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앤장 사회공헌위원회 위원장 목영준 변호사

헌재재판관시절, 사형제 위헌 의견·산업연수생 보호결정 기억나
국제중재전문가로도 유명해 베니스위원회 정회원으로 활약도
다재다능 천재로 요사이 별명이 목차르트…그의 연주가 기대된다

“한국에 헌법재판소가 없었다면 우리 국민의 기본권과 민주주의 원칙이 어떻게 됐을까요? 물론 법원도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법원은 수많은 사건을 처리하다 보니 ‘법이 이렇게 되어 있으니 법적 안정성 때문에 어쩔 수 없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반면, 헌재에서는 ‘법이 이렇게 돼 있는 게 과연 맞는 건가’에서 출발하니까 완전히 다르죠.”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퇴임한 것이 지난해 9월, 김앤장 사회공헌위원회 위원장으로 법조계에 돌아온 목영준 위원장(사시 19회)은 헌법재판에 대한 이야기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BBK특검법 사건이 접수된 지 13일 만에 선고까지 다 마칠 만큼 시간이 촉박했던 게 기억이 남네요. 6년을 통틀어 사무실에서 며칠 밤을 새운 건 그 때가 유일합니다. 재외국민의 선거권에 관해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 헌법불합치결정을 내렸습니다만 아직도 그 실효성에 대해 논쟁이 되고 있는 것, 외국인산업연수생에게 근로기준법의 일부 규정의 적용을 배제한 노동부지침에 대한 위헌결정을 내림으로써 우리 사법부가 아시아권 국가들의 존경을 받게 된 것, 종업원이 불법행위를 하면 사용자의 책임에 관계없이 동등한 처벌을 하는 양벌규정에 대하여 위헌을 선언한 것, 위안부피해에 관한 정부의 한일협정상 의무의 부작위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린 것, SNS에 의한 선거운동금지에 대해 한정위헌 결정을 내린 것 등이 기억납니다. 사형제에 관해 고민하고 연구한 끝에 나름대로 정리된 위헌의견을 낸 것도 의미가 있었다고 스스로 평가합니다. 다만 정치적으로 민감했던 미디어법 권한쟁의사건에서, 쟁점마다 재판관님들의 의견이 너무 갈려 산만한 결정문이 돼 버렸고, 결정의 내용이 명확하지 않아 당사자들로 하여금 서로 다른 해석을 할 수 있게 한 일이 제일 아쉬워요.”

목영준 김앤장 사회공헌위원회 위원장을 처음 만난 것은 2000년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부장을 맡고 있을 때였다. 당시 옆방에는 권오곤 구유고전범재판소 재판관이 있는 등 지금의 대법관, 헌법재판소 재판관 등 기라성 같은 분들이 서울중앙지법, 행정법원에 부장으로 포진해있었다. 그 가운데서도 단연 주목받았던 목 위원장은 샤프하면서도 따뜻하고 재판을 잘하면서도 행정에도 밝은 부장판사로 당시 배석들이 꼽는 최고의 부장이었다. 늘 선두를 달려온 덕에 퇴임도 빨라진 셈이다. 외양은 그 시절과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은데 이미 재판관 6년을 보낸 후다.

“평생을 법률가로 살았는데 법률을 대하는 게 제일 마음 편하죠. 재판을 하기만 하고 변호사로 필드를 뛰어보지 못한 게 왜 아쉽지 않겠어요? 법정 다니는 친구들 보면 사실 부럽기도 해요.”

솔직하게 토로하는 목 위원장은 을지학원 이사장도 맡고 있다. 의료·보건으로 특성화된 학교법인이어서 의료계와 교육계를 배우는 중이다. 을지학원은 법정부담금 2년 연속 전국 1위와 국가시험 100% 합격 등을 자랑하는 을지대학교, 중부권 최고의 종합병원인 을지대학교병원 및 국내 최초의 중독성질환치료 특화병원인 강남을지병원 등을 경영하는 모범적인 사학이다.

