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헌법재판소는 유신헌법 시절의 긴급조치 1호와 9호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헌법재판소가 1987년 10월 29일 헌법개정으로 신설된 것을 생각하면, 올해의 결정은 ‘늦어도, 너무 늦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1987년 개정된 헌법이 오늘을 규율하는 헌법규정임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긴급조치의 피해자들에 대한 구제가 국가기관에 의하여 거부된 것에 대하여는 어느 기관이 책임을 부담해야 할까? 우선적으로는 입법부와 행정부가 책임질 문제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최종적으로는 국민의 기본적 인권과 헌법의 가치기준을 천명하는 법원, 특히 최고법원인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그 책임을 부담하는 것이 옳다. 특히 대법원은 1977년 5월 13일 자 77모19 전원합의체 결정을 통해 “대통령긴급조치 9호(국가안전과 공공질서의 수호를 위한 대통령긴급조치)는 헌법 제53조 소정의 긴급조치이며 위 긴급조치는 사법적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이므로( 헌법 제53조 제4항) 위 긴급조치의 위헌여부제청신청을 받아들이지 아니한 원심의 결정에는 위법이 없다”고 판시하여 긴급조치에 대하여 위헌 판단을 회피하였기 때문에 가장 큰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 당시 대법원장인 민복기와 대법원 판사인 주재황, 민문기, 한환진, 이영섭, 김영세, 양병호, 임항준으로 구성된 전원합의체의 결정이 그 뒤로 번복되거나 취소되지 않은 채 30년간 유지된 것이 우리의 사법사였다.
대법원의 방관 속에 유신헌법 시대에 이루어진 긴급조치는 실효적 법률로서 폭압적 독재통치의 수단이 되었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는 강제수단으로 작용하였다. 또한 유신시대가 종말을 고한 후 현행 헌법이 효력을 발생한 이후에도 그 긴급조치의 효력은 지난 25년 이상 유지되었다. 1988년 2월 25일 현행 헌법이 발효된 이후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에서 관련 사건을 다루었던 재판관들이 이러한 역사적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이다.
그러나 최근 긴급조치 시대의 폭압적인 기소와 재판과정에서 이루어진 불법이 재심을 통해 구제되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늦었다고 하더라도 국가의 불법행위로 희생된 분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그 유족들에게 배상하는 것은 대한민국이 헌법적 가치를 기초로 세워진 도덕적 공동체임을 유지하는 한 불가피한 일이기 때문이다. 수백억원, 수천억원의 예산이 들더라도 과거 정권의 잘못을 규명하고 국가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또한 그 위법은 나를 포함한 우리 국가공동체의 국민 모두가 침묵하고 방관한 잘못의 결과이므로, 그 불법으로 희생된 분들에 대한 피해를 배상하는 일은 국가공동체가 마땅히 져야 할 의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또한 얼마 전, 장준하 선생에 대한 재심사건에서 담당 1심 재판부가 선고를 통해 “국가가 범한 지난날의 과오에 공적으로 사죄를 구하는 매우 엄숙한 자리에서 무거운 책임 의식을 가진다” “장 선생에게 유죄를 선고한 뼈아픈 과거사를 바탕으로 국민 권익을 보호하는 사법부가 될 것을 다짐한다”며 공개적으로 사과한 일(연합뉴스 2013년 1월 24일 보도)은 하급심판결의 선고였지만, 대한민국 법원 구성원의 역사의식과 책임의식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지금의 법원구성원들이 개인적으로 잘못이 있는 사건은 아니었겠지만, 공적 국가기관인 법원 구성원이 자신에게 부여된 책임과 직무를 제 때에 다하지 못한 점에 대하여 공적으로 유족과 국민에게 사과하고 새로운 각오를 다짐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나는 최고법원인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에서도 마땅히 판결문이나 결정문을 통해, 혹은 적절한 형식을 통해 지난 유신시대와 그 이후의 독재권력에 맞서 국민의 생명과 자유, 기본권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반성과 다짐을 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나아가 국가의 법집행기관으로서 잘못된 법률을 앞장서 시행한 검찰권의 책임자도 마찬가지의 역사의식을 갖고 적절한 방법으로 대국민 사과와 다짐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의적인 기준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유린한 정치권력으로부터 국민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법조인들, 특히 검찰과 사법부가 지난 잘못을 반성하고, 국민이 과거의 검찰과 사법부의 잘못을 용서하는 화해의 대화를 통해 헌법이 규정한 가치질서가 우리 공동체의 근본 규범이며, 모든 국가기관의 종사자들이 국민과 함께 지키고 향유하는 공동체의 구성원리임을 깨우치고 다져나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김동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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