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에 대한 철저한 보호 없이 창조경제 가능할까?

요즘 창조경제가 이슈다. 창조는 문화에서 잉태된다. 창조경제를 강조하는 것은 활력을 잃어 갈팡질팡하는 경제에 창조라는 생명력을 넣어 대한민국을 문화강국으로 만들어 진정으로 잘 살아 보자는 것으로 보인다.
단순한 경제성장을 뛰어넘는 ‘문화강국’ , 배도 부르고 마음도 풍요해야 좋은 세상 아니런가? 문화는 인간애가 바탕이 되어 있지 않은가? 경제민주화도 같은 맥락이지 않을까? 그런데 정부의 정책만으로 창조경제가 가능할까? 학교에서는 문화를 직접 체험하고 느끼는 것, 묵상 글쓰기 개방적 소통이 이루어지는가? 사회에서는 문화의 가치를 인정하는가?
얼마 전 ‘놀라온 오케스트라’라는 놀라운, 함께 어우러지는 오케스트라에 다녀왔다. 이런게 문화이고 창조이며 파격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휘자는 베토벤 바이러스의 모델이었던 놀마에 서희태다. 공연 며칠 전에 표가 매진되었다. 난 5만원짜리 표를 구해 뒤쪽에 앉았다. 아뿔사! 앞자리 몇 십개 좌석이 텅 비어 있었다. 그 자리는 초대석일 듯싶다. 꽤 괜찮은 분들(?)에게 초대권이 가도, 그 괜찮은 분들이 집단적으로 그 가치도 모르는 이 사회가 문화의 가치를 인정하는지 궁금하다. 설마 그 분들이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분들은 아니겠지…. 이런 상황에서 창조경제가 가능할까?
이보다 더 문화를 중시하지 않는 것을 잘 드러내는 사회현상도 있다. 만일 상점에서 1000∼2000만원어치 물건을 두명 이상이 공모하여 영업 목적으로(생계목적이 아니라 팔아서 돈을 벌 목적으로) 훔쳤다면 초범이라도 실형을 면치 못할 것이다. 법정형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으로 벌금형은 애시당초 불가능하다(형법 제334조 ②항).
그런데, 문화도둑질에 대해서는 이 사회가 얼마나 관대한지 살펴보자. 작년 대선 때, 대선후보들도 모두 찾아갔던 유명작가인 격외옹(이외수의 호)의 ‘삶의 본질을 꿰뚫는 촌철살인의 표현과 시대와 현실을 풍자하는 독창적인 표현양식(형사재판 담당판사의 말이다)’이 무려 56개나 ‘이외수 어록 24억짜리 언어의 연금술’이란 전자책으로 무단 복제되었다. 그것도 대형출판사가 광고라는 영업목적으로….
그런데 그 처벌로 벌금 1500만원이 선고되었다고 한다. 피고인들도 24억원짜리로 인정하는 언어의 연금술을 영업목적으로 훔쳤어도 벌금 1500만원이다. 합의나 피해보상을 위한 공탁이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참고로 판사는 사회적 공감대를 고려하여 판결하는데, 벌금 1500만원은 이와 같은 사건에서 현재 사회적 공감대에 비추어 적은 금액은 아니다.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의 글이 도적질을 당해도, 상점에서 1000∼2000만원을 훔친 것보다 적게 처벌받는 이런 사회에서 과연 누가 창조성을 위한 일을 할 수 있을까?
나는 격외옹의 고소 및 협상대리인이었다. 소송진행 중 형사조정이란 것이 있었는데, 조정위원(지적재산권 전문 변호사로 보이는)도 기껏해야 벌금이나 집행유예 아니냐는 인식이었다.
검찰은 항소를 할까? 150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만일 항소를 한다면 2심법원은 실형을 선고할까? 격외옹이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다면 1000만원 이상의 손해배상을 받을 수는 있을까? 혹 그 대형출판사도 격외옹이 아무리 형사고소를 하고, 민사소송을 해도 ‘기껏해야 벌금 1500만원에 손해배상 몇 백만원이면 될 텐데’라는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겠지. 역설적으로도, 그 출판사가 출간한 ‘이외수 어록 24억짜리 언어의 연금술’ 첫페이지에는 ‘000000에서 제공하는 콘덴츠는 저자권법에 의해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제와 무단복제를 금합니다. 일체의 저작권 침해 행위는 민사상의 손해배상 및 형사상 처벌까지 받을 수 있습니다(저작권법 제136조-권리의 침해적 규정)’라고 적혀 있다. 트위터 글이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저작물인지 논란이 되었었는데, 트위터 글을 저작물로 인정한 판결이 나온 지금 그 출판사의 태도가 궁금하다.
나는 두 아들에게 글을 쓰거나 음악을 하거나 미술 공부를 하라고 권할지언정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로 다른 일을 하는데 도움이 되는 정도만 하라고 할 것 같다. 문화를 직업으로 하는 프로를 권하지는 못할 듯싶다. 깊이 있는 예술에 대한 프로가 없는 세상에서 경제인, 관료, 정치인은 무엇을 통해 문화의 창조성을 배울 수 있을지, 국민들은 어떻게 즐겁게 창조적인 문화를 만끽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 대통령도 이점을 인식하여 문화융성위원회를 발족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아무리 훌륭한 정책을 만들어도 문화의 산물인 저작물에 대한 국민의 인식, 사법부의 인식이 철저하지 않는 이상 창조경제는 공염불이 되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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