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책 변호사
같은 사건을 두고 현장을 목격한 두 사람이 전혀 다른 증언을 한다. 자의적인 판단 부분을 빼고 보더라도 두 증언이 다른 경우는 너무 흔하다. 내 경험으로는, 최소한 민사법정에서 논의되는 사건의 경우에 증언이 다른 경우가 일치하는 경우보다 더 많다. 이것은 단순한 기억력의 문제가 아니다. 적어도 한 사람은 거짓말을 하기 위해 법정에 나온 것이다.

A의 진술은 매우 구체적이다. 묘사도 세세하고 주변 정황과도 잘 맞는다. 그런데 B의 진술은 무언가 엉성하다. 시간에 대한 기억은 흐릿해 믿을 수 없을 정도다. 진술 중 의심스런 부분이 있어 따져 물으면 진술을 바꾸기도 한다.

자, 당신은 누구의 말이 참말이고 누구의 말이 거짓말이라고 보는가. A의 말이 거짓말이고 B의 말이 참말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 참말은 본래 엉성하고, 거짓말은 처음부터 대단히 구체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판사는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정답은 A다. 적어도 현재의 사법제도로는 그렇다. 만약 판사가 확실한 심증을 가져서 B의 손을 들어주기 위해서는, 진실이 숨어있는 작은 구멍을 찾아내는 고단한 작업을 해야 한다. 그래도 판사의 심증에 맞는 결론을 낸다는 보장은 없다. 증거재판을 이길 수 있는 심증은 없기 때문이다. 세익스피어는 ‘베니스의 상인’에서 거짓말에 대한 유명한 경구를 남겼다. ‘거짓말은 얼마나 그럴싸한 모습을 하고 있는가!’

세상 사람들은 전부 거짓말을 한다. 누가복음엔 닭이 울기 전에 베드로가 예수를 세 번 부인했다고 적혀 있지 않은가. 니체는 ‘거짓말은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고 했다. 이처럼 인간은 모두 거짓말을 하지만 거짓말에 익숙한 사람과 참말에 익숙한 두 부류가 있다. 그런데 당신은 거짓을 미워하고 진실을 구하는 칸트와 함께 살 것인가, 아니면 거짓으로 생애를 점철한 루소와 일생을 살 것인가? 나는 솔직히 루소를 택하겠다. 칸트의 서재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이 루소의 초상화만 걸려 있었다. 대자유인인 칸트에게도 루소는 행복한 존재였던 것이다.

거짓말로 먹고 사는 직업은 많다. 변호사라는 직업 역시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되든 안 되든 억지 주장을 하는 건 대부분 거짓말로 조작해낸 것들이다. 위증으로 승소한 법정을 나서며 낄낄거리는 변호사가 한둘인가? 그런데 진짜 거짓말이 승부를 가르는 직업은 정치인이다. 노예제도를 전혀 반대한 적이 없었던 링컨이 남북전쟁의 명분을 노예해방으로 내세운 건 거짓말의 백미다. 그 링컨이 거짓말에 대해 한 경구는 놀랍다. ‘모든 사람을 얼마동안 속일 수는 있다. 또 몇 사람을 늘 속일 수는 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을 늘 속일 수는 없다.’ 링컨은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인 셈이다.

우리 정치인들의 거짓말 리스트도 정말 놀랍다. 감옥 간 정치인들은 대개 ‘한 푼도 안 받았다’거나 ‘대가관계가 없었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이내 거짓말로 밝혀진다. 그래도 그런 거짓말은 자기변명이라고 할 수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나는 거짓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다만 약속을 어겼을 뿐’이라고 말했는데 그 정부 때 있었던 일이다. 휴대전화가 도청이 가능한가 하는 논란이 벌어졌다. 정보통신부 장관과 법무부 장관 등 5부 장관이 모든 일간지에 떡하니 ‘휴대전화는 절대 도청이 불가능하니 국민은 안심하라’는 광고를 냈다. 세금으로 한 그 거짓말에 앞장 선 정통부 장관은 휴대전화를 만드는 회사의 사장을 지낸 분이었다.

1974년 ‘민주당을 도청한 사실을 무마하는 공작’을 알고 있었던 닉슨은 이 사실을 숨기다 사임했다. 그런데 최소한 워터게이트 사건은 국민의 세금으로 거짓말을 한 건 아니었다. 요즘 NLL을 포기했다, 안 했다 해서 공방이 뜨겁다. 쉬운 우리말을 두고도 이러니 정치인들은 역시 거짓말로 먹고 사는 직업이다.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