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11.1.13. 선고 2008다88337 판결

1. 사실관계의 요약
가. 피고(개설은행)는 수익자(수출자)를 보리스로 하여 취소불능 수입신용장인 이 사건 신용장을 개설하였고, 그런데 이 사건 신용장은 그 선적서류를 어느 은행이든 매입이 가능한 자유매입 신용장이었으며, 개설은행은 신용장대급의 지급에 필요한 서류로 상업송장 및 선하증권을 요구하면서 그 추가적인 조건에서 ‘매입은행이 선적서류의 매입시점에 선하증권 원본을 제시할 수 없는 경우에는 선하증권 대신 수익자가 발행한 보상장(Letter of Indemnity, LOI. 이하 ‘이 사건 보상장’이라고 한다)과 상환으로 대금을 지급할 수 있다’고 규정하였다.
나. 그런데, 개설은행은 이 사건 신용장의 개설 통지 후 매입은행에게 ‘개설은행의 매입은행에 대한 지시의 변경’이라는 형식으로 이 사건 추가조건을 삭제하도록 통지를 하였고, 그러나 수익자인 보리스는 개설은행으로부터 추가조건의 삭제 요청을 통보받자 이를 거절하였다.
다. 원고(매입은행)는 보리스로부터 이 사건 신용장에 기한 환어음과 상업송장 및 이 사건 보상장 등의 서류를 매입한 다음, 개설은행인 피고에게 그 서류들을 제시하면서 신용장대금의 지급을 청구하였으나 피고가 지급을 거절하자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다.

2. 판결요지
가. 제5차 개정 신용장통일규칙 제9조 d항은 “제48조에 의하여 별도로 규정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취소불능 신용장은 개설은행, 확인은행(있는 경우) 및 수익자의 합의 없이는 변경되거나 취소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취소불능 신용장에서 규정된 수익자의 권리 또는 권리의 행사요건 등에 영향을 미치는 신용장조건 등의 변경은 수익자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효력이 없다.
취소불능 신용장의 이러한 조건변경 제한 규정은 개설은행이 매입은행 등 지정은행에 대한 지시의 형식을 취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지시 내용이 실질적으로 수익자의 권리 또는 권리의 행사요건 등을 변경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고 보아야 하므로 수익자의 동의가 없는 한 그와 같은 지시는 효력이 없다.
나. 신용장 개설은행이 어느 은행이나 매입 가능하고 지급에 필요한 서류로 상업송장 및 선하증권 전통(full set)을 제시하도록 한 취소불능 신용장을 개설하면서, 그 추가조건에서 ‘매입 시점에 선하증권 원본을 제출할 수 없는 경우에는 상업송장 및 수익자가 발행한 보상장(Letter of Indemnity, LOI)과 상환으로 대금을 지급할 수 있다’고 규정하였다가 나중에 매입은행에게 ‘개설은행의 매입은행에 대한 지시의 변경’이라는 형식으로 그 추가조건을 삭제하도록 통보하였는데, 수익자가 매입은행으로부터 그 추가조건 삭제 요청을 통보받고 이를 거절하자, 매입은행이 다시 개설은행에 그 거절의사를 통지하고 그 후 수익자로부터 위 신용장에 기한 환어음과 상업송장 및 보상장 등의 서류를 매입한 다음 개설은행에 신용장대금의 지급을 구한 경우에, 위 추가조건의 삭제는 신용장으로 규정된 수익자의 권리행사 요건을 변경시키는 신용장조건의 변경에 해당한다.
다. 제5차 개정 신용장통일규칙 제14조 d항 i호는 “개설은행 및/혹은 확인은행(있는 경우), 또는 이들을 대리하는 지정은행이 서류를 거절하기로 결정한 경우에는 서류접수일 다음 영업일로부터 기산하여 제7 은행영업일의 마감시간까지 지체 없이 전신 또는 그 사용이 불가능할 경우에는 기타 신속한 방법으로 그 취지를 통지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같은 항 ii호는 “위와 같은 통지를 할 경우 은행은 서류를 거절하게 된 모든 하자사항(all discrepancies)을 명시하여야 하며, 동시에 그 은행은 서류를 제시인의 지시를 기다리며 보관하고 있는지 아니면 이를 제시인에게 반송 중에 있는지 여부를 기재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위 규정들의 취지에 비추어 볼 때 매입은행으로부터 서류를 제시받은 개설은행이 그 서류의 하자를 이유로 신용장대금의 지급을 거절할 경우, 개설은행은 위 신용장통일규칙이 정한 소정의 기간 내에 매입은행에게 그 모든 거절 사유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여 통보하여야 하고, 그 기간이 지난 후에는 최초에 명시하지 아니한 새로운 하자를 주장하여 신용장대금 지급을 거절할 수 없다.
라. 신용장 개설은행이 어느 은행이나 매입가능하고 지급에 필요한 서류로 상업송장 및 선하증권 전통(full set)을 제시하도록 한 취소불능 신용장을 개설하면서, 그 추가조건에서 “매입 시점에 선하증권 원본을 제출할 수 없는 경우에는 상업송장 및 수익자가 발행한 보상장과 상환으로 대금을 지급할 수 있다”고 규정함에 따라, 매입은행이 수익자로부터 선하증권 대신 수익자 발행의 보상장을 제출받아 환어음을 매입한 후 개설은행에게 신용장대금의 상환을 청구한 경우에, 선하증권에 관해 정해진 신용장조건이 당연히 보상장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해석할 근거가 없고, 또한 위 추가조건에는 수익자가 발행한 보상장이라고 명시되어 있을 뿐 그 수신인을 개설은행으로 하라는 조건이 기재되어 있지 않으므로, 매입은행이 제출받은 보상장의 수신인이 개설은행이 아니라고 하여 이를 신용장조건에 위배된다고 할 수 없다.

