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10. 10. 14. 선고 2007다3162 판결

대상 판결의 요지

구 약사법(2007. 4. 11 법률 제8365호로 전부 개정되기 전의 것)은 의약품에 관하여 임상시험계획의 승인이나 제조품목허가의 권한을 식품의약품안전청장에게 부여하였을 뿐 의약품의 구체적 범위를 하위 법령으로 정하도록 위임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으므로, 구 약사법의 규제를 받는 의약품인지 여부는 그 정의 규정인 같은 법 제2조의 해석에 따라 판단하여야 하는데, 구 약사법은 제2조 제4항 제2호에서 ‘사람 또는 동물의 질병의 진단·치료·경감·처치 또는 예방의 목적으로 사용되는 물품으로서 기구·기계 또는 장치가 아닌 것’을 의약품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고, 사람의 신체에서 분리된 세포가 사람의 질병 치료를 목적으로 인체조직이 아닌 세포단위로 사용되는 경우에는 위 규정에 따른 의약품에 해당하므로 구 약사법의 규제대상이 된다.

중간엽 줄기세포는 저온보관 중인 제대혈의 백혈구(단핵구)에서 조혈모세포 등과 구분하여 선별한 다음 성장인자 등을 첨가하여 체외에서 증식·배양한 후 사람의 질병 치료를 목적으로 세포단위로 인체에 투여되는 것이므로 구 약사법의 규제를 받는 의약품에 해당한다고 본 사례.

사건의 개요

원고 甲 등은 간경화증이 상당히 진행되어 간이식 수술을 받는 외에는 효과적인 치료방법이 없는 상태였고, 원고 乙 역시 효과적인 치료방법이 없는 다발성 경화증을 진단받은 환자이다.

원고들은 인터넷 홈페이지 게재내용, 보도내용 등을 통해 한라병원 병원장이 ㈜히스토스템으로부터 공급받은 제대혈 줄기세포를 간경화증 환자에게 이식하여 성공하였다는 소식을 접하고 한라병원에 내원하여 상담을 거친 후 2003년 12월경 ~ 2004년 3월경에 걸쳐 수일간 입원하여 줄기세포 이식술을 받았는데, 줄기세포 이식 후 기존의 병세가 악화되거나 부작용이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기존의 질병이 호전되었다거나 질병의 진행속도가 완화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당초 임상치료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던 환자들은 임상적으로 치료효과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 상태였고, 결국 한명은 간경화증이 진행되어 줄기세포를 이식받은 지 약 9개월 뒤인 2004년 5월경 사망하였다.

원고들은, 본건 줄기세포 치료제가 약사법 소정의 의약품에 해당됨에도 피고들-한라병원 병원장, 한라의료재단, ㈜히스토스템-이 식품의약품안전청장으로부터 임상시험계획승인을 받지 아니한 채 이식수술을 시행한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며 그 손해배상으로서 줄기세포 구입비, 치료비, 위자료 등의 지급을 구하기 위하여 이 사건 소송을 제기하였다(원고들의 청구원인 중 본고의 목적에 부합하는 내용만 기술함). 이에 대해 피고들은, 줄기세포 치료제는 소량의 조혈모세포를 배양하여 세포수를 증가시켜 사용하는 것에 불과하여 생체 외 처리과정을 거치지 아니하기 때문에 약사법 소정의 의약품에 해당되지 아니하여 시술에 앞서 임상시험계획승인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다투었다.

대상 판결의 중요한 쟁점 중 하나는 ‘줄기세포 치료제’가 과연 약사법상 의약품에 해당하는지 여부인바, 본고는 이 쟁점에 국한하여 판례의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그 외에 허가받지 않은 줄기세포 치료제를 환자에게 이식한 행위가 임상시험에 해당하는지 여부도 중요한 쟁점인데, 이에 관해서는 기회가 되면 다시 살펴보기로 한다).

