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인들은 분쟁을 다룬다. 사람들은 누구나 1차적으로 자신의 입장에서 느끼고 판단하고 행동하기에 분쟁당사자들은 어느 쪽이건 억울함을 호소하고 스트레스로 가득 차기 쉽다. 재판은 이러한 당사자들에게 대등한 기회를 주어 분쟁을 해결하고 그들을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가게 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그렇기에 재판절차는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두렵지 않아야 하며 덜 스트레스받는 방식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재판절차가 과도한 긴장을 유발하거나 효율이라는 가치만을 추구하여 당사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로 하소연할 기회조차 주지 못한다면, 법정까지 가는 길이 멀거나 힘들어 절차 참여가 용이하지 않을 정도라면, 아무리 재판 결과가 타당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 재판은 분쟁보다 더 스트레스를 주고 억울함을 남기는 과정이 될 수도 있다.
필자는 수원에 사무실을 두고 있지만 서울 언저리에 산다. 그래서 출퇴근과 재판 관계로 서울, 경기 전역을 두루 돌아다닌다. 그러다 보면 서울과 경기도의 차이를 체감한다. 우리나라는 참으로 ‘서울’중심적이다. 중요 대학들이 어디 있는지만 봐도 알 수 있다. 법원 접근권의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서울에는 중앙지법이 있는 곳에 서울고등법원이 있고 동서남북으로 동부, 서부, 남부, 북부지법까지 있다. 또 서울은 지하철과 대중교통의 이용이 용이해서 서울 시내에서 법원 사이를 이동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경기도는 본원과 지원, 지원별 거리가 멀어서 경기도 내에서 법원을 방문하는데도 거의 1시간 이상 자가용을 운전하거나 시외버스를 타지 않으면 안 된다. 경기도 내에서도 이런데, 지원에서 재판을 받던 당사자들이 서울고등법원으로 재판을 받으러 갈 때는 모두들 힘들다고 하소연이다.
사실 우리의 재판이 집중심리나 제대로 되는가. 때때로 증인이 안 나와서 수회 기일을 공전하고, 주장정리 및 추가 입증, 기록검토를 위해 속행을 하다 보면 당사자들은 입 한 번 열지 못하고 왕복 3~4시간씩 왔다갔다만 한다.
그리하여 본래는 억울함을 풀기 위한 재판이건만 당사자들은 “오늘도 가게 문을 닫고 왔는데 재판하다가 생업이 망하고 더 힘들어지겠다”며 고개를 흔든다. 또 가끔 그렇게 땀을 뻘뻘 흘리며 재판을 받으러 왔건만 판사님으로부터 늦게 왔다고 핀잔을 듣거나 주장도 제대로 못했을 때 당사자들은 억울함을 넘어 분노를 표현하기도 한다.
경기고법 설치를 위한 토론회에 갔을 때 아주대학교의 한 교수님께서 정말 공감이 가는 말씀을 하셨다. “경기고법의 설치 문제는 단순히 법원 설치의 문제가 아니라 사법접근성의 문제, 재판받을 권리를 얼마나 저비용으로 편안하게 보장하는가의 문제이다, 현재 경기지역 주민의 항소심 재판을 위한 고등법원의 사법서비스는 대단히 낙후된 중앙집권적인 사법권 운용이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교수님은 “수원지방법원 관내 사건의 수는 7219건, 대전고법 3955건, 광주고법 3891건, 부산고법 6081건 등을 상회하고 있어 수원지법 관내 사건만을 관할하는 고등법원을 별도로 설치한다 하여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고도 설명했다.
실제 최근 서울 인구수는 점차 줄어드는 추세인 반면 경기도 인구수는 지속적으로 증가 추세에 있고 이미 경기도의 인구수가 서울의 인구수를 추월한 상태이다. 또한 수원지법 관내 인구수는 이미 고등법원이 설치된 부산, 대구 등보다 많다고 한다.
인구수, 사건수, 서울과 경기도 사이의 불균형과 교통체증으로 인한 실질적 거리감 등 경기도에 고등법원이 유치되어야 할 이유는 많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근거는 우리가 사법에서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목표, “안 그래도 분쟁으로 인해 억울하고 힘든 사람들이 보다 편안하게 스트레스를 덜 받고 사법기관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다는 데 있다. 올해 안으로 경기도에도 고등법원이 설치된다는 기쁜 소식이 들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지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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