“새로운 업무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상당히 바쁘게 보냈습니다. 한편으로는 김앤장에서 사회공헌 업무, 중재에 관한 업무, 로펌행정에 관한 업무 등을 하면서, 을지학원의 이사장 업무를 하다 보니 하루하루가 정말 빠르게 지나가요. 김앤장 사회공헌위원회라고 해서 다른 로펌보다 잘 해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다만 김앤장이 가진 우수한 인력과 최고의 전문성을 어떻게 활용해야 효율적인 사회공헌이 되는지를 숙고하고 있어요. 김앤장에 들어와 보니 지금까지 매우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하고 있으면서도 ‘소리없는 실천’이라는 명제 아래, 이를 일체 외부에 알리지 않았더군요. 그래서 종전에 해오던 공익활동을 더욱 공식화, 체계화, 효율화하려고 합니다. 현재 많은 법률유관기관들이 법률상담, 국선변호, 소송구조 등 개인에 대한 공익활동을 하고 있으니까 김앤장은 단체나 그룹을 위한 포괄적인 법률지원에 주력하려고 해요. 지금 공익법률센터가 맡고 있는 개성공단기업협회에 대한 피해보상법률 입안 작업 및 법률적 자문이 ‘중소기업에 대한 법률적 지원’의 한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목 위원장은 평생을 법관으로 살아왔지만 헤이그 국제상설중재재판소 재판관, 베니스위원회 정위원 등 국제활동도 활발히 해왔고 국제중재 전문가로도 유명하다.

“베니스위원회, 즉 ‘법을 통한 민주주의를 위한 유럽위원회’(the European Commission for Democracy through Law)는 현재 57국의 회원국을 가진 범세계적 헌법재판협의체인데 우리나라는 2006년부터 회원국이 되었습니다. 또한 헌법재판협의체의 탈유럽을 위해 9개의 지역별·언어별 헌법재판협의체 공동으로 ‘세계헌법재판회의’(World Conference on Constitutional Justice)를 구성했는데, 우리 헌법재판소는 그 주도적 창립회원으로서 작년도 집행위원장국이고 2014년 서울에서 제3차 총회를 개최합니다. 베니스위원회를 포함한 국제회의에서 전 세계의 지도급 인사들이 우리나라의 민주화 및 경제성장과 함께 헌법재판의 발전을 칭송하고 부러워할 때마다 한국의 헌법재판관으로서의 자부심을 느꼈고, 작년 6월에는 세계헌법재판회의의 집행위원장으로서 위원회를 진행하는 행운도 경험했습니다. 중재라는 학문과는 우리나라에서 중재제도가 걸음마 단계였던 1970년대 우연한 기회에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중재로써 석사,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법학논문상도 수상했죠. 현행 중재법개정을 주도하고 중재교과서까지 출간하다보니, 국내외에서 중재의 권위자로 평가받게 됐는데, 제 스스로는 실제보다 과장되게 평가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는 공직때문에 국제 및 국내중재실무를 담당하기 어려웠습니다만, 이제부터는 학문적으로나 실무적으로나 열심히 연구하고 활동해 이러한 평가에 맞는 실질을 갖추도록 노력하려고 합니다.”

목 위원장의 요즈음 별명은 목차르트. 음악에서 전무후무한 천재인 모차르트를 빗댄 별명이다. 그와 대화하면 어떤 질문에도 정리된 답변이 돌아온다. 논리는 일목요연하고 근거는 풍부하다. 상대를 기죽일 법한 다재다능이지만 결코 과시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왜 그의 곁에 사람이 몰리는지 알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현실에 안주해 법조 직역의 확대를 게을리 한 선배법조인으로서 젊은 법조인들에게 미안하기 그지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젊은 법조인들에게 이럴 때일수록 긍정적 마인드와 도전정신을 가져달라고 부탁하고 싶어요. 젊은 법조인들께서 힘들더라도 미래를 내다보면서 전문성과 경쟁력 그리고 진정성과 책임성을 갖추어 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법률가들이 이러한 자질을 갖출 때, 우리 국민들의 법률가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확산되고, 그 결과 법의 지배를 위해 사회 각 분야에 법률가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가 멀지 않을 거라고 믿습니다.”

공익에의 헌신이 법조인의 사명 중 하나라고 믿는 목 위원장, 목차르트가 연주하는 함께 잘사는 사회를 향한 웅장한 오케스트라가 시작됐다. 그의 연주가 사회 곳곳에 맑고 향기롭게 퍼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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