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업무와 고용불안 문제 수면 위로 부상 … 표준근로계약서 마련 시급

지난 달 28일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재판장 함상훈 부장판사)는 과로 상태에서 고객을 접대하다 급성심근경색으로 사망한 A변호사의 유족들이 낸 유족보상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 취소소송(2012구합33935)에서 원고승소 판결을 선고했다.

A변호사의 유족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위와 같은 소송을 내면서 “고인이 사고 발생일 일주일 전부터 과다한 업무로 인해 야근을 했고, 특히 사건 발생일에는 주요 고객과의 회식 자리에서 음주를 한 후 의식을 잃었다”며 “평소 흡연을 하지 않았고, 소주 1 ~ 1.5병 가량의 주량에 사망과 관련된 질병 등으로 치료를 받은 사실이 없어 과도한 업무 때문에 사망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유족은 지난해 4월 17일 고인의 사망이 업무상의 재해라고 주장하면서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으나, 근로복지공단에서는 같은 해 7월 17일 ‘업무와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 지급을 거부하는 처분(이하 ‘이 사건 처분’이라고 한다)을 한 바 있다.

노영희 대한변호사협회 수석대변인은 “이번 판결은 변호사에게 업무상 재해를 인정한 첫 사례로 의의가 있다”며 “그동안 퇴직금 지급 및 표준근로계약서 작성과 관련해 변호사들의 ‘근로자성’ 여부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점을 감안하면, 고인의 이번 사망에 대해 업무상 재해를 인정한 것이 매우 상징적”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변호사들은 근로자로 취급되기 보다는 1인 기업의 형태로 독립성을 갖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 더 우세해, 퇴직금 지급이나 근로계약서 작성 등과 관련하여 법률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변호사 수가 증가하면서 변호사들의 과도한 업무와 고용불안 문제 등이 수면 위로 부상하여 공식 논의되었고 이들의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판결이 잇달아 있어 왔다.

대한변호사협회 양재규 부협회장은 “이번 판결을 계기로 고용변호사들을 대상으로 대한변호사협회에서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하여 이를 따르도록 할 방침”이라며 “청년 변호사들이 겪는 고충이 상대적으로 상당히 크다”고 말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임신한 여성 강제휴직 논란이 뜨거웠던 2013년 여성변호사들과 청년변호사들의 고용실태를 점검하여 표준근로계약서 마련 등이 시급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으며, 대한변호사협회 위철환 협회장 역시 당시 선거공약으로 이와 같은 주장을 내세웠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인력 충원이 비교적 쉬운 대형로펌과 달리 6, 7명의 변호사들로 구성된 부띠끄 로펌이나 개인 사무실에서는 대체 인력이 부족한데다, 특히 전문성과 시급성이 중요한 변호사 사무실의 특성상 이 같은 계약서는 오히려 변호사 고용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서초동의 한 소형 로펌 대표는 “현재 변호사 수의 증가와 사건 수의 감소 때문에 서초동 법률시장의 형편이 매우 안 좋다. 이런 상태에서 고용변호사들에 대해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퇴직금이나 임신시 유급 휴직, 시간외 근무 등에 대한 수당 지급을 강제하는 경우 가뜩이나 어려운 고용시장이 완전 얼어붙을 수 있다”며 “솔직히 규모가 작은 소형 로펌 입장에서는 퇴직금이나 시간외 수당을 꼬박꼬박 챙겨주는 것이 부담스러운데다가 여성변호사의 출산 등으로 업무에 차질이 생기는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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