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가족독서여행’ 저자 곽 규 홍 대전고검 검사

가족은 무슨 의미일까? 밥을 같이 먹고 한 공간에서 생활하면 가족인걸까?
자녀를 일류대학 보내기 위한 목적활동이 교육인 것으로 여겨지고, 곳곳에서 가족이 붕괴하고 있다는 탄식이 들려온다. 가족 간 경제적 연대만 남고 정신적 유대는 약해져 가는 요즈음, 10년간 가족독서모임을 해온 법조인이 책을 내 화제다.

‘가족과 함께한 행복한 독서여행’의 저자, 곽규홍 대전고검 검사를 만나러 대전에 내려간 날은 하필 6월 초에 32도를 기록한 무더운 날이었다. 요사이 절전 분위기로 관공서는 냉방도 시원치 않았지만 ‘도대체 어떤 사람이 10년간 독서모임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보겠다’는 호기심에 그닥 덥지도 않았다.

“검사하고 문화가 안 어울린다고요? 대개가 너무 바쁘고 규격대로 사는 것에 익숙하다 보니 그런 이미지가 형성돼버렸죠. 그렇지만 저는 문화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좋은 검사라고 생각해요. 사건을 볼 때도 이면이나 배경,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것이 진정으로 아름다운 모습인가를 생각해야 잘, 제대로 풀어나갈 수 있다고 봐요. 문화적 감수성이 있어야 깊이 있는 이해가 가능하지 않을까요? 저는 후배들에게 늘 훌륭한 사람이 아니면 훌륭한 검사가 될 수 없다고 하는데요, 법지식, 논리도 당연히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 감수성, 인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직업이 아닌가 합니다. 법 논리대로만 처리해놓고 그게 다인 양 덮어씌우고 있는 건 아니라고 봐요. 그런 해결은 결코 정확하지도 않고요.”

곽 부장검사는 아들만 둘인데 큰 아들이 중3, 둘째가 중2학년이던 2003년 3월부터 10년간 한달에 한 번씩 다른 가족들과 함께 독후감을 내고 토론하는 독서모임을 가져왔다. 책을 읽고 토론하는 것 뿐 아니라 독후감을 써오고 그것을 해마다 묶어 자료집을 내오다 10년이 되자 책으로 냈다는 것. 정말 대단해보인다. 더군다나 그것을 곽 부장 가족만 한 것이 아니라 열린 모임 형태로 다른 가족들과 함께 해왔다. 어떨 때는 곽 부장 가족 외에 또 한 가족이 있는 단촐한 8명 모임일 때도 있었고 스무명이 넘는 모임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곽 부장은 10년간 한 번도 독후감을 빠뜨린 적이 없다. 모임에 결석한 적은 10년간 딱 두 번으로 지검 부장시절 맡은 큰 사건이 한창이었을 때와 미국 출장 갔을 때 뿐이다.

“교육이기 때문에 한 거예요. 우리 사회가 교육열도 굉장히 높고 강한데 아이들은 굉장히 불행하잖아요. 아이들이 중학교에 들어가자 처참함을 느꼈어요. 아버지 말이 맞지만 학교에선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아버지로서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 고민이 많이 됐어요. 무엇이 옳은가를 말해주는 교육에서 가정은 빠져있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숨 쉴 틈 없이 몰아붙이는 사회에서 가족만이라도 함께 정신적 가치를 만들어가자는 생각을 한 거죠. 아이가 재수할 때 모의고사 때문에 독서모임을 빠지겠다고 한 적이 있어요. 그때 제가 독서모임은 가족이 어떤 가치를 소중한 것으로 만들어가는 ‘제사’와 마찬가지 의미라고 진심을 담아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그 이후로는 아이들도 모임의 중요성을 이해해 주는 것 같습니다.”
처음 ‘행복한 독서여행’이라는 책을 받아들었을 때 든 생각은 솔직히 ‘아이들이 얼마나 귀찮았을까’였다. 강제로 부과하지 않으면 이렇게 10년간 독후감을 쓰긴 힘들었을 텐데 독서라는 것이 강제로 한다고 좋을까라는 의문도 있었다.
 