3. 평석
이 사건의 경우 필자는 제한된 범위에서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밖에 없어서 그 평석에 있어서도 완전을 기할 수 없음을 미리 밝힌다. 이 사건의 경우 가장 중요한 쟁점은 역시 보상장(LOI)과 관련된 부분이므로 이와 관련하여 주로 검토하기로 한다.
가. 보상장은 운송인에 의해 사고부 선하증권이 발행될 경우 은행이 이러한 선하증권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이를 무사고 선하증권으로 교환 발행받고 이로 말미암아 운송인이 손해배상을 해야 할 경우에는 송하인이 전적으로 책임을 지고 배상하겠다는 내용으로 운송인에게 발행하는 각서를 말한다. 송하인으로서는 화물의 외관상태에 관하여 무사고 선하증권(clean bill of lading)을 발행받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신용장거래에 있어서 신용장대금을 지급 받기 위해서는 이 무사고 선하증권이 제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송하인은 화물의 외관상태에 비록 하자가 있는 경우에도 운송인에게 그 하자사항을 기재하지 않은 선하증권을 발행해달라고 요구할 때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하자를 기재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운송인이 손해를 입게 된다면 송하인이 후에 그 손해를 보상하여 주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다. 이 LOI를 보상장 또는 보증장이라고 한다.
그러나 운송인이 그러한 하자가 있다는 것을 명백히 알고 있었던 경우에 그에 반하는 무사고 선하증권을 발행한다는 것은 제3자, 즉 선하증권의 소지인에 대한 사기가 될 여지가 있다. 해상운송인은 자신의 기재가 허위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 그러한 허위의 기재를 누군가가 신뢰하고 선하증권을 취득하여 줄 것을 의도하여 그러한 선하증권을 발행한 것이므로, 이는 제3자에 대한 사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영국 판례법은 금반언의 법리(estoppel)에 위배되기 때문에 계획된 속임수로 간주하여 불법, 무효로 보고있다.
그러므로 선하증권 소지인이 운송인을 상대로 운송물 손해에 대하여 손해배상을 청구하면 운송인은 손해배상책임을 면할 수 없게 되고, 운송인은 일단 손해배상 후에 송하인을 상대로 보상장에 근거하여 구상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해상운송의 실무에서는 단기간에 많은 운송물을 선적하기 때문에 선적 과정에서 일일이 운송물을 완벽하게 대체하거나 포장을 보완하기는 어려우므로 보상장을 제출 받고 무사고 선하증권을 발행하는 관행이 널리 퍼져있다.
나. 이 사건의 경우, 개설은행인 피고는 이 사건 신용장의 개설의뢰인인 수입자가 어떤 이유에서인지(수입자가 도산하였는지, 아니면 수입물품이 제대로 도착하지 아니하여 수입대금의 상환을 거절하였는지를 알 수 없으나) 수입대금의 상환을 거절하자 매입은행에 대하여 몇가지 하자사항을 제시하고 대금의 지급을 거절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먼저 수입자와 개설은행의 이 사건 신용장 개설과정에서 잘못된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사건 수입자와 수출자(보리스)간에 체결된 국제물품 매매계약의 내용이나 규정이 어떠한지는 현재 알 수 없으나, 또한 수입자가 개설은행에 이 사건 신용장의 개설을 신청하면서 어떤 내용으로 신청했는지 그간의 사정을 자세히는 알 수는 없으나, 이 사건 신용장은 개설 자체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어떻게해서 이 사건 신용장은 아주 특별한, 거의 예를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이상한 추가조건을 달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선하증권 대신 보상장을 제시할 수 있다는 추가조건이 어떻게 있을 수 있는가. 위에서 본 것처럼 보상장이란 선하증권의 발급을 전제로 해서 송하인(수출자)이 운송인에게 제출하는 각서인데 이 각서를 선하증권을 대신하는 운송서류로 간주하는 것은 개설과정에서의 업무상 실수 아니면 업무상 무지에 따른 명백한 잘못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필자가 모르는 아주 특별한 보상장인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개설은행은 뒤늦게 잘못을 깨닫고 위 추가조건의 삭제를 매입은행에 통보하였지만 이 사건 판례가 적절히 지적한 바와 같이 신용장조건의 변경의 경우에는 개설은행과 수익자의 합의가 필요한 바 이 사건의 경우에는 수익자가 그 합의를 거절하였던 것이다. 더욱이 이 사건 소송과정에서 피고는 이 사건 보상장 수신인이 피고가 아니라는 점을, 즉 개설은행이 아니라는 점을 들어 하자사항으로 통지하였다고 하였는바, 전술한 것처럼 보상장의 수신인은 운송인이라는 점에서 이와 같은 하자의 주장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사건 신용장조건(추가조건)에 의하면 수출자는 자기 마음대로 보상장을 발행해서(즉 계약목적물을 선적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서류의 매도를 통해 신용장대금을 지급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활짝 열려있는 것이다.
다. 이 사건 판결은 신용장조건의 변경에 관한 개설은행과 수익자의 합의 요건, 개설은행에 의한 서류인수 거절의 경우 제7영업일에 관한 신용장통일규칙, 선적서류와 신용장조건의 일치 여부에 관한 신용장통일규칙과 국제표준은행거래관습을 마땅하게 적용하고 있으므로, 이에 관해 특별히 지적할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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