판례 해설

가. 의약품의 의의
의약품에 대해 규율하는 법령은 다수가 있는데, 그 중 의약품의 개념에 대해서는 약사법 제2조 제4호 가~다목에서 규정하고 있다. 이 중 가목은 대한약전에 수재되어 있는지 여부라는 형식적 기준을 규정하고 있음에 비해, 나목은 질병 치료 등의 목적에 사용하는 물품, 다목은 사람의 구조·기능에 영향을 줄 목적으로 사용하는 물품이라는 실질적 기준에 따라 의약품을 정의하고 있어, 이중의 기준이 혼재되어 있다.

‘나목의 의약품’ 중 질병 치료용은 우리가 흔히 접하는 의약품이고, 진단용으로는 X선 촬영을 위해 생체내에 투여하는 염산바륨이나 당뇨 검사를 위한 체외진단용 시약 등이 있으며, 예방용으로는 소아마비, 광견병 예방을 위한 백신류나 수술시 감염예방을 위한 항생물질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다목의 의약품’의 경우, 질병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혼란스러울 수 있는데, 그에 해당하는 예로 외과용 윤활제(surgical lubricant)가 있다(대법원 1989. 9. 12. 선고 89도73 판결). 내시경 등에 발라 목구멍 등에 삽입할 때 그 부위의 인체조직을 부드럽게 함으로써 인체와의 마찰로 인한 조직손상을 막고 기구 등의 삽입을 쉽게 하는 작용을 하여 사람의 신체 기능에 약리학적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 외 피임약의 경우 사람의 임신 기능에, 살빼는 약의 경우 사람의 신체구조에 약리학적 영향을 주는 물품이어서 다목의 의약품에 해당하게 된다.

한편, 약사법의 규율대상인 의약품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질병 치료 등의 효과(나목)가 있거나 구조·기능에 약리학적 영향을 미치는 효과(다목)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성분, 형상, 명칭, 용기나 첨부문서 기재내용, 선전, 설명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일반인이 볼 때 위 목적에 사용되는 것으로 인식되거나 약효가 있는 것으로 표방된 경우에는 의약품으로서 약사법의 규제대상이 된다(대법원 1985. 3. 12. 선고 84도2892 판결).

의약품과 인접 개념의 구별이 쉽지 않은데, 특히 근래에는 ‘기능성 화장품’과 ‘건강기능식품’의 증가로 인해 의약품과 화장품, 건강기능식품의 개념 구별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대상 판결은 줄기세포 치료제를 이식하는 시술이 ‘의약품’을 투여하는 행위인지 아니면 단순한 의료행위로서의 시술에 불과한지 여부가 문제된 사례이다.

나. United States v. Regenerative Sciences
미국에서도 줄기세포 치료제가 의약품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다투어진 바 있다. Regenerative Sciences, LLC (‘Regenera tive’)가 ‘RegenexxTM Procedure’라는 시술법을 통해 관절, 근육, 힘줄, 뼈 등에 손상을 입은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연구실에서 배양된 자가유래(autologous) 줄기세포를 환자에게 이식하는 시술을 하였는데, 이때 사용된 자가유래 줄기세포가 의약품 혹은 생물학적제제(biological product)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문제된 사례이다(대상판결은 동종유래(allogeneic) 줄기세포에 관한 것인 점에서 차이가 있으나, 자가유래 줄기세포의 경우 ‘의약품’에의 해당 여부가 더욱 문제될 수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참고할 가치가 있다).

자가유래 줄기세포가 의약품에 해당한다며 허가받지 않은 제조행위를 금지시켜달라는 FDA의 주장에 대해, Regenerative측은 자가유래 줄기세포는 의약품에 해당하지 않고, 이를 이식하는 시술은 단순한 의료행위(medical practice) 혹은 Practice of Medicine에 불과하다고 다투었다.