“자녀교육에 정답이 없다고요? 알기 어렵다고 정답이 없는 건 아니죠. 보는 장소에 따라 산의 모양이 달리 보인다 해서 산의 모양이 없는 건 아니죠. 정답은 있으나 알기 어렵고 그때그때 최선을 다 해야한다고 생각해요. 독서는 억지로 해서 되는 것이 아니죠. 사실 모든 게 그래요. 학원을 억지로 가게 할 수 있지만 공부를 억지로 하게할 순 없잖아요. 공부하는 외관을 갖출 수는 있겠지만. 교육을 아이들에게 물어보고 그 의사대로 해주는 건 아니라고 봐요. 아이들이 독후감을 쓰고 토론을 하면서 성장하는 모습, 어느 한 순간에 독후감의 질의 확 달라지는 걸 느끼는 보람이 참 커요. 물론 이 과정에서 제가 제일 많이 배우고 성장했다고 느낍니다.”

이 정도면 평범한 검사 같지는 않다. 강압적으로 독후감을 쓰게 한 것이라면 그렇게 오래, 지금도 계속할 수가 없었을 터. 그가 말한 대로 ‘진리지향적 모임’의 힘이 아닐까. 왜 다른 가족들과 함께 독서토론을 하는지도 물었다.

“가족의 테두리를 넘어서야 객관적 관점을 확보할 수 있어요. 아이들이 어른과는 혈연이라는 테두리에서만 관계를 맺고 이야기를 나눠요. 그러다 사회인이 되어 너무 불합리하고 말이 안 통하는 상사를 만나면 기성세대와 소통이 불가능하다고 여기거나 상처를 받고 적응에 힘들어 합니다. 자기 부모가 아닌, 다양한 직역의 어른들의 진지한 이야기들, 토론을 통해 생각을 교환하면 어른에 대한 긍정적인 상을 갖게 돼요. 제가 학회나 모임에 가보면 소통이 안 된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자신의 직역을 위해, 조직을 위해 솔직하지 못하고 옳지 않은 이야기들도 하고. 하지만 자기 자녀가 배석한 자리에선 사람들이 최대한 쉽게 설명하려고 애쓰고 거짓말하지 않아요. 부모와 자식 간의 모임이라는 점이 저희 모임을 규정하는 가장 큰 힌트에요. 무책임한 말을 절대 하지 않게 돼요. 거짓말하거나 불성실하거나 직역의 이익대표로서 말하지 않아요.”

“아하” 무릎을 쳤다. 그렇구나. 그래서 다른 가족들과 모임을 갖고 진정한 성장을 하게 되는 것이구나, 깨달았다. 가족독서모임을 통해 ‘사회’를 약육강식의 살벌한 곳이 아니라 애정과 선의에 기반을 둔 ‘확대된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따뜻한 이해를 가질 수 있을 것이었다. 아무런 이해나 관심도 가질 수 없는 단순한 아빠, 엄마의 친구나 이웃 아저씨, 아주머니로서가 아니라 진리와 아름다움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할 수 있는 어른들과 대등하게 만나는 일은 아이들에게 정말 소중한 경험이 되었을 것이다.

곽 부장검사의 가족독서모임 이름은 ‘네오클’. ‘새로운’이라는 의미의 네오와 고전이라는 의미의 ‘클래식’을 합쳐 만든 ‘네오클래식’을 줄인 것. 네오클은 처음엔 성인이 사회를 보다가 2007년부터는 연초에 미리 신청하게 해 매월 바뀌는 책에 따라 청소년들이 사회를 번갈아 맡도록 했다. 그렇게 세대간 소통이 단절된 시대에 청소년과 성인이 고전을 읽고 자유롭게 토론하는 소통을 만들어 간 것이다.

“승진, 인사 등 국가성장기 발전의 척도로 쓰던 것들을 개인의 가치실현이 소중한 지금에도 적용해야 하나요? 법무연수원에서 후배들을 가르칠 때도 성적 좋은 검사가 행복해보이지도, 그렇게 자식을 키우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더군요. 다른 사람들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 진리를 추구하고 그 과정을 기뻐하는 마음이 온전히 한 인간 안에 조화롭게 어우러진 행복한 인간으로 키워야지, 승승장구 좋은 학교를 거쳐 판검사 만드는 것이 교육의 목표가 아니잖아요.”

곽 부장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행복한 독서여행’에 있던 ‘육조단경’ 한 구절이 떠올랐다. ‘한 개의 등불이 능히 천년의 어둠을 없애고 한 지혜가 능히 만년의 어리석음을 없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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