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성희 변호사
이혼을 막는 부적이 있을 수 있을까? 두어 달 전인가? SBS ‘세상에 이런 일이’에서 이혼을 막는 부적노릇을 한다는 남자를 본 적이 있다. 사연인즉슨 그로부터 결혼식 때 결혼축하송을 받은 부부는 이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는 10여년간 100커플이 넘게 곡을 만들어줬다는데 그 중 한 쌍도 이혼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남자가 하는 일을 살펴보니 결혼하게 된 커플을 만나 첫 만남과 결혼에 이르게 된 과정을 취재하여 그 내용을 가사로 담은 축하송을 만들어주었고 결혼식날에도 참석하여 이를 축가로 불러주었으며 그 후는 그 노래악보를 액자로 만들어 선물한다는 것이 다였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이혼을 하지 않는다니 신기하다.

중학교 때인가 고종사촌언니가 이혼을 한다고 난리여서 고모가 한동안 골머리를 썩이더니 어느 날 갑자기 둘이 다시 잘 살기로 했다며 한시름 놓는 것을 보고 신기해했던 적이 있다. 화해의 계기가 된 것은 연애시절에 형부가 보내준 수많은 연애편지였다. 별거를 위해 짐정리를 하다가 발견한 편지를 읽고 언니는 형부와 연애 당시의 설레는 감정을 회복했다고 했다.

엇비슷한 얘기를 책에서도 읽은 적이 있다. 얼마 전에 출간된 독일의 한 정신과 의사가 쓴 책 ‘사랑은 어디로 가는가’에 의하면 부부간의 애정은 관계의 계정에 쌓아둔 애정저축액이 남아있는 동안 지속된다고 한다. 즉 부부가 이혼을 하게 되는 것은 싸움의 양 때문이 아니라 애정저축액이 바닥이 나서 더 이상 채워지지 않을 때라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 얼핏 관계의 질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서양인들이니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보면 근래 들어 우리나라의 이혼율이 어느 나라보다 높게 된 것은 그동안 이혼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두려워서, 경제활동을 할 자신이 없어서 등의 이유로 우직하게 불화를 참고 있던 우리네들도 그들처럼 관계의 질을 소중하게 생각하게 된 탓인가 보다. 위 이론에 의하면 고종사촌언니 부부의 경우 연애시절에 형부가 보내준 연애편지로 인하여 관계의 애정저축액의 잔고가 확인된 것은 아닐까? 위 책에 의하면 관계의 애정저축액의 잔고쌓기를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한다.

또 이런 얘기도 있다. 부부에게 그들의 첫 만남이나 연애시절에 대해 물어보면 그 부부의 현재 상황을 알 수 있다고 한다. 특별하거나 떠들썩한 한 연애를 했던 사람들이 결혼생활도 오래오래 잘 한다는 얘기일까? 아니었다.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의 내용이 아니라 이야기를 하는 방식이 중요하다는데 이것이야말로 현재의 결혼생활의 행복도를 나타내어주는 척도라고 한다. 즉, 결혼생활이 원만한 부부는 현재의 처지가 어떠하건 간에 첫 만남이나 연애시절을 떠올리며 미소 짓고 그리워한다고 한다. 그러고보면 우리가 제출하는 이혼소장에도 온통 상대방에 대한 비난일색인 것을 볼 수가 있다. 한때 분명히 사랑했기에 결혼에까지 이르렀을텐데 좋았던 시절은 다 어디로 숨어버렸단 말인가?

그런데 절정의 다툼 끝에 갑자기 소취하를 하는 커플을 가끔 본다. 타 사건과의 변론기일이 중복되어 변론기일을 연기해주십사하는 청조차 이혼이 늦어진다며 그야말로 생야단을 하더니 갑자기 소 취하를 명하여 얼떨떨해 한 적이 있다.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두어달 후 연유를 물어보았다. 면접교섭 진행 중 두 사람을 소개한 사람의 농간(?)에 의하여 부부가 세살배기 아들을 데리고 갑자기 제주도 여행을 가게 되었다고 한다. 서로 다툴까 두려워 내내 아무 말 없이 여기저기를 다녔는데 결혼 전에 두 사람이 그곳에 왔던 추억이 자연스레 떠오르더란다. 카메라에 아들과 처의 모습을 담다가 느꼈는데 결혼 전의 수다스럽고 명랑하던 아내가 무척 조용해지고 수척해졌더라고 한다. 미안한 생각이 몰려오면서 그동안 소송으로 니 잘했니 내 잘했니 다퉜던 일이 한심스럽게 여겨지더란다. 소 취하를 한 이후에도 다투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다툴 때마다 결혼 전의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다짐했던 일을 다시 떠올려본다고 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위 남자가 ‘이혼을 막는 부적’이 된 이유를 추론해보자. 방송의 말미에서 그 남자로부터 결혼 축하송을 받은 커플들을 모아보았는데 그들은 거실에 축하송 액자를 걸어두고 있었고 또 노래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고보면 위 남자는 부부로 하여금 거실에 걸린 결혼 축하송 액자를 통하여 그들의 첫 만남과 연애시절의 추억을 끊임없이 떠올리게 하여 검은머리 파뿌리될 때까지 함께 하리라는 첫 맹세를 잊지 않게 일깨운 것이 아닐까 싶다.

첫 만남과 연애시절의 설렘을 늘 간직하며 사는 부부에게는 아무 생각 없이 일상에 묻혀가는 부부보다는 권태나 갈등이 훨씬 덜 할 것 같지 않은가? 말하자면 이들 부부는 위 정신과 의사가 말하는 관계의 애정저축액이 별로 줄어들지 않고 있는 것이 확실할 것이다. 오늘 모처럼만에 남편과 나의 첫 만남 그리고 연애시절의 추억에 젖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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