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제2회 변호사시험 결과가 발표되었다. 1기로 졸업하여 이번에 재수했으면서도 떨어진 제자를 보며 깊은 슬픔에 젖어야 했다. 그의 눈에 비치는 하늘 색깔은 파랗지 않다. 현기증을 일으키는 샛노란 바람개비가 눈앞에서 돈다. 합격했으면서도 일자리를 찾지 못해 도와달라는 장문의 이메일을 보낸 제자에게는 답장을 못했다. 한갓 백면서생인 나로서 무엇을 해줄 수 있을 것인가? 로스쿨 교수로 있는 내게, 봄은 그렇게 답답한 가슴으로 다가왔다.
지금 로스쿨제도의 보완을 놓고 설전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주로 사법시험의 일부존치나 변호사시험의 예비시험을 인정할 것이냐에 논점이 모아진다. 양측의 주장을 가치판단을 배제한 채 그냥 담담히 한번 말해보자.
한 쪽은 사회적 약자의 법조계 진출을 위한 사다리를 완전히 걷어차 버려서는 안 된다고 한다. 주로 청년변호사들의 주장이다. 사람들은 변호사단체가 전부 이에 기울어져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오산이다. 이미 성공하여 연조까지 있는 법조인들은 그 자제나 손자, 손녀를 로스쿨에 입학시켜놓았다. 춥고 배고픈 청년변호사들과 입장을 같이 하기 어렵다. 조금 더 거센 주장을 하는 이들은 아예 로스쿨 제도를 폐지하고 과거의 사법시험체제로 돌아가자고 한다.
다른 쪽은 ‘교육을 통한 법조인 양성’이라는 로스쿨제도가 이제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아가는데, 예비시험이나 사법시험 일부 존치 주장을 받아들이면 로스쿨의 근간을 흔들어버린다고 한다. 이 쪽의 투사대열에 선 사람들 중 일부는, 나아가 변호사시험을 자격시험으로 하여 응시자 거의 모두 합격시키고, 더 나아가서는 로스쿨 설치를 원하는 모든 대학이 설치할 수 있게 하고, 정원의 제한도 없애 시장이 원하는 한 무한정의 변호사를 배출해내야 한다고 한다. 더욱 과격한 주장은, 변호사시험에서 기록형 시험 따위는 없애고, 로스쿨에서는 실무습득은 배제한 채 이론공부만 시켜 내보낸 뒤 변호사시험 합격 후 스스로 실무를 익히면 된다고 한다. 미국식 로스쿨 원형에 가급적 가까이 가려고 하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렇게 팽팽히 맞서는 양 쪽의 주장에 과연 그들이 명분으로 내거는 즉, 사회적 약자로서의 사다리 존치 혹은 로스쿨 설립 취지의 관철 외에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소리 높여 외치는 명분 옆에서 슬쩍 손으로 가리고 있는 진짜 이유를 보고 싶어 견딜 수 없다.
심리학상 거짓말은 인간이 가진 고유한 경향이라고 한다. 사회관계가 복잡해지면서 서로를 속여야 생존가능성을 높일 수 있게 된 것에 인간이 거짓말을 발달시킨 원인을 찾는다. 그래서 한살 미만의 갓난아기조차 엄마를 속이는 행동을 한다고 한다. 그만큼 거짓말은 인간에게 본래적인 것이다. 심지어 최근 미국 연방대법원이 내린 미국 정부 대 자비에르 알바레즈(Xavier Alvarez) 판결에는 근엄(?)하게도 거짓말이 때때로 인간사회에 유용한 점을 지적하며, 거짓말에도 원칙적으로 수정헌법 제1조의 보호가 미쳐야 한다고 한다.
가리개를 살짝 치우고 진실을 들여다보자. 청년변호사들은 가뜩이나 찬바람 쌩쌩 부는 법조시장에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는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의 수를 보며 위기감을 갖는 것이 주장의 좀 더 근원적인 근거가 아닐까? 반대 쪽 일부 이론교수들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을까? 아마 지금 행해지는 로스쿨에서의 부실투성이 교육이 강력한 경쟁자를 맞게 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을 것이다.
한국은 미국과 달리 대륙법학의 범위 안에 있다. 선례를 찾아가면 법조인으로서 무난하게 프랙티스를 할 수 있는 미국과는 달리, 한국의 법조인은 처음 단계부터 요건사실, 항변사실의 구조로 이루어지는, 자연계의 사실을 법적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의 능력을 어느 정도 갖추고 출발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돌팔이 밖에는 되지 않는다. 사정이 이런데, 그나마 약간 붙어있는 로스쿨의 실무교육마저 없애자고 하는 이들의 마음에는 또 무슨 이기적 속내를 숨기고 있을까?
대부분의 경우 경쟁은 필요하고 또 유익하다. 변호사 배출에 관해 경쟁이 완전 배제된 독점상태를 로스쿨이 누려야 한다는 주장은 과연 정당할까? 그러기에 앞서 로스쿨의 부실한 교육을 뜯어고치고, 사회일반의 가치체계에 대한 순응을 위해 진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신평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lawshin@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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