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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법 이야기]의제신탁 법리(Constructive Trust)
곽 철 미 캘리포니아주 변호사  |  charles.kwa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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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호] 승인 2013.05.28  11: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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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2009년에 타계하신 서울대 철학과 김태길 교수님께서 형식과 실질을 주제로 쓰신 수필집을 재미있게 읽고, 이걸 영어로 번역해서 미국에서 살아가는 우리 후손들에게 읽게 하면 후세들이 동양 문화 내지 동양적 가치관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인간의 사회생활을 규제하는 규범이 되는 법 분야에서도 형식(또는 법 안정성)이 중요한지, 아니면 형식적 안정성보다는 실질이 더 중요한가는 끊임없이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다.

과연 동서양을 비교해 보면, 어떤 분야에서는 동양이 더 형식을 따지는 것 같고(예컨대 한국의 결혼 문화 같은 체면문화), 또 어떤 분야는 서양이 더 형식을 따지는 것 같기도 하다(예컨대 한국의 민소법 상 청구원인 제도와 대비되는 영미법상의 소인 제도).

또 동서양이 모두 실질을 형식보다 중시하는 공통적 법 제도도 눈에 띈다. 예컨대 부동산 등기제도와 관련 등기 자체에 절대적 효력을 인정하지 않고, 실질관계가 우선하는 것처럼.

그런데 내가 관찰한 한미 양국 법률의 차이점 중 특별히 본고 주제와 관련된 제도 가 바로 영미법 상의 의제신탁(Constructive Trust) 제도이다.

즉 영미법에서는 A가 계약 불이행, 또는 절도 사기 횡령 등 불법행위를 통해 취득한 재산을 가족이나 친구 등 제3자 명의로 숨겨 놓은 경우, 그 제3자가 정당한 대가 없이 양수 받은 것으로 증명되면(예컨대 증여), A와 그 명의인 사이에는 ‘의제신탁관계’가 설정된 것으로 간주되어, 비록 목적 재산이 제3자 명의로 되어 있더라도 이는 A가 잠시 재산을 신탁해 놓은 것일 뿐 그 재산에 대한 실제 소유권은 변함없이 A에 귀속하는 것으로 본다.

따라서 A의 재산에 대한 청구권을 가지고 있는 권리자인 개인이나 정부는 명의상 소유권자인 제3자를 상대로 목적 재산(그 변형이나 과실 포함)의 반환을 청구할 수 있게 함으로써 정의가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인데, 한국에서는 아직 이런 법리가 인정되지 않는 것 같다.

한국 제도에만 익숙한 미국 교포 중에는 한국과 달리 의제 신탁 법리가 미국법 상 널리 적용되는 것을 모르고, 민사상 강제집행 면탈을 목적으로, 혹은 사기나 탈세 등 부정하게 축적한 재산을 가족이나 친구 등 제3자 명의로 은닉해 놓았다가 낭패를 당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얼마 전 언론 보도에 따르면 서울시가 수십억원의 지방세를 납부하지 않고 있는 납세 의무자를 찾아내서 검찰에 고소한바, 엄청난 부자였던 당사자는 재산을 숨기기 위해 모든 재산을 부인, 아들 등 가족이름으로 전환하고 위장 이혼까지 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하는데, 이런 경우에는 한국에서도 하루 빨리 의제 신탁 법리를 적용할 수 있어야 정의가 실현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 반대로 한국에는 있는데 미국에 없는 것으로, 한국에 살면서 새로 알게 된 한국말 중에 ‘대포차’라는 게 있는데, 미국 제도에 익숙한 나로서는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미국 가주의 경우 자동차 매매계약 당사자인 매수인 뿐 아니라 매도인도 관련 행정기관인 DMV에 소유자 명의 변경을 직접 신청할 수 있으니 매매 이후 발생할 수 있는 사고에 대한 소유주로서의 책임도 면할 수 있고 따라서 대포차 같은 것은 존재할 수 없으며, 일단 소유권을 이전 받은 매수인은 매년 공공 도로 사용료라고 할 수 있는 등록 갱신료를 내고 새로운 스티커를 발부 받아, 이를 번호판에 붙이고 다녀야만 합법적 도로 주행이 가능하니, 등록 갱신 없이 타인 명의 자동차를 몇 년씩이고 사용할 수 있는 대포차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한국도 왜 등록제도를 간단히 정비함으로써 대포차가 범죄에 사용되는 것을 방지하고 세수도 늘릴 수 있는 것을 고치지 못하고 있는지, 혹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이유가 있는지 혼자 의문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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