이에 대해 워싱턴DC 지방법원은 2012년 7월 23일 Memorandum Opinion을 통해 자가유래 줄기세포가 의약품 혹은 생물학적제제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는데, 그 이유로는 동 줄기세포의 사용목적(intended use)이 질병 치료·처치·경감용이어서 FFDCA상의 의약품 개념에 부합한다는 점을 들었다(878 F.Supp.2d 248). 한편, Practice of Medicine에 해당한다는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 미국법상 Practice of Medicine은 의사가 환자에게 처방하는 의약품이 FDA로부터 적법한 허가를 받은 것이라면, 치료에 적합·필요한 것으로 판단할 경우 허가받은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 적응증에 처방하더라도(off-label use) 문제삼지 않는 법리를 의미하는 바, Regenexx가 허가받은 의약품이 아닌 이상 Practice of Medicine 주장이 받아들여질 여지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 대상 판결의 내용
대상 판결의 하급심에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청고시인 ‘생물학적제제 등 허가 및 심사에 관한 규정’을 기준으로 본건 줄기세포가 ‘의약품’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검토하였는데, 대상 판결은 약사법이 의약품의 구체적 범위를 하위법령으로 정하도록 위임하지 않았으므로 위 고시 규정이 아닌 같은 법 제2조의 정의규정의 해석을 통해 의약품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하여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대상 판결에서는 구 약사법 제2조 제4항 제2호(현행 법 제2조 제4호 나목) 소정의 ‘사람 또는 동물의 질병의 진단·치료·경감·처치 또는 예방의 목적으로 사용되는 물품으로서 기구·기계 또는 장치가 아닌 것’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문제되었다.

본건 줄기세포가 약사법 제2조 제4호 나목 소정의 의약품 정의 중에서 ‘사람의 질병의 진단·치료·경감·처치 또는 예방의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에 해당함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사람의 신체에서 추출한 줄기세포를 ‘물품’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라 할 것이다.

대상 판결에서는 본건 줄기세포가 ‘물품’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하여 따로 명확히 구분하여 설시하지는 않았지만, “사람의 신체에서 분리된 세포가 사람의 질병 치료를 목적으로 인체조직이 아닌 세포단위로 사용되는 경우에는 위 규정에 따른 의약품에 해당하므로 구 약사법의 규제대상이 된다” “이 사건 중간엽 줄기세포는 저온보관중인 제대혈의 백혈구(단핵구)에서 조혈모세포 등과 구분하여 선별한 다음 성장인자 등을 첨가하여 체외에서 증식·배양한 후 사람의 질병 치료를 목적으로 세포단위로 인체에 투여되는 것” 등의 판시내용을 통해 위 조항 소정의 ‘물품’에 해당한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생각하건데, 줄기세포를 제대혈로부터 선별해 낸 후 성장인자를 첨가하여 증식·배양하는 과정에서 줄기세포의 고유한 생물학적 특성(relevant biological character istics)에 변화가 생기게 되는데, 줄기세포가 배양플라스크(culture flask), 배지(culture media)의 성분, 첨가제, 온도와 습도 등의 환경적 요인 등에 반응하여 자라게 되므로 이러한 조작 과정에서 변화가 생겨 원래의 줄기세포와 동일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의약품에 해당하는 ‘물품’으로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대법원 판결 중에는 ‘기증받은 인체의 뼈를 가공하여 골형성단백질을 추출하거나, 이러한 골형성단백질의 효능을 이용하기 위하여 분말 또는 작은 조각으로 제조된 물품’이 의약품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시한 사례가 있고(대법원 2009. 1. 15. 선고 2006도9317 판결), 최근 헌법재판소도 “세포치료제는 체외에서 배양·증식 등 가공의 과정을 거친다는 점에서 신체의 일부를 분리한 후 그대로 이식하거나, 추출한 줄기세포를 그대로 다시 주사하는 의료행위로서의 시술과 다르고, 개별 맞춤형 의약품이라는 점에서 모든 이에게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범용 의약품과 다르다”고 판시한 바 있다(헌법재판소 2013. 5. 30.자 2010헌마136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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