어야 할 것 같으니 정말 착한 가격이다. 그런데 우리는 약간의 상상력과 이 극장정보를 이용하여 매년 여름에는 유럽의 정신적인 귀족들처럼 팝콘을 먹으면서 영화 보듯이 오페라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아름다운 기적임에 틀림없다.
문제는 그것을 내가 즐길 정신적인 여유가 있는가, 대중예술이 범람하는 현대사회에서 조금은 고양된, 절제된 클래식 문화에 대한 관심과 이해, 애정이 있는지의 문제일 따름이다. 물론 재미없더라도 허영심만으로도 한번은 체험을 권한다. 그리고 나는 대한변협신문을 읽어낼 정도의 인내심과 진지함이 있는 독자라면 충분히 메가박스에서 영화뿐만 아니라 오페라도 즐길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내가 믿는 그대들이여, 이번 여름에 아니면 내년 여름에 서울복판에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을 강추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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