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5·16 군사 쿠데타의 이데올로기인 소위 ‘민족적 민주주의’를 창도한 언론인, 박정희의 대구사범 동기생인 황용주의 일생에 관한 책이다.
황용주는 1918년생으로 일본에서 와세다 대학을 다니다 1944년 학병으로 중일전쟁에 참가한다. 그 이후에 부산에서 대학출강을 하면서 언론활동을 하다가 1958년경 부산, 경남 지역의 유력지인 부산일보의 주필로 활동한다.
박정희가 4·19 이전에 부산 군수사령부 사령관으로 부임한 후 그는 박정희와 군사쿠데타를 깊숙이 논의하고 5·16 군사쿠데타가 성공한 뒤에는 최고회의 자문역, 문화방송 사장 등으로 활동한다. 그런 그가 1964년경 월간지 ‘세대’에 게재한 통일논의에 관한 칼럼으로 반공법위반으로 옥고를 치른다. 그 이후 그는 반공법위반 전과자가 되어 곤궁한 생활을 하다가 2001년 마지막 임종에서 외딸과 박정희의 이름을 부르고 죽음을 맞이한다.
이 책의 백미는 무엇보다도 외딸의 아버지에 대한 회고일 것이다. 이 회고 속에 아버지의 이상과 열정 및 딸에 대한 사랑, 새벽녘에 자주자주 아버지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군인아저씨(박정희 장군)에 대한 기억 등이 그대로 녹아있다.
이 책의 주인공의 5·16 이후의 삶과 정치적 식견(소위 5·16이 내건 민족적 민주주의와 산업화 논리)은 소위 ‘유신세대’인 나에게는 박정희의 ‘국민교육헌장’과 10월 유신 당시의 ‘한국적 민주주의’ 그리고 전두환의 ‘정의사회구현’으로 대표되는 관제이데올로기와 등치된다.
그럼에도 저자가 이 책을 쓴 연유는 남다르고 깊다. “열정과 이상의 시대를 호령하던 단심의 청년이 마흔 남짓에 타의에 의해 인생을 결산당하고, 그러고도 40년을 더 생존했던 사나이의 일생, 그 지식인의 삶이 애절했을 뿐이다. 역사는 이상주의자의 좌절 속에 발전한다는 경구로 어설픈 위로의 말이라도 건네고 싶었다.” 아마 이 책의 주인공이 5·16 이후 여느 사람들처럼 권력, 명예, 부를 계속 향유하는 삶을 살았더라면, 이 책은 아예 탄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열정과 이상’은 ‘탐욕과 고집’으로, ‘단심’은 ‘흉심’으로 변질, 고갈되었을 터이니까.
이 책에는 이제는 누구도 관심이 없는 소위 학병세대의 꿈과 좌절, 야망과 고통이 잘 그려지고 있다. 김구의 비서 장준하, 박헌영의 비서 이강국, 김원봉의 비서인 이 책의 주인공이 만나는 장면은 학병세대의 엄혹한 삶의 역정을 예고한다.
저자는 이 책의 주인공과 함께 1950년대 말에 부산 지역에서 ‘주필의 시대’를 연 학병출신 소설가 이병주의 소설을 빌어서 시대상황을 설명한다. 이병주의 말대로 학병세대 그들에게 한반도에는 ‘조국은 없고 산하만 있었을 뿐’이었을 것이다. 해방 이후의 우리의 현대사에서 학병세대의 활동을 보면, 그들은 산하만 있는 한반도에서 ‘조국’을 만든 셈이다. 물론 그들이 만들 조국이 남과 북으로 나누어져 남북 양쪽이 모두 독재체제로 귀결되어 그들의 꿈과 이상이 그들 너머에 있는 꿈과 이상을 억압하는 기제로 작용했지만.
이 책을 보면서 무엇보다도 이제는 아흔이 넘은 나의 아버지 세대의 삶에 대하여 다시 보게 된다. 이 책의 주인공처럼 지식인이건 아니면 나의 아버지처럼 한 가족을 보전하는 데만 진력한 평범한 가장이건 간에, 나의 아버지 세대(내 아버지는 1923년생이다)의 삶의 무게는 후세대가 측량하여 재단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거웠다는 점을 다시 느낀다. 우리의 현대사에서 식민지와 전쟁, 그리고 정치적 격변을 모두 겪은 아버지 세대의 삶에 대한 따뜻한 이해와 시선, 이 점이 이 책이 주는 매력이자 선물이다.

/유남영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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