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대한민국정부수립 65년이 되고, 로스쿨 제도 이후 법률가의 대량생산이 이루어 졌는데 과연 우리는 법률가의 역할과 책무를 다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20여년 전에 나는 미국 ABA 회장을 지낸 자워스키(Leon Jaworski)의 ‘법률가의 성실과 직업윤리’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글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은 바 있다.
미국이 독립한지 55년이 되는 1831년에 프랑스정부에서 파견된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이라는 26세의 청년이 미국에 왔다. 주로 미국의 행형실태를 조사하기 위한 목적이었으나 9개월 동안 머물며 미국의 정치와 제도에 관심을 가졌고, 귀국하여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책을 저술하였다. 1835년에 초판이 출간된 이 책은 미국의 정치적, 사회적 제도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였다. 학자들은 이 저술이 미국에 대하여 쓴 가장 위대한 책이며 다른 어느 나라의 정치와 문화에 관한 책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것이라고 평하였고, 지금도 이 책 1, 2권이 세계 유명대학에서 고전으로 읽혀지고 있다.
토크빌이 미국에서 분석한 중요한 결론의 하나는 법률전문직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이 책에서 “미국을 방문하여 미국법률을 연구한 바, 미국사람들이 법률전문직의 구성원에게 부여하는 권위와 법률전문직이 정부 내부에 미치고 있는 영향은 미국에서 민주주의 위험에 대항하는 가장 강력한 보장책임을 알 수 있었다”고 술회한다.
더 나아가 그는 “법률전문직은 민주주의 고유의 요소와 충돌 없이 공존할 수 있으며, 앞으로도 영구적으로 유익하게 조화될 수 있는 유일한 귀족적인 요소이다. 법률가다운 냉정성과 민주주의원칙이 결합되지 않고는 과연 민주주의제도가 길게 유지될 수 있을지 의문시된다. 공적직무에 있어서 법률가의 영향이 인민의 권리신장에 비례하여 확대되지 않고는 오늘날 미합중국이 유지될 희망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
토크빌의 이러한 분석과 예언은 그 후 미국법률가들의 역할과 정부에 끼친 영향을 보면 그대로 적중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토크빌의 책이 나온 지 120년이 지난 1956년에 미국사회에서의 법률가의 역할에 관하여 쓴 겜브렐(E. S. Gambrell)의 ‘법률가의 보배(The Lawyer’s Treasury)’라는 책의 서문은 이와 같이 말하고 있다.
“법률가는 공공의 이익에 봉사하기 위하여 존재하며, 정의의 사원에서 일하는 성직자이다. 다니엘 웹스터가 ‘정의가 인간의 지상 최대의 관심사이다’라고 하고 있는 것은 적절한 서술이다. 우리들은 법을 위하여 가장 훌륭한 인간을, 공공이익에 봉사하려는 높은 뜻을 가지고 법을 추구하는 인간을 양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법률가는 오랫동안 시장의 상인이 아니었다. 영국과 미국에 있어서 법률가는 전문가로서 자기들의 높은 윤리규범과 도덕적 및 교육적 수준을 유지하여 왔다. 그들은 자유사회를 만들어 가는 건축가로서 자신들의 기록을 자랑스럽게 생각해 왔다.”
위와 같은 내용을 인용하면서 자워스키는 토크빌이나 겜브렐의 견해와 관찰을 오늘날 법률전문직이 직면하고 있는 도전을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대비한 결과 그것들이 거의 같은 것임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결론지었다. 법률가의 역할과 책무에 대한 이러한 결론은 토크빌이 있던 19세기나, 겜브렐의 20세기, 그리고 오늘의 21세기에도 여전히 통용되는 진리이다.
나는 몇 해 전 어느 대형로펌의 대표되는 분과 변호사의 역할과 사명에 대하여 환담을 나누다가 “이제 변호사의 역할은 비즈니스일 따름이다”라는 말을 듣고 놀랐다. 과연 법률가 또는 변호사의 역할이 비즈니스에만 그쳐도 민주주의와 자유사회는 그 자체로서 잘 돌아가며 그들의 책무는 수임한 업무의 해결만이 전부일까?(최근 공익 부분에 눈을 돌리는 로펌들이 늘고 있어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물론 법률가의 한 축인 변호사 업무의 경우 점차 비즈니스화, 글로벌화, 전문화, 다양화, 대형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법률가 본연의 역할과 책무가 경시 내지는 무시되어가는 경향을 부인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러한 사정은 비단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이다. 더욱이 최근 변호사의 다량배출로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심지어 생활에 심각한 위협마저 느끼는 마당에 법률가의 역할과 책무에 대하여 말한다는 것 자체가 한가로운 췌사로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운 역경에서도 법률가 본연의 자세, 즉 법률가가 민주주의와 자유사회를 지탱하는 건설자요, 집행자라는 자부심과 긍지를 잃지 않는다면 한국의 미래는 아직 희망이 있고, 이러한 법률가들을 필요로 하는 직역확대는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 아니겠는가? 대한민국정부수립 65년 동안 과거정권 아래서 이 땅의 법률가들이 독재와 불의에 타협하며 맡은바 진정한 역할을 회피하지는 않았는지 깊이 반성할진저!

/안동일 변호사
lawyerahn@daum.net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