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개그 프로그램 가운데 전화사기를 패러디 한 것이 있다. 내 계좌 비밀번호가 유출이 되었다고 하면서 은행으로 유도한 뒤 불법 송금을 유도하거나 가족 가운데 한 사람이 갑자기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다면서 돈을 입금하라는 것인데 나와 관련된 정보를 줄줄이 꿰고 있으면 순간 깜빡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기를 당했다는 기사를 볼 때는 누가 속나 싶었는데 개그 프로를 보다보니 ‘아, 저럴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나에 대한 약간의 정보만 알아도 신기하고 그럴 듯해서 속아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멀리서 예를 찾을 필요도 없다. 당장 나하고 매일 얼굴을 마주치는 교수님들 가운데도 여럿이 당한 경우가 있는데 바로 퇴직 시 받는 연금 사기였으니 수많은 교수들이 고수익 보장에 깜빡 넘어갔다. 교수를 위한 연금 프로그램이라고 하고 교수실로 두툼한 안내문이 배달되니 다들 속을 수밖에. 나처럼 뭐든 자세히 보기 귀찮아하는 사람은 안 걸려들었지만 꼼꼼한 분들은 완전 당했다.
장황하게 사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사기는 아니지만 하도 의료와 관련해서 국민들이 오해를 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드리는 말이다. 종종 치료 결과에 대해 불만을 말하는 환자 가운데는 “상식적으로 이게 말이 되나요?”라는 말을 하는 분들이 있다. 나의 의학적 상식으로는 아니지만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오해할 수도 있겠구나 싶다. 그러고 보니 말도 안 되는 치료법에 속는 환자들이 왜 생기나 했더니 바로 모든 사기가 그렇듯이 그럴듯한 이야기에 바탕을 둔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의학은 상식이 아닌데 말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경우다. 아주 어린 2세경의 아이들 가운데 소위 말하는 O자형 다리를 나타내는 아이들이 있고 이를 교정하기 위한 교정 치료를 권하는 사람이 있다. 치료에 사용되는 교정기가 수백만원 하는데 아이들의 휜 다리를 보면 부모로서는 생각해 볼 여유가 없이 사게 된다. 이미 그 치료기의 효험을 본 많은 부모들의 경험담을 근거로 믿고 사는 것이다. 다행히 몇 번 사용하지도 않았는데 아이의 휜 다리는 어느 덧 교정이 되었으니 석연치 않지만 뭐라 할 말은 없다. 무엇이 잘못일까? 방금 태어난 아이들의 다리는 방향을 안으로 향하고 있다. 엄마 배 안에서 웅크리고 있기에는 다리가 쩍 벌어지기보다는 오므라져 있는 것이 유리해서 인듯하다. 출생 직후에는 걷기 전이니 아이의 다리가 안으로 휘어 있는 것을 잘 모르다가 돌이 지나고 걷기 시작하면 엄마의 눈에 이상함이 보인다. 어른 다리하고 다른 O자형 다리에 엄마는 놀라고 인터넷을 뒤져서 교정으로 이름난 곳을 찾는다. 아이의 다리가 대개 6세 무렵이 되면 성인의 다리처럼 약간 밖으로 향하게 된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다리는 비틀리면서 자란다는 것을 알 리가 없다. 아주 어려서 안쪽을 향하던 다리가 세월이 흐르면서 어른처럼 밖을 향하게 되는 이치를 아는 사람이라면 대부분의 아이들의 다리는 자연적으로 교정(?)될 수밖에 없음을 알 것이고 그러니 무엇을 해도 당당하게 자신할 수 있는데 이때 권하는 교정기란 것이 아이의 다리에 채워서 다리가 돌아가지 않게 잡아주는 것이다. 잘 때 해주라는 것인데 문제는 아이들이 이 교정기를 차고 자려 들지 않기 때문에 어지간한 엄마들도 몇 번 채워보지 못할 것이다. 그런들 어쩌랴. 아이의 다리는 훌륭하게 교정된 것을. 원래 그렇게 된 것인지 교정기 덕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
주변에서 어디가 아픈데 어떤 치료를 하라고 권유받았다는 것 가운데 드물지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치료법들이 있다. 최근에도 아주 젊은 아는 여성분이 말하기를 자신의 무릎이 노인의 무릎에 가까운 관절염이 있다고 하면서 충격파 치료를 권유 받았다고 하는데 도무지 믿기 어려운 이런 말들을 환자는 쉽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무릎이 아프고 아프면 제일 먼저 떠 올리는 것이 관절염이고 의사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아픈 원인을 그럴듯하게 설명하고 치료법도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것이니 믿을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 사실 그 사람의 무릎은 너무도 멀쩡하고 단지 일시적으로 무리를 해서 아팠을 뿐이다.
의료는 상식이 아닌 경우가 많다. 변호사들이니 이해를 잘 하시리라 본다. 의뢰인들이 상식이라면서 주장하는 것 가운데 얼마나 많은 일들이 법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지를 말이다. 재미있는 것은 변호사들도 법이 아닌 의료에서는 깜빡 잘도 속더라는 것이다. 내 몸은 중한데다가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일에 전문가가 아니니 그런가 보다. 세상은 상식으로 되는 게 의외로 많지 않다. 사기는 진실보다 더 그럴싸한 것이다. 의료에서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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